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고나란 예전 작은 양철로 된 용기에 설탕과 소다를 넣어 연탄불에 올려놓으면 설탕이 녹는다. 그것을 철판 위에 붓고 비행기, 짐승 등을 조형한 강철로 만든 틀을 눌러 그 모형대로 따내던 또뽑기 놀이였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달고나는 전혀 다르다. ‘달빛아래 고색(古色)을 배경삼아 놀자꾸나.’가 달고나란다.

 

그렇다고 매번 달이 뜰까? 안 뜨는 날은 마음에 달을 하나 만들면 된다. 고색은 수원 화성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다는 방화수류정 앞에 조성한 용연이 놀이터이다. 한 마디로 화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방화수류정 앞 용연에서 한번 놀아보자는 것이다. 13일 토요일 8, 용연 주변에는 1,000명 정도의 관람객이 무대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용연 안에는 작은 인공섬이 있다. 그 섬에 가교를 설치하고 무대를 마련했다. 그 무대에서 한 시간 정도를 질펀하게 놀자는 것이다. 노는데도 격이 있다. 한 마디로 여긴 노는 물이 다르다. 수원문화재단에서 913일부터 1011일까지 매주 토요일 밤에 마련한 달고나는 국악과 다양한 장르를 결합시킨 공연이다.

 

남사당놀이와 춤이 결합된 젊은 놀이판

 

13일 오후 8시부터 무대에서 조명이 켜지면서 함께 태평소 소리가 들린다. 이어서 12명의 젊은 남녀들이 무대 위로 올랐다. 이 친구들 쉴 새 없이 춤을 추어댄다. 오빠는 강남스타일로 시작한 춤은 온갖 걸그룹들의 춤과 2000년대 박남정의 춤까지 정신없이 이어진다. 넌버벌 퍼포먼스 <The Club >이 만들어가는 무대이다.

 

 

이 친구들 복장을 보니 클럽께나 다녔던 친구들이다. 춤 또한 예사롭지가 않다. 시간여행으로 조선조 말기 남사당까지 이어진 놀이판은 결국 진도북춤과 소고춤, 그리고 난타와 버나, 살판 까지 들고 나왔다. 구경하는 사람들은 흥이 난다. 장단에 맞추어 손뼉을 치다가 손바닥이 얼얼한지 손을 흔들기도 한다.

 

젊은 사람들이 참 재주도 많다. 클럽에서 노는 날라리들인 줄로만 알았는데 하는 양을 보니 풍물께나 접한 친구들이다. 한바탕 춤을 추고 난 뒤 한 젊은 처자가 호주전통 악기인 디저리두를 들고 자리에 앉았다. 디저리두 연주를 하는 동안 무대 위에 슬그머니 북을 갖다 놓는다. 두드림의 미학이라는 난타를 해보겠다는 심산이다.

 

 

이 사람들 어쩔 것이여? 밤새 놀아봐?

 

난타연주가 끝나자 사물패가 먼저 장단을 치면서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층이 진 아래무대에 젊은 처자 둘이 북을 메고 나온다. 진도북춤 한 판을 신바람 나게 출 모양이다. 난장을 펼칠 남사당의 장단에 진도 북춤 한판이라. 기대를 하게 만든다. 춤을 추는 선이 아름답다. 뒤편 방화수류정에서 예전 정조대왕도 이렇게 용연의 춤을 즐기지는 못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니 미안한 마음도 든다.

 

탈을 쓴 이매가 나와 춤을 춘다. 춤이라고 하기보다는 젊음의 몸짓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그래도 언젠가 몸에 익으면 제대로 된 몸짓 한 번 보여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다. 버나잽이가 접시를 돌린다. 커다란 버나 하나를 들고 나온 친구가 사람들을 웃긴다. 이 친구들 나이에 비해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 줄을 안다.

