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동에 오면

어머니와

작은어머니의 말소리가 들린다

지동에 오면

춘옥이 할아범 생신날 설장구 소리가 들린다

성 밑 집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지동에 오면

두고 온 내가

나를 어서와 하며

맞아들인다

20131026일 고은

 

지동어린이집 길 건너편 벽에 쓰인 고은 시인의 지동에 오면이라는 시이다. 20131026일 수원시인협회 회원들이 지동을 찾아들었다. 손에 저마다 붓 한 자루씩을 들고 벽에 붙어서 글을 쓰기 시작한다. 자신의 시를 벽에 적는 것이다. 팔달구 지동 벽화골목에 당시 새롭게 마련한 시인의 골목은 곧 명물이 되었다. 지동 벽화골목을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사진을 한 장씩 찍느라 난리다.

 

 

딴 곳처럼 시인들의 유명한 시를 작가들이 적는 것이 아니다. 시인들이 직접 시를 쓰기 위해 모인 것이다. 10월 말의 날씨는 춥지가 않다고 해도 골목길은 바람이 분다. 유난히 바람이 부는 날 모인 시인들은 저마다 벽에 시를 적는다. ‘시인의 골목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내로라하는 시인 30여명이 모여 자신의 친필글씨로 자신의 시를 써내려간다. 지동 벽화골목이 유명해진 것은 바로 이 시인의 벽화길 때문이다.

 

지동길목

홀로 핀 봉숭아 꽃 너무 붉다

풍선처럼 팽팽해진 탱글한 씨앗자루

꼬투리 투툭, 터지며

날아든 파편

내 가슴 한켠에 박혀

새록새록 이듬해 핀다.

 

시인의 벽화골목이 적힌 시이다. 이날 시인의 벽화길 조성에는 고은 시인을 비롯해, 지동에 거주하는 아동문학가 윤수천 선생, 수많은 시인 제자들을 배출한 원로시인인 유선 선생, 경기시인협회 임병호 이사장 등 많은 시인들이 함께 자리를 했었다. 그렇게 1차 시인의 골목이 만들어졌다.

 

 

눈 오는 날 벽에 시를 입히는 시인들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이 내려 작업하기도 어려운 날 지동에 또 다시 10여명의 시인들이 찾아들었다. 가는 눈이 점차 함박눈으로 변해 내리지만 벽에 자신의 글을 쓰는 시인들은 아랑곳 하지 않는다. 흡사 자신들이 마치 눈인 듯 벽에 시를 입힌다. 그날 지동 벽화골목에는 눈발이 점차 거세지면서 바람까지 분다. 1차 시인의 벽을 조성할 때 미처 찾아오지 못했던 시인들이다.

 

시인 윤민희는 지천명이라는 시를 적었다.

 

절반은 내가 가고

절반은 네가 와서

손잡고 갔으면 좋겠어

절반은 앞에서

절반은 뒤에서

나란히 갔으면 좋겠어

자정이 바라보는 정오

춘분 추분이 바라보는 해와 달

좌우 날개로 나는 새들처럼

중용을 잃지 않는

지천명이었으면 좋겠어

 

그날은 날이 유난히 추웠다. 그 추운 날을 녹이는 것이 바로 시인의 벽이요 지동 벽화 시골목이다. 한참을 손을 호호 불어가며 시를 쓰고 있는데 골목의 한 집 대문이 열린다. 지동 창룡문로 60-3의 주소를 가진 집이다. 직접 커피를 끓여 시인들에게 대접을 한다. 집 주인과 따님이 내어주는 커피 한 잔에 차갑던 몸이 녹는다.

 

 

눈이 오는 날 지동을 찾아 시를 적는 시인들에게 따듯한 차 한 잔은 얼마나 큰 위로가 될까?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좋다. 그 마음 하나가 찬 눈이 쌓인 감나무 가지에 달린 까치밥과 같이 여유롭다. 그래서 지동은 살가운 동네라고들 한다. 인정이 넘치는 지동 벽화골목. 그곳에 마련된 시인의 벽화 골목. 또 하나의 지동 명물이 되었다. 주말이면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포토죤이 되었다. 눈이 소복이 쌓인 블록 담장위에 쌓인 눈에, 처마에 달린 마가목 씨앗 열매가 더 붉기만 하다. 시인 정명희는 죽어서도 상사화가 되고 싶다고 풀씨와 자동차라는 시를 적었다.

 

죽어서도 상사화가 되고 싶은 마음

멀지 않은 그길

내달리지 못하는 아쉬움이

이른 끔 하나 떨어트렸다

차마 내 뿜을 수 없는 열기

더 뜨거운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가 되었다

나뭇잎이 될게

꽃잎은 아주 많이

그래서 씨앗으로 바퀴를 만드는거야

어느 무공해의 도시

오랜 통증이 사라진다.

 

 

2차 시벽화길 조성에도 많은 시인 참여

 

지동 시인들이 직접 시를 쓴 벽화골목이 벤치마킹을 하는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자 제2차 시인의 벽화가 조성되었다. 1차 시골목에 이어 시인들이 벽마다 달라붙어 시를 쓰기 시작한다. 12여명의 시인들이 자작시를 벽에 쓰고 있는 것이다. 지동의 시인의 벽화골목은 그렇게 완성이 되었다.

 

20161118. 그날도 날이 쌀쌀했다. 수원문인협회 시인들이 찾아와 벽화골목이 직접 시를 썼다. 이날 참여한 시인은 윤수천 시인의 전기밥솥’, 김우영 시인의 출토, 창성사지’, 정수자 시인의 새벽비’, 임병호 시인의 동백꽃을 위한 꿈’, 박효석 시인의 오래된 사과’, 유선 시인의 홍시’, 박병두 시인의 해남 가는 길’, 은결 시인의 가마솥 밥 - 쌀의 목숨’, 박경숙 시인의 아슬아슬한 잠’, 윤형돈 시인의 우리 동네’, 임애월 시인의 겨울나무’, 진순분 시인의 폭죽등 모두 12작품이 새롭게 벽화골목을 장식했다.

 

요즈음 수원 곳곳에 많은 벽화길들이 조성되고 있다. 하지만 그 많은 벽화길이 안타까운 것은 테마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저 한 번 쳐다보고 갈 정도의 벽화는 되지만 머릿속에 각인이 되질 않는다. 그렇기에 많은 벽화가 곳곳에 있어도 사람들이 두 번을 찾아오지 않는다. 스토리텔링이 없기 때문이다.

 

지동의 시골목은 주제가 시인들의 시이다. 그것도 직접 시인들이 붓을 들고 벽에 자신의 시를 썼다는데 있다. 지동의 시인의 골목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시인들의 속을 직접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눈이 내리는 날 지동 시인의 골목은 또 다른 모습으로 사람들을 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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