살고 있는 곳 가까이 산이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산을 워낙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래도 매주 한 번씩은 산을 오르고는 한다. 그렇다고 등산을 가는 것은 아니다. 그저 산이 좋아 산을 가고, 산에서 얻는 것들이 있어 즐겁다. 늘 그렇게 산을 다니다가 일이 있어 산을 갈 수 없으면 참 답답한 것이 몸이 다 찌뿌듯해진다.

 

가을이 이미 지나가고 있는데 뒤 늦은 산행을 하기에도 바쁜 시간 때문에 어렵다. 이럴 때는 그저 팔달산이나 광교산만 올라도 제 철을 만날 수가 있다. 수원항교 앞에서 차를 내려 천천히 걸어 경기도청 뒤편에서 화성으로 오르는 길을 걸어본다. 떨어진 낙엽들이 길가에 수북하다.

 

 

색색으로 도로를 물들여 놓은 낙엽이 아름답다.

 

나무들은 잎을 다 떨어트리고 가지만 앙상하다. 색색의 잎들이 바닥에 떨어져 나무 밑에 모여 있는 것들이 흡사 물감을 칠한 듯하다. 이 또한 이 계절만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이 아닐까? 아직도 선명하게 붉은 색을 자랑하고 있는 단풍잎과 화성 서삼치의 200년 지난 성벽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자연과 자연의 만남이란 이런 아름다움일까?

 

발밑에 가득한 낙엽들이 밟히면서 푹신한 느낌까지 준다. 힐링을 한다며 좋은 곳을 찾아다녀야만 하는 것일까? 아마도 이런 낙엽이 쌓인 길을 걸으면, 늦가을의 아름다움에 취할 수가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힐링이 또 있을까? 잠시 휴게소 의자에 앉아 음료수 한 잔을 시켜 마신 후에 화성의 안으로 들어선다.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이야기를 하면서 지나간다. 요즈음 화성은 평일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늦가을이 많은 젊은이들이 화성을 찾은 것을 보니, 아마 어느 대학에서 이곳으로 모임이라도 온 것이나 아닌지.

 

 

수원을 한 눈에 조망하는 것 또한 즐거움이라니

 

세계문화유산 화성이라는 돌 표지를 지나 종각 앞으로 다가가니 노란 나뭇잎과 붉은 단풍이 한데 어우러져 종각과 함께 아름다움을 배가시킨다. 어떻게 같은 종류의 단풍나무에서 이렇게 빨갛고 노란색의 조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붉은 단풍잎을 하늘에 걸고 그 밑에 자리한 서장대 또한 이 가을에만 볼 수 있는 조화로움이다.

 

누군가 가을이 되면 모두가 시인이 된다고 했던가? 팔달산을 오르면서 만나는 이 모든 자연의 조화로움에 젖어, 절로 발길을 옮기다가 보면 이것보다 좋은 힐링이 어디 있을 것인가? 사람들은 어디를 가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디서 무엇을 즐기고 느낄 수가 있느냐가 더욱 중요한 것이란 생각이 든다.

 

날이 참 좋습니다.”

, 날씨가 쌀쌀하지도 않아 걷기에 참 좋네요.”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수인사를 나눌 수 있는 것 또한 이곳이 팔달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정상에 서장대가 있기 때문이다. 서장대 앞에서 주변을 둘러본다. 바로 아래 보이는 행궁을 비롯하여 저 아래 팔달문, 그리고 장안문, 동장대와 공심돈. 그 모든 것이 한 눈에 조망이 된다.

 

이렇게 모든 것을 바라볼 수 있고, 즐길 수 있다는 것. 이런 것들이 바로 집을 나와 조금만 걸어 오르면 만날 수 있는 즐거움이다. 살고 있는 곳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가을의 즐거움. 팔달산이 그곳이 있어 고맙다. 늦가을을 가득 안은 체.

