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시인과 고성주만신이 만나다

 

대단한 사람들이 만나는 것을 흔히 세기의 만남이라고 표현을 한다. 그런 만남이 이루어졌다. 20일 오후 수원시 팔달구 지동 고성주(, 60. 경기안택굿보존회장)씨의 집에 고은시인이 찾아왔다. 이 만남은 수원시인협회 김우영 회장의 주선으로 이루어졌다. 첫 만남부터 분위기가 심상치가 않다.

 

고은선생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분이시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열 번이나 올랐다. 고성주 회장 역시 우리 무속을 지켜가기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큰만신이다.

 

같은 고씨네요.”

그러네요.”

고씨들은 제주 고씨밖에 없어요. 다 친척이죠.”

 

 

끝없는 대화가 이어져

 

고은선생이 고씨의 내력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제주 삼성혈부터 고주몽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곁에서 듣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있다. 그렇게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시간이 가는 줄을 모른다. 처음부터 주머니에서 종이와 볼펜을 꺼낸 고은선생은 고성주 회장이 이야기를 하는 것을 일일이 메모를 하신다.

 

고은선생은 참 소탈하시다. 세계적으로도 명성을 떨치고 계신분이 말씀 한 마디도 허투루 듣지를 않는다. 일일이 메모를 하면서 궁금한 것은 재차 묻고는 한다.

저는 5~6세부터 신기가 있었나 봐요. 어릴 적에 화령전에 계시던 이동안 할아버지께 가서 소리도 배우고 춤도 배웠어요. 당대의 내로라하시는 선생님들이 제 별명을 초립동이라고 지어주셨죠.” 라고 고성주 회장이 이야기를 하자.

고은선생이 이런 이야기는 모두 녹음을 해서 책으로 엮어야 해요. 우리 역사인데라고 한다.

 

 

처음 내림을 받고나서 3년 동안은 신어머니 밑에서 정말 머슴보다 못한 생활을 했어요. 음식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 심지어는 장 담구는 법까지 배우지 않은 것이 없어요. 장독을 깨끗이 닦았는데, 신어머니가 다시 닦으시는 거예요. 그러면 속으로 불평을 참 많이 늘어놓았죠. 그렇게 엄하게 배웠기 때문에 지금도 못하는 음식이 없어요. 저희집에는 40년이 지난 씨된장과 간장이 있어요.”

그렇게 두 시간 가까이 훌쩍 지났다. 더 많은 이야기가 오고갈 수 있었지만, 다음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자리를 뜬다. 짧은 만남이 서운한 듯 몇 번이고 인사를 주고받으면서 헤어짐을 섭섭해 한다.

 

시인도 만신도 다 신이 있어야

 

고은선생과 김우영 회장과 함께 지동 순대타운으로 자리를 옮겼다. 손에는 고성주 회장이 전통방식으로 제조한 고추장 한통을 들고.

시인도 신이 있어야 해요. 순간적으로 글을 쓸 때 느낌이 오는 것이 다 신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신이 없으면 좋은 글을 쓸 수가 없어요.”

막걸리 한 잔을 앞에 놓고 고은선생과 이야기가 자연 내림굿이며 지노귀굿 등을 말한다.

 

 

고성주씨는 참 착한 듯해요. 첫 느낌부터가 사람이 참 순하구나 하는 것을 느꼈어요. 다시 한 번 부탁을 드리지만 고성주 만신의 이야기는 모두 녹음을 해야 해요. 그래서 책으로 펴내야 해요. 우리 역사의 한 면도 놓치면 안 되니까요. 더구나 만신들의 살아가는 과정을 기록하는 것은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죠.”

 

다음에 고성주 회장이 굿을 할 때 꼭 함께 자리를 할 수 있도록 주선을 해드리겠다는 약속을 한다. 길지 않은 만남이었지만 고은선생과의 자리는 참으로 훈훈했다. 세계적인 분과의 만남의 자리가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29일 오전 수원시 연무동 전입신고 마쳐

 

만인보의 저자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고은(80)시인이 경기도 수원시민이 됐다. 수원시는 광교산 자락인 상광교동에 그동안 생태박물관이나 전시장 용도로 매입해둔, 옛 이안과 원장의 개인주택을 리모델링해 고은시인이게 제공했다. 광교산 자락에 있는 이 집은 지하 1, 지상 1, 연면적 265규모로 서재와 작업실, 침실 등을 갖추고 있다.

 

최근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체류하며 문학축제 참가, 강연, 북 투어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다 귀국한 고은 시인은, 그동안 경기도 안성시 공도읍 만정리 대림동산 전원주택단지에서 30여 년째 거주하며 창작활동에 전념해왔다. 고은 시인은 인문학 도시 구현을 목표로 하는 수원시의 적극적인 요청에 따라, 지난 19일 수원시 장안구 상광교동(행정동 연무동)으로 이사했다.

