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9년부터 1835년까지 56년간이나 선교사 없이 자신들의 조국에 복음의 씨를 뿌린 한국평신도들은 마땅히 한국천주교회창립자들이라고 해야 한다

19841014,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요한바울로 2세가 한 말이다.

 

지난 11일 아침, 비가 뿌린다. 가을비는 을씨년스럽다. 날도 우중충한 것이 바깥출입을 하기에는 적당치 않은 날씨지만 장애가족 추천여행지를 알아보기 위해 빗길에 광주시 퇴촌면 천진암로 1203(우산리)에 소재한 한국천주교의 발상지 천진암 성지로 향했다.

 

 

가을이 깊어가는 천진암 성지

 

천진암으로 들어가는 길 양편에는 이곳 계곡이 유원지임을 알리듯 각종 음식점들과 카페, 웨딩촬영장 등이 자리하고 있다. 천진암 입구에 도착하니 주차장 앞에 높다랗게 지은 건물이 버티고 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천주교의 발상지인 성지 앞을 막아 저렇게 건물을 지어놓은 것일까? 아무리 자신의 땅에 지은 것이라고 해도 이해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성지에 저런 건물을 세웠어야 했을까?

 

주차장에 차를 대고 입구 안내소를 찾아가니 안내를 하는 신부님이 방명록에 기록을 하라고 한다. 방명록을 적고나서 장애인들이 이동하기에 불편하지 않는가?”를 물으니 성모성당 앞까지 버스가 올라가기 때문에 그곳까지는 큰 불편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강학단지 등은 휠체어를 타고 들어가기는 무리라는 대답이다.

 

그래도 이곳이 한국천주교 발상지이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이기 때문에 경사진 도로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천진암 성지는 입구에 광암성당이 자리하고 있고 도로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면 성모성당과 천진암박물관, 성모상 등이 있다. 가을이 깊어가는 천진암 주변으로는 비가 그치면서 물안개가 피어올라 신비스럽기조차 하다.

 

천진암으로 오르는 길은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길 양편에 붉게 잎을 물들이고 있는 단풍이며 길가에 노랑꽃을 피운 소국이 천진암을 찾아 온 손을 맞이한다. 비가 그쳤다고는 하나 날이 쌀쌀하다. 하지만 그런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다. 광주시 퇴촌면과 남종면 일대를 돌아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꽤 오래전에 다녀온 천진암이라 만나는 모든 것이 낯설지만 그래도 옛 기억을 다듬어 본다.

 

 

한국천주교의 발상지 천진암

 

천주교는 처음 남인계 학자들의 강학을 통한 유교 경전 한역 서학서를 중심으로 연구가 되면서 다산 정약용의 여유당 전서 목민심서를 기초로 1779(정조3) 겨울 앵자봉 기슭에서 학자 이벽의 천학소개와 논증을 통하여 이승훈, 정약용 등 10명의 당대학자들의 우주만물의 진리탐구토론의 학문모임으로 출발했다가 천주교의 교리를 깨닫고 진리실천 선봉의 종교 수련회로 변한 천주교 전파의 발상지이다.

 

천진암터를 정비할 때 놋쇠향로 1(높이 15cm, 둘레 45cm), 사기 그릇 1, 글씨가 새겨진 기왓장 조각 등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현재 이곳에 100년 계획에 의거 천주교 대성당 건립이 추진되고 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천주교 대성당 건립 모형도가 있어 이곳이 한국천주교의 중심이 될 것을 예고하고 있다.

 

학자 이벽(1754 영조 30 ~1786 정조 10)1777(정조1)년 권칠신, 정약전 등의 서학 토론회에 참석한 뒤 천주교에 관심을 기울여 친척 이승훈에게 부탁하여 중국에서 서적을 구입해 구독하고 남인들 사이 동지를 규합하여 천주교의 선교에 투신하였으며 이승훈에게 영세를 받아 지도자가 되었다.

 

1785(정조 9) 신도 김범우 통역관의 집으로 자리를 옮겨 천주교를 더욱 발전시켰으며 1785년 을사년 첫 박해를 받기 시작해 1885년 말까지 100년간의 잔혹한 박해를 이겨내면서 오늘날 한국천주교회로 발전시키는 거처가 되었다. 천진암 성지는 그런 한국천주교 신앙의 발상지이며 국내 최초의 본거지로 그 의미가 깊은 곳이다.

 

그 어려운 박해를 이겨내고도 천주교를 전파해 온 많은 선현들의 묘가 자리하고 있는 천진암. 이곳에 들렸다는 것만으로도 가슴 한 구석에 알지 못할 뜨거운 기운이 솟는 듯하다. 천진암을 떠나면서 둘러 본 인근의 산은 어느새 가을이 물들어가고 있어 붉은 기운이 여기저기 물감을 뿌린 듯하다.

 

 

꽃그령이 하늘거리는 팔당 물안개공원

 

꽃그령은 길가나 빈터, 풀밭에서 흔하게 자라는 식물이다. 여러 해살이 풀로 꽃은 8~9월에 피고 원뿔모양꽃차례는 길이 20~40cm이며 가지는 1개씩 달려서 퍼지고 털이 없으며 꽃자루 윗부분에 황색 ()이 있다. 꽃그령이 작은 바람에도 꽃대를 날리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천진암이 소재한 퇴촌면에서 차로 15분 정도면 광주시 남종면에 도착한다. 남종면은 팔당호를 끼고 있어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다. 남종면 면 소재지를 지나면 팔당호를 따라 목책산책로가 이어진다. 휠체어로 이동이 가능한 이곳은 가을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팔당호에 뿌리를 내린 연꽃을 바라보고는 한다.

 

이곳에 마련한 물안개공원은 상당히 넓은 주차공간을 갖고 있다. 차를 주차장에 대놓고 물안개공원을 따라 들어가면 비가 온 뒤 쌀쌀한 가을날씨에도 걷기가 좋은 길이 있다. 한편으로는 팔당호의 물과 연잎들이 손을 반기고 한편으로는 꽃그령 무리가 손짓을 한다. 그저 이곳에 난 산책로를 천천히 걷기만 해도 힐링이 된다.

 

 

충주 탄금대까지 이어지는 팔당호

 

팔당호는 두물머리부터 시작해 충주 탄금대까지 이어지면서 팔경을 만들어 낸다. 1경은 양평 두물머리, 2경은 광주시 억새림, 3경은 여주시 이포보, 4경은 여주시 물억새군락지 자연형 어도, 5경은 여주 남한강의 황포돛배. 6경은 단양 쑥부쟁이, 7경은 충주와 원주의 경계를 잇는 농암리섬, 8경은 충주 탄금대이다.

 

이렇게 팔달호 팔경을 자랑하는 한강을 따라 걸을 수 있는 팔당 물안개공원. 팔당호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연꽃의 커다란 잎들도 어느새 가을을 입고 있다. 천천히 변색이 되어가고 있는 연잎들을 바라보며 서편에 점차 숨어들고 있는 노을을 바라다보고 있노라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팔당 물안개공원을 한 바퀴 돌아 시간의 여유가 있다면 남종면 분원리에 소재하고 있는 분원백자관과 얼굴박물관 등을 돌아볼 수도 있다. 남종면 소재지인 분원리에는 붕어찜이 유명하다. 이곳에서 팔당호를 바라보며 석양에 붕어찜 한 그릇을 놓고 벗과 술 한 잔 할 수 있다면 이보다 즐거운 일이 있겠는가? 팔당호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와 어우러지는 물안개공원 저 멀리 발길을 재촉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시간이 꽤 흘렀나보다.

수원복지신문 한미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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