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안개가 심하게 끼었다. 안개가 걷히면 답사를 가리라고 마음을 먹고 오전 내내 기다려 보았지만, 안개가 걷힐 것 같지가 않다. 오후 두시가 지나 충북 음성으로 향했다. 네 시가 다 되어서 도착한 음성군 감곡면 영산리 공산정 마을. 마을 입구에서 게이트볼을 즐기고 계시는 어르신들께 고택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친절히 가르쳐 주신다. 마을 안으로 조금 들어가니 초가지붕이 보인다. 중요민속문화재 제143호인 음성 서정우 가옥이다.

 

대문채를 붙여지은 사랑채의 단아함

 

우선 집을 한 바퀴 돌아본다. 참으로 편안한 느낌을 주는 집이다. 돌로 축대를 쌓고 그 위에 사랑채를 지었다. 사랑채는 뒤편에 대문채를 달았는데, 이러한 형태가 우리나라 가옥 구조상의 한 형태란다. 앞에 사랑채를 두고 뒤편으로 대문채를 붙여 내었다. 사랑채와 대문채가 ㄴ 자 형태로 자리를 잡고 안채가 뒤편에 ㄱ 자 형태로 자리해, 전체적으로 보면 ㅁ 자형의 가옥구조를 하고 있다.

 

 

사랑채는 잘 다듬지 않은 돌을 이용해 이단으로 축대를 쌓은 후 그 위에 마름모꼴의 주추를 놓았다. 앞에는 마루를 놓고 뒤편으로 방을 드렸다. 사랑채를 바라보면서 좌측에는 창고 방을 한 칸 드리고 방 두 칸에 이어서 큰 문을 단 사랑방을 만든 소박한 사랑채의 모습이다. 사랑채 뒤편으로는 대문채를 이어지었다. 대문채는 방 한 칸을 사랑채에 달아내고, 대문과 두 칸의 곳간을 이어 단출한 모습이다. 전체적은 집안 구조가 중부지방 민초들의 삶이 배인 듯한 형태이다

 

돌과 기와를 이용한 아름다운 담벼락

 

서정우 가옥에서 가장 눈에 띠는 것은 사랑채와 안채 등의 담벼락이다. 일반적으로 집의 담벼락에 문양을 넣을 때는, 꽃이나 나무, 새, 동물 등을 새겨 넣는다. 그러나 서정우 가옥의 담은 돌과 기와를 이용해 문양을 만들었다. 돌은 네모난 것들을 구해 마름모로 놓고, 그 위에 기와를 이용해 줄을 맞추었다. 얼핏 보아도 아름답다.

 

 

 

그저 무료한 담벼락을 만드는데 비해, 서정우 가옥의 담벼락은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이용해 멋을 내었다. 마침 함께 답사 길에 나선 친구가 한옥을 지을 때 관계하는지라, 이 담벼락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한다. 전통 가옥을 보수하느라 전국을 다녀보았지만, 이런 담벼락의 형태는 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무료한 담벼락을 돌과 기와로 못을 낸 서정우 가옥. 그래서 더 정감이 가는가보다.

 

평범한 안채의 부엌에도 무엇인가 있다

 

사랑채의 뒤편에는 ㄱ 자로 꺾어 지은 안채가 있다. 안채는 중부지방의 전형적인 형태이다. 부엌과 안방, 윗방을 차례로 배열하고, 꺾인 부분에 대청을 드리고 건넌방을 꾸몄다. 대청은 두 칸으로 달았으며, 뒤편에 커다란 창호를 두 곳을 내어 전체적으로 시원한 느낌이 든다. 대개는 판자문을 하는데 비해, 서정우 가옥은 대청의 뒷문을 창호로 내어 멋을 냈다. 아마 이집을 지을 때부터 집주인이 꽤나 멋을 아는 분이었을 것 같다.

 

 

 

서정우 가옥은 안채의 건축연대가 19세기 후반 경으로 추정한다. 상량문에는 1924년에 다시 고쳐지은 것으로 적고 있다. 사랑채도 안채를 보수할 때 지은 것으로 본다. 그저 평범한 안채에는 부엌이 조금 특이하게 만들어졌다. 커다란 부엌문을 달고 그 옆에 작은 문을 하나 만들었다. 그리고 부엌 바깥 담벼락의 위에는 나무를 넓게 띄어 창을 낸 까치구멍을 냈다. 연기가 잘 빠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지금은 살고 있는 사람들이 바람을 피하느라 비닐로 까치구멍을 막고 환풍기를 달아, 조금은 멋이 감해졌다는 느낌이다. 부엌의 담벼락 역시 사랑채의 담벼락과 같이 돌과 기와를 이용했다. 평범한 듯 하면서도 무엇인가 색다른 멋을 낸 서정우 가옥. 그래서 더 정감이 간다.

