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한달 간이나 10월 1일 축제에 매달렸다. 출연자 섭외에서 부터 프로그램 작성, 팸플릿 시안, 거기다가 전시준비까지. 버거운 나날이지만 표가 나지 않는 것이 축제의 기획자이다. 성공을 하면 그냥 넘어가고, 자칫 큰 효과를 얻지못하면 욕은 혼자 다 먹어야 하는 것이 축제의 기획이다. 준비도 어렵지만, 행사 당일 혹 사람이라도 모이지 않으면 어떻게 할까 노심초사 해야만 한다.

10월 1일 남원 요천가 사랑의 광장에서 열린 '남원민군한마당축제'. 이릅부터가 남다르다. 제63회 국군의날 기념으로 열리는 이 큰잔치에는 출연자만도 300여 명. 단 하루만에 하는 행사치고는 큰 행사에 속한다. 이 축제를 위해 남원시청이며 주최측인 7733부대를 운천스님과 함께 참 뻔질나게도 드나들었다.


복합적인 기획으로 승부를 걸다

행사당일 프로그램은 다양했다. 전통과 현대, 젊음과 패기가 넘치는 무대를 만들고 싶었다. 군과 민이 하나로 어우러져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를 보듬어 주는 그런 축제장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들의 문예공모까지 10월 1일로 끌어드렸다. 그리고 어딜가나 1시간 이상 소요가 되는 개막식을 없애버렸다. 꼭 축사를 할 기관장들은 무대가 바뀔 때, 잠시 비는 시간을 이용하여 1분 이내의 인사를 하게했다. 관람객들이 지리함을 갖지 않게 최선의 배려를 한 것이다.

아침 일찍부터 모든 준비는 착착 진행이 되었다. 군인들은 주민들에게 보여줄 군 장비 전시와 사진전. 그리고 서바이벌 총쏘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들고 나왔다. 또한 10월 2일 '노인의 날'을 위한 축제를 겸했기 때문에, 남원보건소에서 10여명이 동참하여 어르신들의 건강을 살펴보기로 했다. 



유치원과 초등부 학생들이 문예공모전에 학부형들과 함께 참가를 하였다.(위) 이 공모전에서 입상을 한 미술작품들은 '갤러리 선'에서 잔시를 할 예정이다. 남원보건소 의사와 간호원들이 어르신들의 건강을 체크하고 있다(가운데) 전시가 된 군수장비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잠시 자리를 옮겼다. 선원문화관 내게 전시공간인 <갤러리 선>에서는 연당 강현숙의 '내 마음의 풍경'전이 열려 그 개막식이 이루어졌다. 이 전시 역시 민군한마당큰잔치의 일환으로 열린 것이다. 선원문화관 이사장인 운천스님을 비롯하여 오늘 행사의 주최측인 7733부대장 김종태 대령 내외, 남원교육지원청 박주영교육장 등 인사들이 개막식을 가졌다.


당일 행사의 일환으로 열린 강현숙의 '내 마음의 풍경'전 개막식과 작가에게 그림에 대한 설명을 듣는 사람들 

개막전부터 행사가 시작되다.

2시 20분 개막식을 하기 전부터 무대에는 '신관사또부임행차'가 자릴잡고,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 2,50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객석에는 1,500명 정도의 관람객들이 자릴 잡았다. 군장비 전시회와 유치원과 초등학생들의 그리기와 글짓기에도 200여명이 참가를 하여, 부모님들까지 500여명의 인원이 무대 밖에서 열심을 내고 있는 중이다.

오후 2시 20분 굉음을 내며 행사장으로 다가 온 헬기에서는 장병들이 밧줄을 타고 적을 불시에 공격하기 위한 전술훈련인 패스트로트가 선을 보였다. 그리고 7733부대 연대장인 김종태 대령과 장병 50여명이 무대에 올라 개막선언과 함께 관람객들에게 '충성'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인사를 했다. 


식전 행사로 진행된 '신관사또부임행차' 곤연과 관람을 하고 있는 관람객들

35사단 군악대는 그 전에 광한루원 앞에서 출발을 하여 춘향교를 건너 행사장까지 시가행진을 한 후이다. 첫 무대는 군악대의 연주로 시작이 되었다. 그리고 이어서 남원시림합창단의 아름다운 선율이 관객을 사로잡았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군인들만 500여명, 그리고 공연단 전체가 300명이 넘는 큰 무대였다. 합창단의 공연에 이어 특공무술을 선모일 때는 연신 환호와 박수가 그치지를 않았다.