 

 

다시 처자 둘이 소고를 들고 나왔다. 사물에 맞추어 소고춤을 멋들어지게 춘다. 조금은 미숙한 면이 더 미소를 짓게 만든다. 살판을 하는 땅재주꾼들이 사람들을 즐겁게 만든다. 박수를 치는 사람들도 무대에서 재주를 펴는 사람들도 즐겁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열두발 상모가 무대에 올랐다. 걱정하던 일이 벌어졌다. 좁은 무대에 마음대로 돌리지 못하는 상모가 몸을 치감는다.

 

그래도 관객들은 아랑곳 하지 않는다. 이미 이 젊은이들의 놀이판에 푹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오늘 어디 밤새 한 판 벌려봐라는 소리들을 하지만, 1초도 쉬지 않고 이어진 클럽 판의 무대는 꼭 한 시간 만에 조명이 꺼져버렸다. 마음속에 아쉬움만 남겨 놓은 채.

 

우리는 흔히 매우 잘 맞음을 비유하여 안성맞춤이란 말을 쓴다. 그 만큼 어떤 물건이나 사람이 아주 잘 어울릴 때 이런 말을 쓰는데, 안성에서 맞춘 유기는 장인정신과 뛰어난 솜씨로 정성껏 만들어 품질이나 모양 등 기교면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만족시켰기에 안성맞춤의 대명사가 되었다

 

안성시 대덕면 내리 중앙대학교 안성캠퍼스 입구에 세워진 안성맞춤 박물관은 유기를 중심으로 안성의 풍부한 문화유산을 함께 접할 수 있는 테마 박물관이다. 지상 2층 지하 1층 총 3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유기 전시실, 영상실, 기획 전시실, 농업 역사실, 향토 사료실, 세미나실, 학예연구실, 수장고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유기전시실은 유기의 역사, 제작 방법별 유기분류, 유기제작과정 모형, 제기, 반상기, 무구, 불기 등 생활 속에 쓰이는 다양한 유기를 전시하고 관람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곳곳에 영상물을 설치하였다. 특히 터치스크린을 통해 안성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볼 수 있다.

 

농업역사실은 안성 농업의 역사와 계절에 따른 농경모습, 안성의 특산물이 전시되어 있어 과거와 현재의 안성농업을 알 수 있다. 향토사료실에는 안성의 옛 모습이 담긴 사진, 안성장시재현, 안성남사당, 불교문화재 등 안성문화와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전시실안내

안성맞춤유기전시실

- 유기의 역사, 제작방법별 유기분류 제기, 반상기, 무구, 불구 등의 유기제작과정, 생활 속에 쓰이는 다양한 유기를 전시하고 관람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곳곳에 영상물을 설치하였다. 특히 터치스크린을 통해 안성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볼 수 있다.

 

농업역사실

- 안성농업의 역사와 계절에 따른 농경모습, 안성의 특산물이 전시되어 있어 과거와 현재의 안성농업을 알 수 있다.

 

 

향토사료실

- 안성의 옛 모습이 담긴 사진, 안성장시재현, 안성남사당, 불교문화재 등 안성문화와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오픈시간 : 구분 입장시간 관람시간

--------------------------------------------------

하절기(310) 09:0017:00 09:0018:00

동절기(112) 09:0016:00 09:0017:00

--------------------------------------------------

휴 관 일 : 매주 월요일은 휴관(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그 다음날)

 

한산 세모시 곱게 차려입고

안성 청룡으로 사당질 가세

 

우리네 삶이 암울했던 시절에 나옴직한 소리다. 한산 세모시를 곱게 차려입고 안성 청룡으로 사당질을 간단다.

 

안성 청룡이란 서운면에 있는 고찰 청룡사를 일컫는 말이다. 왜 하필이면 안성 청룡이었을까? 그 곳은 옛부터 남사당패들의 근거지였다. 칠사당패라고 불리던 남사당패들이 청룡사 밑에 자리를 잡고 봄이 되면 길을 떠났다가 겨울이 되면 다시 돌아와 그 곳에서 한겨울 동안 기예를 익힌 후 다시 길을 떠나는 일을 반복했다. 이 곳을 근거지로 활동하던 안성남사당패는 그 기예가 출중하기도 했지만 남사당의 원류로 알려져 있다.

