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주란 집터를 관장하는 신이다. 터주는 터줏대감’, ‘텃대감’, ‘토주(土主)’, ‘지신(地神)’, ‘후토주임(後土主任)’ 또는 대주(垈主)’라고도 부른다. 후토주임이란 터주신을 모시는 곳이 대개 집의 뒤편에 자리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토주는 말 그대로 토지의 주인, 즉 터의 주인이라는 뜻이다.

 

터주신이 좌정하는 곳은 짚으로 엮어 만든 터주가리인데, 터주는 대개 집의 뒤뜰이나 장독대 옆에 세운 터줏자리에 모셔진다. 터주가리란 작은 단지나 항아리에 햅쌀이나 볍씨를 담아서, 빗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고깔모양의 주저리를 덮은 것이다. 그리고 주저리가 날아가지 않도록 왼새끼를 꼬아 터주 허리에 두른다.

 

10월 상달에 드리는 터주고사

 

예전에는 농사를 지으면 햇곡식을 먼저 터주에 바쳤다. 볍씨를 새로 넣을 때는 제일 먼저 턴 벼를 주부가 키에 까불러서 터주에 넣는데, 묵은 쌀은 밥이나 떡을 해먹으며 복을 빈다. 이때는 터주가리 안에 있는 단지에서 꺼낸 쌀로 떡을 해서 이웃집에도 나누어주는데, 이를 가을떡이라고 했다.

 

터주가리의 곡식을 교체할 때는 주저리도 새 짚으로 틀어서 바꾸어 두르는데, 묵은 주저리는 산에 버리거나 마을 성황당에 걸쳐놓아 자연스럽게 없어지도록 한다. 때로는 불에 태우거나 논의 거름으로 쓰기도 한다. 터주단지에는 벼를 넣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근래에는 벼 대신 동전을 넣기도 하고 벼와 동전을 같이 넣기도 한다.

 

터주에 대한 고사는 음력 10월 상달에 좋은 날을 잡아서 지낸다. 가정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상달고사 때는 대개 콩을 넣은 콩시루 떡과 팥을 넣은 팥시루 떡을 쪄서 터주와 성주에 올린다. 수원의 각 가정에서도 10월 상달고사를 지낼 때는 지난해에 넣어두었던 곡식을 꺼내어 시루떡을 만들어, 정화수를 그 앞에 떠놓고 촛불을 밝히고 절을 하고 축원을 한다.

 

 

동티를 막아주는 터주신

 

터주신은 주부들의 신이다. 대개 터주가리가 좌정을 하는 곳이 장독대나 집의 뒤편이기 때문에, 터주고사를 드릴 때는 주부들이 주체가 된다. 터주축원을 할 때는 짚을 십자(十字)로 놓고 그 위에 떡시루와 정화수를 놓는다. 이날은 대문 밖에 금줄을 쳐서 잡인의 출입을 막고 문 앞이나 터주단지 앞에도 황토를 깔아서 잡귀를 쫓는다.

 

터주신을 모시는 날이 되면 제주(祭主)인 부녀자는 목욕을 하고 근신한다. 터주신은 집안의 동티를 막아주는 신이다. 터란 집안의 사람들이 생활을 하는 공간이다. 하기에 터주신은 집터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 존재하는 신이다. 집에서 흙을 다루거나 돌을 다룰 일이 있으면, 사전에 터주신을 모신 터주가리 앞에서 간단한 비손을 한다.

 

이는 집터에서 일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터주신께 고해 노여움을 사지 않게 하는 것이다. 터주신이 노하면 동티가 난다고 한다. 터주신은 땅 속에서 올라오는 사악은 기운을 막아내는 신이기 때문에, 가솔들의 안녕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갖는 것이다. 가신 중의 으뜸은 가옥에 좌정하는 성주신이라고 하지만, 집안 전체를 지켜내는 것은 터주신이다.

 

옛 드라마 등을 보면 집안에 주부가 장독대에 촛불을 켜고, 정화수를 떠 놓고 열심히 비손을 하고 있는 모습들이 보인다. 이는 모두 터주신께 집안의 안녕을 위해서 기원을 하는 것이다. 이 가신의 주체가 바로 터주신을 모신 터주가리이다.

 

음력 10월 상달이 되면 집집마다 새로 주저리를 틀어 모시는 터주가리. 집집마다 행하던 풍습이 사라진 것이 아쉽기만 하다. 그나마 수원에 이 터주가리가 남아있는 곳은, 신을 모시고 있는 무속인들이다. 그들이라도 이렇게 옛 풍속을 지키고 있다는 것이 고맙기만 하다.

 

“뚫어라 뚫어라 물구멍을 뚫어라”

 

거북이를 몰고 나온 질라래비가 우물 앞에서 하는 덕담이다. 놀이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은 그 말을 따라한다. “물주쇼 물주쇼, 사해용왕 물주쇼” 지금처럼 이 말이 간절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벌써 비가 오지 않은 지가 언제 적인지 모른다. 물론 일부지방에서는 소나기와 우박이 내리기도 했지만, 100년 이래 처음으로 맞는 봄 가뭄이라고 한다.

