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등은 언제부터 시작이 되었을까? 전하는 말에 의하면 부처님이 영취산에 계실 때 난타라는 가난한 여인이 있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께 등을 받쳤는데 지극한 정성과 발원으로 바친 난타의 등불만이 다른 모든 등불들이 꺼진 후에도 홀로 밝게 빛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본 부처님께서 난타의 지극한 정성을 알고 "이 여인은 등불공양의 공덕으로 성불할 것이며 수미등광여래라 할 것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그 때부터 연등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연등은 불교초기부터 있었던 것으로 동진의 승려인 법현이 인도를 다니면서 쓴 구법기행기(339-414)에도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연등에 관한 기록이 보인 것은 신라 경문왕 6(866)과 진성여왕 4(890) 정월 15일에 황룡사로 행사하여 연등을 켜고 꺼지지 않고록 간등(看燈)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진흥왕 때는 팔관회와 함께 연등회가 열렸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연등의 습속은 매우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불교에서는 육법공양이라는 것이 있다. 육법공양(六法供養)이란, ()과일쌀의 여섯 가지 공양물을 부처님께 올리는 의식으로, 그 공덕을 시방 삼세 일체중생에게 회향하여, 나와 모든 사람들이 함께 해탈하기를 간절히 발원하는 의식이다. 그 중 두 번째로 올리는 등()반야등(般若燈)’이라고 부른다.

 

 

지혜를 상징하는 반야등

 

육법공양 중 반야등은 지혜를 상징한다. 사람에게 지혜가 없다면 마침 암흑에서 생활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혜가 있는 사람은 인생을 참되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인생살이에서 지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지혜를 가진 사람은 세상을 밝게 비칠 수 있도록 등을 올린다는 것이다. (, 혹은 초)은 자신을 태워 세상을 밝히는 역할을 한다. 그렇게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와 깨달음을 얻기 위해 등을 밝힌다. 연등은 바로 그런 의미로 밝히는 것이다.

 

불기 2561년 부처님 오신날을 기념하기 위한 수원연등축제가 화성행궁 광장과 정조로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는 수원시 연등회보존위원회가 주관하였는데, 오전 11시부터 행궁광장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전시 및 체험행사가 열렸다. 주말을 맞아 가족나들이를 나온 많은 사람들이 동참한 전통문화한마당은 하루 종일 사람들이 체험마당에서 즐기는 모습들이다.

 

오후 530분부터 행궁광장에 마련된 특별무대에서 진행된 봉축법요식을 시작으로 연등행렬까지 이어진 이날 수원연등축제는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동참하여 근래에 보기 드문 성황을 이루었다. 오후 7시부터는 2부 봉축문화제가 열리고, 3부는 점등 및 연등행렬로 이어졌다. 연등행렬은 화성행궁을 출발해 팔달문과 장안문을 돌아 다시 화성행궁으로 돌아오는 정조로에서 거행됐다.

 

 

거리를 메운 인파 함께 걷기도

 

오후 8시가 되어 행궁 광장을 출발한 연등행렬은 행궁광장을 벗어나 팔달문으로 향했다. 맨 앞에는 풍물패가 행렬을 인도하고 그 뒤를 스님들 - 청련암 - 수원포교당(수원사) - 봉녕사 - 용광사 - 정혜사 - 유가심인당 - 팔달사 - 용화사 - 대승원 - 베트남불자회 - 공무원불자회 - 경기불교문화원 - 보현선원 등으로 이어졌다.

 

팔달문을 돌아 다시 장안문을 향한 행렬은 정조로 넓은 도로를 꽉 메웠다. 차량의 통행이 금지된 이곳은 시민들이 팔달문 앞에 나와 사진촬영을 하기에 바쁘다. 평소에는 팔달문 인근으로 출입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 이렇게 연등행렬을 보니 예전에는 이 연등회가 정말 대단했을 듯합니다. 마침 주말이라 아이들과 함께 나왔는데, 저는 불자가 아니라고 해도 이런 광경을 본다는 것만으로도 즐겁네요. 이런 행사는 지역축제로 만들어도 상당히 의미있을 듯합니다

 

권선동에서 나왔다는 신아무개(, 44)씨는 연등축제가 정말 장관이라고 하면서, 이런 멋진 축제를 더 키워나갔으면 좋겠다고 한다. 행궁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하루를 온전히 즐긴 연등축제. ‘차별없는 세상, 우리가 주인공이라는 행사의 부제답게 그런 세상이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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