 

남사당패의 시원(始原)은 신라 때부터 전해진 예인집단(藝人集團)이라고 한다. 과거 살기가 암울하던 시절, 많은 기예인들이 이 곳으로 몰려와 집단으로 취락을 이루면서 청룡사 일대는 남사당패와 끊을 수 없는 인연을 맺게된다. 그들이 이 곳에 거주를 한 것은 안성장이 가까이 있고, 정월과 각 절기에 절 집을 찾는 이들을 위해 마당놀이를 통하여 최소한의 생활대책이 되었기 때문이다. 청룡사나 천안 광덕사 등 남사당패들이 절 주변을 택했던 것도 절 중창에 참여를 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삶을 영위할 목적이 앞섰을 것이라는 추측도 든다.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민가보다는 절집 근처가 삶에 도움이 되었으리라는 생각이다.

 

남사당패의 조직을 보면 맨 위에 꼭두쇠가 있고, 그 밑에 곰뱅이·뜬쇠·가열·삐리·저승패·등짐꾼 등으로 4050명이 한패거리를 이룬다. 꼭두쇠는 패거리의 우두머리로 대내외적인 책임을 지며, 꼭두쇠의 능력에 따라 식구가 모이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한다. 곰뱅이쇠는 패거리의 기획을 맡아본다. 곰뱅이란 남사당패의 은어로 허가란 뜻이다. 어느 마을에 들어갔을 때 놀이 마당을 열어도 좋다는 승낙을 받는 일을 맡아보는 사람을 말한다. 곰뱅이쇠가 둘일 경우 하나는 가장 중요한 문제인 먹는 문제를 해결하는 글()곰뱅이쇠다.

 

 

다음으로는 뜬쇠가 있다. 뜬쇠는 지금으로 말하자면 파트장이나 수석의 역할을 한다. 뜬쇠는 14명 내외로 구성이 되며 상공운님(상쇠징수님(수징고장수님(수장고북수님(수북호적수·벅구님(소고상동무님·회덕님(선소리꾼버나쇠·얼른쇠(요술쟁이살판쇠(땅재주꾼어름산이(줄꾼덧뵈기쇠·덜미쇠 등 각 부분의 우두머리를 말한다. 뜬쇠의 밑에는 몇 사람의 기능을 익힌 가열이 있으며, 밑으로 초임자인 삐리를 둔다. 저승패는 나이가 먹어 기능을 상실한 사람들을 일컫는다. 꼭두쇠는 패거리에 의해 선출되며 기능을 발휘할 수 없거나 잘못이 있어 신임을 잃으면 바꾸게 된다. 협의를 통한 다수결의 방식을 통해 선출되며 일정한 임기는 없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소고만 들어도 돈 나온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치마만 들어도 돈 나온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줄 위에 오르니 돈 쏟아진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바람결에 잘도 떠나가네

 

안성 남사당패의 꼭두쇠 바우덕이가 얼마나 대단하였는가를 알 수 있는 소리다. 꼭두쇠 바우덕이(본명이 김암덕(金岩德)이라 전함)는 능력이 있는 꼭두쇠로 그가 이끌던 남사당패를 개다리패라고 불렀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자 꼭두쇠였던 그는 남사당패를 최고의 기예 집단으로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그 뒤를 이은 복만이패(꼭두쇠는 안성출신 김복만)1935년 당시 가장 활발하게 한수 이북을 누빈 유랑집단이었다. 복만이패를 이은 원육덕패(여주출신)는 해체된 복만이패 사람들을 규합하였으며 1939년 멀리 북간도까지 들어가서 활동하다가 해체되었다. 복만이패가 해체될 때 유일하게 안성을 기점으로 활동하던 이원보패를 마지막으로 유랑집단으로서의 기능이 상실되었다.

