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8일 오전부터 남원 선원사가 부산하다. 아침 일찍 부터 무엇을 그리들 준비하는지, 쓸고 닦고 법석이다. 90여명의 유치원 어린이들이 오늘 선원사를 방문하는 날이다. 그동안 선원문화관을 개관하고 한 달도 안 된 사이에, 두 번째 전시회를 여는 왕성한 문화 활동을 펴고 있는 선원문화관이다.

지난 8월 6일 오후 2시 <김원주의 도예전 - 찻그릇과 항아리>전을 열고 있는 선원문화관 내 갤러리 선. 전시회와 더불어 함께 여는 ‘문화강좌’가, 이번에는 색다른 강좌를 열었다. 바로 유치원 어린이들에게 작가인 지우재 김원주가 함께 흙을 만지며 도자기를 만들어 보는 체험을 하기로 한 것이다.



용화전 앞뜰에 가득한 색색의 신발

선원사를 찾은 마리몬테소리 어린이집(원장 박영희) 어린이 90여명과 선생님들. 어제 밤 태풍의 영향으로 오늘 아침까지 비가 내리면 부득이 행사를 취소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아침이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날이 화창하다. 바람까지 시원하게 불어 아이들이 흙장난을 하기에는 제격인 날씨다.

선원사 주지 운천스님의 인사말에 이어, 작가 김원주의 이야기가 시작이 되자 아이들이 먼저 입을 가리고 웃기 시작한다. 그 모습이 우스웠던 모양이다.

“내가 누구냐 하면요. 뭉실뭉실 뭉게구름을 타고 어제 밤에 이곳으로 확 날아 온 털보아저씨예요”

아이들이 소리 내어 웃는다. 4~7세의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에게는 그 모습만으로도 재미가 있는 모양이다.




하나하나 손을 잡아 만드는 흙그릇

아이들에게 하나하나 손을 잡아 준다. 손에 물을 적신 후, 손을 잡아 흙에 대어준다. “기분이 어때요?“ ”간지러워요“를 연발하며 웃어댄다. ”이렇게 늘리세요. 늘어나라 늘어나라“ 손에 닿은 흙이 변하는 모습을 보는 아이들이 신기해한다. 그릇이 완성되었다. 그것을 판에 올려 아이들이 직접 가져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점심시간이 되자, ‘스님짜장’이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선생님들까지 100여명이나 되는 인원이 용화전 안에 모여 짜장을 먹는다. 그리고 또 다시 흙장난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계속 된 ‘털보아저씨와 함께 하는 흙장난’




선원문화관은 지역 주민들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켜주고자 새롭게 문을 연 공간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전시와 문화행사를 계속 할 것이라고 한다. 더 다양한 문화행사를 열어 문화공간으로서의 자리를 확고히 해야 하는 것이, 앞으로 선원문화관이 지역주민들의 문화적 욕구를 얼마나 충족시켜 줄 수 있는가를 가늠하는 척도가 될 것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17교구 금산사 말사인 남원 선원사에서는, 경내에 있던 구 연꽃유치원 건물을 ‘선원문화관’으로 지난 7월 9일 개관식을 가진 후, 대나무 솟대전을 연바 있습니다. 선원문화관은 7월 25일자로 전라북도에서 사단법인으로 승인을 받은 후, 이번에는 새로운 기획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8월 6일 오후 2시에 개막전을 하는 <김원주의 도자전 - 찻그릇과 항아리>전은 그동안 여주 등에서 꾸준히 장작가마에서 찻그릇을 구워낸, 작가의 혼이 들어있는 작품전입니다.


‘김원주의 도예소’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 김원주씨는, 이번 전시회에서는 달항아리 등 다양한 도자들이 선을 보일 것으로 보여 기대를 하게 만듭니다. 선원문화관에서는 매번 전시회를 여는 ‘작가와의 만남’이란 제목으로 전시된 작품들을 배우는 시간을 갖고 있는데, 이번 만남은 8월 8일 오전 10시부터 <털보아저씨와 하는 흙장난>이란 제목으로 유치원생 80여명과 선생님들 등 100여명이 흙을 갖고 만들기를 배우게 됩니다.

