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에서 7번 국도를 이용해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을 향해 가다가 보면, 우측에 왕곡마을이라는 안내판이 있다. 고성군 죽왕면 송지호 뒤편에 위치한 왕곡마을은, 지금의 오봉1리의 옛날 명칭이다. 14세기경 강릉함씨, 강릉최씨가 용궁김씨와 함께 이 마을에 들어와 집성촌을 형성하고 있는 마을이다.

 

왕곡마을이 처음 생겨난 것은, 고려 말 함부열이 조선의 건국에 반대하여 은거한데서 비롯되었다. 그 후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된 후, 150여년에 걸쳐 형성된 마을이다. 왕곡리에는 함씨, 최씨, 진씨가 주를 이루고 있으며, 이밖에 이씨, 박씨, 김씨, 한씨, 윤씨 등이 살고 있다. 현대문화의 범람에도 변하지 않은 옛 모습 그대로의 전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왕곡마을을 둘러보았다.

 

 

19세기에 조성된 왕곡마을

 

왕곡마을을 찾았다. 모처럼 날씨가 푹해 답사하기에는 제격이다. 왕곡마을에는 19세기를 전후해 지어진 북방식 전총한옥 21채가 있다. 전국적으로 유일하게옛 모습을 그런데도 지켜오는 밀집된 전통한옥마을이다. 이 마을은 마을을 둘러쌓고 있는 5개의 봉우리로 인해, 6.25 한국동란 때에도 한 번도 폭격을 당하지 않았다.

 

왕곡마을의 가옥구조는 안방과 사랑방, 마루와 부엌을 20~30평 규모로 한 건물 내에 수용하고 있다. 이 마을에는 유난히 기와집들이 많다. 이 집들은 모두 강원도 북부지방에서만 볼 수 있는 양통집이다. 또한 부엌의 앞에 외양간을 덧붙여, 겨울이 긴 추운지방의 기온을 버틸 수 있도록 꾸며진 집들이다. 왕곡마을 동해안의 수려한 자연을 가까이 하고 있으며, 주변을 산이 둘러쳐진 병풍 안에 자리한 마을이기도 하다.

 

 

담장 위에 올린 항아리 무엇이지?

 

이렇게 왕곡마을에 기와집이 많은 이유는, 인접하고 있는 구성리에 기와를 굽는 곳이 있어서라고 한다. 그런데 왕곡마을을 돌다가 보면 두 가지 이상한 것이 있다. 첫 째는 담장에 낸 굴뚝이다. 마을의 집집마다 굴뚝이 서 있는데, 그 굴뚝을 담장에 붙여서 조성을 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굴뚝 위에 올려놓은 항아리들이다. 이 마을은 집집마다 굴뚝위에 항아리를 얹어 놓았는데 특별한 이유 없이 그저 예부터 내려오는 전통이기에 지키고 있다고 한다. 또한 이 마을엔 우물이 없는데 마을이 생긴 모양이 배의 모양이라 우물을 파면 마을이 망한다는 전설 때문이라고 한다. 예부터 이 마을은 모두 부자가 아니어도 기와집을 하고 있었는데 이는 인근 구성리 마을에 기와 굽는 가마가 있어서 였다고 한다.

 

 

동해안의 수려한 자연환경 속에 자리한 전통 한옥마을로, 14세기 경 부터 강릉 함씨와 강릉 최씨, 용궁 김씨 등이 모여 사는 집성촌이다. 왕곡마을은 강원도 동해안 송지호 해수욕장에서 0.5지점에 있으며 주변의 수려한 자연 환경 속에서 취락을 이루고 있는 전통한옥마을이다. 이 마을은 강릉함씨와 강릉최씨, 용궁김씨 등의 집성촌으로 고려말 두문동 72인 중의 한 분인 함부열이 조선왕조의 건국에 반대하여 간성에 은거한데서 연유되며 임진왜란으로 폐허화된 이래 150여 년 간 걸쳐 형성된 마을이다.

