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이자 국가사적 제3호인 수원화성에는 모두 3개소의 공심돈이 있었다. 보물로 지정된 서북공심돈과 팔달문과 남수문 사이에 유실된 남공심돈, 현재 남아있는 또 하나의 공심돈인 동북공심돈이다. 동북공심돈은 연무대와 동문인 창룡문 사이에 세워져 있다. 둥근 원형으로 조성을 한 동북공심돈은 성곽 안으로 들어와 성벽의 여장과 사이를 두고 조성하였다. 작은 문을 통해서 들어갈 수 있는 동북공심돈은 통로가 나선형으로 위로 오르게 되어있어 소라각이라고도 부른다.

 

세계문화유산 화성 가운데서도 가장 특별하게 조성된 동북공심돈. 동북공심돈은 기단석은 돌로 놓고 그 위에 벽돌을 이용해 축조를 하였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우측으로는 잠겨 있는 곳이 있다. 아마도 무기고 인듯하다. 그리고 좌측으로는 공심돈 위로 오르는 나선형의 통로가 있다. 맨 위에는 역시 전각을 지었는데 사람들이 올라 주변을 살피고는 했다.

 

지금은 출입할 수 없는 동북공심돈은 수원 화성의 또 하나의 작은 고성(古城)이다. 화성을 돌아보면서 만날 수 있는 많은 구조물 중 이렇게 독단적으로 조성된 구조물이 상당히 보인다. 화성만이 갖고 있는 공심돈은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화력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층마다 개인 화기인 불랑기를 지참한 병사들이 공심돈 안에서 쏘아대는 화포만으로도 근접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만큼 견고한 구조물이 바로 공심돈이다.

 

 

공심돈 위에서 보는 화성은 절경

 

공심돈 위로 오르면 주변이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화성의 공심돈을 처음으로 짓고 난 당시에도 이렇게 공심돈의 위에 올라 주변을 살폈을 것이다. 그리고 나선형으로 돌아 오르는 길 벽면에는 총안이 나 있다. 주변 어디로도 적을 공격할 수 있도록 만든 천혜의 작은 요새이다. 공심돈은 그렇게 그 자리에서 창룡문과 동장대(연무대)를 지키는데 일조를 했을 것이다.

 

동북공심돈은 정조 20년인 1796719일에 완공되었다. 화성은 그 짜임새나 둘레에 비해 빠른 공정을 보이고 있는 것 또한 특이하다. 아마도 많은 기물을 사용하여 축성을 하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금은 들어갈 수 없는 서북공심돈과 마찬가지로 동북공심돈도 일반인들의 출입을 재한하고 있다. 나선형의 통로를 따라 위로 오를 수 있었던 동북공심돈. 개방을 했을 당시 그 위에 올라 주변을 살펴본 적이 있다. 모든 것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공심돈 위에서서 주변을 돌아보며 당시에도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이 공심돈 하나를 갖고도 화성은 천하무적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공심돈을 축조할 수 있었던 당시의 선조들이 그저 감사할 뿐이다. 전쟁을 하기 위한 성곽이지만, 그 아름다움에 빠져 길을 떠나지 못한다. 동북공심돈 위에 서면 성 밖은 물론 성 안의 연무대, 창룡문 등과 멀리 멀리 주변이 모두 내려다보인다. 오직 수원화성에서만 만날 수 있는 공심돈. 이 아름다운 구조물의 막강한 화력을 얼마나 대단했을까?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

 

총안으로 빛이 들어오게 만든 과학적 구조

 

동북공심돈은 노대의 서쪽 60보쯤 되는 거리에 자리한다. 성탁(城托)의 위 성가퀴 안에 요동(遼東)에 있는 계평돈(平墩)을 본떠서, 벽돌로 쌓아서 둥그렇게 돈()을 만들었는데 겹으로 둘렀다.

 

동북공심돈의 높이는 175, 바깥 원 둘레 122 , 벽돌로 된 부분의 두께 4, 안쪽 원 둘레 71, 내원과 외원 사이에 가운데 45촌의 공간을 비워두고, 2층 덮개판으로 둘렀다. 아래 층 높이는 73, 가운데 층 높이 65촌인데, 모두 군사들의 몸을 숨길 수 있게 하였다.

 

바깥쪽으로 총안을 뚫어서 밝은 빛을 끌어들이는 구실을 겸하게 한 것도 봉돈의 또 다른 고학적 방법이다. 위 구멍은 26, 아래 구멍은 14[사방 각각 1]이다. 위아래 덮개판 위는 진흙과 회를 섞어 쌓았다. 아래 층 공심에서 구불구불한 벽돌 사닥다리를 거쳐 위로 올라가면 위층에 이르게 되어 있다.

 

그 규모는 기둥 6개를 세웠는데 길이 12척이고 너비 10척이며, 단청은 3토를 사용하였다. 평평한 여장을 둘렀는데 높이 5, 위아래에 포혈 23개와 누혈 6개를 뚫어 놓았다. 아래 층 안 쪽에는 벽돌로 만든 홍예 모양의 작은 문을 설치하였다. 또한 문 동쪽으로 공심을 막아서 온돌 한 간을 지어 놓았는데 방안(方眼)을 창으로 삼아 군사들이 출입하게 하였습니다.

 

공심돈의 기능은 또 다른 작은 요새

 

지난 날 공심돈이 관광객들에게 공심돈 안까지 출입을 허용했을 때 몇 번인가 공심돈 위까지 오른 적이 있다. 그 당시 공심돈 안을 꼼꼼하게 촬영해두고 몇 번은 위 정자까지 올라 주변을 돌아보기도 했다. 공심돈 안 소라모양의 계단과 복도를 지나 위로 오르는 작은 직사각형의 출구를 벗어나면 정자에 오른다.

 

공심돈의 상부에 정자를 지어 비를 피할 수 있게 만든 것도 수원화성이 얼마나 대단한 성인가를 알 수 있다. 그 당시 위에 올랐을 때는 관광객들에게 출입이 허용되어 꽤 많은 사람들이 정자위에 올라 주변을 돌아보면서 감탄을 하고는 했다. 한 마디로 공심돈 그 자체만으로도 요새와 같고 대단한 작품이라는 평을 했다.

 

밖에서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에 정말 놀랐습니다. 소라각이라는 이름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고요. 정말 수원화성은 단순히 성을 축성했다기보다 거대한 자연에 조성한 미술품이라는 말이 어울릴 것 같습니다. 성에 조성한 구조물 하나하나가 모두 대단한 아름다움이라고 생각듭니다

 

당시 동북공심돈을 함께 올랐던 일본인 관광객이 한 말이다. 우리나라를 자주 들린다고 하는 이 사람은 통역을 통해 수원화성을 칭찬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조금도 빈틈이 보이지 않는 대단한 성이라고 하면서 한국에 나올 때마다 수원화성을 들리고는 하지만 볼 때마다 새로운 것을 느낀다고 한다. 그만큼 호성에 푹 빠져들었다고 한다. 우구나 화성을 돌아보면 빠져들 수밖에 없다고 하는 관광객들. 그들의 칭찬이 아니라고 해도 수원화성은 역시 대단한 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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