 

가을이 되면 수원 여기저기 참 아름다운 길이 많이 생겨난다. 어디는 억새와 화성의 성벽이 어우러져 가을의 정취를 물씬 풍기게 하는 곳도 있고, 어느 곳은 단풍이 물든 것이 손이라도 뻗치면 손에 붉은 물이 들것만 같은 길도 있다. 평소에 무심코 지나던 길이 이렇게 변한 모습을 보면서, 참 무심하게 세상을 살았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저 볼 일이 있어 찾아갔던 곳에서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던 깊은 가을을 느꼈다면, 그저 입을 벌리고 감탄을 할 수밖에 없다. 5일 오전 찾아갔던 수원월드컵 경기장. 그냥 경기장 주변에 있는 조각이나 다시 한 번 돌아볼까 해서 찾아갔던 곳에서, 아름다운 가을을 만났다. 눈이 휘둥그레질 밖에.

 

 

가을이 내려앉은 길목

 

무엇이라고 표현을 해야 할까? 이럴 때는 그저 아름답다는 말밖에는 할 수 없음을 한탄하는 수밖에. 붉은 물감을 뿌려놓은 듯한 길에서 사람들이 연신 포즈를 취한다. 그 모습조차 가을을 훼방하는 것만 같아 조금은 언짢기도 하다. 떨어진 낙엽을 연신 바람을 내어 한 곳으로 모으고 있는 모습에서도 아쉽다라는 말 밖에는 나오지 않는다.

 

조금 더 놓아두었더라면 그 낙엽을 밟으면서 더 깊은 가을의 소리에 젖어들 수 있었을 텐데. 자신이 맡은 일을 다 하는 사람들을 보고 무엇이라고는 할 수 없는 일. 그저 낙엽을 아직 치우지 않은 곳으로 찾아가 가득 쌓인 낙엽을 밟아 본다. ‘바삭하고 소리를 내며 부서지는 가을이 발밑에 있다.

 

언젠가 기억이 가물거린다. 낙엽이 쌓인 고즈넉한 절간 마당에 수북하게 쌓인 낙엽을 치우지 않는 것을 보았다. ‘왜 낙엽을 쓸어내지 않는가?’ 라고 물었더니, ‘그것이 가을인데 사람들이 가을을 느끼기도 전에 쓸어버린다면 어떻게 하겠는가?’라는 대답이다. 작은 절간에 스님이 참 마음 한 번 푸짐하단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이번 주말이 지나면 단풍이 다 진다는데

 

수원월드컵경기장 조각이 즐비하게 있는 곳에서, 천천히 북쪽 출입구가 있는 방향으로 길을 걷는다. 햇볕을 받아 반짝이는 단풍들이 눈을 부시게 만든다. 땅에 떨어진 많은 낙엽들이 가을이 깊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이번 주말이 지나면 단풍이 다 질 것 같아요. 그래도 주말까지는 단풍이 남아있어서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을 듯합니다. 가을은 역시 단풍철이죠. 바빠서 멀리가지 못하시는 분들은 월드컵경기장으로 오시면 아름다운 단풍 길을 걸어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단풍을 쓸어 커다란 비닐봉투에 담으면서 하는 말이다. 꾹꾹 눌러 담아내는 낙엽들이 가득하다. 예전 같으면 다 추위를 녹이는데 사용했겠지만, 요즈음은 그렇게 담아간 것을 퇴비를 만드는데 사용한다고 한다. 봄이면 아름답게 꽃을 피워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고, 가을이면 아름다운 단풍으로 눈을 즐겁게 한 나무들. 이제 그 명을 다했음에 또 다시 퇴비로 거듭난다는 말에 가슴 한 편이 뭉클해진다.

 

단풍 길이 시작되는 곳에 옆으로 누워있는 안면상이 단풍구경을 하느라 그랬는지, 아니면 붉은 단풍이 눈이 부셔서 그런 것인지 눈조차 크게 뜨지 못하고 있다. 그 뒤편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에는 까치 한 마리 마치 제 집이라도 되는 양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비킬 줄을 모른다.

