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이 연세에 아직도 카메라를 둘러메고 수원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서민들의 삶의 모습과 농촌 풍경 등을 담아내는 작가가 있다. 이병익(, 수원시 권선구 서둔동 141-3)어르신은 이제 사진과 인연을 맺은 것이 자그마치 55년 세월이 지났다고 한다. 살고 있는 서둔동은 농촌진흥청과 예전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이 있던 곳이다.

 

태어난 곳이 서둔동이고 아직도 집이 그쪽이다 보니 자연 시골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많이 담아냈어요. 이제 서울농대도 딴 곳으로 옮겨갔고, 거기다가 농촌진흥청까지 전라북도로 옮겨가고 나면, 제가 기록으로 남긴 사진들은 추억이 돼버리는 것이죠.”

 

 

담담하게 말씀은 하시지만, 옛 기억의 한편이 사라진다는 것이 못내 아쉬운 표정이다. 영동시장 2층에 자리한 작가들의 공방인 아트포라 갤러리 아라 앞 공간에 진열이 된 사진은 모두 21점이다. 대개는 농촌풍경과 서민들의 삶을 담아내고 있다.

 

고등학생 때 흑백카메라부터 시작 해

 

어떻게 처음 사진을 찍기 시작하셨는지가 궁금했다.

예전에 6,25 한국동란 때 매형이 군에 계셨는데, 그때는 그렇게 학벌들이 좋지 않았어요. 그래서 고사포부대에 있었는데, 미국으로 건너가서 교육을 받았데요. 돌아오실 때 흑백카메라 한 대를 들고 오셨는데, 그것을 갖고 사진 찍는 것을 취미로 시작했어요.”

 

 

그렇게 1950년대 중반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고 한다. 한때 건설업에 종사를 하느라고 사진에서 멀어져 있기도 했지만, 늘 사진을 잊지는 않았다는 것. 그러다가 나이가 먹으면서 이제는 운동을 삼아 다시 카메라를 둘러메고 수원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렌즈에 담아내고 있단다.

 

지난해에는 수원의 4대 하천인 황구지천, 수원천, 서호천, 원천리천을 모두 걸어서 답사를 하고 기록으로 남겼어요. 이렇게 사진을 찍으면서 걸어 다니니 운동이 되어서 건강에도 좋고요. 또 기록으로 수원의 모습을 남길 수도 있으니 일석이조죠.”

 

 

노익장을 과시하는 이병익 작가

 

이병익 작가는 권선구 서둔동에서 출생하여 환일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국민대학교를 수료했다. 20118월에는 70을 훌쩍 넘긴 나이로 사진전문지인 월간 생활영상에 입문하여, 20134월에 월간 생활영상 추천작가 및 사진취재 기자로 활동을 하고 있다. 20125월에는 경기도 교육청 평생학습관에서 사진으로 말하기, 201312월 아주대학교 평생교육원 디지털 예술 사진학과를 수료할 정도로 사진에 대해서 욕심을 내고 있다.

 

전시실이 아닌 쉼터인 공간에서 전시를 하고 있는 이병익 작가의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과거 서민들의 모습이 그대로 배어있다. 진흥청 설경, 향미정 설경, 벼 연구 관찰, 병충해 방제, 삼남길 개통식, 누에고치에서 실뽑기, 잠업에 사용하던 기구들, 고추밭 매기, 모내기, 옥상정원, 파 추수 등 우리 실생활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냈다.

 

 

아름다운 경치 등은 많은 사진작가들이 담아내고 있잖아요. 그리고 그런 사진은 자주 접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이렇게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의 모습도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이런 모습들은 쉽게 변하기 때문에,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만날 수가 없는 모습들이죠.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이렇게 담아내고 있어요.”

 

사진작품을 전시한다고 해서 남들처럼 커다랗게 뽑아내지도 않았다. 그저 사람들이 눈높이에서 바라볼 수 있는 높이와 크기로 제작하였다. 하지만 그 안에는 우리들의 삶의 모습들이 그대로 덤겨 있다. 525일까지 영동시장 2층 아트포라에서 만날 수 있는 이병익 작가의 추억을 그리는 사진 전’. 시간을 내어 옛 모습들을 만나보기를 권한.

 

“벨리댄스로 우울증도 고치고, 활력도 되찾았죠.”

