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일반인들하고는 달리 저희들은 직성이 강하다고 하죠. 신을 모시는 사람들이니까요. 아마 두 사람이 다툼이 일어난다고 하면 더 심하게 다툴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를 이해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으니까요

 

부부가 모두 신을 모시고 있다. 그것도 한 집에서 한 곳의 전안(신령을 모셔 놓은 신당)을 섬긴다. 이럴 경우 대개는 심하게 다투기가 일쑤라고 한다. 심지어는 모녀사이에도 전안을 차지하려는 신들 간의 싸움이 치열하다. 그런 시기와 다툼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20년 세월을 부부로 살아오면서 세상의 많은 아픔을 함께 하고 살았기 때문인가 보다.

 

막말로 시기를 하고 질투를 해서 서로 헤어졌다고 하면, 저 사람보다 더 잘나고 착한 사람을 만나라는 법도 없지 않습니까? 사실 신들의 문제라고 하지만 그것도 알고 보면 사람들의 구실에 지니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고 보아야죠.”

 

21일 오후 수원시 권선구 세류동 97-139 ‘일월신당이라는 간판을 걸고 있는 곳. 이 집은 부부가 모두 신을 모시는 신제자이다. 막다른 골목길의 이층집 안에는 문 앞에서부터 각종 기물들이 눈이 띤다. 안으로 들어가니 넓지 않은 실내에 빽빽하게 신령의 물품들이 차 있다.

 

 

부부가 신내림을 한지 벌써 20

 

부부는 비슷한 시기에 신내림을 받았다고 한다. 남편인 이용수는 올해 53세이다. 신내림을 받은지 20년이 지났다. 부인인 김상희는 46세로 21년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두 사람이 부부가 되고나서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아직은 이렇다 할 문제는 만들지 않고 살아왔다.

 

저 사람이 많이 이해를 해주고 있어요. 아무래도 그런 이해가 없으면 함께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테고요. 같은 길을 간다는 것이 쉬울 것 같지만 사실은 남들보다 배나 더 어렵습니다. 그저 한 발 물러나 늘 양보를 하는 길만이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이죠.”

 

그저 그런 남편이 고마워서 무슨 일을 하던지 두 사람이 함께 하고 있다고 한다. 서울서 살다가 수원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 3년 정도 되었다. 지금 자리에 오게 된 것도 부인인 김상희의 꿈에 이 집을 현몽을 했다는 것이다.

 

원래 저희 같은 사람들은 막다른 집을 들어가지 않잖아요. 길이 막힌다고 헤서요. 그런데 집 사람이 이사 오기 전에 미리 이 집을 보았다고 찾아오는 거예요. 그래서 이 집으로 들어왔어요. 비좁아서 많이 불편하지만 그래도 참고 살아야죠.”

 

 

지독한 신병에 10세부터 귀신을 보았다는 김상희

 

남들은 제가 이런 소리를 하면 믿지 않겠지만 저는 10살부터 귀신을 보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하면 그것이 다 맞고요. 이미 그때부터 신병이 시작된 것이죠. 17살부터는 벽에다가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바라춤을 춘다고 하기도 하고, 휴지를 들고 살풀이를 춘다고도 했어요. 그러다가 24살에 어머니 재수굿을 해주다가 신굿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들었죠.“

 

10세에 시작한 신병은 이미 14년이란 긴 시간을 괴롭혔다. 해마다 다리를 다치는가 하면 인대가 늘어나 걷기조차 힘들었다, 육신적인 신병과 함께 금전적인 신병이 온 것이다. 그때는 이미 깊어 질대로 깊어진 신병으로 인해 동자들이 눈에 보여 사탕을 사다놓기도 하고, 할머니들이 보여 자고 가라고도 하는 등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수도 없이 벌렸다.

 

 

잠옷 바람으로 나가서 한 걸립

 

정말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모르겠어요. 내림굿을 할 날짜를 잡았는데 수중에 갖고 있는 돈이 없잖아요. 당시는 이태원에 살았는데 제가 화장을 하고 잠옷을 입고 길에 나가서 사람들에게 점을 보아주고 걸립을 한 것이죠. 그렇게 돈을 모아 수락산에서 내림굿을 받았어요.”