 

수수잎과 짚 등을 이용해 만든 거북놀이의 거북이와 거북이를 몰고 다니는 질라래비

 

6월 23일 수원시 영통구 청명단오제에 나타난 거북이 한 마리. 질라래비가 그 거북을 몰고 다니면서 간절하게 기원을 한다. 제발 비 좀 내리게 해 달라는 것이다. 마당놀이를 하는 사람들은,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50호인 ‘이천 거북놀이’ 보존회 회원들이다. 이들이 영통구의 단오제 마당에 와서 비를 간구하고 있다.

 

정월 대보름과 추속에 즐기던 놀이

 

본인이 이천 거북놀이를 직접 이천시(당시 이천군) 전역과 근동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발굴을 해, ‘이천의 민속 거북놀이’라는 책을 펴낸 지가 벌써 30년이 지났다. 아마 이 조사보고서 형식으로 꾸며진 소책자가, 그동안 써온 20여권의 책을 엮게 된 기폭제가 되었는가 보다. 그러한 거북놀이를 이천이 아닌 수원시 영통구에서 만나보니 참 묘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대문에서 문굿을 치고 마당 안으로 들어가면 우물굿을 한다(사진 위) 마당굿에서는 한바탕 신나는 풍물굿을 펼친다

 

거북놀이는 기원성민속이다. 가내의 안과태평과 풍농 등을 기원하는 놀이이다. 거북놀이는 정월 대보름이나 추석날에, 마을의 청소년들이 짚과 수수깡으로 거북이 모양을 만들어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즐기던 놀이이다. 이천지방에서는 대월면에서 이 놀이가 전승이 되어왔다. 거북이는 장수동물이요 부귀를 상징하기 때문에, 놀이의 주체가 되었을 것이다.

 

거북놀이는 대개 정월 대보름 밤이나 추석날 밤에 하는 놀이로, 수숫대와 짚 등을 이용해 거북이 모양을 만든다. 거북이의 앞에는 2~4명 정도가 안에 `들어가는데, 앞 사람이 주기능자가 된다. 거북이를 몰고 다니는 질라래비도 옥수수 잎과 짚 등으로 머리에 쓰는 모자와 허리에 두르는 치마를 만든다.

 

 

풍물패의 어린 무동들(위)과 풍물패 부쇠. 30도를 웃도는 더위에 연희를 감당해 냈다

 

가내의 안과태평을 기원하는 놀이

 

거북놀이는 마을의 집집마다 다니면서 연희를 하는데, 집 대문 앞에서는 문굿을 먼저 치고, 마당에 들어서면 우물굿(용왕굿)과 마당굿을 한다. 마당에서 굿을 하는 도중 거북이가 쓰러지면 사람들은 거북이 곁으로 몰려들게 된다. 이때 질라래비는 ‘이 거북이가 동해를 건너(지역에 따라서는 서해를 건넌다고도 한다) 여기까지 오느라 배가고파 쓸어졌으니, 먹을 것을 좀 주십쇼’ 하고 소리를 치면 주인이 먹을 것을 내준다.

 

그렇게 밤새도록 집집마다 다니면서 축원을 해준다. 대개 정월에 하는 거북놀이가 갖고 있는 내적사고가 풍농과 가내의 안과태평을 기원한다고 하면, 추석에 하는 거북놀이는 풍농에 대한 감사로 행해진다. 경기도 이천군 대월면 초지리에서 전승이 되는 거북놀이는 한 때 중단이 되었던 것을, 마을 주민들이 재현을 하여 전승이 되고 있다.

 

 

마당굿을 하고 있을 떄 거북이가 쓸어졌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거북이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위) 대청에서 하는 고사덕담에서는 누구나 참석을 하여 기원을 할 수 있다

 

기우제를 지내는 마음으로 연희를 해

 

이천거북놀이 조남걸(남, 58세)보존회장은

 

“우리 거북놀이는 한수 이남과 금강 이북의 마을에서 주로 연희가 되어왔습니다. 아마도 이러한 거북놀이는 풍농과 안과태평을 위한 놀이였지만, 결국에는 공동체를 형성하는 대동의 놀이였습니다. 거북이를 놀이의 주체로 삼은 것도 알고 보면, 농사에 가장 필요한 물 때문은 아닌가 생각이듭니다. 거북이는 용왕의 심부름꾼으로 늘 등장을 하기 때문이죠. 오늘 이 거북놀이가 연희가 된 다음 비라도 뿌렸으면 좋겠습니다. 이러다가 정말 농촌이 다 망가질 것 같습니다” 라며 간절한 비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연희를 한다고 한다.