 

8살의 어린 나이에 이원보패에서 상무동으로 남사당의 길을 걷기 시작한 김기복옹(74, 안성시 보개면 남풍리 1124). 마을의 두레에서도 그의 기량은 뛰어났다.

 

어려서 남사당패에 가담해서 돌아다니다 보니 학교도 늦게 졸업을 했어요. 17세가 되어서야 초등학교를 졸업했는데 당시 쇠가 치고 싶어서 빈 도시락을 젓가락으로 두드려가면서 장단을 익혔죠

 

끼를 주체할 수 없어 농사를 지으면서도 어디서 걸립패가 떴다 하면 그 길로 집을 나서곤 했다. 20여세가 되면서 꼭두쇠의 기질을 갖고있던 김옹은 안성 풍물팀을 이끌고 이승만대통령 취임식에 참가하기도 했다.

 

농사를 지으면서도 농사일보다는 쇠를 치고 걸립을 다니는 일이 더 좋았으니까요”. 그렇게 조직한 안성남사당 풍물놀이팀이 1988년에는 전주대사습에서 농악부분 최우수상을 받았고, 다음해인 1989년에는 제30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이 해 김옹은 남사당 풍물놀이팀 상쇠로 참가하여 개인연기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결국 안성남사당의 맥은 조선조 말의 바우덕이로부터 시작하여 김복만-원육덕-이원보-김기복으로 이어지면서 해체와 결성을 반복하면서 끈질기게 맥을 이어왔다.

 

여기도 하나 저하 저기도 또 하나

(여기도 하나 저하 저기도 또 하나)

여보시오 농부님네 이 내 한 말을 들어보소

(여기도 하나 저하 저기도 또 하나)

여기도 한 방인데 신발을 벗고서 들어오소

(여기도 하나 저하 저기도 또 하나)

 

모판에서 모를 뽑아내 논에 옮겨 심을 때 부르는 모심기소리다. 2030여명이 한 줄로 길게 늘어서 선소리꾼의 메김소리를 받으면서 모를 심어 나간다. 뒤로 이동을 하면서 모를 심어나가는 농사꾼들의 마음이 그대로 반영된다. 논에 들어갈 때는 신을 벗고 들어간다고 한다. 그 곳이 삶을 영위하는 곳이기에 논도 방이라는 것이다. 방에 들어가려면 당연히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지 않는가. 농사를 짓는 농사꾼들의 마음이 그 소리 안에 그대로 배어있는 대목이다. 그렇게 마음을 가져야 삼배출의 소득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정성이 가득 깃들어 있음을 일 수 있다.

 

농사를 지으면서도 먼저 남사당을 생각하는 김기복옹. 그는 오늘도 전수회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에 여념이 없다.

기계로 짓는 농사말고 다랑이 논이 한 서마지기 정도가 있는데 시간이 되면 아이들과 함께 직접 손 모를 심으면서 함께 소리를 하고 싶어요

 

아이들에게 산 체험을 알려주기 위해서 직접 신발을 벗고 논에 들어가 길게 늘어서서 소리를 주고받으면서 모심기를 해보고 싶단다. 그것이 정녕 우리네 생활에서 배어 나오는 멋을 알 수 있고, 그러한 마음이 아니면 남사당놀이를 하기가 어렵단다.

남사당은 정말 어려운 기예를 갖고 있어요, 그만큼 마음가짐이 되어있지 않으면 배울 수가 없습니다

 

서운중학교 학생들을 가르쳐야 한다면서 황망히 길을 나서는 김옹에게서는 진한 토장 내음이 난다. 그 쇠가락에 남사당의 장인 정신이 배어있다고 하면, 그의 소리에는 짙은 농사꾼의 애환이 서려있다. ‘여기도 한 방이니 신발을 벗고 들어오라는 그의 소리처럼, 진정한 꾼으로서의 노옹의 삶이 오늘도 바우덕이 묘 앞길을 따라 먼 길을 떠나던 옛 남사당패들의 행렬처럼 긴 여운을 남긴다.