 

내림굿을 하고 난 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손님들이 찾아들기 시작한 것이야 신령을 모셨으니 당연한 것이지만 그렇게 다치고 아프던 다리가 싹 나은 것이다.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정말 이해를 할 수 없다고 한다. 간판도 달지 않고 13년간이나 사람들을 보면서 상당한 재물도 모았다고 한다.

 

사람들을 매일 만나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참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한 몇 년 쉬었어요. 너무 피곤하기도 하지만, 산다는 것이 버겁기도 하고요. 그러다가 수원으로 내려와 경기도당굿 이수자이신 승경숙 선생을 만났죠. 선생님의 굿을 보고 첫눈에 나도 이 길을 가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부부가 전수생으로 등록을 했다. 이 두 사람은 경기도당굿보존회 남부지부 공식 1기생으로 전수자 등록이 되었다. 앞으로 열심히 학습을 해 도당굿을 보존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다고 하는 이용수, 김상희 부부. 아무쪼록 이 집 대문 앞에 내 건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98호 경기도당굿 전수자라는 명호답게 지역의 문화를 지켜갈 수 있는 동량이기를 기대한다.

 

저는 제 인생에 반전을 가져 온 것이 바로 우리 춤입니다. 이제 춤을 춘지는 한 2년 반 정도 되었는데, 결혼을 하고 남편 뒷바라지에 아이들을 키우느라고 바깥출입도 잘 하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우리 춤을 알게 되었고, 그 춤이 제 인생을 새롭게 바꾸어 놓았죠. 제가 춤을 추기 시작하면서 남편과 아이들도 적극 후원을 하고 있어요. 춤을 추러 간다고 하면 남편도 아무런 탓도 하지 않아요. 좀 늦어도 무엇이라고 말도 하지 않고요. 이제 제 나이 68세인데, 제 인생에 반전도 이런 반전이 없는 것 같아요.”

 

26일 오전 10시가 조금 지난 시간. 수원시 팔달구 팔달산로 28에 소재한 수원문화원 지하층. 10여명의 사람들이 넓은 치마를 펄럭이며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고 있다. 수원문화원 동아리 모임인 춤사랑의 회원들이다. 음악에 맞추어 입춤을 추고 있는 자태가 아름답다. 팔달산의 꽃소식에 이끌려 올라갔다가 아름다운 춤까지 구경을 하게 생겼다.

 

 

인생에 대 반전을 가져왔다는 김향순씨는 인생이 즐겁다고 한다. 이렇게 즐거운 춤을 출 수가 있어 너무 기쁘다는 것. 수원문화원 민속예술단이기도 한 동아리 춤사랑은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27, 이매방류 승무의 이수자인 여지영(43) 선생이 지도를 한다. 40대에서 70대의 회원을 가르치면서도 따끔하게 혼을 내는 것을 보면 영락없이 스승을 닮았다.

 

동아리로 태어난 지 6, 천식도 고쳐 준 우리 춤

 

저희 춤사랑 동아리가 처음으로 시작을 한 것은 6년 정도 되었어요. 현재 수원문화원에는 한국무용 기초반이 있고 동아리인 춤사랑이 있습니다. 현재 회원은 15명 정도가 있는데 딴 곳처럼 이것저것 가르치지는 않아요. 한 가지를 배워도 기본기가 단단하게 제대로 학습을 해야죠.” 춤사랑 지도강사인 여지영 선생의 말이다.

 

춤사랑 동호회 홍의진(56) 회장은 취미로 춤을 시작한지는 20년 정도 되었지만 이제야 좋은 선생님을 만나 제대로 춤을 출 수 있게 되었다면서 즐겁다고 한다.

저는 마사회에서 우리 춤을 추어왔어요. 등산도 다니고 골프도 치고는 했지만, 요즈음은 우리 춤에 푹 빠져 있어요. 저는 춤을 추면서 50견이나 골절 통증 등은 아예 앓아보지도 않았어요. 여기 계신 우리 회원님들이 모두 그렇지만요. 저희가 지금 선생님을 만나 춤을 제대로 배울 수 있게 되어서 정말 너무 감사해요”. 그래서 일주일에 두 번 춤을 추는 시간이면 빠트리지 않고 참석을 한다는 것이다.

