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까지 저희 동아시아전통문화연구원에서는 한국인들을 교육시켜 그들이 다문화가정을 돕는 방법으로 교육을 시켰습니다. 하지만 남이 나에게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결혼이민자들이 직접 다문화강사 양성교육을 마친 후 내 자녀들과 어린이들에게 내 나라의 풍습과 한국의 풍습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해시켜야 합니다.”

 

9일 오전 11시 팔달구 팔달로 259번길 18, 3층에 자리한 ()동아시아전통문화연구원(이사장 김용국) 강의실에는 일본, 태국, 인도, 중국, 필리핀, 몽골 등에서 우리나라로 온 결혼이민자들 10여 명이 모였다. 이들은 동아시아전통문화연구원이 주관을 하는 다문화강사 양성과정에 등록을 한 결혼이민자들이다.

 

 

단일민족이라는 고정관념 깨어야 해

 

2009년에 법인으로 등록을 한 동아시아전통문화연구원은 대륙의 실크로드는 물론, 바닷길을 통한 아시아국가의 문화교류가 어떻게 진행되어왔으며 문화를 수수한 국가들은 각각의 전통문화를 어떻게 변이시키면서 체질화 하였는지를 밝히는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연구단체이다.

 

이들은 동일한 문화적 유전자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밝힘으로써, 동아시아를 비롯한 아시아의 문화가 왜 빛깔을 달리하면서 변화를 일으키게 된 것인지를 규명하고자 한다. 또한 동아시아전통문화연구원의 연구진들은 이러한 연구를 통하여 동아시아를 비롯한 아시아 각국이 서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며, 어떻게 교류하여야 하는지에 대하여도 그 소통의 장을 만들어가고자 노력하고 있다.

 

 

김용국 이사장은 첫 강의시간에 다문화강사 양성교육 목적과 필요라는 강의에서

사실 우리나라는 단일민족이라 하고 단일문화를 갖고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오랜 관습과 이 땅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먹는 음식과 자연 등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수많은 성씨 가운데 45개 성씨가 삼국시대부터 고려, 조선을 거치면서 외국에서 우리나라로 들어온 사람들의 성씨이다. 이런 점으로 볼 때 우리나라는 이미 오래전부터 다문화 사회였다고 말한다.

 

모두 40시간 이수해 다문화강사로 활약할 것

 

이번에 20명 정도를 새로 지원을 받았습니다. 이들은 모두 40시간의 다문화강사 양성과정을 거친 후 수원시의 유아원 등으로 나가 강사로 임하게 됩니다. 남들이 나를 찾아오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직접 아이들을 만나 자신이 살던 나라의 풍습을 일리고 그것이 어떻게 우리와 함께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가를 알리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죠.”

 

 

길게는 한국으로 온지 15, 짧게는 2~3년이 지난 결혼이민자들은 첫 시간부터 필기를 하면서 열심을 내고 있다. 이들은 매주 월, , 3일간 교육을 받게 되며 교육내용은 한국사에서 다문화 사회(강사 윤종준), 자기관리를 통한 리더쉽(강사 이원숙), 한국의 역사와 문화답사9강사 임순이), 한국의 예절과 세시풍속(강사 김미영), 한국의 역사와 문화의 이해(강사 김용국) 등 모두 40시간의 교육을 받게 된다.

 

교육을 마친 후에는 유아교육기관을 찾아가 현장실습을 받게 되는데, 현장실습은 개인별 4회 이상을 실습을 한다. 현장실습을 마친 후에는 유아교육기관에서 자신들의 받은 교육을 내용으로 다문화강사로 아이들을 지도하게 된다

 

(주) 이 글은 안양대 국문학과 경임교수인 김용국 교수가 쓴 기고입니다. 김용국 박사는 현재 동아시아전통문화연구원의 이사장이기도 합니다. 세월호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쓴 글임을 밝혀드립니다. 

