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란 한 나라의 척도를 재는데 있어서 중요한 자원이 된다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도 우리나라처럼 다양한 문화를 갖고 있는 나라는 그리 흔치가 않다고 한다. 하지만 그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은, 정작 수준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보편적 생각이다.

문화란 어찌보면 단순할 수도 있겠지만, 폭 넓게 생각을 한다면 세상살이 모든 것이 다 문화의 범주에 포함될 정도로 다양하다. 요즈음 들어 '문화켄텐츠'라는 말을 자주 듣게된다. 전문가가 아닌 나로서는, 겨우 생산적 자원이 될 수 있는 것을 말하는 것 정도로만 알고 있다. 


여기서 새삼스레 거창하게 문화에 대해서 논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문화적 소양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그 문화라는 것 안에는 실생활에 있어, 사람이 지텨야 할 기본적인 도리도 포함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얼마전 수원에 일이 있어 갔다가 한 동네의 골목에 들어갈 일이 생겼다.

우연히 골목 길 어귀에 담벼락을 보았더니 블럭 사이에 이상한 것이 보인다. 한 마디로 웃음이 터졌다. 블럭 사이에 음료수 병들이 여기저기 빼꼭 차 있다. 이곳에서 누가 이렇게 음료수를 많이 마신 것일까? 특별하게 주변에 가게도 보이질 않는데 말이다.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니 이번엔 벽에 붉은 글씨가 보인다. 글씨의 내용을 보다가 보니, 참으로 어이가 없다.

경고문

대문 앞 담장 쪽으로 주차하다보니까 그 사이에다 대소변 보는데
잡히면 형사고발 조치함 도저히 냄새나서 못살겠다


라는 문구가 보인다. 도대체 누가 주차를 해 놓은 담장 사이에 대소변을 보는 것일까? 그 골목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출입을 하는 곳도 아닌데 말이다.

세상을 살면서 조금은 흐트러질 때가 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을 보면 거의 습관적으로 이런 행동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문화국민으로서의 품위는 스스로가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닌지. 하기사 이것 뿐이겠는가? 다니다가 보면 참 한심한 작태를 너무 많이 보게되는데..


아산시 읍내동 159번지에 소재한 온주아문 및 동헌은 조선시대 온양군의 관아 건물이다. 동헌의 뒤로는 낮은 남향의 야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아문은 동헌의 문을 말하며, 현판에는 「온주아문(溫州衙門)」이라고 써 놓았다. 이렇게 명칭을 붙인 것은 신라 문무왕 3년인 663년에 이 군의 명칭을 온주라 붙인 데서 비롯한 것이다.

 

온주아문의 문루는 이층의 누각으로 되어 있다. 문은 모두 장대석으로 기단을 깔고, 그 위에 사각형의 기초석을 갖춘 높이 1.5m 정도의 주형 주초를 놓고, 그 위에 기둥을 세웠다.

 

고종 8년인 1871년에 중건한 아문은 모두 세 칸으로 마련을 하였으며, 우측으로는 누대 위로 오를 수 있는 계단을 놓았다. 그러나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로, 이 곳 누대로 오르는 계단 위도 자물통이 채워져 있다. 문화재의 보존을 위함이지만, 차라리 관리자를 두고 위로 오를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듯하다.

  

▲ 온주아문 온주아문에 걸린 현판. 이곳이 신라때 온주였기 때문에 그 명칭을 그대로 사용한 듯하다.

 
▲ 잠긴 문 이층 누각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자물통으로 잠겨있다.

 

원형 복원을 마친 동헌

 

동헌은 아문을 들어서면 뒤편에 서 있다. 현재 이 문화재 지역 안에는 동헌건물과 아문 두 동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다. 이 동헌의 건물은 조선조에는 온양군의 동헌으로 쓰이다가, 일제 때인 1928년부터는 일제의 주재소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광복 후에는 파출소로, 1986년 시 승격 후에는 20년 간 온주동 동사무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렇게 많은 이용을 하면서 그 원형이 심하게 훼손이 되었다.

 

정면 6칸 측면 2칸의 동헌은 장대석을 쌓아 기단을 마련하고, 동헌을 바라보면 좌측 한 칸은 돌출된 방을 놓았고, 다음 두 칸의 방과 두 칸의 대청, 그리고 한 칸의 방을 두었다. 좌측의 한 칸의 방을 빼면 대청 앞으로 낸 툇마루로 모두가 연결이 되어 있다. 그동안 동헌은 여러 차례 중수를 하였으며, 1993년 4월 예산을 들여 1995년 5월에 원형대로 복원을 하였다고 한다. 

 

『여지도서』 온양군 공해조에 보면 동헌 10칸, 아사 23칸, 객사 37칸, 무학당 3칸, 향청 12칸 등 건물이름과 칸수가 기록되어 있어, 온주 동헌의 옛 모습이 상당한 규모였음을 알 수 있다. 

 

▲ 동헌 원래는 많은 건물이 있었으나., 현재는 아문과 동헌 두 동만이 남아있다

 
▲ 경고문 동헌의 방문 등에 하얀쪽지가 경고문구다. 여기저기 많이도 보인다.

 
▲ 들어가십시오 '들어가지 마십시오'란 문구를 글자를 지워놓아 '들어가십시오'가 되었다.

 

문화재 훼손이 징역 2년 이상이면, 관리 소홀은?

 

동헌을 한 바퀴 돌아보니, 여기저기 보수를 해야 할 곳들이 보인다. 겨우내 손을 보지 않았는지 동헌 뒤편 배수로의 축대 돌들은 무너져 내리고, 문을 바른 창호지는 누군가 일부러 찢었는지 모두 너덜거린다. 마루에 '들어가지 마십시오'리고 쓴 푯말은 '지'와 '마'를 지워놓아 '들어가 십시오'란 푯말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이렇게 훼손이 된 창호의 밑에 무엇인가가 안팎으로 붙어 있다. 글씨를 보니 건조물 파괴, 창살문, 창호지 훼손 등 문화재를 파손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징역 2년 이상에 처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관리소홀인 담당자는 어떻게 처벌을 해야 할까? 물론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양식 없이 하는 행동이 문화재를 훼손한다는 것은 알 수 있지만, 이렇게 경고성 문구를 여기저기 수도 없이 붙여놓은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훼손이 징역 2년 이상이라는 문구를 적었다면, 관리 소홀도 그와 상응하는 처벌을 해야 하지 않을까?

 

▲ 무너진 배수로 배수로의 축대가 무너져 내렸다. 겨우내 한 번도 관리를 하지 않았는지.

▲ 창호 심하게 찢어져 걸레가 된 창호

▲ 경고 관람객들에게만 경고를 할 것이 아니라, 관리소홀을 한 사람들이 먼저 경고를 받아야 할 판

 

소중한 우리의 문화재를 온전히 관리보존을 하기 위해서는, 경고성 문구나 무조건적인 잠그기보다는, 온전히 관리를 할 수 있도록 인원배치가 우선이다. 매번 들어가는 보수비용만 갖고도, 그런 지킴이 한 명 정도의 인원을 쓸 수 있는 예산은 충분하단 생각이다. (출처 : 오마이뉴스 / 2010,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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