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답사를 하다가 보면 정말로 탄성을 내지를 수밖에 없다. 어떻게 천년이 훨씬 지난 세월을 그렇게 버티고 있었을까를 생각하면서. 경남 거창군 거창읍 양평동에 가면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석조여래입상 한 기가 서 있다. 조각을 한 솜씨도 뛰어나려니와, 아직도 당시의 모습 그대로를 잘 지켜내고 있기 때문이다.

거창읍 양평동 석조여래입상은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 석조여래입상이 서 있는 곳은 예전에 노혜사 또는 금양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하는데, 석불 주변에서 발견된 기와조각이나 주춧돌 등으로 미루어 확인할 수 있다. 현재 보물 제377호로 지정된 이 석조여래입상은 통일신라시대의 뛰어난 석조불상의 조형미를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만나는 순간 숨이 막히다.

거창군의 문화재를 답사하기 위해 길을 나선 1211일은, 아침부터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날씨였다. 그래도 바쁘게 움직이다가 보면 추운 줄을 모른다. 답사일정을 빡빡하게 잡는 것은, 깊은 겨울이 되었을 때 눈길을 돌아보지 않으려는 생각에서다. 길이 얼고 눈보라가 치기 전에, 한 곳이라도 더 돌아볼 심산에서다.

양평동 석조여래입상은 그 앞까지 차가 들어갈 수 있어 편하게 답사를 할 수 있는 곳이다. 주차를 시키고 안으로 들어가니, 전체높이 3.7m, 불상 높이 2.7m 의 석조여래입상이 서 있다. 머리 위에 올려놓은 갓인 천개는, 근간에 올려 진 것이라고 한다. 아마 석불의 훼손을 조금이라도 방지하기 위함인 듯하다.

양평동 석조여래입상을 처음으로 만나는 순간 숨이 막힌다. 그 조각을 한 솜씨가 지금까지 보아왔던 많은 석불들과는 사뭇 다르다. 화강암으로 조성이 된 석불은 통일신라시대의 조각예술의 뛰어남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섬세한 조각수법에 감탄을 금치 못하다.

머리에 비해 몸은 약간 가늘어 보이지만, 늘씬한 체격은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전체적인 신체의 비례가 알맞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둥근 얼굴에 반듯한 이목구비. 반쯤 뜬 듯한 눈과 입가에 엷은 미소는, 살아있는 부처의 자비를 보는 것만 같다. 찬 돌을 깎아 조형을 하면서, 어찌 이렇게 섬세한 모습을 표현 할 수 있었을까?

목에는 삼도를 새겨 넣었고 넓지 않은 어깨에는 대의를 걸쳐 입었다. 대의 아래에 치마모양으로 길게 표현된 군의는 주름살 하나부터 접힌 부분까지 세세하게 표현을 하였다. 금방이라도 초겨울 찬바람에 대의 자락이 나부낄 것만 같은 형상이다.

더구나 오른손은 가슴께로 올려 대의자락을 살짝 잡고 있는 모습은 어떠한가. 왼손은 집게손가락으로 살짝 법의자락을 잡고 남은 손가락은 곧게 폈는데, 그 형상이 지극히 자연스럽다. 손가락 하나까지도 따듯한 온기가 전해지는 듯하다. 군의자락 밖으로 조금 삐져나온 듯한 발은 뭉툭한 느낌이다. 어찌 이런 모습을 그 시대에 정 하나만을 갖고 표현을 할 수가 있었을까?


오른손은 가슴께로 올려 옷깃을 살짝 잡과, 왼손은 아래로 내려 집게손가락으로 법의 자락을 자고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놀라운 예술작품

석조여래입상을 받치고 있는 대좌는 둥글게 조성을 했는데, 약간은 투박한 모습을 보인다. 이렇게 불상과는 달리 조금은 투박한 모습이, 오히려 석조여래입상을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효과를 갖고 있다. 위를 이층으로 둥글게 깎아 그 위에 석불을 새우고, 아래는 돌아가면서 연꽃잎을 크게 새겨 넣었다.

양평동 석조여래입상 주변을 돌면서 사진촬영을 할 생각조차 못하고 있다. 앞으로 돌아가 손을 모아 합장을 한다. 세상 모든 시름을 사라지게 해달라는 그런 마음이 아니라, 천년 넘는 세월을 이렇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 만나게 될 수많은 문화재들이,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지켜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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