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어릴 때 너무 고생을 하고 살았습니다. 아버님은 저희 4남매를 놓아두고 일찍 세상을 떠나셨죠. 저는 13살부터 쟁기질을 하면서, 어린 동생들을 키워야만 했습니다. 아마 그 때 제가 고생을 심하게 한 것이 늘 마음이 아파, 주변에 불우한 청소년들을 보면 모두 자식같은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가봅니다”

 

수원시청 옆 견인차보관소 담장 밑에서 24년 째 구두를 닦고 있는 한금정(남, 58세)씨. (사)수원시 자립청년회 총회장 직을 맡고 있다. 남을 돕는 것이 즐거워 ‘내일을 여는 멋진여성 경기협회 수원시지회’ 후원회장을 겸임하면서. 한금정씨는 구두를 닦는다. 요 며칠 문이 닫혀있다 했더니 몸살, 감기로 심하게 앓았다고 한다.

 

 

천성이 남을 돕는 일을 좋아해

 

“저희 어릴 적에는 정말 배가 많이 고팠습니다. 그렇게 배가 고프면 개울물을 마시거나, 아니면 기껏해야 고구마 한 개를 깎아먹고 하루를 보내고는 했죠. 어머니께서 장애인이셨는데도 남을 돕는 것을 좋아해, 저도 어릴 때부터 그런 모습을 보면서 배운 듯합니다.”

 

구두를 닦으면서도 즐거워하는 한금정씨는 천성이 남을 돕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인 것만 같다. 옛말에 ‘광에서 인심난다’고 했던가? 하지만 그것인 옛 말일 뿐이다. 요즈음은 자신이 많이 갖고 있어서 남을 돕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어려운데도 작은 것이나마 남을 위해서 사용할 줄 아는 사람들이 있어, 세상이 훈훈한 것은 아닐까?

 

“저희 협회 회원이 한 110명 정도 됩니다. 그 중에 봉사를 하는 회원들은 90명 정도가 되죠. 다들 어렵게 살지만 그래도 남을 돕는다고 하면 모두가 앞장을 섭니다. 아마도 자신이 어렵기 때문에, 남의 어려움을 알고 있는 듯합니다.”

 

 

소년소녀 가장들에게 많은 도움을

 

한금정 회장은 일 년에 한 두 차례씩 회원들이 정성을 모아 소년소녀 가장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다고 한다. 그것이 비록 많은 돈은 아니라고 해도, 그렇게 도움을 받는 청소년들은 곧게 자라고 있다는 것.

 

“25명에게 한 달에 5만원씩 통장에 넣어줍니다. 그 돈으로 큰 도움은 되지 않겠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쌀밥에 고깃국은 먹지 못해도 굶주리지는 않죠. 아이들이 살기가 힘들면 탈선을 하고 나쁜 길로 들어 설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저희가 도움을 주는 아이들은 모두 훌륭하게 자라고 있어, 그 아이들에게 정말로 고마움을 느낍니다.”

 

지난 해 가을에도 회원들이 봉사를 하고 모은 돈 200만원을 장학금으로 내놓았다고 한다. 올 5월 중에도 회원들을 모아 봉사를 할 예정이라고. 회원들이 내는 회비에 여유가 좀 생기면 300만원 정도를 아이들을 위해서 장학금으로 쾌척을 한다는 것이다.

 

 

자신도 어렵지만 남을 돕는 일은 즐거워

 

“저도 아이가 넷입니다. 위로 아들이 셋이고, 밑으로 늦둥이인 딸이 있죠. 아이 넷을 키우기도 힘이 들지만 어린 노숙자 아이를 집에 데리고 와, 10년 정도를 아이들과 함께 키웠습니다. 지금은 나이가 27살이 되었는데, 따로 나가서 살고 있죠. 아직 식을 올려주지 못해 미안스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명절 때가 되면 꼭 찾아오곤 합니다.”

 

아마 자신이 조금 더 생활의 여유가 있었다고 하면, 더 많은 아이들을 집에 데려다 키웠을 것이라고 한다. 그동안 회원들이 모아 준 성금을 갖고 소년소녀 가장들에게 20만원씩을 장학금으로 준 것이 벌써 3회째라고 하는 한금정씨.

 

“사람이 올려다만 보고 살 수는 없잖습니까? 세상에는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도 많습니다. 제가 세상을 살면서 한 가지 느낀 것이 있습니다. 베풀면 그만큼 채워진다는 것이죠. 아마 좋은 일을 했기 때문에 기분이 좋아져서인가는 모르지만, 베풀면 베푼 만큼 채워지는 것이 세상 순리인 듯합니다.”

 

앞으로도 끊임없이 봉사를 하겠다고 힘주어 말하는 한금정씨. 두 평 남짓한 영업장에서도 늘 미소를 잃지 않는다. 남을 위하는 즐거움을 알기 때문인 듯. 오랜 시간 이야기를 하며 봉사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었지만, 손님들에게 자리를 양보해야만 했다. 두 사람이 앉으면 빠듯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느닷없이 문화재를 찍고 있는데, 동행을 한 아우 녀석의 질문이다. 처음에는 왜 이런 질문을 했는지 의아스러웠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더니, 나더러 참 답답하다고 한다. 무엇이 녀석이 보기에 그리 답답해 보인 것일까?