 

200241일자 경기일보 / ·사진/ 하주성(민속연구가)

줄광대는 줄 위에서 갖은 묘기를 부린다. 줄 위를 바라보며 목을 있는 대로 뺀 구경꾼들은, 발이라도 삐끗할작시면 바로 탄성이 터져 나온다. 그 밑에서는 어릿광대가 관객들과 줄광대 사이를 부추기며 돌아다닌다. 악사들은 장단을 덩덕쿵~ 치면서 흥을 고조시킨다. 높이 3m 정도에, 길이는 10m. 그 위에서 20여분을 줄 위에서 내려오지 않는 줄광대는, 온갖 묘기를 다부린다.

 

승도(繩度), 주색(走索), 색상재(索上才), 답색희(沓索戱), 고무항(高舞恒), 희승(戱繩), 항희(恒戱)등의 어려운 명칭을 갖고 있는 줄타기는, 남사당패의 놀이 중에서도 가장 흥겨운 판이다. 줄타기는 대개 관아의 뜰이나 대갓집의 마당, 놀이판이나 장거리 등에서 많이 연희가 되었다. 가끔은 절 마당에서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는 절 걸립을 시작하거나 마쳤을 경우에 펼쳐진다.

 

 

외줄에 목숨을 걸다

 

줄을 타는 줄광대를 어름산이라고 부른다. ‘산이란 경기도 지역에서 전문적인 연희꾼을 일컫는 말이다. ‘어름이란 줄 위에 올라가 줄을 어른다는 뜻을 갖고 있다. 또 하나의 속설에는 얼음판처럼 위험하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이라고도 한다. 즉 어름산이는 얼음산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위험한 줄타기는 항상 생명을 걸어놓고 연희를 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줄타기는 대령광대(待令廣大)계열인 나례도감에 소속된 줄광대가는 유한계층을 대상으로 연행하는 재인청 '광대줄타기', 유랑예인계열의 서민 계층을 대상으로 순연하는 남사당 여섯마당 중 하나인 '얼음줄타기'가 있다.

 

 

줄타기를 할 때는 줄광대인 어름산이와 재담을 맞받아주는 어릿광대, 그리고 음악을 연주하는 악사가 함께 한다. 어릿광대가 없을 때는 악사 중에 한 사람이 재담을 받아주기도 한다. 줄광대가 어릿광대와 악사 등을 두루 갖추고, 줄 위에서 재담과 춤, 그리고 줄 위에서 하는 40여 종의 잔놀음과 살판까지 하면 판줄이라고 부른다.

 

어릿광대 없이 줄광대 혼자 재담과 잔놀음을 간단하게 노는 것을 토막줄이라 부른다. 하지만 줄을 타는 어름산이에게는 판줄이나 토막줄이나, 그 위험은 항상 같을 수밖에 없다. 하기에 줄 위에 오르고 나면, 잠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게 된다.

 

 

인간문화재의 줄타기

 

24() 화성 행궁의 정문인 신풍루 앞에 줄이 걸렸다. 한 해 동안 이곳에서 벌어지는 공연을 시작하는 날에, 그 끝에 줄타기가 선을 보인 것이다. 올해 줄을 타는 줄광대는 중요무형문화재 제 58호인 줄타기의 기예능보유자인 김대균이다. 인간문화재가 줄을 타는 것은 상당히 보기 드문 구경거리이다.

 

경기도 연천에는 재인폭포가 있다. 옛날에 문선준이라는 줄광대가 이 재인폭포를 건너 줄을 매고, 그 폭포 앞으로 줄타기를 했다고도 한다. 그만큼 줄광대들은 나름대로의 특별한 재능을 갖고 있었는가 보다. 지금은 줄타기는 중요무형문화재 제58호로 지정이 되어있다. 기예능보유자였던 고 김영철(1988년 작고)의 기능은, 현 보유자인 김대균에게 전해졌다. 그러나 지금은 남녀를 비롯해 몇 명의 줄광대가 놀이판을 펼치고 있다.