 

 

동호회에서 가장 연장자인 서영애(71)씨는 춤을 추기 때문에 늘 행복하고 즐겁다고 하면서, 등산도 하기도 하지만 아직 몸이 건강해 겨울철 감기도 잘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춤은 호흡이 중요하기 때문에 호흡기질환도 고칠 수가 있다는 것이다. 회원 권숙경(52)씨는

저는 춤을 춘지가 꽤 되었는데 한 번도 집에 공연 때 구경을 오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지난 해 남편과 아이들이 정기공연 때 꽃다발을 사들고 왔더라고요. 그 뒤로 남편과 아이들이 적극적인 후원자가 되었어요. 그리고 제가 항상 천식이 있어서 걱정을 했는데, 춤을 추고 난 뒤 천식이 없어졌어요.”라고 한다.

 

 

많은 봉사활동도 하는 춤사랑 동호회

 

각 동호회마다 일 년에 한 번은 수원문화원 무대에 올라야 한단다. 그리고 연말에 가족잔치가 열리면 그때도 무대에서 춤을 추어야 한다고.

저희들은 항상 봉사를 하러 다녀요. 문화원 밑에 자리하고 있는 수원향교에서 잔치가 열리면 그곳도 참석하고요. 수원문화원의 행사가 있을 때는 늘 동참을 하죠. 그러다가 보면 꽤 많은 봉사를 하는 것 같아요.” 홍의진 회장의 말이다.

 

잠시 쉬면서 이야기꽃을 피운 회원들. 그런데 한 회원이 갑자기 손을 들면서 이야기를 한다. 모인 동호회 회원 중에 작고 어려보이는 구자애(53)씨이다.

저는 지금 살고 있는 곳이 대전예요. 그런데 매주 월요일마다 기차를 타고 문화원에 와서 우리 춤을 배우고 있어요. 대전에도 춤을 가르치는 곳은 많지만, 이렇게 수원문화원 동아리처럼 제대로 배울 곳이 많지 않아요. 공연준비를 할 때는 매일 출근을 하다시피 했어요.”라고 한다.

 

 

좋은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 여러 곳을 찾아다녔다는 한 회원의 말에 절로 부끄러워진다.

요즈음 우리 춤을 가르치는 곳이 상당히 많기는 해요. 그러나 가르치는 사람이 호흡조차 알지 못하면서 춤을 가르친다고 하면 정상적인 춤을 추겠어요. 그런 분들로 인해 우리 춤이 망가지고 있다는 것이 마음이 아파요. 이젠 그런 분들이 춤을 가르치지 못하게 제도적으로 막아주었으면 좋겠어요. 멋을 느끼고 빠져들어야 하는 우리 춤이, 점점 망가져 가고 있는 것만 같아요.”

 

비록 전공자는 아니라고 해도 우리 춤이 좋아서 춤을 추는 수원문화원 우리 춤 동호회 춤사랑’.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하고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면서 팔달산에 활짝 핀 목련만큼이나 그 표정들이 환하다고 느낀다.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98호인 경기도당굿은, 경기도 일원의 각 마을 도당에서 마을의 안녕과 주민들의 안과태평을 위한 마을굿이다. 경기도당굿은 한수 이남의 경기도 전역과 현 인천광역시의 섬까지 걸쳐 연희가 되던 마을 제의로, 화랭이라고 하는 세습무들에 의해서 전승이 되어왔다.

 

19901010일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98호로 지정이 된 경기도당굿은 보유자인 고 조한춘과 고 오수복이 세상을 떠난 뒤, 아직도 보유자 지정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는 경기도당굿보존회에서 모든 행사 및 각 도당의 제의를 담당하고 있다.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전승에 모든 것을 쏟아 붓겠다는 경기도당굿 남부지부 승경숙 지부장을 만나보았다.

 

 

처음에는 낯설기 만한 경기도당굿

 

현재 경기도당굿 이수자인 승경숙 지부장은 1986년 내림굿을 받은 후, 주로 한양굿을 배워 굿판에서 나름 잘 불리는 무녀였다. 그러다가 1993년 경기도당굿 보유자인 오수복 선생님의 권유로 경기도당굿의 전수생으로 입문을 하게 된다.

 

“1993년에 처음으로 당시 경기도당굿의 보유자이신 오수복 선생님을 뵙고 도당굿에 첫발을 내딛었어요. 당시는 경기도당굿에 이름만 들어도 내로라하는 분들이 모두 문하생으로 있었죠. 거기서 함께 끄트머리에 서서 무녀제 도당굿의 제차를 배웠어요. 오수복 선생님께서는 도당굿에서 무녀가 맡아하는 부정, 제석, 군웅 등 여자가 할 수 있는 굿거리를 저희들에게 알려주셨죠.”