 

수원시 팔달구 지동에 소재한 지동 주민센터 2층에는 매주 목요일 오전 11시가 되면, 신바람 나는 음악에 맞추어 아름다운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지동 주민센터 문화강좌 중에 목요일 11시부터 벨리댄스 초급반이 먼저 지도강사의 지도를 받으며 연습을 하고 나면, 12시 부터는 벨리댄스 동아리인 ‘아이리스’가 흥겨운 춤판을 벌이기 때문이다.

 

초급반 벨리댄스의 지도를 맡은 김민주 지도강사가 앞에서 이끄는 대로, 10여 명의 수강생들이 열심히 춤을 따라 춘다. ‘벨리댄스(BellyDance)’는 흔히 배꼽춤이라고 부르는데 그 역사가 상당히 깊다. 고대 이집트 신왕국 시대 제 18왕조의 무덤 속에, 현재의 벨리댄스와 똑같은 형태로 춤을 추는 무용수가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여신의 다산성을 의미하는 춤으로 해석

 

벨리댄스는 통상 그리스, 이집트, 터키 등에서 종교적으로 행해지던 제의의 춤의 형태라고 볼 수 있다. 벨리댄스는 나라마다 이름이 다르게 붙여졌다. 프랑스에서는 ‘danse du ventre’ 또는 ‘위(stomach)의 춤’이라고 불렀으며, 그리스에서는 터키의 전통 리듬이기도 한 ‘cifte tell’i로 불렀다. 중동에서는 ‘동양의 춤(dense orientale)’으로, 터키에서는 ‘Rakkase’로, 이집트에서는‘Raks Sharki’로 불렀다.

 

벨리댄스는 여신이 가지고 있는 다산성의 근원인, 복부의 움직임을 강조하는 특별한 춤이다. 벨리댄스의 기원은 명확하게 고대의 다산의식에서 시작됐으며, 전통적으로 어머니 땅에 경의를 표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맨발로 춤을 춘다. 또한 여성의 신체에 맞춰 안무되었는데 복부 근육과 힙과 가슴의 움직임 등을 강조한다. 이 춤은 매끄러우면서 흐르는 듯 하고 복잡하면서 허리를 감각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특징이다.

 

 

“우울증이 말끔히 나았어요!”

 

오전 11시 벨리댄스 초급반이 연습을 마친 후, 수강생인 이금애(여, 48세)씨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허리 통증이 유난히 심해 벨리댄스를 시작했다고 한다.

 

“저는 허리에 통증이 와서 그것을 고쳐보려고 벨리댄스를 시작했어요. 벨리댄스는 온 몸을 다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많은 운동을 필요로 하죠. 그러나 자세만 정확하게 잡으면 아픈 곳이 없어져요. 그래서 계속하고 있어요.”

 

벨리댄스를 추기 시작하면서 우울증도 사라지고, 모든 일에 활력이 생겼다는 것이다. 12시부터 초급반의 연습에 이어 벨리댄스를 추기 시작하는 동아리 모임인 ‘아이리스’는, 이미 수원에서는 잘 알려진 벨리댄스 동아리이다. 일 년이면 거의 10회가 넘는 봉사를 하기도 하는 아이리스는, 현재 9명의 회원을 갖고 있다고 한다. 1998년에 아이리스라는 벨리댄스 동아리를 조직해 수원에서는 가장 먼저 벨리댄스를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고.

 

 

수원에서 가장 먼저 무대에 춤을 올린 ‘아이리스’

 

“그 이전부터 문화강좌로 벨리댄스를 추어왔어요. 그러다가 1998년에 정식으로 아이리스라는 동아리를 만들었죠. 그렇게 아이리스가 동아리로 조직이 된 후, 거의 한 달에 한 번 씩은 요양원 등을 돌면서 봉사공연을 하기도 했고요.”

 

현재 벨리댄스 동아리 아이리스의 회장을 맡고 있는 김미옥(여, 40세)씨의 말이다. 김미옥씨도 화려한 의상을 입고 무대에 올라 춤을 추는 것이, 자신의 적성에 맞는 것 같아 시작을 했다고. 그러나 처음부터 그렇게 쉽게 춤을 춘 것은 아니란다. 아이들의 반대가 심했기에.

