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길, 둘레길... 요즈음 각 지자체마다 주변의 산책로에 나름대로 이름을 붙여 걷기를 종용하고 있다. 주민들의 건강이나 관광객들의 즐길거리를 하나 더해준다는 기분 좋은 자연적 자원활용이다. 가끔은 이런 길에 있었나 싶을 정도의 아름다운 길을 만나기도 한다. 워낙 사진을 찍는 재주하고는 메주인 나로서는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전해 줄 수 없음이 늘 안타깝다.

지난 8일 찾아간 북지장사 가는 길. 대구 팔공산 올레 제1길이다. 소나무 숲길이 1.5km가 이어지는 길을 타박거리며 걷고 있노라니, 세상에 찌든 세상살이의 역겨움이 다 씻어지는 듯하다. 물과 돌, 그리고 소나무들이 정겨운 소나무 숲길. 그 길을 따라가 본다.


아름다운 소나무 길. 언제 걸어도 좋을 듯



길을 걸어 조금 가다보니 올레길이란 안내판이 보인다. 그리고 가을 수확을 하느라 바쁜 일손이 거기 있었다.


소나무가 양편으로 갈라서 사람을 기다린다. 하늘을 찌를 듯 솟은 나무 틈 사이로 쏟아지는 햇볕이 눈부시다. 그리고 여기저기 널린 돌들. 산돌들은 그렇게 오랜 시간 그 자리에 앉아 오가는 길손에게 말을 건다.


북지장사. 아마도 대웅전보다 지장전이 더 유명한 절이었는지. 북족에 있는 지장사란 이름을 붙인 것을 보면. 절에 무슨 행사가 있었을까? 오고 가는 사람들의 발길이 잦다. 커다란 산돌들이 나무 숲 그늘에 쉬고 있다.



산을 감돌아 흐르는 계곡가에 소나무가 돌을 피해 자라고 있다. 자연은 그렇게 딴 사물에 피해를 주지 않고 스스로 피해 자란다. 인간들은 왜 저런 진리를 모르는 것일까? 그런 조악한 마음을 가진 자들이 보고 배웠으면 좋겟다는 생각을 한다. 길가 계곡물이 흐르는 옆에 쌓아놓은 돌탑. 예전에 이곳에 서낭당이라도 있었음 즉하다.



안양교란 작은 다리가 놓여있다. 아마 이곳서 부터는 속세의 연을 내려놓으라는 것인지. 물이 흐르는 곳을 바라다본다. 참 깨끗하다. 저 물에 더렵혀진 몸과 마음을 흘려보내란 것인지. 그 위로 아이를 데리고 부부가 한가롭게 걷고 있다. 거리를 보아도 아이를 데리고 걷기 딱 좋은 길이다.


길 우측 소나무 숲속에 누군가 쌍탑을 쌓았다. 그 옆으로 실하게 자란 배추밭이 보인다. 올해는 배추금이 어떠려나.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이제 하늘을 보는 것이 아니라, 세상 인심을 보아야 한다니...



길가 허름한 집 담벼락에 누군가 친절하게 거리를 서 놓았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조금은 여유로움을 느낄 수가 있다. 좌측으로 소나무 들이 조금 더 커진 듯한 길이다. 그 길 끝에 북지장사가 나그네를 기다리고 있다. 

그저 터벅거리고 걸어도 20여분. 왕복 3km의 소남 숲길이다. 물과 돌이 함께 하는. 아이들과 걷기에도 적당한 거리인 이 소나무 숲길은, 그렇게 오랜 세월 객들을 기다리며 굽어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가끔 이런 이야기를 한다. ‘글을 쓰고 싶어도 잘 못 쓰겠다.’ 이런 말은 공감이 가는 말이다. 사실 글을 쓴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란 생각이다. 글은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남에게 전달하는 수단이다. 하기에 그 글을 보는 사람들이 당시의 분위기에 공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남들이 공감을 하는 글을 쓴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글을 써야 하는데 마땅한 소재가 없다’는 것. 이 말에 대해서는 조금은 의아하게 생각한다. 글을 잘 쓰고 못 쓰고는 이해가 되지만, 글을 쓸 소재가 없다는 것은 이해가 가질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을 생각하면 블로거들의 글재간은 참으로 놀랍기만 하다. 그래서 글을 쓰는 모든 블로거들이 존경스럽기도 한 것이고.