 

처음에는 경기도당굿이 낯설기만 했다고 한다. 경기도의 판소리인 판배개 창으로 불러대는 도당굿의 소리가 따라 하기조차 힘들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힘든 도당굿의 춤사위며 장단, 소리를 배울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전수교육조교인 고 방돌근 선생 때문이라고. 고 방돌근 전수교육조교는 이 시대의 마지막 전악이라고 할 만큼 도당굿의 장단과 경기 시나위를 구가하고 있던 악사였다. 할아버지가 경기도의 대금 시나위의 창시자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선생님들의 유지 받들어야

 

낮에는 오수복 선생님께 도당굿의 굿 제차를 배우고, 저녁에는 방돌근 선생님께 도당굿의 장단과 무가를 배웠어요. 경기도당굿은 신이 나지도 않고 까다로운 장단과 사설로 인해 고통을 받기도 했죠. 배우다가 보니 점점 그 깊이에 빠져들게 되고, 나중에는 도당굿의 소리에 점점 빠져들게 되었어요.”

 

그렇게 경기도당굿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1993년부터 현재까지 도당굿의 모든 행사에서 거리를 맡아 자신이 가진 재주를 선보였다고 하는 승경숙 지부장. 기획 공연만 해도 50여회에 도당굿을 널리 알리기 위해 개인공연도 2회나 가졌다.

 

선생님들께 그냥 받은 재주잖아요. 열심히 할 수밖에요. 그동안 많은 곳에 공연을 다녔어요. 선생님들과 함께 전국을 다니면서 수많은 공연을 했죠. 때로는 박물관에서 때로는 산사에서, 어디든지 도당굿을 불러주는 곳이 있다면 달려가서 공연을 했죠. 당시 연세가 많으신 오수복 선생님께서 노구를 이끌고도 도당굿의 전승을 위해 애를 쓰시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런 선생님들이 이젠 한 분도 세상에 있지 않다고. 모두 세상을 떠났다. 고 방돌근 선생은 첫 개인발표회를 며칠 앞두고 세상을 하직해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하기도. 보유자이신 오수복 선생도 20111217일 세상을 하직했다.

 

선생님께서 갑자기 세상을 떠나신 후, 참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오산의 굿당에서 선생님의 지노귀굿을 해드렸죠. 두 분의 선생님이 그렇게 세상을 떠나시고 난 뒤 무엇인가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선생님들께 배운 재주를 널리 퍼트려야 하겠다고. 그래서 오산에 경기도당굿 남부지부를 개설했어요.”

 

 

그동안 50여명의 전수생 키워내

 

20121월부터 6개월 과정으로 경기도당굿의 기본적인 학습을 시작한 전수생들은, 그동안 114, 28, 316, 415명 등 53명에 달한다. 경기도당굿은 그 특성상 일반 굿과는 제차가 다르기 때문에, 6개월 과정으로는 배울 수가 없다. 하기에 꾸준히 학습을 하고 행사에 자주 참석을 해야 한다고 한다.

 

그동안 오산에서 전수생들을 학습시키다가 보니 이동거리가 멀어 전수생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었어요. 그래서 이번에 수원 팔달구 인계동 지하에 20여 평 정도 되는 연습실을 마련했어요. 선생님들께 배운 것을 온전히 전수시키고자 마음을 먹었죠. 이달 16일에 전수소를 개소하려고요.”

 

전수소의 개관을 준비하고 있는 인계동 지하에서 만난 승경숙 지부장. 경기도당굿의 온전한 전수 보전을 위해서 앞으로 많은 노력을 하겠다고 한다. 남들은 어렵다고 배우기를 꺼려하지만, 선생님들께 배운 재주를 다음 세대에 물려주기 위해서 어려움을 참아내야 되지 않겠느냐며 각오를 다진다.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이 된 경기도당굿이 온전히 전수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1110일 세종문화회관서 (타의 향)’ 공연

 

풍물굿에서 빠질 수 없는 화려한 몸놀림의 극치, ‘설장고명인 이부산이 무대에 오른다. 세종문화회관은 이부산 명인이 마련한 공연이, 오는 1110일 오후 5시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열린다고 밝혔다. 이 공연은 이부산 설장고 연구소가 주최, 주관하고 서울문화재단이 후원한다.