 

4월을 잔인한 달(April is the cruellest month.)이라한 토마스 엘리어트의 시가 있다. 이 시의 시대적 배경과 의미는 뒤로하고 2014년 이 한 마디가 이렇게 공감된다는 것이 더더욱 슬프고 괴롭다. 내 생애 이토록 참담하고 먹먹한 4월이 있었던가? 이렇게 잔인한 4! 대한국민의 봄은 봄이 아니다. 희망의 계절이어야 할 봄이 절망의 계절이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절망감과 비통함은 세월호의 침몰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사고를 수습하여가는 정부의 대처과정을 지켜보면서 온 국민이 비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제발, 반드시, 설마하면서 가슴을 졸이었고 애간장이 녹았다. 전국민이 방관자가 되었고 방조자가 되었다는 트라우마(Trauma)로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리더의 덕목

 

어버이는 자식의 잘못을 자신의 과오로 돌린다. 그러한 믿음이 엄격한 부모의 호된 꾸지람과 체벌을 자식이 달게 여기는 것이리라. 부모와 자식 간에도 이러한 역할은 엄연히 존재한다. 그와 마찬가지이다. 국가와 국민 사이에도 이러한 믿음이 존재해야한다. 대한민국이라는 선박의 선장은 나라의 수반인 대통령이다. 다시 말하여 세월호와 같은 사고의 원인이 그 전의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어왔던 그 책임은 대통령의 것이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어버이를 믿고 따라고 꾸지람을 듣더라도 달게 여길 것이다.

 

그런데 국민들은 국가를 믿지 못하게 되었다. 슬프고 슬프다. 작정하고 잘못을 저지르면 범죄다. 결코 예상치 못하였던 사고였다고 하더라도 그 비극의 씨앗은 어디에선가 싹트고 있었고 엄청난 속도로 웃자라 있었다. 이것이 대한민국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제라도 그러한 사실을 목도하였다면 그 것이 내 부덕임을 인정하여야 했다.

 

 

책임은 내게 있다

 

태종 3(1403) 55(단오), 경상도의 조운선(漕運船) 34척이 바다에 침몰되어 천여 명이 익사하였다. 만호(萬戶)가 사람을 시켜 수색하니, []에 의지하여 살아난 한 사람이 이를 보고 도망하였다. 쫓아가서 붙잡아 그 까닭을 물으니 대답하기를 도망하여 머리를 깎고 이 고생스러운 일에서 떠나려고 한다.”하였다. 임금이 듣고 탄식하기를 책임은 내게 있다. 만 명의 사람을 몰아서 사지(死地)에 나가게 한 것이 아닌가? 닷샛날은 음양(陰陽)에 수사일(受死日)이고, 또 바람 기운이 대단히 심하여 행선(行船)할 날이 아닌데, 바람이 심한 것을 알면서 배를 출발시켰으니, 이것은 실로 백성을 몰아서 사지로 나가게 한 것이다.”

 

이것이 리더의 덕목이 아니겠는가? 군주제의 나라에서도 임금은 이렇듯 자신의 잘못이며 책임이 임금에게 있다고 인정하고 개선하려 노력하는 것, 이것이 자식의 허물을 끌어안고자 하는 어버이의 참 모습이 아니겠는가?

 

 

망양보뢰(亡羊補牢)

 

우리의 속담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이 있다. 이는 이미 때가 늦어서 소용이 없음을 비꼬아 하는 말이다. 그런데 속담의 근거가 되었던 망양보뢰(亡羊補牢)’에는 우리가 사용하는 의미와는 사뭇 다른 뜻을 갖고 있다. 한 마디로 소를 잃은 뒤에라도 외양간은 고쳐야 한다는 말이다.

 

전국시대(戰國時代) , 초나라의 장신(莊辛)은 양왕(襄王)의 실정을 비판하였다. 양왕은 오히려 그러한 장신을 꾸짖었고, 이내 장신은 초나라를 등지고 떠나야 했다.

 

그런데 장신의 말과 같이 진()나라의 공격을 받은 초나라는 위기에 처하였고, 양왕은 피난을 가야만 하였다. 늦었지만 장신의 말이 옳았음을 깨달은 양왕은 장신을 불러 대책을 물었다. 이에 장신은 토끼를 발견하고 사냥개를 돌아보아도 아직 늦지 않은 것이며(見兎而顧犬 未爲晩也), 양을 잃고 외양간을 고쳐도 아직 늦지 않은 것입니다.(亡羊而補牢 未爲遲也)”라 답하였다. 망양보뢰란 그러니 이미 늦어 소용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늦었다고 생각할 때라도 허물을 고쳐 훗날 똑같은 실수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였던 것이다.

 

 

허물이 있음을 알았을 때 고쳐라

 

흔히 허물없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허물을 누가 빨리 고치느냐가 세상살이의 성패를 좌우하는 관건이 되는 셈이다. 누구도 욕먹기를 즐기고 칭찬 받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 스스로의 허물을 알았다면 재빠르게 고치고자 하여야 한다. 어리석음이란 동일한 잘못을 반복하는 것이지 한 번의 잘못이 어리석은 것은 아니라 여긴다.

