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정월 보름을 대보름이라고 한다. 정월 대보름은 우리의 풍속에서는 설날과 추석 다음으로 치는 큰 명절이다. 이렇게 정월 대보름을 중요하게 여기는 까닭은, 정월의 모든 놀이문화가 이 대보름을 기해 마무리가 되기 때문이다. 또한 정월 대보름은 입춘이 지나서 맞이하기 때문에, 농촌에서는 일 년의 시작을 준비하는 때이기도 하다.

정월 대보름 하루 전날은 다리밟기, 달집태우기 등 각종 놀이가 행해진다. 이 중에서 달집태우기는 정월 15일이 아닌, 하루 전인 14일에 행해진다. 달집태우기는 전국을 통해 연희가 되었던 놀이이다. 그만큼 우리들에게는 정월 대보름 전에 하는 달집태우기가 상당한 의례에 준하는 놀이였다.


달집태우기는 겨울을 녹인다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광지원리에서는 ‘해동화(解冬火)놀이’라고 달집태우기를 부른다. 이 말은 ‘겨울을 녹이는 불’이란 뜻을 갖고 있다. 혹은 ‘해동홰놀이’라고도 하는데, 이 말 역시 ‘겨울을 녹이는 홰’라는 뜻이다. 여기서 말하는 ‘홰’란 막대나 짚을 이용해 만든 불을 말하는 것이다. 즉 짚을 길게 묶어 불을 붙이는데, 그것을 홰라고 부른다.

광지원리의 해동화놀이는 일제강점기에도 계속되어졌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하루를 즐기는 놀이로 발전을 하였다. 이러한 달집태우기는 그 외에도 ‘액을 태운다’는 속설을 갖고 있다. 정월 열나흘 날이 되면 사람들은 소나무와 대나무 등을 갖고 달집을 만든다. 이 달집에 생대나무를 이용하는 것도 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



생대가 타는 소리에 놀란 잡귀가 달아나

우리 풍습에는 섣달 그믐날 생대를 태우는 습속이 있다. 이것은 일 년 동안 집안에 묻어 든 잡귀를 쫒아내기 위함이다. 즉 대나무가 불에 탈 때 ‘탁탁’소리를 내는데, 그 소리에 놀란 잡귀들이 도망을 간다는 것이다. 정월 대보름에 달집을 만들 때도 소나무와 대나무를 사용하는데, 바로 그런 속설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종이에 자신이 필요한 기원을 적는다. 그리고 달집에 묶어놓은 새끼줄에 그 길지를 달아 놓는다. 달집이 타면 그 기원지가 함께 타면서 서원을 이룬다는 것이다. 달집태우기는 달맞이에 이어서 하게 된다. 손에 작은 홰를 들고 달맞이를 하는 사람들은 가장 먼저 달을 본 사람이 ‘망월(望月)이요’를 외치면서 달집으로 달려가, 손에 든 홰를 이용해 불을 붙이는 것이다.


서로가 연결되는 정월의 민속

정월의 민속의 특징은 하나하나가 따로 떨어져 있지만, 그 내용은 모두가 연관이 지어진다. 달이 떠오르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그 달을 바라다보면서 가장 먼저 소리를 칠 수 있기를 고대한다. 처녀가 먼저 보면 그 해에 시집을 가고, 총각이 먼저 보면 그 해에 장가를 가게 된다는 것이다.

임신부가 먼저 보고 소리를 치면 아들을 낳을 수가 있으며, 몸이 아픈 사람이 먼저보고 소리를 치면 병이 낫는다는 속설이 있다. 하기에 저마다 홰를 손에 들고, 먼저 달맞이를 하려고 애를 쓴다. 이렇게 다양한 정월의 큰 대동놀이는 사실 달집태우기로 막을 내리게 된다.


요즈음은 대보름의 놀이가 점차 확대되는 추세이다. 달집태우기 등 많은 대보름 놀이가, 올해는 구제역으로 인해 취소가 되었다. 하지만 달집이라는 것이 그리 어렵게 만드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조그맣게 만들어 놓고 개인놀이라도 해보는 것이 어떨지. 겨울을 녹이고 일 년 간의 액을 막는다는 사고는, 꼭 집채만 한 달집이라야 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주시 이산면 두월리 도로변에 자리한 괴헌 고택. 현재 중요민속자료 제262호로 지정이 되어있다. 설 연휴 전인 1월 29일에 찾아간 괴헌 고택. 구제역으로 인해 영주의 여기저기 도로가 막혀있다. 특히 이산면 방향은 축산농가가 많아서 그런지 중간 중간 도로를 폐쇄한 곳도 생겨났다는 것이다. 다행히 괴헌 고택까지는 도로폐쇄가 되지는 않았다.