“왜 문화재 블로거를 하면 안 될 이유라도 있는 거야?”
“형님도 생각해 보세요. 드라마 평이나 가수 이야기나 쓰면 편할 것을,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문화재 이야기를 무엇하러 쓰세요. 이 더위에 왜 고생을 하면서 이렇게 문화재를 찍어대는지 원”
“그럼 이런 거 하지 말까?”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고, 편히 사시라는 거요”

이렇게 오래 묵은 나무는 상처를 입고도 버티고 있다. 저 나무의 끈기를 배울 수는 없는 것일까?


내가 생각해도 답답하다. 정말로

하긴 그렇다. 이것이 무슨 돈 되는 것도 아니다. 시간과 돈, 그리고 체력까지 고갈이 되어가면서 땀을 흘리고 있는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답답하기는 하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돈을 주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이 짓을 하고 있는 것일까?

문화재를 찾아다니면서 글을 쓴지는 오래되었다. 방안 가득한 CD와 외장하드. 그 안에는 전국을 계절 없이 찾아다니면서 찍어 놓은 자료들이 그득하다. 누군가 그것을 보고 ‘저것만 보아도 배가 부르지 않느냐?’고 한다. 절대 아니다. 그것을 볼 때마다 배가 부르기는커녕 더욱 고파진다는 것이 솔직한 내 심정이다.

저렇게 자료를 모으느라 그동안 길에 쏟아 부은 돈이 아마도 수억은 될 것이다. 그렇다고 누가 도움을 주는 것도 아니다. 한 달 동안 땀 흘려 돈을 받기가 무섭게 길에 나가 쏟아 부었으니, 참 내가 생각해도 답답한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래도 팔자려니 생각하고 해야지

오늘 이 글을 쓰는 이유가 있다. 수원에 사는 아우 녀석이 스포츠 마사지를 한 번 받아보라고 한다. 생전 그런 것을 받아 본 기억도 없다. 처음에는 더운데 무엇 하러 그런 것을 하느냐고 했다가, 몸이 안 좋으니 손해 볼 것이 없다는 생각에 몸을 맡겼다. 그런데 스포츠 마사지를 하시던 분이 한 마디 하신다. ‘어떻게 이렇게 몸을 혹사를 시켰느냐’는 것이다.

"아마 문화재 답사를 한다고 쉬는 날마다 더운데도 나가서 돌아다녀서 그런가 보네요.“
“그런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좀 쉬셔야 할 것 같아요.”
“아직은 쉴 때가 아니란 생각입니다. 다닐 수 있을 때 좀 더 다니려고요.”
“그러다가 큰일 납니다. 돈도 좋지만 몸 생각부터 좀 하세요”
“.... ”

딱히 할 말이 없다. 알고 보면 좀 오랫동안 정말 제대로 쉬어 본 적이 없다. 시간만 나면 밖으로 나가 문화재를 찾아 헤매고 돌아쳤으니. 그래도 아직 우리 문화재의 10분지 1이나 돌아다녔나 싶기도 하다. 마음이 바빠서 몸을 돌볼 여유가 없었다. 아니 그럴만한 경제적인 여유가 생길 수가 없었다는 것이 솔직한 이야기다.

여유가 조금 생기면 하루라도 더 답사를 나가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으니, 몸에다가 무슨 투자를 할 것인가? 생활이 찌든다는 생각을 해 본적도 없다. 신발 하나를 사면 그것이 다 헤어져 너덜거려야, 신발을 살 생각을 하고 살았으니 말이다.

그래, 네 말이 맞다. 이젠 좀 쉬고 싶기도 하다.

아우 녀석의 볼멘소리가 듣기 싫지가 않다. 예전 같으면 별 말을 다한다고 핀잔이라도 주었을 텐데. 이젠 오히려 그런 말이 마음에 와 닿는 것을 보면, 나이가 먹긴 먹었나 보다. 더구나 몸이 개판이라는 말에, 조금은 걱정도 된다.


이젠 좀 쉬고 싶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내가 충성스럽게 글을 올려야 할 이유도 없다. 그저 이웃 블로거들의 걱정과 격려가 그동안 나를 지탱하고 있었던 것을. 괜히 여유까지 잃어가면서 기를 쓰고 글을 올려야 할 필요를 느끼지도 않는다.

“형님도 그냥 드라마 줄거리나 쓰세요. 광고도 달고요”

그래도 그렇게는 못하겠다. 그리고 그런 것을 쓸 재주도 없다.

“머리 두상을 보니 한번 고집을 피우면 아무도 못 꺾겠네요.”
마사지를 하시는 분의 말씀이다. 맞습니다. 그래도 이 고집 하나로 버티고 있는 중입니다. 만일 그것마저 버리면 살아갈 의미도 없겠죠. 그래서 난 또 주섬주섬 오늘도 가방을 챙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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