다음으로 6개 부대 120명의 병사들이 서로의 힘을 자랑하는 기싸움에서는 용기의 상단에 꽂힌 꿩장목을 먼저 뺐는 시합이었다. 젊은 장병들답게 고함소리와 서로 부대의 명예를 걸고 상대방의 장목을 빼앗느러 함성이 그치지를 않았다. 그리고 이어서 여고댄싱팀들이 보여주는 아름다운 무대는 장병들의 환호속에 진행이 되었다.



4시간 30분이 넘는 공연시간. 그러나 자리에 앉은 관람객들은 자리를 뜰줄을 모른다. 한낮의 해가 아직은 조금 따가운데도 자리를 지키면서 함께 환호하고 박수를 치며 즐긴다. 남원시립국악단의 소고춤과 민요 한마당, 그리고 다시 여고 댄싱팀의 무대에 이어, 오늘의 메인 공연이라 할 수 있는 남사당 줄타기가 시작이 되었다. 줄위에 오른 어름산이가 줄을 한 번씩 건널 대마다 쏟아지는 환호와 박수. 아마도 그 위험한 어름산이에게는 이 박수소리가 가장 힘이되었을 것이다.




"정말 좋은 축제였네. 이런 구경을 사켜주어 정말 고맙네"

남사당 줄타기가 끝나고나서 기싸움의 준결승과 결승이 진행이 되었다. 모든 행사를 마친 시간은 5시 40분. 주변 정리를 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다가와 인사를 한다. "정말 좋은 축제를 보았습니다. 내 생전 그렇게 오랜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본 축제는 처음입니다"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의 한마디 말씀. 아마도 이 소리를 듣기 위해 그 수많은 날을 고생을 한 것이나 아닌지. 





축제는 무엇인가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지루하지 않아야 한다. 딴 곳에서 볼 수 없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한 자리에서 차별이 있어서는 안된다. 관람객들도 함께 즐겨야 한다. 이번 남원민군한마당큰잔치가 추구했던 축제의 이상이었다. 




모든 행사가 끝났다. 맥이 풀린다. 축제 며칠전부터 감기몸살로 영 죽을 맛이다. 그래도 축제를 진행하는 것을 게을리할 수는 없다. 그토록 모든 것을 마치고나서 그야말로 파김치가 되어 돌아왔다. 그리고 얼마를 잤는지 모른다. '정말로 바람직한 축제의 표본을 보았다'는 한 분의 말씀에서, 우리는 그 모든 걱정과 고통을 잊고만다.         
10월 1일 남원 요천가 '사랑의 광장'에서 열리는 '제63주년 군군의 날 기념 남원 민군 한마당큰잔치'에서 선 보이는 놀이 중 '기싸움'이라는 종목이 있다. 기싸움이란 기를 갖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용대기 위에 꽂혀있는 '꿩장목'을 먼저 빼앗는 부대가 이기는 승부성 민속놀이이다.

원래 기싸움이란 마을마다 <두레기>가 있어, 그 두레기들이 농사 일을 하러 길을 나가다가, 서로 꿩장목을 빼앗는데서 유래를 한 것이다. 예전에 마을에는 농사를 지을 때 품앗이를 하던 두레조직이 있었다. 이 두레조직에는 두레를 상징하는 기(旗)인 '두레기'가 있었다.공동으로 농사를 짓기 위해 두레패들이 길을 가다보면 이웃의 두레패들과 길에서 서로 마주치게 된다.


두레패의 서열을 정하기 위해 벌이던 기싸움

길에서 마주친 두레패들은 서로가 자신들이 '형님'이라고 상대방에서 먼저 기수를 숙이거니 길을 비켜서라고 난리들을 친다. 그러다가 기싸움을 벌이게 된다. 기싸움은 상대방의 두레기 위에 꽂힌 꿩장목을 먼저 빼앗는 마을이 형님 노릇을 하게 된다. 

장목를 빼앗긴 마을에서는 꿩장목을 찾기 위해 술을 대접하거나 아니면 깍듯이 형님으로 모셔, 길에서 마주치면 기수를 숙여 먼저 인사를 하게 된다. 이러한 기싸움은 정월에 농사가 시작될 때 나타나는 것을, 군장병들이 승부성놀이로 펼치게 되는 것이다.


서로 등을 지고 공격을 하기 위해 기다리는 병사들(위) 징소리가 나면 상대방의 기에 달려든다. 수비군은 이를 저지한다.

