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으로 지정된 전주의 전동성당은 중국의 벽돌공 100명이 건축에 들어가는 벽돌을 구워 1908년부터 성당 신축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 우리나라에서 중국인 기술자들이 참여하여 지은 성당이 있다. 바로 강원도 횡성군 서원면 유현리에 소재하고 있는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69호인 풍수원 성당이다.

풍수원 성당은 강원도에서 가장 먼저 세운 고딕양식의 건축물이다. 고종 광무 10년인 1905년에 착공하여, 이년 후인 1907년에 완공을 하였다. 낙성식은 1909년에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풍수원 성당에 사용된 벽돌은 바로 중국인 벽돌공들이 제작을 한 것으로 보인다. 풍수원 성당은 제2대 정규하(아우구스띠노. 1863 ~ 1943) 신부가 설계한 것이다. 중국인 기술자 진베드로와 함께 공사를 시작하여, 전국에서 네 번째로 세운 성당이자 최초의 한국인 신부에 의해 세워진 성당이다.


한국에서 네 번째로 세운 성당

설날 연휴가 끝나가는 25일 오후 찾아간 풍수원 성당. 요즈음에는 답사를 다니는 것도 힘들다. 마을 안으로 들어가는 길은 구제역으로 인해 모두 막혀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길에서 가깝거나, 축사가 없는 마을을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 풍수원 성당은 몇 번이나 들려보려고 마음을 먹었던 곳이었기 때문에, 이번 연휴에는 일부러 길을 잡았다.

풍수원 성당은 조선 순조 원년인 1801년 신유박해, 고종 3년인 1866년 병인양요, 고종 8년인 1871년에 일어난 신미양요 때 탄압받던 신도들이 피난을 온 곳이었다. 고종 27년에는 프랑스인 르메르 이신부가 초가 사랑방에 초대신부로 부임을 한 초기의 성당이다. 풍수원 성당은 강원도에서 고딕양식으로 가장 먼저 세운 건물이기도 하지만, 중국인 기술자들이 참여를 한 최초의 성당이기도 하다.




삼랑식 평면으로 지어진 고딕식 건물

이 풍수원 성당을 돌아보면서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전주 전동성당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다. 성당이라는 특성상 그 건축의 형태가 같을 수는 있다고 하여도, 전동 성당보다 먼저 중국인 기술자에게 건축의 소임을 맡겼다는 점이 풍수원 성당을 더 돌아보게 만든다. 앞쪽으로는 높은 탑처럼 올린 풍수원 성당은 양편에 출입구를 두었다.

양편에 있는 출입구는 길게 통로를 내어 바람과 비를 피할 수 있도록 하였다. 뒤편으로 돌아가면 중앙이 돌출되어 있고, 양편으로 문을 내었다. 풍수원 성당은 나지막한 언덕 위에 서남 방향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성당 건물은 열주의 아케이드와 천장에 의해 실랑과 측랑이 구분되는 삼랑식 평면으로 지었다.



전면 중앙에 도출하여 위치한 주현관과 2층의 원화창, 그리고 3층의 2연 아치창과 2연 비늘창이 있다. 종루의 중첩은 위로 향하면서 줄어든 부축벽과 함께, 수직성을 강조하고 있다. 전체적인 건축방식은 일반적인 성당과는 약간의 차이가 난다. 건물 아래편에는 환기와 습기를 막을 수 있는 공기구멍을 내었다.

2,000
명의 신도가 시작한 풍수원 성당

풍수원 천주교회는 천주교 박해를 피해 이주한 신자들이 중심이 되어 이루어졌다. 처음 종교행위를 시작할 당시 풍수원 성당에 모인 신자수가 2,000명 정도였다고 한다. 초가집을 성당으로 사용을 하면서도 이만한 인원이 모였다고 하는 것을 보면, 천주교 박해가 얼마나 심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풍수원 본당은 춘천, 원주, 화천, 양구, 홍천, 횡성, 평창, 양평 등 12개 군의 29개 공소를 관할했다. 1896년에는 원주 본당이 분할되고, 1920년에 춘천 본당이 분할되었다. 그 후 1948년에는 홍천 본당을 분할하게 된다. 풍수원 성당은 1982년에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69호로 지정되었다.

강원도에서 최초로 지어진 고딕풍의 건물이라는 점과, 중국인 기술자와 한국인 신부에 의해서 지어졌다는 점 등이 문화재로 지정하게 된 계기일 것이다. 하지만 풍수원 성당은 강원도 유형문화재이기 보다는, 사적이나 등록문화재로 지정을 해야 옳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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