 

경기도 용인시에 소재한 한국민속촌. 우리나라 사람은 물론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 한국민속촌 한편에 절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리 흔치가 않다. 사람들은 이 절을 찾기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길을 찾아 이동을 하기 때문이다.

 

금련사는 사계절에 다 아름답다. 하지만 가을에 만나는 금련사는, 그 정취부터 남다르다. 민속촌을 찾아갈 때마다 가장 먼저 들리는 곳이 금련사인 이유도, 알고 보면 가을을 가장 아름답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민속촌의 왁자한 사람들 틈에서 벗어나 조용히 사색에 젖기 좋은 곳, 금련사는 바로 그런 곳이다.

 

 

널린 낙엽 밟는 소리가 행복한 곳

 

무봉산 금련사라는 일주문을 지나면 낙엽 길이 있다. 가을이 되면 이곳을 찾아 낙엽 밟는 재미를 느끼고는 한다. 그저 일부로 그리 펼쳐놓은 것은 아니지만, 발을 땔 때마다 바스락이는 소리가 즐겁다. 그렇게 걸음을 옮기다가 보면 천왕문을 만나게 된다.

 

금련사는 아미타여래를 주불로 모시고 있는 절이다. 그 외에 우리의 토속신인 칠성과 산신을 함께 봉안해 놓았다. 아미타여래는 서방정토의 극락세계에 있다는 부처의 이름으로, 부처를 믿고 염불하면 죽은 뒤에 극락정토에 태어나게 된다고 전한다. 아미타불은 한국 불교에서 가장 뿌리가 깊고 광범위하게 민중의 신앙심을 이끌어온 신앙의 대상이다.

 

 

칠성은 인간의 수명장수를 관장하는 신이며, 산신은 산중의 수호신으로서 영력을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는 아무리 작은 산이라고 해도 산신이 있다고 한다. 하기에 과거에는 마을마다 정월이나 음력 10월에 정성을 다해 산신제를 올리고는 했다.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과거 마을 공동체 제의식의 하나이다.

 

대전 유성의 절을 옮겨와

 

금련사 법당인 극락보전(極樂寶殿)은 외 7, 9포의 다포전각이다. 이 극락보전은 조선말기에 대전광역시 유성에 세워졌던 사찰의 법당을 이건한 것이다. 원래 화려한 금단청 (錦丹靑)이었으며 이건 후 외부만 개채(改彩)하고 내부는 원래의 단청을 그대로 두었다.

 

 

금련사 경내에는 일주문과 객사인 하마정, 사천왕을 모신 천왕문, 운판과 목어, 북이 달려 있는 자금광루,종각, 법문을 펴는 안심료, 칠성신 모셔진 칠성당, 아미타불이 모셔진 극락보전, 산신이 모셔진 산신각, 요사채인 염불당과 수광당 등의 건물과 돌장승, 부도, 삼층석탑, 석등, 돌당간, 돌수조, 연못 등이 있다.

 

깊은 가을 속으로

 

가을이 깊었다. 가을만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병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그저 한 자리에 있다는 것이 미안스러울 정도로 나돌기를 좋아한다. 춥지도 덮지도 않은 가을, 기거다가 아름다운 단풍까지 물들어 있다. ‘금상첨화란 바로 이런 계절을 일컫는 것이나 아닌지. 그래서 가을이 되면 가까운 곳이라도 찾아 나선다.

 

 

금련사. 참 크지는 않지만 가을을 마음껏 느낄 수 있는 절이다. 그리고 산사의 분위기까지 그대로 안아올 수가 있어서 더욱 좋다. 이 가을을 미처 느껴보지 못했다면, 한국민속촌의 금련사를 찾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곳에 가을이 무르익어 있을 테니까.