 

자신의 허물로 인하여 사람들의 미움을 산 것이 소를 잃은 것이라고 한다면 그 허물을 고치고자 하는 것은 외양간을 고치는 일이 될 것이다. 허물을 고침으로 사람들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면 어찌 허물 있음이 마냥 부끄럽기만 한 일이겠는가?

 

드와이트 D. 아이젠 하워(Dwight David Eisenhower) 대통령이 리더십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보스는 뒤에서 호령하지만, 리더는 앞에서 이끕니다. 보스는 가라고 말하지만, 리더는 가자고 말합니다. 보스는 겁을 주며 복종을 요구하지만, 리더는 희망을 주며 힘을 끌어냅니다.”

 

잔인하였던 4월을 보내고 아직도 괴로움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오늘, 덕목을 갖춘 리더가 절실히 그립기만 하다. 그 간절한 바람으로 5월을 맞았다. 참된 어버이가 되겠다고 다짐을 하면서 …….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팔달로 259번길 183층에 자리하고 있는 ()동아시아전통문화연구원. 이곳은 화성의 북문인 장안문에서 조금 비켜 선 건너편에 자리하고 있다. 2005년도에 경기전통문화연구소로 출발을 한 ()동아시아전통문화연구원은 천시불여지리(天時不如地利) 지리불여인화(地利不如人和)’란 설립취지를 갖고 시작을 했다.

 

하늘이 주신 혜택은 땅이 주는 혜택만 못하고, 땅이 주는 혜택은 사람과 사람의 화합만은 못하다라는 취지로, 사람과 사람의 화합, 아시안의 문화적 소통을 이룩하고자 설립했다. 한 마디로 동아시아의 모든 문화를 교류하고자 하는데서 시작을 한 것이다. 상주하는 직원은 3명에 불과하지만, 이들은 모두 무급직원으로 자원봉사자들이다.

 

 

아시아문화의 모든 것을 교류한다.

 

2009년에 사단법인 동아시아전통문화연구원을 설립을 하면서 국제학술 세미나, 아시아 전통문화강좌, 한국 전통문화강좌, MOA(Mon of Asian), 아시아의 문화, 민속, 옛이야기 등을 출판하고 있다. 이 연구원은 다문화로 열어가는 아시아의 꿈을 이루기 위해, 아시아 각국의 전통문화를 비교하여 아시안이 서로의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한다.

 

또한 각국의 전통연희를 중심으로 상호 비교하여 교류하고 있으며,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을 위한 청소년 모임과 아시안이 여성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꿈과 희망의 마당, 이주민들을 위한 한국의 전통문화강좌 등도 열고 있다. 더불어 다문화시대 한국인을 위한 아시아의 전통문화강좌 등 다양한 일을 함으로써, 다문화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이 시대에 맞는 사람과 사람의 화합을 추구하고 있다.

 

 

김용국 원장을 만나다

 

14일 오후, 동아시아전통문화연구원을 찾았다. 연구원의 김용국 원장의 집무실은 국문학 박사답게 사무실 벽면이 온통 책으로 덮여 있다.

 

“2013년은 저희 연구원이 정말 많은 행사를 했어요. 2014년 전반기에도 많은 행사를 계획하고 준비 중에 있습니다. 저희 동아시아전통문화연구원은 현재 회비를 내는 회원이 40여 명 정도가 되고, 비회원까지 합하면 100여명 정도가 됩니다. 저희들이 행사를 할 때는 동아시아에서 온 이주여성들이 주로 행사를 맡아서 도와주고 계시죠.”

 

수원만이 아니라 오산, 화성, 서울 등지에서 동아시아전통문화연구원은 많은 행사를 담당하고 있다. 130일에는 한국에 와서 거주하고 있는 18000명의 네팔인 중 1000명 정도가 수원시민회관에 모여 친교의 시간을 갖는다고 한다.

 

이주노동자들이나 결혼이주 여성분들은 쉬는 날이 아니면 전국에서 1000명 정도가 모이가가 쉽지가 않아요. 그래서 설 연휴에 모이기가 어렵지만 날짜를 130일로 정했어요.”

 

 

일을 하기 위해 여건을 만든다.

 

“220일에는 오산 물향기 체육센터에서 키르키즈스탄 사람들 60여명이 모여 배구대회를 열어요. 이 나라사람들은 정말 배구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 전국에 10개 팀 정도가 있다고 해요

 

323일에는 화성시 종합운동장에 키르키즈스탄 사람들이 2000명 정도 모일 예정이라고 한다. 체육대회를 열어 타국에 나와 있는 사람들끼리 안부도 묻고, 서로가 궁금했던 이야기들도 나눌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했다는 것.