파종과 결실의 즐거움

남들이 물어보면 난 ‘문화블로거’라고 서슴없이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가끔은 ‘진정한 문화블로거’인가를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기도 한다. 내 욕심은 언제까지라도 문화블로거로 남고 싶다. 그래도 가끔은 문화가 아닌 글을 쓰기도 한다. 그것은 문화재를 답사하다가 만나게 되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소재로 삼기 때문이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라고 해도, 그 모든 것이 이야기가 될 수 있다. 때로는 남들이 참 재미없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 안에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해 절집 마당 뒤편에 양파를 심었다. 겨우내 자란 양파가 잎이 시들해진다. 장마가 곧 닥친다고 하는 소식에, 양파수확을 한다고 서두른다. 절집을 찾은 신도 몇 분이 양파 밭으로 달려가 양파 수확을 시작한다. 단단하게 잘 여문 양파들이 흙속에서 나와, 밭고랑에 늘어서 있다. 그 잎을 잘라내고 손수레에 담는다.



그것을 찍으려고 하니, 양파를 수확하던 사람들이 한마디 한다.

“저 처사님은 날마다 사진만 찍네.”
“제가 원래 하는 일이 그래서요”
“사진은 그만 찍고 얼른 양파부터 날라다 주세요”
“다 담으면 이야기 하세요. 걱정하시지 말고”

손수레에 하나 가득 담겼다. 선원사 운천 주지스님이 직접 그 손수레를 끌어다 양파를 그늘에 펴 놓는다. 그래야 썩지 않고 오래도록 보관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날이 따가운데도 밭고랑을 옮겨 다니면서 양파 수확을 하는 사람들이나, 손수레에 담아 나르는 스님이나 모두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수확의 기쁨이란 것이 그런 것인가 보다.

나는 다음 생애에도 문화블로거이고 싶다.

어떤 것이나 글 소재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남들처럼 화려한 글 솜씨를 갖지 못했기에, 이 이상 좋은 글을 쓴다는 것은 무리인 듯하다. 문화재에 재한 글을 쓰라고 한다면, 조금은 더 잘 쓸 수 있을 것도 같다. 하지만 그것도 내 생각이다. 평가는 보는 이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 생애에는 힘자라는데 까지 문화블로거로 살고 싶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다음 생애에서도 문화블로거를 하고 싶다. 그만큼 블로거라는 것이 매력이 있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글 소재는 주변에 얼마든지 있다. 그 소재를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공유를 한다는 것 또한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블로거로써 살아온 세월이 벌써 7년이 지났다. 남들처럼 계속하지는 않았지만, 지금도 블로거로써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나이다. 때로는 속이 상한 적도 있고, 모든 글을 삭제시켜 버리기도 했다. 문화를 대우하는 것이 허접하기 때문이다. ‘문화연예’를 같은 분류 안에 넣어놓고, 연예가 모든 글의 대부분인 것도 조금은 안타까운 생각이지만, 이제는 그런 것조차 초연해졌다.


그저 내가 좋아 택한 블로거 생활이다. 그리고 ‘바람이 머물 듯’ 전국을 다니다가 문화재가 보이면 그곳에서 발을 멈춘다. 블로그를 운영하기 전부터 돌아다닌 세월이 벌써 30년을 훌쩍 넘겨버렸다. 그런데 아직 전국의 문화재를(개인이나 박물관 등에 소장되어 있는 문화재를 제외하고) 아직 그 절반도 찾아보지 못했다. 그래서 다음 생애에서도 난 문화불로거로 살아가고 싶은 것이다.

누군가 글쓰기가 어렵다고 하기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보니, 다음 생애까지 들썩여야만 했다. 글을 감칠 맛나게 쓰지 못하는 나로서는 이런 ‘양파’의 소재 하나도 귀하게 여긴다. 그런데 하물며 문화재랴. 그저 글을 이렇게 쓸 수 있고, 남들이 보아준다는 것이 고마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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