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부는 서둔동 앙카라 길을 걷다

 

주말(10) 아침인데 마음이 바쁘다. 기사를 쓰기 위해서 적어도 몇 곳을 돌아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답사 장소가 이웃하고 있는 곳이면 그나마 좋은데 오늘 일정은 모두 떨어져 있다. 네 곳을 돌아보아야 하지만 한 곳은 일정에서 제외시켰다. 도저히 네 곳을 다 돌아본다는 것이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전 9시가 조금 넘은 시간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서둔동에 소재한 앙카라 길이다. 몇 년 전 이곳을 두 번인가 찾아갔다. 하지만 그동안 앙카라길의 벽화가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생각에 우선 벽화골목부터 찾아보기로 한 것이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는 법이다. 벽화는 모두 탈색이 됐고 한편에 그려졌던 벽화는 다세대 건물을 지으면서 아예 없어져 버렸다. 그 대신 서호초등학교 인근 벽에 낯모를 그림들이 그려졌다.

 

 

앙카라 길이란 명예도로명이다. 1952년 한국 전쟁 이후 터키군이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수원의 어린이들을 위해 설립한 앙카라고아원을 기념하기 위한 길이다. 이곳에는 당시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2006년 기념비를 세웠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 비를 볼 수 있도록 근처 서호초등학교 앞 앙카라학교공원으로 옮겼다.

 

수원시에서는 6,25 한국전쟁 때 참전했던 터키군을 기념하고 앙카라 시와의 국제교류의 계기로 삼기 위해 이 명예 길을 제정한 것이다. 명예도로는 서둔동 구 서울농대 앞 도로인 서호동로에서 서호초등학교 방향 약 450m 구간이다. 10일 찾아간 앙카라 길은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다.

 

 

2013년 찾아갔던 앙카라길

 

낙후되고 비좁은 골목에 벽화를 그렸던 길이다. 20135, 이 길을 처음 찾았을 때 좁고 깨끗하지 않은 골목이 변화를 거듭하고 있었다. 좁은 골목에는 여기저기 칠을 하고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벽화도 앙카라 길에 걸맞게 터키를 상징하는 그림들로 채워졌다. 그 당시 화합과 사랑이 깃들고 어린 청소년들의 환한 웃음이 있는 길을 만들고 있는 벽화작업은 SK텔레콤 대학생 자원봉사단인 ‘SUNNY'가 맡아 그렸다.

 

당시 이곳을 찾았을 때 골목 입구에서 서호초등학교로 들어가는 좌측 담장에 그려진 벽화는 터키를 그려내고 있고, 학교 앞으로 가까이 가면 아이들을 위한 각종 동물들이 재미있게 묘사되어 있었다. 학교 앞 분식집에도 재미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붙들고는 했다. 더구나 서호초등학교 앞 공원을 앙카라학교공원으로 명칭을 바꾸어 새롭게 조성 중이었다.

 

 

서둔동 341-5 일대에 조성중인 앙카라학교공원은, 이제 수원의 또 다른 명소로 자리를 잡고 있다. 우선 이곳 학교공원 옆으로는 서호천이 흐르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즐겨 산책하는 곳이다. 앙카라학교공원은 터키를 기념하기 위해 많은 나무들을 심어 녹지화 시킨다는 방침을 세우고 녹화사업을 하고 있었다.

 

앙카라학교공원에는 조형소나무 외 74, 관목인 개쉬땅나무 외 6,300, 감국 외 15,050본과 둥근소나무 등 교목이식이 92, 사철나무 외 관목이식이 90주에 시설물 등을 조성해 녹지공간으로 꾸며졌다. 10일 찾아간 앙카라학교공원에는 보지 못했던 조형물까지 세워져 있다. 아직 날이 쌀쌀한데도 공원 뒤편으로 흐르는 서호천 산책로에는 사람들이 걷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수원 유일한 스토리텔링이 있던 앙카라 길

 

앙카라는 터키의 수도이며 앙카라 길은 한국전쟁 당시 터키군이 서둔동 옛 농촌진흥청 건물에 주둔하며 '앙카라 학원'을 세워 전쟁고아 640여 명을 돌보는 등 지원 활동을 전개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한 도로명이다. 지난 해 수원시는 '앙카라길(Ankara-gil)' 명예도로명 사용 기한을 202210월까지 5년 연장했다고 밝힌바 있다.

 

앙카라 길은 수원에서 유일하게 스토리텔링을 갖고 있는 길이다(짧은 구간으로는 행궁동에도 존재한다) 요즈음 무작위로 지역과는 아무런 연관도 없는 벽화를 그려대는 것을 보면서 우려를 금치 못하겠다. 왜 많은 예산을 들여 벽화작업을 하면서 그 지역과 연관되는 그림을 그릴 수 없는 것일까? 대답은 간단하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연구를 하지 않았거니 그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이란 생각이다.

 

벽화작업은 마을을 변화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전국에 많은 벽화골목이 조성되고 있으며 지자체마다 그 벽화를 이용해 관광자원을 만들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하지만 스토리텔링이 없는 벽화는 그저 그림일 뿐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다. 벽화의 수명이 고작 2~3년으로 끝나는 이유는 바로 스토리텔링의 부재라고 생각한다.

 

 

앙카라 길 벽화 새로 조성해야

 

앙카라 길의 벽화를 만나기 위해 찾아갔다가 마음만 아프다. 벽화는 모두 색이 바라 지워져 구분조차 할 수 없고 몇 몇 곳의 벽화도 지저분하다. 서호초등학교를 향해 걷다보니 그동안 앙카라 길을 상징하던 벽화가 그려졌던 곳은 벽화가 그려졌던 담을 헐어내고 새로 신축한 다세대 주택들이 들어서 있다.

 

초등학교 정문에서 좌측길로 접어든다. 예전에 보지 못했던 벽화들이 곳곳에 그려져 있다. ‘권선한마음봉사단 열한 번째 스토리란 글이 한편에 작게 쓰여 있다. 2014년도에 이 그림을 그렸으니 이 그림도 그린지가 꽤 오래다. 하지만 이 길은 앙카라 길이 아니다. 정작 앙카라 길의 벽화들은 이미 다 지워지고 사라진 상태이다.

 

수원에서 유일하게 스토리텔링을 갖고 있던 앙카라 길의 벽화. 이렇게 더렵혀지고 색이 바라져 버린 벽화그림을 혹여 터키 사람들이라도 찾아와 본다면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 전쟁 통에 이 지역의 고아들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고아원까지 세웠던 것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한 길과 벽화들인데, 어디에도 흔적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앙카라 길의 벽화그림은 다시 조성해야 한다. 우리를 도와준 것을 기념하기 위한 도로라면 그 도로에 걸 맞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 다만 짧은 구간이라도 그림은 정비가 돼야 하고 이 곳을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이 길의 의미를 생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찾아간 앙카라 길에서는 봄의 희망이 보이질 않는다.<수원복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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