 

저희 동아시아전통문화연구원의 모든 행사는 사전에 미리 예산을 확보하지 않아요. 관공서 같은 곳에서 도와주지도 않고요. 그래서 여건을 먼저 만들어 놓고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하기 위해서 여건을 만들죠.”

 

그러다가 보니 늘 어려움이 따른다고 한다. 이사들이 내는 이사회비와 회원들이 내는 회비로 충당하기에는 어렵다는 것. 그래서 늘 원장 자신이 돌아다니면서 자금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5회 국제학술세미나 미얀마에서 연다

 

저희들이 하는 행사 중에 가장 큰 행사는 국제학술세미나죠. 올 해는 5회째가 되는데 미얀마 양곤에서 열려고 합니다. 이번에 저희들의 세미나 주제는 아시안의 출생의례입니다. 그동안 3회 때는 아시안의 통과의례가 주제였고, 4회 때는 수원 선경도서관에서 아시안의 장례문화를 주제로 했습니다.”

 

2회 때는 몽골 현지에서 열었으며, 5회 세미나 때는 미얀마 양곤대학에서 아시안의 출생의례에 대한 주제로 세미나를 열 계획이라고 한다. 장소를 미얀마로 잡은 것도 주변의 캄보디아, 라오스, 필리핀, 태국 등에서도 참가를 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한 것이라고 한다.

 

다문화 시대를 맞이하여 주도적으로 많은 행사를 기획하고 있는 동아시아전통문화연구원. 올해는 연구원의 회원들에게 다문화 강의를 중점적으로 하고, 회원들의 모임인 모아(MOA)를 통해 각급 초등학교와 유치원 등에 많은 강사를 파견하여 활성화 시키겠다고 한다. 2014년 한층 더 많은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114일과 15일의 내 일정표를 공개합니다.

 

사람이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바쁘게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물 흐르는 데로 살아가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 114일과 15일 제 일정표를 돌아보다가 저도 놀랐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사는 것이 과연 잘 사는 것인가가 정말 궁금해집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새벽 2~3시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정말 분초를 다투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늘 자신에게 그래도 이렇게 찾아갈 곳이 있고, 불러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행복이 아니겠는가? 라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너무 심하게 짜여진 일정표에서 숨 도릴 틈도 없다는 생각이 가끔은 답답함으로 밀려오고는 합니다.

 

 

114일 일정표

 

새벽 3시 취침

오전 6시 기상과 동시에 블로그 점검

오전 8시 조식

오전 9시 집 나섬

오전 11시 경기도의회 민주당 당대표 수석대변인 면담

오전 1130분 화장실 문화공원 해우재. 영원한 수원시장 심재덕 5주기 추모예술제 취재

오후 1230분 해우재 관계자들과 오찬

오후 130분 동아시아전통문화연구원 김용국 원장 대담

오후 230분 남문로데오 상가 거리 촬영

오후 330분 남문 로데오 상가 취재

오후 5시 귀가

오후 6시 석식

오후 7시 자료정리

오후 8시 기사 작성 및 송고

오후 9시 불교문화신문 기사 작성

오후 10시 블로그 관리

오후 1115일 일정표 예비 작성

 

 

115

 

새벽 330분 취침

오전 630분 기상과 동시 블로그 관리

오전 8시 조식에 이어 다시 블로그 관리

 

15일에는 오전 10시에 사람을 만나고 난 뒤 오전 11시 팔달문 시장 문화센터와 방송국 취재. 팔달문 상인회장과 오찬 후 인터뷰를 합니다. 오후 3시에는 구천동 공구상가 취재를 합니다. 오후 530분 영동시장 아트포라 작가와 인터뷰를 마친 후, 오후 7시에는 모임이 있습니다.

 

이틀간의 일정표입니다. 이렇게 바삐 살아가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늘 시간이 모자라 쩔쩔맵니다. 과연 이것이 세상을 잘 사는 일일까요? 솔직히 요즈음은 회의가 느껴지고는 합니다.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는 것인가를. 하지만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고 제 스스로가 선택한 일이기 때문에 후회를 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오늘도 최선을 다해 달릴 뿐입니다. 그나마 육신이 아직은 강건하다는 것이 다행이란 생각입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열심을 낼 수 있을까? 오늘은 돌아다니면서 이 생각을 화드로 삼아야 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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