영주 괴헌 고택은 연안 김씨 영주 입향조인 김세형의 8세손인 덕산공 김경집(1715~1794)이 정조 3년인 1779년에 지은 집이다. 이 집은 낮은 비탈을 뒤로하고, 앞으로는 넓은 평지가 조성되었다. 괴헌 고택은 외풍을 막아주고, 바람이 불면 낙엽을 쓸어 모아 준다는 ‘소쿠리형’, ‘삼태기형’의 명당 터라는 것이다. 김경집은 아들 김영(1789~1868)이 분가할 때 이 집을 물려주었다고 한다.


구분

읍면동

개소수

시작지점

폐쇄일자

폐 쇄

설치물

종 류

노선번호

합계

2개

읍면동

7개소

 

 

 

1

이산면

(5개소)

이산면 지동1리덧재

2010.12.08

모래

리도207호

2

이산면 지동3리장수골

2010.12.12

모래

리도202호

3

이산면 신암1리배진기

2010.12.18

 

 

4

이산면 신암2리우금

2011.01.02

 

5

이산면 원리 솔고개

2011.02.06

나무

 

6

봉현면

(2개소)

봉현면 하촌1리한티재

2010.12.06

경운기

리도207호

7

봉현면 하촌3리 제방

2010.12.13

경운기

하천제방

답사 당일 영주시에 통행이 제한 된 마을들. 굵은 글씨는 답사시 막혔던 곳이다. 이산면에 집중적으로 길이 막혀있다




회화나무가 많아 당호를 ‘괴헌’으로 짓다

김영은 이 집에 ‘괴헌’이란 당호를 붙였다. 그것은 집 주위에 회화나무가 많아서였다고 한다. 현재 이 괴헌 고택은 고종 8년인 1871년 선생의 증손인 김복연이 일부를 중수하였다고 하는데, 그 당시 가옥의 모습이 비교적 잘 남아있다. 대문채를 들어서면 사랑채와 안채가 ㅁ 자 형으로 집이 구성되어 있다. 뒤편에는 동편 높은 곳에 사당이 자리한다.

괴헌 고택의 특징은 사랑마당과 안마당, 그리고 사당으로 들어가는 일각문을 사랑채 우측에 두었다는 점이다. 또한 많은 수납공간과 쪽마루, 그리고 고방 등을 여기저기 펼쳐놓아 집안에 많은 기물들을 정리하도록 하였다. 원래 정침의 앞에는 ‘월은정’이라는 정자와 행랑채가 있었다고 하는데, 1972년 수해시에 유실이 되었다고 한다.



날아갈 듯한 사랑채의 처마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앞으로 넓은 사랑마당이 있고, 막돌로 쌓은 축대위에 사랑채가 자리한다. 사랑채는 모두 세 칸으로 지었으며, 동편 한 칸은 마루방으로 꾸몄다. 문간채는 바깥담을 판자벽으로 둘러놓아, 전체적인 집안 분위기를 대문간부터 부드럽게 했다. 사랑채는 툇마루 앞에 난간을 둘러놓았는데, 툇마루는 사랑 동편까지 이어진다.

팔작지붕으로 꾸민 사랑채는 집 전체가 날아갈 듯하다. 그만큼 사랑채를 꾸미는데 신경을 썼다는 것이다. 사랑채를 바라보면서 좌측에는 중문이 나 있다. 중문 위에는 ‘괴헌고택’이란 편액이 걸려있으며, 안으로는 사랑에 불을 때는 아궁이와 고방을 마련했다. 중문 앞에 쌓여있는 장작더미가 정겹다.