단풍이 아름답게 물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 바로 엊그제인 듯했다. 그런데 강원도 지방에는 폭설이 내려 길이 미끄럽다고 연신 화면을 하얗게 장식하고 있다. 참 시간이 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가보다. 경기도 지역에도 비가내렸다. 이 비가 그치면 날이 추워질 것이라고 한다.

아우네 집 마당을 나갔다. 빗줄기에 젖어있는 담벼락 밑에 서 있는 하루방들, 그런데 그 옆 단풍나무가 올해는 제대로 물이 들지 않았다. 그러던 단풍이 하루만에 비에 젖어 잎을 떨구었다. 비에 젖은 반쯤 물이 든 단풍잎이 그렇게 아름다운줄 몰랐다. 카메라를 꺼내들고 비를 맞으면 땅에 떨어진 단풍잎을 담아낸다.



그런데 돌하루방마다 단풍잎 한장씩을 머리에 붙이고 있다. 그 모습을 보다가 그저 웃고말았다. 왜 꼭 한 장만일까? 아마도 저 하루방님들 욕심이 없는 것인가보다. 그런 자연 하나에서도 사람들이 배울 것은 참으로 많다는 생각을 해본다. 한 장의 비에 젖은 단픙잎으로 멋을 내고 있는 돌하루방들. 그 모습에 여유가 묻어있다. 그저 보기만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그러고보니 요즈음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이사를 하고 난후 그 많은 CD를 자시 정리를 하느라고. 12월 2일 새벽 3시 27분, 이제야 정리를 마치고 허리를 편다. 찬 물 한 잔이 장을 타고 흐르는 느낌이 좋다. 그동안 메말라 있던 장에 축축하게 젖어드는 느낌이다. 사람이 산다는 것이 어찌보면 말없이 서 있는 저 돌하루방보다도 못하다는 생각을 한다.

살겠다고 아우성을 쳐도 밥 한끼 배부르게 먹을 수 없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너무나 많다. 그런데도 기름끼가 가득 낀 배를 매일 기름으로 도배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눌줄 모르는 사람들. 죽어서도 그 많은 재물 때문에 아마 저승 길 조차 제대로 걷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다. 돌하루방은 낙엽이 된 단풍잎 하나를 갖고도 저리 만족을 하는데 말이다.



어제부터 무엇인가 달라졌다. 종편채널들이 일제히 방송을 시작했다고 한다. 고집스레 보는 방송 외에는 보기채널에서 모두 삭제를 시켜버린다. 들여다보았자 세상살이에 도움이 안될 것 같아서이다. 요즈음은 방송이 사람들을 홀리고 있다.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을 바람을 넣기도 하고, 불륜을 하라고 조장을 하기도 한다. 예전처럼 방송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권선징악'이란 것은 눈을 씻고 보아도 찾아보기가 어렵다.


이제 더 많은 채널들이 앞다투어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방송들을 해댈 것이다. 그저 혼자 걱정을 한다. 이넘 세상이 어찌 돌아가려는 것인지. 그저 돌하루방의 마음을 닮고 싶다. 단풍 한 장으로도 만족하는.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이별이라는 것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만 같다. 물론 첫사랑에 성공을 한 사람도 있겠지만, 글쎄다 그 이전에 알게 모르게 청소년기에라도 이별이라는 것을 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사람마다 성격이 달라 이별이라는 것을 크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테고, 혹자는 쉽게 이별을 하기 때문에 마음에 공백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어찌 되었건, 누구의 잘, 잘못을 따지는 것이 아니고 이별은 마음이 아픈 것이다. 그래도 한 때나마 생각했던 사람, 자신과  함께 웃고 울던 시절을 가져봤단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이 왜 유독 가을이면 생각이 나는 것을까?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람