 

설장고의 명인 이부산은 6세 때부터 부친인 인간문화재 고 이준용 선생의 손에 이끌려 장고를 잡기 시작한 이래, 52년째 풍물 가락과 함께해온 예술인이다. 항간에서는 김덕수 사물놀이패와 쌍벽을 이루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는 두레패 사물놀이패를 거쳐 현재 경기도립국악당에서 지도위원에 재직하고 있다.

 

이 명인은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11-가호인 진주삼천포농악의 전수조교로서, 후진 양성과 국악의 대중화에 힘쓰고 있는 풍물계의 전설적인 인물이다.

 

 

호남과 영남의 가락을 모두 익혀

 

설장고로 이름을 떨치는 명인은 여럿이지만 이부산 명인은 좀 남다르다. 전립을 쓰고 채상모짓을 하며, 박진감 있게 덩더꿍 가락으로 돌아가는 점에서는 영남의 진주삼천포 설장고 명인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잔가락이 아기자기한 점에서는, 호남우도 설장고의 멋도 한껏 느껴진다.

 

이 같은 특징은 이 명인이 어린 시절 전북 김제에서 설장고를 배운 후, 성인이 되어 진주삼천포농악에 참여한 이력 덕분이다. 공연은 영남 풍물놀이 부분에 독보적인 존재로 알려진 조갑용 선생의 성주풀이와 사물놀이 합주로 시작해, 명무 임이조 선생이 이끄는 한국 전통춤 연구회의 교방살풀이 춤으로 이어진다.

 

명인들 대거 무대에 올라

 

또 평생의 반려자 김연자 선생의 선후배들이 함께하는 가야금 병창, 광개토 사물놀이예술단을 중심으로 한 30여 명의 제자들이 선보이는 삼도 풍물 판굿이 화려하게 펼쳐진다. 이와 함께 유년시절부터 평생 선후배로 지내온 이광수(소리-비나리), 김운태(채상소고춤), 유순자(부포놀음), 조갑용(열두 발)과 이 명인이 함께 어우러지는 풍물 명인전은 이번 공연의 가히 백미라 할 수 있다.

 

특히 공연에서 이부산 명인이 30여 명의 제자들과 함께 울리는 우도 설장고 대합주는 전무후무한 최고의 공연이 될 것이라고 연구소 측은 밝혔다.

 

이부산 명인은 이번 공연의 의미를 “50여 년의 예술인생 속에서 만난 지인들과 제자들이 함께 모여 만든 무대라고 설명하며 명인들의 예술 인생을 후배들과 공유하며 설장고의 매력을 재조명해보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양예술이 도도하게 맹위를 떨치고 있는 현시대에 그 위세에 짓눌리지 않고 당당하게 포효하는 우리의 풍물굿. 그중에서도 화려한 몸놀림의 절정 설장고는 한국문화의 진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며, 그 중심에 이부산 명인이 우뚝 서 있다. 깊어가는 가을날, 설장고 가락에 푹 빠져보면 어떨까?

 

일 시 : 1110일 오후 5(120분 공연)

티켓가격(인터파크)30.000(학생 15,000/10인 이상 단체20.000).

010-7773-8282 / 070-4821-2100

 

중요무형문화재 제98호인 경기도당굿은 서울을 비롯한 한강 이북지방과 수원· 인천 등지에서 마을의 평화와 풍년을 목적으로 이루어진 대동굿이다. 도당굿이란 마을의 안녕과 풍농, 풍어를 위해 매년 혹은 2년이나 그 이상의 해를 걸러 정월 초나 봄과 가을에 정기적으로 행해지는 굿을 말한다.

 

1990년 10월 10일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이 된 경기도당굿은 다른 지방의 도당굿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남자무당인 화랭이들이 굿을 맡아서 한다. 도당굿에서 나타나는 음악과 장단도 판소리기법을 따르고 있어, 예술성이 뛰어나고 전통문화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수원이 전승지인 경기도당굿

 

경기도당굿은 처음 지정이 될 당시 화랭이인 고 조한춘과 무녀인 고 오수복이 기예능보유자로 지정이 되었다. 지정 당시 도당은 부천 장말에서 연희를 하였으며, 수원에서는 평동과 거북산당(영동시장 안), 고색동 당에서 굿이 이루어졌다. 무녀로 지정이 된 고 오수복이 수원에 거주하였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그 전승지가 수원이 되었다.