중문 안으로 들어서면 좌측으로는 광채가 자리하고, 맞은편에 안채가 조금 높게 막돌로 쌓은 축대 위에 자리를 잡고 있다. 안채는 앞으로 툇마루를 놓아 공간을 이용하고 있으며, 사랑채 뒤편으로는 쪽마루를 놓고 바람벽으로 막았다. 이 쪽마루를 이용해 중문을 통하지 않고도 바로 안채로 이동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러한 쪽마루의 출입처는 사랑채 동편에 붙은 날개채에도 나 있다. 괴헌 고택에는 안방에 피난다락과 사랑방의 뒷벽에 은신처가 있다고 하는데, 이러한 쪽마루가 그런 대피수단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정리 안되는 문화재청 자료

답사를 하기 위해서는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대개는 그 지역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문화관광 편을 찾아보거나, 문화재청의 문화재 설명을 참고한다. 그런데 괴헌 고택의 자료를 찾다가 보니, 영주시청 홈페이지에는 괴헌 고택이 중요민속자료 제262호로 나와 있다. 2009년 10월 30일에 중요민속자료로 지정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화재청의 자료에는 괴헌 고택이 중요민속자료와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35호 두 곳에 소개가 되어있다. 처음에는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35호였다가, 2009년 10월 30일자로 중요민속자료로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벌써 2년이나 중요민속자료로 승급이 된 괴헌 고택이, 문화재청 자료에는 아직도 경상북도 민속자료로 소개가 된 것이 남아있어 혼란을 야기한다.


위는 괴헌고택이 경북 문화재자료라고 남아있는 문화재청 문화재 검색창, 아래는 영주시 문화관광 창

우리의 문화재를 총괄하고 있는 문화재청에서 정신을 어디다 두고 사는 것인지. 이런 것 하나 제대로 관리가 안되는 문화재청에서, 과연 우리 문화재를 올바로 관리를 할 수가 있을는지. 그저 문화재를 사랑하고 찾아다니는 사람으로서 답답할 뿐이다.


온 나라가 난리가 난 듯하다. 구제역은 올 설 연휴가 고비라고 한다. 사람들은 구제역으로 인해 많은 불편을 겪고 있다. 교통이 번잡한 곳은 한 개 차선만 열어놓고 방역을 하기 때문에, 차가 있는 대로 늘어선다. 그래도 고통 받는 농촌을 생각하면, 그런 것은 얼마든지 참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가 보니 너나 할 것 없이 터져 나오는 것은 불평일 수 밖에 없다. 제대로 초기대응을 못한 것에 대한 불만이다.

지금은 이제 그런 불평조차도 할 수가 없다. 그러기에는 너무 많은 피해를 입은 것이다. 290만 마리라는 천문학적인 숫자의 수많은 소와 돼지가 살처분이라는 방법으로 산채로 땅 속에 묻혔다. 죽은 것이라도 묻었다면, 그렇게 처참한 생각은 들지 않았을 것이다. 농촌에 사는 사람들은 이번 설에 무슨 사단이라도 날 것처럼 전전긍긍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민족의 대이동이 이루어지는 설 연휴에, 얼마나 많은 구제역이 여기저기로 확산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마다 흙과 나무 등을 이용해 바리케이드를 쌓아 놓았다

난 문화재 답사를 하러 왔을 뿐인데요.”

경상북도 영주로 향했다. 이천에서 차를 타고 문경으로 내려가, 그곳에서 예천을 거처 영주에 도착을 했다. 영주시 이산면 두월리 877번지에는 중요민속자료인 괴헌고택이 있다. 괴헌고택을 둘러본 후, 인근에 있는 문화재를 답사하기 위해 이동을 하고 있었다. 앞에 방역을 하고 있는 초소가 나타난다. 소독약을 잔뜩 뒤집어 쓴 후 안으로 들어가려니, 길을 모래를 쌓아 막아 놓았다.

안으로 못 들어가나요?”

저길 지나야 하는데 어떻게 하죠
?”
영주로 나가서 다시 돌아가세요
.”
그곳은 갈 수 있을까요
?”
그건 모르죠. 돌아가 보세요. 무슨 일로 오셨나요
?”
, 문화재 답사를 하려고요

참 답답한 양반이네. 지금 구제역으로 인해 모두 죽기 살기로 난리인데, 무슨 문화재 답사를 한다고
...”

듣고 보니 딴은 그렇다. 남들은 구제역을 막는다고 도로에 바리케이드까지 설치를 하고 있는 판국에, 문화재를 찾아다니고 있는 내가 얼마나 한심하다고 생각을 했을까? 괜히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하고 뒤돌아 나올 밖에. 지금 설 연휴를 맞이하여 마을에 변고가 생길까봐, 이렇게 주야를 가리지 않고 난리들을 치고 있다.



뚫리면 그만이다. 방법이 있다면 막는 일 뿐

마을에서 돌아 나오다가 보니 내림삼거리에 이산서원이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이왕 답사를 나온 길이니 서원이라도 들려보려고 도로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곳에는 타이어와 흙더미, 차량 등으로 길을 막고 있다. 앞에는 돌아가라는 표지판이 있다. 다시 돌아 나와 옆길로 접어들었다. 이곳도 폐쇄가 되어있다. 어디를 가도 길을 지날 수가 없다. 마을로 들어가는 모든 진입로들은 흙더미를 쌓아놓고 지키고 있다.