 

줄타기의 보유자인 김대균은 전라북도 정읍 출생이다. 1976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8호 줄타기에 입문하여 김영철에게서 사사를 받았다. 1987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58호 줄타기 전수조교로 선정되었으며, 2000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58호 줄타기 예능보유자로 인증을 받았다.

 

 

불이 벌건 화로를 들고 줄 위에 오르다

 

흔히 줄타기의 마지막은 살판을 한다고 한다. 이 살판이란 잘하면 살고, 못하는 죽는다.’는 소리에서 유래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살판은 남사당패의 연희 중에서 땅재주를 말한다. 텀블링과 같은 재주 등 갖가지 묘기를 선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왜 살판이라고 그 이름을 붙인 것일까?

 

말 그대로 살판이란 죽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전하는 말대로라면 불이 벌겋게 붙은 화로를 안고 땅재주를 넘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칫 실수라고 할양이면, 불을 뒤집어 쓸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런데 그 살판 중에서 가장 어렵다는 것을, 줄 위에서 했다고 하니 그저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뿐이다.

 

 

흔히 남사당패에 의해 연희가 되는 줄을 어름줄타기라고 한다. 이는 줄 위에서 갖은 재담과 춤, 줄놀음 등을 섞어서 연희를 하는 것이다. 단순하게 줄만 타는 것은 광대줄타기라고 불렀다. 이 광대줄타기는 양반들을 위한 줄타기로, 줄을 타는 기능은 어름줄타기를 하는 줄광대보다 뛰어났다는 평이다.

 

하지만 민초들을 상대로 하는 어름줄타기는 재담이 해학적이다. 줄 위에서 양반사회에 대한 비판이나 파계승에 대한 풍자 등을 재담으로 엮어나간다. 그래서 억눌린 민초들의 분풀이를 하는 데는 제격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 줄타기를 마칠 때가 되면, 박수를 치면서 앙코르를 외친다. 그래서 줄광대는 외롭지가 않은가보다. 떠날 듯한 함성이 항상 같이하기 때문에.  (사진 수원시청 정책홍보담당관실 이용창)

남사당은 1900년대 이전에 서민사회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성된 민중놀이집단으로 흔히 유랑집단(流浪集團)의 한 류파로 본다. 남사당이란 소리와 술, 몸을 팔던 여자들의 집단인 사당패에 비교하여 꼭두쇠(우두머리) 밑으로 연희자 십 수 명이 있는 유랑예인집단으로, 일정한 거소가 없는 독신 남자들만의 남색사회이다. 간혹 여자 1∼2명이 낀 적도 있으나 이것은 남사당패 말기에 들어와서야 있었던 일이다.

 

남사당패들은 풍물․버나․살판․어름․덧뵈기․덜미 등 6가지 놀이로 일정한 보수 없이 숙식만 제공받으면 마을의 큰 마당에서 밤새워 놀이판을 벌였다. 안성의 남사당패는 서운면 청룡리 인근에 근거지를 두고 활동을 하였다. 안성남사당패가 유명해 진 것은 〈바우덕이〉라는 여자꼭두쇠가 있었기 때문이다.

 

 

안성남사당패의 꼭두쇠인 바우덕이는 사내 마음을 사로잡는 뛰어난 미모와 옹골찬 소리가락, 줄타기 재주가 당내 최고의 경지에 달했다고 한다. 지금으로 따지자면 당대 최고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던 최고 스타였던 것이다.

 

당대 최고의 예인 바우덕이

 

남사당 최고인 꼭두쇠 바우덕이(성은 김(金)이고, 이름은 암덕(岩德)이기 때문에 岩을 바위로 풀어 바우덕이라고 불렸다고 한다)는 남사당패의 역사상 유일무이한 여자 꼭두쇠로 안성 서운면 청룡리 불당골에서 염불, 소고춤, 풍물, 줄타기 등 온갖 남사당 기예를 익혔으며, 뛰어난 기량으로 세상에 나가 판놀음을 걸판지게 떨쳐 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었을 정도였다.