 

 

고 오수복 보유자에게서 그동안 굿거리 제차를 배운 이수자들은 상당하다. 이들은 주로 무녀들이 맡아하는 시루도듬이나 부정굿, 제석굿, 군웅굿 등을 익혔으며, 고 조한춘 보유자에게서 화랭이 굿제를 익힌 화랭이들은, 조한춘의 아들인 조영국이 맡아서 연희를 담당해왔다.

 

오수복 보유자 생전 당시 음악을 맡아하던 전수조교는 고 방돌근이 있었다. 고 방돌근은 음악과 장단 문서(굿의 사설) 등에 일가견을 갖고 있었지만, 자신의 개인무대를 며칠 앞두고 세상을 떠나 안타까움을 사기도 했다.

 

경기도당굿을 이어간다.

 

당시 고 오수복 보유자에게서는 무녀제 굿을 익히고, 고 방돌근 전수조교에게서는 장단과 문서 등을 전수받은 승경숙(도당굿 이수자)이, 경기도당굿의 명맥을 잇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이수자 승경숙은 현재 팔달구 인계동에 전안(무당들이 신을 모셔 놓은 곳)을 차리고 있으며, 전수생들의 강습은 오산시 원동 마등산 아래 역말굿당에서 하고 있다.

 

 

한꺼번에 많은 인원에게 소리와 장단, 춤사위 등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넓은 공간을 필요로 한다. 더욱 주택가에서는 이렇게 큰 소리를 내어 사설을 익히고, 장단을 치는 등의 학습방법은 주위로부터 눈총을 받아야 한다. 이런 강습의 특성 때문에 인적이 없는 굿당을 택했다는 것이다.

 

오산시 원동에 소재한 역말굿당은 현재 마등사라는 명칭으로 운영을 하고 있다. 이곳은 경기도당굿 남부지부(오산시지부)로 등록이 되어있으며, 현재 4기 전수생을 가르치고 있다. 4기생은 모두 16명 정도가 학습을 하고 있으며, 수원과 오산 등에서 배우러 오고 있다고.

 

경기도당굿은 위엄이 있어

 

6월 3일(일) 경기도당굿의 학습을 하는 전수생들을 가르친다는, 오산시 원동 역말굿당을 찾았다. 입구에서부터 무가와 장단을 연습하는 소리가 마등산 자락에 넘실거린다. 10여 명의 전수생들이 저마다 장고를 앞에 놓고, 사설이 적힌 종이를 들여다보며 연습에 열중하고 있다. 아직 4기생이 전수를 시작한지가 2개월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잠시 쉬는 틈을 이용해 전수생들과 이야기를 해보았다. 수원 팔달구 인계동 550-83번지에 ‘애기씨당’이라는 전안을 차려놓은 전수생 최남수(여, 35세)는 이제 신내림을 받은 지 6년 밖에 안 되었단다. 23세부터 이미 신이 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림굿을 한 후, 굿을 제대로 배우고 싶어 경기도당굿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저는 이제 2개월 정도 되었는데, TV 등에서 만날 이북굿이나 덩덩 뛰는 굿만 보다가, 경기도당굿을 보고 저 굿을 배워야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경기도당굿은 딴 굿과는 달리 무가도 판소리기법으로 하는 것을 보고요. 도당굿은 위엄이 있고, 무게가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우아하다고 할까요.”

 

오산시 원동에 거주한다는 전수생 강봉임(여, 40세)은 화장품 가게부터 별별 것들을 다해보았다고. 그러다가 신을 받은 지 12년이 되었다고 한다.

 

“신내림을 받고나서 창이나 배우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마침 이곳에서 경기도당굿을 가르친다고 해서 3기 전수생으로 등록했어요. 이제 8개월 정도가 되었는데, 아주 조금은 도당굿에 대해서 알 것 같아요. 도당굿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우리지역의 굿에 대해 더 많은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아직은 도당굿의 진수를 잘 모른단다. 하지만 그 매력에 푹 빠져있다는 전수생들. 올해는 도당굿 정기공연에도 참석을 했다고. 고 오수복 보유자 사망이후 자칫 맥이 끊길지도 모른다고 우려를 한, 경기도당굿의 맥은 이수자 승경숙에 의해 그렇게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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