여기저기 몇 군데 길을 돌아보았지만 마찬가지이다. 모두 흙으로 길을 막고 사람들이 지키고 있다.

고생들 하시네요. 날도 추운데

설에는 어떻게 하세요
?”
지금 설이 문젠가요. 설날 외지에서 오는 사람들도 마을 진입을 막아야하는데 걱정입니다

정말 큰일이네요

, 방법이 없어요. 무조건 출입을 막는 수밖에. 뚫리면 그만인데요
.”


마치 전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는 듯하다. 길이라는 길은 모두 폐쇄가 되었고, 안으로 들어가는 차량들은 여기저기 빠짐없이 소독을 한다. 그런 연후에도 안으로는 들어갈 수가 없다. 이번 설 연휴는 징검다리 연휴라고 한다. 그만큼 연휴 기간이 길다. 그래서 구제역을 막으려고 하는 사람들의 고통도 늘어난다. “설 연휴만 넘기면 수그러들 것 같아요스스로 위로를 하는 말이다.


도대체 무슨 소리일까? 전주는 요즈음 시내버스가 파업 중이다. 벌써 한 달이 지난 듯하다. 시내를 나가지를 않으니 버스를 탈 일이 별로 없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시에서는 해결책으로 전세버스를 긴급 투입하고는 있지만, 그도 버스가 운행을 하는 때만 못하다. 예전에 20분이면 오던 버스가, 30분 이상을 기다리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요즈음은 날씨까지 추운데 그렇게 오랜 시간을 발을 동동거리며 차를 기다리다가 보면
, 괜한 성질도 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런 성질을 참고 있는데, 옆에서 어르신들이 하시는 말씀이다. ‘내 자식이지만 정말 밉구먼.’이라니. 처음에는 버스가 자주 안다녀 불편하시다는 이야기를 하고 계시기에, 아드님이 버스 기사분이라도 되는 줄 알았다.

방역을 하기 위해 하루종일 마을 입구를 지키는 사람들.(휴대폰사진) 

구제역으로 자식 얼굴 보기를 포기하다

구제역이 그칠 기미를 보이지를 않는다. 뉴스에서는 해당부서 장관이 나와 구제역을 마무리하고 자신의 거취를 결정한다고 한다. 온 나라가 망가질 대로 망가진 후에, 조속히 마무리를 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조금은 어안이 멍멍하다. 그렇게 조속히 마무리를 지을 수 있는 것이라면, 왜 이렇게까지 오랜 시간 사람의 애를 태운 것인지 모르겠다.

나야 축산업자도 아니고, 구제역에 대한 지식도 무지하다. 그저 구제역이라는 것이 네 굽을 가진 짐승들에게는 치명적이라는 정도만 알뿐이다. 그 구제역 때문에 온 나라가 몸살을 앓고 있다. 가는 곳마다 방역을 하느라 난리법석을 피운다. 예전보다 참 오랜 기간 동안 구제역이 창궐을 하고, 수많은 소, 돼지들이 살아있는 대로 땅에 묻혔다. 지하수에서도 핏물이 섞인다는 기사를 본 일이 있다. 무엇이 어찌 되어가는 것인지, 정말로 하루하루가 불안스럽기 만한 요즈음이다.

호남과 제주도만이 청정지역이라고 한다. 이번 설 연휴에 많은 사람들이 귀향을 하면서, 구제역이 이곳에도 화를 미치지 않을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오죽하면 명절인데도 고향을 떠나 외지에 나가있는 자손들을 향해, ‘이번 명절에는 제발 고향에 내려오지 마라. 절대로 와서는 안된다라는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일까?


부모님의 마음에 상처를 준 행동은 해외여행

다 세상이 그렇게 만든 것이지. 갸갸 무슨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니구먼.”
그래도 소 몇 마리 살리려고 오지 말라고 했다고, 지 어미애비 속 아픈 줄도 모르고 그런 델 가야 혀

그럼 고향에도 못 오는데, 해외라도 나가면 고향에 와서 부모 못 보는 마음이 조금은 가시는가 보지 멀 그려

암튼 철이 없어. 부모들은 가심을 조이고 있는데, 해외여행이 당키나 헌 것이여. 내 자식이지만 정말로 밉구먼
.”