 

타고난 천부적 재능과 미색을 겸비한 총기로 남사당패의 꼭두쇠로 추앙받은 바우덕이는 꼭두쇠로 활동하며 놀라운 재능을 발휘하여 남사당패의 전성기를 이루어냈다. 남사당패의 구성은 맨 위에 꼭두쇠가 있고 그 밑에 곰뱅이쇠, 뜬쇠, 가열, 삐리, 저승패, 동짐꾼 등 40~50여명으로 구성되어 풍물, 버나, 살판, 어름, 덧뵈기, 덜미 등의 놀이를 행하였다.

 

남사당패의 조직

 

꼭두쇠는 패거리에서 대내외적으로 책임을 지는 우두머리로서, 그의 능력에 따라 단원이 모여들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했다. 조직된 패거리는 획일적이라는 평을 들을 만큼 일사불란하고 엄격하였다. 50명 안팎의 인원을 필요로 하는 그들은 그 충원방법으로 고아나 가출아 등을 받아들였고 빈곤한 농가의 어린이를 부모의 승낙을 얻어 받아들이거나 유괴하는 경우도 있었다.

 

곰뱅이쇠는 꼭두쇠를 보좌했는데, 곰뱅이란 남사당패 은어로 <허가>란 뜻으로 어느 마을에 갔을 때 놀이마당을 열어도 좋다는 사전승낙을 받는 일을 맡아 보았다. 뜬쇠는 각 연회분야의 선임자로서 그들이 노는 놀이의 규모에 따라 해당놀이의 예능을 익힌 몇 사람씩의 가열을 두게 되며, 가열 밑에 초입자인 삐리를 두게 된다. 삐리는 뜬쇠들의 판별에 의해 적당하다고 인정되는 연회에 배속되어 잔심부름부터 시작해 1가지씩 기예를 익힌 뒤에 가열이 되는데 이들은 가열이 되기 전까지는 여장(女裝)을 했다는 것이 특이하다.

 

남사당패는 숫동모와 암동모라는 이름으로 남색조직을 이루고 있었는데, 예외도 있었지만 숫동모는 가열 이상이며, 암동모는 삐리들이 감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이 한마당의 놀이판을 벌이는 데는 일정한 보수는 없으며, 숙식을 제공받고 하룻밤을 놀고는 다음날 마을을 떠날 때 마을 사람들이 자진해서 주는 노자와 이밖에 머슴이나 한량들에게 자기 몫의 암동모를 빌려주고 해우채를 받는 것이 수입의 전부였다.

 

 

안성 남사당의 맥은 조선조 말기의 바우덕이로부터 시작해 김복만 - 원육덕 - 이원보 - 김기복으로 이어졌고 해체와 결성을 거듭하면서 끈질긴 맥을 잇고 있는 것이다. 본래 남사당패의 풍물놀이란 웃다리가락을 주축으로 하여 진풀이, 무동, 벅구놀이, 채상놀이, 선소리 등의 몸재주와 묘기에 소리(산타령, 새타령, 모찌는 소리, 논매는 소리등)까지 곁들이니 훌륭한 구경거리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풍물이란 우리나라 특유의 민중 음악이며, 남사당패에 의하여 떠돌이 판굿 모임에 맞게 놀이판이 풍부하게 짜인 것이다. 안성의 남사당 풍물놀이는 남도 농악에 비해 무동의 수가 많고 5무동을 비롯한 3무동, 4무동, 단무동에 이르기까지 다채롭게 펼쳐지며 최고의 기량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보유하고 있는 7무동이 있어 뛰어난 기량을 떨치고는 했다. 현재 안성의 남사당은 안성시립남사당바우덕이풍물단(단장/김기복)이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남사당의 연희종목

 

남사당 놀이판에는 놀이 전에 줄타기의 줄을 매고 꼭두각시놀음의 포장막과 마당 한가운데에 버나․살판․덧뵈기 등을 연희할 멍석을 5∼6장 깐다. 여기서 벌어지는 <남사당놀이> 6종목은 대략 다음과 같다.