 

 

수원시 인문학 도시 구현에 박차

 

수원시는 그동안 수차례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는 등 세계적으로도 명성을 떨친 한국을 대표하는 문학계의 대부인, 고은 시인을 모셔오기 위해 적극적으로 고은시인 모시기를 추진해왔다. 고은시인은 끈질긴 수원시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수원시민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며 고사를 해오기도 했다.

 

19일 수원으로 자리를 옮긴 고은시인은 지난 20일 부인과 함께 경기도문화의전당을 찾아, 공연관람 후 가진 리셉션 현장에서 오랫동안 살며 정들었던 안성을 떠나는 일이 쉽지 않아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수원에서 새로운 삶과 문학을 시작하게 돼 기쁘다며 그동안의 심경을 밝히기도 했다.

 

이로써 수원시는 인문학 도시 구현을 추구하는 품격 있는 문화예술도시로 한 단계 올라섰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수원시의 한 관계자는 문화예술특구를 지정하고, ‘고은문학관건립 등 인문학적 이미지를 갖춘 문화예술도시로 거듭날 것이라고 전했다.

 

 

한 때는 승려생활도 한 고은 시인

 

고은(본명: 고은태(髙銀泰), 193381~ )시인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참여시인이자 소설가이다. 전라북도 옥구 출생으로 호는 파옹(波翁)’이며 본관은 제주이다. 전북 군산고등보통학교 4학년을 중퇴하였다. 한국 전쟁 시기였던 1952년 일본 조동종의 군산 동국사에 출가하여, 중장 혜초로 부터 일초(一超)’라는 법명을 받고 불교 승려가 되었다.

 

1958년 조지훈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폐결핵>을 발표하며 등단하였다. 1960년대 초에 본산(本山) 주지, 불교신문사 주필 등을 지냈으며, 1960년 첫 시집인 피안감성을 출간하고 1962년 환속하여 본격적인 시작활동에 몰두하게 되었다.

 

그동안 발간한 고은시인의 시집으로는 <피안감성(1960)>, <해변의 운문집(1964)>, <신 언어의 마을(1967)>, <새노야(1970)>, <문의(文義) 마을에 가서(1974)>, <부활(1975)>, <제주도(1976)>, <고은 시선집(1983)>, <시여 날아가라(1987)>, <너와 나의 황토(1987)>, <대륙(1988)>, <만인보(萬人譜)(연작: 1986 ~ 201049)>, <독도(1995)>, <허공(창비, 2008)> 등 많은 시집과 소설, 에세이집 등이 있다.

 

 

수원의 문학적 위상 높아져

 

고은시인은 29일 오전 1115분 경, 비가 뿌리는 가운데 홍성관 장안구청장의 안내를 받아 연무동 주민센터에 들어섰다. 연무동 주민센터 입구에는 고은시인, 행복한 연무동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쓴 현수막이 걸려있다. 고은시인이 입구에 들어서자 연무동 여직원이 꽃다발을 드렸으며, 곧 이어 전입신고를 마쳤다.

 

수원시인협회 김우영 회장은 고은시인이 수원시민이 된 것을 환영한다면서

고은 시인은 그동안 로벨문학상 수상자 명단에 이름이 자주 거론 되었던 우리 문학계의 큰 별이다. 이런 분이 수원시민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인문학 도시를 지향하는 수원으로서는 큰 힘을 얻었다. 앞으로 고은 시인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고 하면, 수원은 문학사에 길이 빛날 도시로 명성을 얻을 것이다.”라고 했다.

 

 

겨울 文義(문의)에 가서 보았다.

거기까지 다다른 길이

몇 갈래의 길과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

죽음은 죽음만큼

이 세상의 길이 신성하기를 바란다.

마른 소리로 한 번씩 귀를 달고

길들은 저마다 추운 小白山脈(소백산맥)쪽으로 뻗는구나.

그러나 빈부에 젖은 삶은 길에서 돌아가

잠든 마을에 재를 날리고

문득 팔짱 끼고 서서 참으면

먼 산이 너무 가깝구나.

눈이여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겨울 文義(문의)에 가서 보았다.

죽음이 삶을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무덤으로 받는 것을.

끝까지 참다참다

죽음은 이 세상의 인기척을 듣고

저만큼 가서 뒤를 돌아다본다.

지난여름의 부용꽃인 듯

준엄한 정의인 듯

모든 것은 낮아서

이 세상에 눈이 내리고

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에 맞지 않는다.

겨울 文義(문의)여 눈이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민음사(1974)에서 펴낸 문의 마을에 가서라는 고은 시인의 다섯 번 째 시집에 수록된 시이다. ‘문의마을에 가서는 친구의 장례식에 참가했던 경험을 시로 옮긴 것으로서, 고요하고 적막한 겨울 마을을 배경으로 죽음과 삶이 교차하는 순간의 깨달음을 서정적으로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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