듣고 보니 이해가 간다. 이번 명절은 징검다리 명절이라고 한다. 길게는 일주일 정도를 쉬는 곳이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구제역으로 인해 외지에서 생활을 하고 있는 자손들에게, 고향으로 내려오지 말라고 부탁이라도 한 모양이다. 자손들이야 그런 시간을 이용해 해외여행이라도 하겠다는 것이고. 부모님들이야 어렵게 살림살이를 하면서 집안에 식구처럼 살아 온 가축을 지키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는데, 그런 시간을 이용해 해외여행을 하겠다는 자손들에게 마음이 아프신 것이다.

이번 연휴에 해외로 나가는 여행객들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뉴스에서는 커다란 짐을 꾸려 줄을 서서, 해외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을 하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구제역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미소를 짓게 만들었나보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 모든 일들이 다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이렇게 한편에서는 좋아 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꼭 한 가지는 부탁을 하고 싶다. 아무리 나와는 관계가 없는 일이지만, 제발 이웃의 아픔을 조금만 이해를 하고 살자는 것이다. 내가 아프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자칫 나에게도 언젠가 돌아올 수 있는 일이다. 구제역으로 인해 고향을 가지 못해 마음이 아픈 자손들이나, 혹 불똥이라도 튈까봐 절대로 내려오면 안 된다는 어른들. 그 마음을 조금만 이해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1년은 신묘년입니다. 토끼해인 신묘년은 ‘여성의 해’입니다. 토끼는 여성을 대표하는 ‘산신(山神)’이자, 산신을 보조하는 ‘산신령(山神靈)’을 뜻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신묘년은 아무래도 여성들의 활약이 두드러질 것으로 나름 예견을 해 봅니다. 여성 블로거 여러분의 활약이 기대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새해 해맞이는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힘들 것 같습니다. 우선은 전국적으로 대란이라고 하는 ‘구제역’으로 인해, 모든 마을들이 외부 차량들이 마을로 들어오는 것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특히 청정지역이라는 곳에서는, 더 더욱 외부차량에 대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합니다.

모악산 산사 일출

신묘년 해맞이 자제해야

아무래도 차량과 사람으로 인해 구제역에 옮겨가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 지자체마다 모든 행사를 취소하고, 구제역이 지역으로 옮겨 올까봐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신년 해맞이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축산농가가 비상이 걸리고 벌써 엄청난 소와 돼지들이 살 처리를 당한 판국에, 해맞이 구경을 한다고 바닷가로 달려가는 것은 어째 모습이 좀 그럴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사실 해를 맞이한다는 것은 많은 의미가 있습니다. 새해 처음으로 뜨는 해를 보고 소원을 빌고, 한해의 안과태평과 가족 간의 단합을 위해서 해맞이는 바람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해를 맞이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그 해를 꼭 바닷가로 가서 보아야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동해에서 떠오르는 해를 가장 먼저 볼 수 있다는 것에, 의미를 두기 때문입니다.


2011년 첫 날 해맞이는 마을 뒷산으로

하지만 자식처럼 키우던 가축을 모두 땅에 묻고 비통에 빠져있는 축산농가나, 행여 불똥이 튈까봐 애를 태우는 각 마을들을 생각한다면, 2011년 해맞이는 이동을 하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해야 할 듯합니다. 나는 괜찮다는 생각은 자신만의 생각입니다. 어디서 어떻게 구제역이 옮겨가게 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지자체들은 대규모 행사로 준비를 하고 있던 일몰과 일출의 행사를 취소하고, 많은 인원을 동원해 지역으로 들어오는 차량들에 대해 대대적으로 방역을 할 모양입니다. 그러다 보면 괜한 시비도 붙을 수가 있을 듯도 합니다. 새해 첫날을 맞이하겠다고 떠난 길에서, 괜한 시비가 생긴다면 그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죠.


그래서 신묘년 첫날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기 위해서, 새해 첫날에는 가장 가까운 산을 올라보라고 권유를 하고 싶습니다. 아마 그 어떤 것보다도 또 다른 의미를 주는 것은 바로 올 해가 신묘년이기 때문입니다. 여성을 상징하는 해이고 토끼는 산신을 의미하기 때문에, 산에서 해를 맞이한다면 좋은 일이 더 많이 생길 것 같기도 합니다.

이제 이틀 앞으로 다가 온 2011년에는 모든 분들이, 마음먹은 대로 서원하는 것들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2010년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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