기싸움은 이렇게 한다.

1. 먼저 양편에 20명 씩의 인원을 차출한다.
2. 한 명은 기수이고 9명은 자신의 기를 지키는 수비군이 된다. 남은 10명은 상대방의 기에 꽂힌 꿩장목을 빼앗는 공격군이 된다.
3. 양편의 공격군들은 상대편을 공격할 수 있도록 서로 반대편으로 가서 등을 지고 선다.
4. 징소리를 신호로 상대방의 기에 달려들어 기를 쓰러트린 후 꿩장목을 뺐는다. 수비군은 자신들의 기를 지켜내야 한다.
5. 자칫 과격하게 몸싸움을 벌이다가 보면 불상사가 일어나기도 한다. 하기에 수비수나 공격수나 손 이외의 부분은 사용할 수가 없다.
6. 기수는 기를 들고 피할 수는 있다. 하지만 경기장 밖으로 나가서는 안된다.
7. 장목을 먼저 빼앗는 부대가 이기게 된다. 징을 세번 울리면 경기가 끝났음을 알리는 신호이다.
8. 자칫 과열이 되는 것을 막기위해 다음과 같은 금칙을 둔다. 기수는 경기장 내에서만 이동을 할 수가 있다. 수비군은 상대방을 손으로 밀쳐낼 수는 있다. 또한 신체 부위 어디고 가격을 해서는 안된다. 공격군도 마찬가지이다. 상대방을 발로차거나 땅에서 뛰어오르거나 하면 안된다.

   

양편이 서로 상대방의 용대기에 달려들어 기를 쓰러 트린 후 위에 꽂힌 <꿩장목을> 먼저 빼앗아야 한다.

 


서로 장목을 먼저 뺏기위해 쫓아다니다가 보면 이렇게 넘어질 수도 있다. 부상을 막기위해 가급적 용대기를 가진 기수는 일정장소 밖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한다


용대기의 무게는 상당하다. 장대길이 5m에 기폭의 길이가 3m나 되기 때문이다. 혈기왕성한 군장병들이 시연을 하기 때문에 자칫 용대기를 쓰러트리다가 다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손 이외의 어떤 부위도 사용해서는 안된다. 상대방을 가격하거나 발로 차거나, 혹은 잡아서 넘어트리는 행위도 해서는 안된다. 서로 손을 이용해 밀쳐내기만을 허용한다. 수비군을 밀쳐낸 후 기를 쓰러트려 상단에 꽂힌 꿩장목을 먼저 빼앗는 부대가 이기게 된다.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한다. ‘우리는 한이 많은 민족이라 새도 울고, 바람도 운다고 표현을 한다.’ 정말로 그런 표현을 한다. 모든 것을 운다고 표현을 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운다는 표현이 정말로 눈물을 흘리면서 우는 것을 표현하는 것일까? 그런 표현으로 인해 우리민족이 한의 민족이라는 것이다.

또 한 예는 요즈음 성시를 누리고 있는 노래방을 이야기한다. 가슴 속에 맺힌 한이 많아서 그것을 풀기 위해 노래를 하다가 보니, 그렇게 노래방이 수도 없이 들어차게 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노래를 좋아하는 민족들은 흔하지 않은 듯하다. 하지만 그것이 한이 많아서일까?

2010년 남한강 정월대보름 한마당에서 기싸움을 펼치고 있다. 이렇게 역동적인 놀이가 바로 우리의 민족성이다.

우리민족은 원래 강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민족처럼 강한 민족도 드물다, 이웃 나라들과 숱한 전쟁을 치르면서도 꿋꿋하게 지켜온 나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세월에 따라 통치자에 의해 명칭은 바뀌었지만, 그 본질이 바뀐 것은 아니다. 딴 나라들처럼 이민족에게 나라를 넘겨주지는 않았으니까. 그런 것 하나를 보아도 참 끈질긴 생명력을 갖고 있는 민족이다.

이러한 우리민족의 성정은 늘 강해야만 했다. 그 강함이 잘 나타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전래놀이들이다. 그 놀이 안에 보면 공동체가 살아있다. 나를 위하기보다는 남을 위하는 그런 마음가짐이 보이는 것이다. 그런 민족성이 놀이 안에도 잘 나타난다. 우리 놀이들을 보면 경쟁이 심하다. 말은 경쟁이라고 할지 몰라도 그 안에는 보이지 않는 투쟁의 심성이 포함되어 있다.