 

마을의 거주 현황은 함씨(25), 최씨(11), 진씨(4)가 주를 이루고 이밖에 이씨, 박씨, 김씨, 한씨, 윤씨 등이 있다. 이 마을은 14세기경부터 강릉함씨, 강릉최씨 등이 집성촌을 이루어 살아온 곳으로 수려한 자연 환경 속에 취락을 형성하고 19세기를 전후하여 건축된 북방식 전통가옥들이 군락을 이루어 원형대로 보존되고 있으며 현대 문화의 변화와 영향에도 불구하고 자연경관 주택 건축 농업위주의 생활 등이 원래의 모습대로 전래되고 있어 전통민속마을의 가치가 인정된다.

문화재란 참 기묘한 것이란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내가 문화재를 답사할 때는, 가급적이면 철마다 한 번씩 찾아간다. 물론 일부러 철마다 찾아가는 곳도 있으나, 대개는 그 지역을 지나칠 때 들려가는 경우가 많다. 10월 29일 전주에서 ‘오마이뉴스’ 전북지역 시민기자들의 모임이 있었다. 그곳 가까운 곳에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셔 놓은 경기전이 있다.

경기전은 가을마다 한 번씩은 꼭 들리는 곳이다. 가을경치가 그만큼 뛰어나기 때문이다. 한옥마을에는 주말을 맞아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경기전 역시 여기저기 사람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깊어진 가을의 정취를 느끼려고 북적인다. 경기전 안에는 전라북도 민속자료 제26호인 ‘예종대왕 태실 및 비’가 자리하고 있다.


단풍과 어우러진 문화재, 분위기 정말 좋아

가을에 많은 문화재를 만나기 위해 답사일정을 많이 잡는 것은, 바로 아름다운 주변 경치와 아울리는 문화재들의 모습을 담아내기 위함이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철마다 왜 문화재의 모습이 그리 달라져 보이는 것인지. 그렇다고 문화재의 본질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문화재 주변의 경치가 달라지는 것이지.

29일 찾아간 경기전의 예종대왕 태실과 비도 마찬가지이다. 딴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아마도 주변을 아름답게 수놓은 형형색색의 단풍 때문이란 생각이다. 그냥 볼 때는 조금은 삭막한 석재들이 단풍과 어우러지면, 그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한다는 것이 신기하다.



가을에는 이런 모습을 보는 사람들이 문화재에 조금은 더 신경을 쓰기도 한다. 평소 같으면 그냥 지나칠 사람들도, 주변과 어우러진 모습을 보면서 한 번 들여다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든 문화재 주변에 단풍을 심을 수는 없을 테니, 예종대왕의 태실 및 비는 문화재 중에 복을 받았다고나 해야 할까?

태 항아리를 가져간 조선총독부, 좋아할 수 없는 이웃

이웃나라라고 한다. 그러나 난 일본이라는 나라를 한 번도 이웃이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다. 문화재를 답사하는 나로서는 일본은 죽어도 이웃이 될 수 없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수많은 우리의 문화재를 강탈해 갔다. 그 수많은 문화재가 아직도 일본 땅 곳곳에 있다니, 이런 나라를 어떻게 이웃이라고 생각을 할 수가 있겠는가?



한 두 사람이 태실의 돌난간에 앉아 사진을 찍는다. 그것마저 무엇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게라도 아름다운 사진을 찍어 홍보를 해주기만 한다면.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안내판이라도 한 번 더 보아주었으면 하는 생각뿐이다.

‘태실(胎室)’이란 왕가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그 태를 소중히 석실에 보관하여 땅에 묻는다. 우리나라의 지명에 ‘태실’ 혹은 ‘태봉’이란 지명은 태를 묻은 곳이란 뜻이다. 예종대왕의 태도 항아리에 담아 놓은 것이다. 원래 이 태실은 선조 11년인 1578년 현 완주군 구이면 원덕리 태실마을 뒷산에 묻었다가, 영조 10년인 1734년에 다시 고쳐 지은 것이다.