 

“처음 춤을 춘다고 했을 때는 아이들이 먼저 반대를 했어요. 그러나 지금은 아이들도 남편도 모두 후원자가 되었죠.”

 

화려한 의상부터가 아이리스가 남다른 것을 알려줘

 

벨리댄스 동아리인 아이리스의 연습은 의상부터가 다르다. 그동안 6년 동안이나 무대에 올라 많은 공연을 해서인지, 화려한 의상을 입고 춤을 춘다. 초급반이 사진을 찍는다고 하니 노출된 부분을 가리기에 정신이 없는데 비해, 아이리스는 전혀 무관한 표정이다. 아니 자신들의 춤에 흠뻑 빠져들어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듯하다.

 

“취미생활로 시작한 지가 이제 4년이 지났어요. 벨리댄스는 여성들에게는 정말 최고로 좋은 운동인 듯해요. 벨리댄스를 추면 몸의 전체적인 균형이 알맞게 변하거든요. 거기다가 신나게 춤을 추면 스트레스도 풀리고요. 또 건강도 지켜갈 수 있고요. 살아가면서 긍정적인 사고를 함께 갖게 되죠.”

 

화려한 의상으로 몸을 감싼 채 열심히 춤을 추던 양수지(여, 39세)씨의 이야기이다. 굳이 그렇게 설명을 하지 않아도 춤을 추는데 몰입해 있는 모습에서, 얼마나 벨리댄스를 좋아하는가를 알 수가 있다. 한 때는 많은 노출을 꺼려 춤을 춘다는 것이 힘들었다는 한 회원은 취재를 마친 기자에게 큰 소리로 외친다.

 

“생활이 지루하거나 활력이 생기지 않으면, 벨리댄스를 추러 오라고 하세요. 인생이 달라집니다.”

6월 10일 경남에 일을 보고 난 후, 진주에 들렸다. 한 낮의 기온은 가히 머리가 벗겨질 만 하다는 이야기가 날만큼 뜨겁다. 진주시 수곡면에 있는 문화재 답사를 한 후 되돌아 나오는 길에 보니, 주변이 온통 비닐하우스로 덮혀있다. 요즈음은 비닐하우스를 이용해 특작을 하는 농가가 많다보니, 그저 무심코 지나치기가 일쑤이다.

그런데 한 곳에 눈이 머물렀다. 딸기 모종인 듯한데, 어떻게 공중에 떠 있는 듯하다. 자세히 보니 위로는 비닐을 씌울려고 하는지 철골 구조물이 있는데, 그 아래 딸기의 모종판이 철제 사다리를 받쳐 위로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 아래는 물이 흐르도록 하였다. 그런 모습을 보고 난 후 조금은 의아하다. 왜 저렇게 공중에 모종판을 올려 놓은 것일까?   



딸기의 모종판. 모종을 키우는데 땅에 키우는 것이 아니라 철걸 구조물로 아래를 받치고 위로 올려놓았다. 밑으로는 물이 고이게 시설을 하였다.

농촌생활에서 익힌 생활의 지혜

도대체 왜 저렇게 만들어 놓은 것일까? 내가 농사꾼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다만 보기에 색다른 모습이기에 사진을 찍어놓고 주변을 살피니, 밭의 주인인 듯한 분이 다가온다.

"혹시 이 밭 주인이세요?"
"예, 그런데요. 왜 그러세요?"
"왜 저렇게 공중에 띄워서 모종을 키우죠?"
"아! 저거요. 허리가 아파서 위로 올린 것이죠"
"예, 그런 이유였군요"

 



그러고 보니 금방 해답을 얻을 수 있는 기구가 하나 있다. 바로 바퀴가 달린 앉은판이다. 바퀴가 달린 앉은판에 앉아 밀면서 자리를 옮기는 것이다. 그리고 다 자란 모종을 비닐하우스로 옮겨 간단다. 예전 같으면 허리를 굽히고 해야하기 때문에, 허리통증을 많이 호소를 하고 했단다. 생활에서 얻어지는 지혜, 이런 것이 바로 전문가가 되는 길은 아닌지. 그저 지나칠 수도 있는 것에서 시골생활의 즐거움을 본다. 물론 농사일이 쉽지는 않지만, 이렇게 조금씩이라도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바퀴가 달린 앉을판. 이곳에 앉아 편안히 밀고다니면서 모종 관리를 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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