 

 

⑴ 풍물 : 첫 번째 놀이인 풍물은 웃다리가락을 주축으로 짜임새 있는 진풀이와 무동(새미)․채상(열두발 상모) 등을 가미하여 연희적 요소를 더하였다. 인사굿부터 시작하여 돌림벅구․선소리터․당산벌림․양상치기․허튼상치기․오방(五方)감기․오방풀기․무동놀림․네줄백이 등의 판굿을 놀고, 판굿이 끝난 다음에는 상쇠놀이․징놀이․북놀이․장구놀이․시나위․새미받기․채상놀이 등을 한다.

 

 

⑵ 버나 : 버나는 쳇바퀴·대접․대야 등을 앵두나무 막대기로 돌리는 묘기를 말하는데, 단순히 묘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돌리는 사람인 버나잽이와 받는 소리꾼인 매호씨(어릿광대)가 서로 주고받는 재담과 소리가 있어 극성(劇性)이 짙었다. 돌리는 물체에 따라서 대접버나․칼버나․자새버나․쳇바퀴버나 등으로 분류된다.

 

 

⑶ 살판 : 오늘날의 덤블링을 연상케 하는 살판은 앞곤두․뒷곤두․번개곤두․자반뒤지기․팔걸음․외팔걸음․외팔곤두․앉은뱅이․팔걸음․수세미트리․앉은뱅이․모말되기․숭어뜀 등의 순서로 논다. 살판쇠와 매호씨가 재담을 주고받으며, 잽이의 장단에 맞춰 정해진 차례대로 곤두질을 치는 것이다. 살판이란 말은 곤두박질을 할 때 불을 가득 담은 화로를 안고 재주를 넘다가 죽는 수도 있어 ‘살판이냐, 죽을판이냐’를 가늠해서 붙여진 명칭이라고도 전한다.

 

 

⑷ 어름 : 어름이란 줄타기를 말하는데, 남사당패의 어름놀이는 초청에 의해 관가나 양반집에 불려 다닌 <광댓줄>과는 달리 일정한 보수 없이 서민을 상대로 순연했기 때문에 민중 취향으로 짜였다. 어름산이와 매호씨가 재담을 주고받으며 줄 위에서 가창(歌唱)하고 잽이의 장단에 맞춰 진행되는 것으로 버나․살판의 경우와 같다.

 

 

⑸ 덧뵈기 : 덧뵈기는 다른 지역 탈놀음에 비해 의식성(儀式性)이나 행사성(行事性)에 관계없이 그때그때 지역민의 갈구와 흥취에 영합하였다. 마당씻이․옴탈잡이․샌님잡이․먹중잡이의 4마당으로 짜여 있는데, 먼저 첫째마당에서 놀이판을 확보하고, 둘째마당에서 외세(外勢)를 잡고, 셋째마당에서는 내부 모순을 불식하고, 끝마당에서 외래문화를 배격하는 내용이다.

 

 

⑹ 덜미  :맨 마지막 순서이며, 한국에서 유일하게 전하는 전통인형극 꼭두각시놀음을 남사당패들은 <덜미>라 부르고 있다. 이는 <목덜미를 쥐고> <몽둥이를 쥐고> 놀린다는 장두인형(杖頭人形)을 뜻하는 것이다. 줄거리는 지배층의 지배구조와 그 횡포에 대한 저항, 파계승에 대한 풍자를 통해 외래종교의 비판, 서민들의 우직한 염원(念願) 등을 희화화(戱畵化)한 것으로 40여 개의 인형과 10여 개의 소도구에 의하여 각기 독립적으로 연관된 2마당 7거리를 놀았다. 2마당 7거리는 박첨지마당(박첨지유람거리․피조리거리․꼭두각시거리․이시미거리)·평안감사마당(매사냥거리․상여거리․절 짓고 하는 거리) 등인데, 채록 본에 따라 차이가 있다.

최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