사람들은 가을을 '분위기 있는 계절'이라고 한다. 분위기야 사람마다 잡기 나름이니 무슨 계절과 관계가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유난히 가을을 타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 나도 그 중 하나일 것이란 생각이다. 가을이 되면 문화재 답사를 더 열심히 하는 것도, 어찌보면 그 분위기 탓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같은 문화재라도 철마다 느낌이 다르다. 그런데 가을이 되면 문화재가 더 분위기가 있다고 생각이 든다. 아마도 그런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은, 가을에 떠난 사람 때문인가도 모르겠다. 유별나게 가을을 좋아했던 사람. 가을 단풍을 보기 위해 하늘 높게 달린 재를 신바람나게 노래를 부르며 운전하며 올라가던 사람. 그리고 가을이 되면 술 한잔에 취해 세상 멋이 무엇인지를 알던 사람.

난 그 사람을 가을을 남기고 갔다고 늘 생각한다. 가을에 떠난 사람이라는 유행가 가사가 아니다. 정말 마음 속에 두었던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이 계절이 되면 더 더욱 생각이 난다. 함께 문화재 답사를 다니면서 가끔은 지루해 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말없이 먼 길을 달려가고는 했다. '남자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지 못하면 죽은 인생'이라고 늘 버룻처럼 이야기를 하던 사람이다.


"왜 가을엔 떠난 사람 생각이 날까요?"


스님께 물었다.

"가을이면 떠난 사람이 왜 더 생각이 나느냐고 물었나요?"
"예"
"그거야 가을이니까"


세상에 난 지금 선문답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왜 가을이면 떠난 사람 생각이 나느냐고 물었는데, '가을이니까'라는 대답이다. 그러더니 뒤이어 이런 말씀을 하신다.

"가을에 사람이 생각나는 것은 당연하죠. 그리고 계절이 가을이기에 더욱 생각이 나는 것이죠. 가을엔 모든 것이 떠날 준비를 하는 계절이죠. 만물이 그러하죠. 나뭇잎이 변하고 떨어진다는 것은, 곧 그것이 떠날 것이란 것을 의미하죠. 사람이나 세상사 모두가 떠날 때는 더욱 아름답게 보이려고 하죠. 좀 추한 인간들을 빼고는 말입니다. 그래서 가을이 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이별을 하게 되죠. 어디서 본 기억이 있는데, 연인들이 가을에 가장 많이 이별을 한다고 하네요. 아마도 가을은 이별의 계절이기에, 그 계절이 오면 당연히 생각나는 것이겠죠"


그래서 사람들은 가을에 더 많은 이별을 하게 되는 것일까? 그리고 그 이별의 계절에 떠난 사람이 더욱 생각나는 것일까? 그러나 가을이기에 떠날 준비를 한다는 것은 납득이 가질 않는다. 왜 가을엔 사람들이 이별을 준비하게 되는 것일까?

"사람들 스스로가 자연에 속해있기 때문이죠. 사람은 자연과 떨어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자연적으로 사람과 자연은 상부하는 것이죠. 사람이란 것이 감정의 동물이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가을에 떠난 사람이 더욱 생각나는 것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아마 그런 생각을 했다면, 그만큼 가슴 아린 사랑을 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죠. 문제는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것이 혼자만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이 가을엔 떠난 사람은 더욱 마음 아플 수도 있거든요. 그런 사람을 생각해서라도 마음 아파하지 마세요. 사랑하던 사람들은 마음과 마음이 통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이쪽이 마음 아파하면 저쪽도 이 가을에 마음 아파할 수가 있어요. 그러니 아름답게 헤어진다는 것은 상대의 마음을 아프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죠."
 
모르겠다. 어렵다. 가을에 떠난 사람이 더욱 생각나는 이유가 이렇게 복잡한 것인지 미쳐 몰랐다. 다만 한 가지 내 마음이 아플 때 그 사람도 마음이 아프다면, 정말 그런 것이라면 이제 더 이상은 마음 아파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또 가을은 나를 슬프게 만든다. 생각조차 하지 말라니. 이 죽을 놈의 가슴 아픈 계절인 가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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