선원문화관 이사장인 운천스님은 “전시회를 개최하고, 작가들을 섭외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 우리는 더 많은 사람들이 문화적 향수를 선원문화관에서 충족시키기를 바라고 있다. 이번 김원주 작가의 도예전은 지난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인근에 계신 블로거님들은 이번 개막 오프닝 때 찾아오시면 좋은 만남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멀리까지 달려와 전시를 준비해 주시는 김원주님께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리면서, 앞으로 저희 사단법인 선원문화관이 더 한층 어두운 곳에 빛을 비출 수 있도록 격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날이 무지 덥습니다. 모두 건강들 하세요.

일시 : 2011년 8월 6일(토) ~ 15일(화)
개막 : 2011년 8월 6일 오후 2시
작가와의 만남 : ‘털보아저씨와 함께하는 흙장난’ (8월 8일 10:00 ~ 12:30)


(사진) 위 사진은 김원주님의 블로그에 소개한 사진입니다. 맨 위는 '다기' 가운데는 찻그릇을 진열 한 모습. 맨 아래는 가마에 불을 때기 위해 준비하는 모습입니다. 

승광재. 조선의 황손인 이석씨가 사는 곳이다. 한옥마을 최명희 문학관 인근에 있는 승광재는 2004년 8월 경에 지어진 집이다. 이곳은 조선황실의 마지막 황손이라는 이석씨가 거주를 하고 있으며, 전통예절을 가르치는 설예원과 함께 있다. 현재 전라북도 도지사인 김완주 지사가 전주시장으로 재직시 이 승광재를 지어 이석씨를 머물게 했다는 것이다.

승광재는 한옥마을의 한편에 고즈넉하게 자리하고 있다. 긴 흙담 사이로 난 골목 안에 일각문이 보이고, 그 문 위에는 ‘승광재’라는 현판을 걸었다. 안으로 들어가면 좌측으로는 설예원이 있고, 우측으로는 ㄷ 자로 꾸며진 승광재가 자리한다. 승광재는 ㄱ 자 집 두 채를 연결해 ㄷ 자로 꾸민 집이다. 승광재에는 황실 사람들의 사진과 황실에 관련된 내용들이 진열이 되어있다.




지난 해 명성황후 생가에서 만나보다.

내가 황손 이석 씨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해 10월 8일 명성황후 생가에서이다. 명성황후의 추모제를 마치고 그 자리에 참석한 마지막 황손인 이석씨(본명 이해석)를 생가 마루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올해로 벌써 70세인 이석 씨는 한 때 가수로도 활동을 했으며, 터전을 잡지 못해 이것저것 해보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고종 황제의 손이고 아버지는 의친왕이다. 하기에 명성황후는 이석 씨의 할머니가 된다.


지난 해 명성황후 생가에서 만나 황손 이석씨. 그리고 현재 한옥마을의 승광재

황손 이석 씨는 1941년 음력 8월 3일 사동궁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어린 시절을 사동궁에서 자랐다. 그러다가 결국 궁에서 나오게 되고, 대한제국이 막을 내리면서 많은 고생을 했다고 한다. 1979년까지는 그나마 전 박정희 대통령의 안배로 서울 궁정동 청와대 옆, 칠궁에서 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5공 정권이 들어서면서 이곳에서도 쫓겨나 1년이면 12번도 더 이사를 다녔단다.

중앙시장과 동대문시장에서 국수장사, 자장면 장사 등 해보지 않은 것이 없다는 황손 이석 씨였다. 한 낮에 찾아 든 승광재에는 문이 닫힌 채 나그네들만 왁자하니 집안을 돌아보고, 예절을 배우러 온 아이들인지 소리를 치면서 뛰어다닌다.

요즈음 한창 인기리에 방영이 되고 있는 사극을 보면서, 만일 일본과의 그런 개탄스런 과거가 없었다고 한다면 어찌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나 있었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면 이 승광재가 조금은 남다른 집일 것만 같다. 오래된 고옥도 아니다. 그렇다고 혼자서 조용하고 편안히 쉴 수 있는 공간도 아니다. 그저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들어 시끄럽게 만든다. 그 한편에 숨을 죽이듯 엎드려 있는 승광재를 보면서, 세월의 무심함이 다시 한 번 느껴진다.



승광재와 설예원(아래)

오늘 황손의 집은 낯이 설다. 언제나 그렇듯 이곳도 결코 편안하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이다. 그래도 이나마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어 고맙다는 황손의 말을 되새겨본다. 글쎄다, 우리는 지금 무엇인가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해본다. 오늘 한옥마을 한 끄트머리에서 만난 황손의 집에서, 가슴 한편이 싸한 느낌이다.


위는 영조의 가계도, 아래는 고종황제의 가계도(전단지 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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