고려 때는 여자들이 말을 타고 격구를 즐겼다. 그 사치가 지나쳐 나라에서 금지를 시키기도 했지만, 적어도 고려 때까지는 우리민족이 그런 한을 갖고 사는 민족이 아니었다. 고대에 나타나는 고구려의 동맹, 예의 무천 등을 보아도 알 수 있다. 3일 밤낮을 술을 마시고 춤을 추고 노래를 했다. 그 노래가, 그 춤이 과연 한이었을까? 아니다. 그저 즐거운 마음으로 하늘에 감사하는 의식을 올렸을 것이다. 한이 아닌 흥이란 뜻이다.


장과 얼레공을 갖고 하는 장치기는 승부성 민속이다. 격구가 변해서 민속 장치기로 변했다고 한다.

왜 한(恨)스런 민족으로 바뀌었을까?

고려 때까지만 해도 역동적이던 우리민족은, 조선조에 들어서 여성들이 집안으로 들어가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한 마디로 개방적이던 여성들이 울안에서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반상의 차가 커지면서 양반가의 여인들은 ‘남존여비’라는 논리에 얽매어 문밖출입을 삼가고, 담장 안 생활에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조선조에 들어 민초들은 양반가의 수탈로 인해 하루하루를 지탱하기가 어려웠다. 그런 양반가의 수탈이 결국 동학농민운동을 일으키게 한 요인이기도 하다.

또한 힘든 삶의 연속이다 보니, 여인들이 살림을 꾸려가기가 점점 버거워졌다. 그런 연유로 여인들은 점점 늘어간 것이 한숨이었다. 새벽부터 일어나 많은 노동을 감당해야 하는 여인들로서는, 나오느니 한숨이요 생활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시집살이’ ‘꼬댁각시‘ 등 한탄조의 노래가 절로 흘러나오고. 작업요의 대부분이 한탄조의 가사와 음률로 이루어지게 된다. 그러다가 보니 생활의 고통, 여자를 천시하는 풍조, 이런 것들이 자연 ’흥‘에서 ’한‘으로 변화가 될 수밖에 없었다.


대표적인 민속놀이인 줄다리기 역시 역동적이다. 그리고 승부성 민속이기도 하다.

우리민족은 원래 역동적이다

우리민족이 ‘흥겨운 민족이냐?’ 아니면 ‘한스런 민족이냐?’는 간단하다. 원래는 지극히 흥겨운 민족이었고, 그 흥이 곧 삶이었다고 본다. 우리들의 각종 놀이에서 나타나는 동작이나 내용을 보면, 지극히 역동적이다. 그러한 놀이문화는 정월 대보름에 나타나는 줄다리기, 장치기, 기싸움 등 모두가 승부성 민속이라는 점이다. 물론 그 내면을 보면 풍농의 기원이나, 겨우내 사용하지 않던 힘을 비축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렇게 우리의 전통 민속놀이의 대부분이 승부성 놀이라는 것은, 그만큼 우리민족의 삶이 강하고 패기가 넘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민족이 왜 그렇게 한스런 민족으로 변한 것일까? 그것은 조선조에 들어 양반의 세에 억눌리고, 오랜 외침에 찌들어버렸기 때문으로 보인다. 조선조에 들어서 수없이 많은 외침과, 당쟁, 그리고 남존여비 사상. 이런 것들이 총체적으로 불안한 나날을 보내게 만들었고, 수없는 환란 속에서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사람들은, 자연 소심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 결국 그러한 소심함이 한과 연결이 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외부적인 조건에 의해 성정이 바뀐다고 한다. 불안한 환경이 바로 우리민족이 한의 민족이 되게 만든 요인이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혹은 “밤새 안녕하십니까?” 라는 인사말은, 바로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감에서 나타난 인사라고 본다. 밤이 지나고 나면 주변 상황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런 환경에서 불안한 나날을 보내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런 상태에서는 “흥”이 사라지고 만다.

때로는 격한 승부로 인해 부상자가 속출하기도 한다. 바로 우리 민속이 갖는 흥의 결정체이다.

한은 외적인 영향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그런 영향을 이겨내지 못할 때, 스스로 한을 도출하게 되는 것이다. 국가적인 것도 마찬가지이다. 수많은 외침과 내란, 그리고 일제의 침탈과 한국전쟁, 그리고 불안하기만한 삶의 연속. 이런 것들이 바로 한을 만들어 낸 요인이다. 이런 것을 배제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언제라도 우리의 본 모습인 ‘흥겨운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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