그러나 일제의 조선총독부가 태 항아리를 가져가면서 태실이 파괴되어 구이초등학교 근처에 방치가 된 것을, 1970년 이곳으로 옮겨 온 것이다. 결국 이 태실 안에는 예종대왕의 태는 없고, 그 태를 감쌌던 석조물과 비만 남은 것이다.



화려하지 않은 태실과 비

예종대왕의 태실 및 비는 화려하지 않다. 태실은 팔각형으로 조성한 돌난간 안에 기단석을 놓고, 그 위에 배가 부른 원통형의 돌을 놓고 지붕돌을 올렸다. 전체적으로 보면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부도탑의 형태이다. 난간은 두 개의 6각형 장대석을 이용해 난간을 둘렀는데, 이음새 부분에는 문양을 한 받침돌을 놓았다.


석비는 태실과 함께 옮겨온 것이다. 비석의 앞면에는 예종대왕의 태실임을 알리는 글귀가 적혀있고, 뒷면에는 비석의 건립연대를 음각하였다. 머릿돌은 뿔이 없는 용의 얼굴과 구름 등을 새겨 넣었다. 앞뒤로 새긴 용은 금방이라도 불을 뿜어날 듯하다. 받침돌인 귀부는 평범하게 조각이 되었다. 다만 거북의 귀갑문을 사용하지 않고, 다채로운 문양으로 꾸민 것이 특이하다.

가을이 되면 문화재도 분위기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그 본질이야 어디로 갈 것인가? 예종대왕의 태실과 비를 보면서, 이 가을에도 미움이 가시지 않을 것만 같다. 그 태를 훔쳐다가 도대체 어떻게 한 것일까? 이 아름다운 단풍도 그 마음을 어쩌지는 못하는 것 같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17교구 금산사 말사인 남원 선원사에서는, 경내에 있던 구 연꽃유치원 건물을 ‘선원문화관’으로 지난 7월 9일 개관식을 가진 후, 대나무 솟대전을 연바 있습니다. 선원문화관은 7월 25일자로 전라북도에서 사단법인으로 승인을 받은 후, 이번에는 새로운 기획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8월 6일 오후 2시에 개막전을 하는 <김원주의 도자전 - 찻그릇과 항아리>전은 그동안 여주 등에서 꾸준히 장작가마에서 찻그릇을 구워낸, 작가의 혼이 들어있는 작품전입니다.


‘김원주의 도예소’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 김원주씨는, 이번 전시회에서는 달항아리 등 다양한 도자들이 선을 보일 것으로 보여 기대를 하게 만듭니다. 선원문화관에서는 매번 전시회를 여는 ‘작가와의 만남’이란 제목으로 전시된 작품들을 배우는 시간을 갖고 있는데, 이번 만남은 8월 8일 오전 10시부터 <털보아저씨와 하는 흙장난>이란 제목으로 유치원생 80여명과 선생님들 등 100여명이 흙을 갖고 만들기를 배우게 됩니다.

선원문화관 이사장인 운천스님은 “전시회를 개최하고, 작가들을 섭외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 우리는 더 많은 사람들이 문화적 향수를 선원문화관에서 충족시키기를 바라고 있다. 이번 김원주 작가의 도예전은 지난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인근에 계신 블로거님들은 이번 개막 오프닝 때 찾아오시면 좋은 만남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멀리까지 달려와 전시를 준비해 주시는 김원주님께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리면서, 앞으로 저희 사단법인 선원문화관이 더 한층 어두운 곳에 빛을 비출 수 있도록 격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날이 무지 덥습니다. 모두 건강들 하세요.

일시 : 2011년 8월 6일(토) ~ 15일(화)
개막 : 2011년 8월 6일 오후 2시
작가와의 만남 : ‘털보아저씨와 함께하는 흙장난’ (8월 8일 10:00 ~ 12:30)


(사진) 위 사진은 김원주님의 블로그에 소개한 사진입니다. 맨 위는 '다기' 가운데는 찻그릇을 진열 한 모습. 맨 아래는 가마에 불을 때기 위해 준비하는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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