 

 

이천거북놀이 보존회 조남걸 회장(위)과 최 고령 연희자인 이종철 옹의 비나리 모습

 

대청 앞에서 가내의 안녕을 위해 축원을 하는 ‘고사덕담(告祀德談)’에서 비나리를 하는 최고령 회원인 이종철옹(80세)도, 비를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을 전한다. 30도를 웃도는 더위의 햇볕 아래서 개인놀이를 하는 풍물잽이들 역시, 비를 기다리는 마음은 한 가지였을 것이다. 그렇게 땀이 흐르듯, 비라도 뿌려 대신 빗물이라도 흘렀으면 하는 바람이었을 것이다.

 

풍농과 가내의 안과태평을 위해 축원을 하는 기원성민속인 ‘거북놀이’. 영통구 청명단오데 행사장에서 한 바탕 땀을 흘려낸 이천거북놀이 보존회원들의 바람이 하늘에 닿기만을 바랄 뿐이다. 거북이를 몰고 가는 질라래비(성정섭. 남, 45세)의 소리가 절규가 되어 돌아온다.

 

두손을 모우고 비손을 하는 이천 거북놀이 연희자. 이들의 바람처럼 비라도 쏟아 부었으면 좋겠다

 

“인간이 물이 없으면 살 수 없는 법. 이렇게 오랜 가뭄에 사람도 농작물도 다 죽어 가는데 오늘 우리 물이나 한 번 뚫어봅시다. 뚫으세 뚫으세 물구멍을 뚫으세.”

답사를 다니면서 가장 마음이 푸근해 지는 것은 고택이나 절집 등에서 만나게 되는 장독대이다. 물론 절집보다야 고택에서 만나는 장독대, 그것도 사람의 온기가 서린 집안에서 만나게 되는 장독대야말로, 따듯한 어머니의 품을 느끼게 된다.

 

집집마다 집 뒤편으로 돌아가면 윤기를 내며 가지런한 모습으로 놓여있는 장독대. 지금이야 아파트들을 선호하면서 이런 정취어린 모습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옛 것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우리 어머니들은, 아파트 베란다 한편에도 윤이 나게 잘 닦은 독 두 어 개쯤은 갖고 계신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네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위는 경북 영덕 의병장 신돌석장군 생가지 장독 아래는 경주 김호장군의 생가지 장독


장독대를 보면 집안의 가풍을 알아

 

장독대는 집 뒤편이나, 안채의 옆에 단을 쌓고 그 위에 가지런히 독을 늘어놓는다. 장독대에는 간장을 비롯한 된장과 고추장, 김치나 장아찌 등 우리의 식생활을 윤택하게 할 식품들을 보관하는 곳이다. 하기에 장독대가 갖는 의미는 그 무엇보다 크다고 하겠다. 사람들은 어느 집을 찾아갔을 때 이 장독대가 윤기가 반지르르하게 나면, 그 집안의 주부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장독은 어머니의 마음이다. 그리고 온 가족의 안위가 장독대에서 만들어진다. 아이가 아프면 장독대 앞에 상을 놓고 맑은 정화수 한 그릇을 떠놓고, 자성으로 비손을 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있다. 또한 자손들이 만 길을 떠나거나 큰일을 앞에 두고 있을 때도, 일이 잘 되게 해달라고 지성으로 비는 일도 이 장독대에서 다 이루어졌다.

 

 

 

 

위는 논산 명재고택 사랑채 앞 장독들, 가운데는 서천 이하복 가옥의 장독대, 아래는 음성 감곡 서정우 가옥의 장독


장독은 단순히 찬거리를 보관하는 곳이 아니다.

 

왜 장독대에서 그런 일들을 한 것일까? 어머니들은 왜 집안에 일이 생기면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 놓고 촛불을 켠 후, 지성으로 비손을 한 것일까? 그것은 장독대가 갖고 있는 직능 때문이다. 장독대는 집안에서 가장 신성한 곳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장독대에는 집안 식구가 먹고사는 찬거리의 맛을 내는 것도 이 장독 안에 들어있는 고추장, 된장, 간장과 각종 반찬 등이다.

 

 

 

 

위는 전남 무안 나상렬 가옥의 장독, 가운데는 충북 괴산 청천리 고가의 장독, 아래는 함양 지곡 오담고택의 장독


하지만 이 찬거리들인 장들은 단지 반찬의 맛을 내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 장들은 바로 ‘축사(逐邪)’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하기에 이 장독대는 집안에서 주부들과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신성한 곳 중 한 곳이다. 이러한 장독대는 한국인의 사고 속에는, 어머니의 마음이 담겨져 있는 정 깊은 곳이다.

 

이러한 장독대가 점차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장독대에 깃들었던 어머니의 마음과 정도 함께 사라져가는 것만 같다. 어머니의 따스한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장독대. 그리고 집안의 모든 간구하는 일이 이루어지던 소중한 곳이었던 곳. 이 봄, 어머니의 마음이 가득 담겨있던 아름답고 정이 넘치는 장독대를 찾아, 길을 나서는 것도 새봄을 맞이하고 느끼는 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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