 

 

 

뒤울안 텃밭과 판자굴뚝이 백미

 

서정우 가옥의 또 하나 아름다움은 뒤울 안에 있는 텃밭이다. 안채의 뒤편이 비탈이 진 것을 축대를 쌓아 평평하게 만들고 그 곳에 작은 텃밭을 만들었다. 텃밭 옆에는 역시 축대를 쌓은 후 장독대를 꾸몄다. 담장이 둘러쳐진 안에 아기자기한 민초들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안채의 뒤편에 선 굴뚝이 눈에 들어온다. 널판자로 네모나게 만든 굴뚝이다. 굴뚝의 끝에도 사이를 띄워 덮개를 만들었다. 작은 것 하나하나가 참으로 아름답다는 느낌이다.

 

 

 

중부지방 전형의 민가 가옥이라는 음성 서정우 가옥은 오밀조밀한 멋이 있다. 튀어나지 않고, 안으로 스며드는 멋. 우리 고택에서 볼 수 있는 이러한 작은 멋 하나가, 사람을 참으로 기분 좋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 고택 답사는 늘 즐겁다. 사람이 살고 있어 여기저기 촬영을 하는데 힘이 들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살아있다는 훈훈함이 있어서 더 좋다는 생각이다. 서정우 가옥을 뒤로하며, 앞으로 만날 많은 고택들을 미리 그려본다. 그래서 안개 자욱한 날이지만, 답사 길이 즐거운가 보다.

답사를 다니면서 가장 마음이 푸근해 지는 것은 고택이나 절집 등에서 만나게 되는 장독대이다. 물론 절집보다야 고택에서 만나는 장독대, 그것도 사람의 온기가 서린 집안에서 만나게 되는 장독대야말로, 따듯한 어머니의 품을 느끼게 된다.

 

집집마다 집 뒤편으로 돌아가면 윤기를 내며 가지런한 모습으로 놓여있는 장독대. 지금이야 아파트들을 선호하면서 이런 정취어린 모습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옛 것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우리 어머니들은, 아파트 베란다 한편에도 윤이 나게 잘 닦은 독 두 어 개쯤은 갖고 계신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네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위는 경북 영덕 의병장 신돌석장군 생가지 장독 아래는 경주 김호장군의 생가지 장독


장독대를 보면 집안의 가풍을 알아

 

장독대는 집 뒤편이나, 안채의 옆에 단을 쌓고 그 위에 가지런히 독을 늘어놓는다. 장독대에는 간장을 비롯한 된장과 고추장, 김치나 장아찌 등 우리의 식생활을 윤택하게 할 식품들을 보관하는 곳이다. 하기에 장독대가 갖는 의미는 그 무엇보다 크다고 하겠다. 사람들은 어느 집을 찾아갔을 때 이 장독대가 윤기가 반지르르하게 나면, 그 집안의 주부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장독은 어머니의 마음이다. 그리고 온 가족의 안위가 장독대에서 만들어진다. 아이가 아프면 장독대 앞에 상을 놓고 맑은 정화수 한 그릇을 떠놓고, 자성으로 비손을 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있다. 또한 자손들이 만 길을 떠나거나 큰일을 앞에 두고 있을 때도, 일이 잘 되게 해달라고 지성으로 비는 일도 이 장독대에서 다 이루어졌다.

 

 

 

 

위는 논산 명재고택 사랑채 앞 장독들, 가운데는 서천 이하복 가옥의 장독대, 아래는 음성 감곡 서정우 가옥의 장독


장독은 단순히 찬거리를 보관하는 곳이 아니다.

 

왜 장독대에서 그런 일들을 한 것일까? 어머니들은 왜 집안에 일이 생기면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 놓고 촛불을 켠 후, 지성으로 비손을 한 것일까? 그것은 장독대가 갖고 있는 직능 때문이다. 장독대는 집안에서 가장 신성한 곳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장독대에는 집안 식구가 먹고사는 찬거리의 맛을 내는 것도 이 장독 안에 들어있는 고추장, 된장, 간장과 각종 반찬 등이다.

 

 

 

 

위는 전남 무안 나상렬 가옥의 장독, 가운데는 충북 괴산 청천리 고가의 장독, 아래는 함양 지곡 오담고택의 장독


하지만 이 찬거리들인 장들은 단지 반찬의 맛을 내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 장들은 바로 ‘축사(逐邪)’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하기에 이 장독대는 집안에서 주부들과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신성한 곳 중 한 곳이다. 이러한 장독대는 한국인의 사고 속에는, 어머니의 마음이 담겨져 있는 정 깊은 곳이다.

 

이러한 장독대가 점차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장독대에 깃들었던 어머니의 마음과 정도 함께 사라져가는 것만 같다. 어머니의 따스한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장독대. 그리고 집안의 모든 간구하는 일이 이루어지던 소중한 곳이었던 곳. 이 봄, 어머니의 마음이 가득 담겨있던 아름답고 정이 넘치는 장독대를 찾아, 길을 나서는 것도 새봄을 맞이하고 느끼는 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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