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정리된 능침,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힐링

 

가을은 남성의 계절이라고 했던가? 적어도 나에게 가을이란 여행하기 좋은 계절이다. 늘 답사를 다니는 나로서는 그 이상의 계절이라는 의미는 무의미하다. 다만 많이 걸어도 땀이 덜 흐른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가을은 바람직한 계절이다. 그런 계절을 이용하지 않는다면 나만 손해라는 생각이다.

 

매주 목요일마다 돌아보는 인근지역 답사. 얼마 안 있으면 수원화성문화재도 열리고, 정조대왕의 능행차가 서울서부터 시흥, 수원, 화성까지 이어지며 전 구간에서 시연된다고 한다. 정조대왕과 사도세자의 능까지 이어질 능행치 생각에 가까운 곳에 소재한 사적 제195호인 효종대왕능을 찾았다. 효종대왕능은 여주시 능서면 왕대리에 소재한 세종대왕능인 영능(英陵) 옆에 자리하고 있다. 세종대왕능은 세종대왕과 소현왕후의 합장능이고 영능(寧陵)은 제17대 효종과 그 비 인선왕후(仁宣王后)의 능이다.

 

 

벌써 한 이태는 지났을 듯하다. 여주에 잠시 거주하고 있을 때는 오가는 길에 늘 들렸던 곳이다. 2년 만에 찾아간 효종대왕능도 주변이 변했다. 재실 바로 앞에 있던 주차장이 멀찌감치 떨어져 나왔고, 앞에는 매표소가 자리하고 있다. 좁던 주차장도 여러 대의 차를 주차할 수 있도록 공간을 넓혔다.

 

그동안 문화재 답사를 하면서 입장료만 해도 상당한 금액을 지출했다. 대개의 문화재가 입장료를 받기 때문이다. 요즈음은 경노우대라고 하여 웬만한 곳은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돈을 내지 않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나도 나이를 먹었다는 점이 괜히 씁쓸해진다. 아직도 돌아볼 곳이 지천이기 때문이다.

 

 

보물로 지정된 효종대왕능 재실

 

효종대왕능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이 바로 재실이다. 효종대왕능의 재실은 보물 1532호로 지정되어 있다. 일제치하와 6,25 한국동란을 거치면서 많은 능의 재실들이 소실되기도 했는데 효종대왕능의 재실은 원형 그대로를 보관하고 있는 곳이다. 이곳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뿐만이 아니다. 재실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전각에서 보이는 담장 밖 굴뚝이 효종대왕능 재실에는 보이지 않는다. 이유는 바로 재실 외벽을 심벽으로 조성하고 그 심벽 안으로 연도를 냈기 때문이다. 재실 외벽 곳곳에 기와 몇 장을 포개놓은 곳이 보인다. 이 기와가 바로 굴뚝 역할을 하는 것이다. 능침 어디를 보아도 이런 조성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이 하나 만으로도 사람을 들뜨게 한다.

 

재실 담장 안에는 수백년 묵은 회양목 한 그루가 서있다. 바로 천연기념물 495호로 지정된 회양목이다. 일반적으로 회양목이 거목이 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효종대왕능 재실 회양목은 크기도 크거니와 수령이 이미 300년 이상이나 되었다고 한다. 그 앞에는 보기에도 엄청난 거목들이 담장과 함께 늘어서 있어 전각의 멋을 더하고 있다.

 

 

북벌을 꿈꾼 효종대왕

 

숲이 우거진 길을 따라 능침으로 오르다보면 좌측으로 작은 내를 건너가는 길이 나온다. ‘왕의 숲길이라는 이 길은 세종대왕의 능과 연결이 되는 숲길이다. 그저 타박타박 걸어가면 좋을 이 길은 주변에 물이 흐르고 나무들이 우거져 있다. 숲을 걷는 것 하나만으로도 힐잉이 되는 길이다.

 

앞에 홍살문이 보이고 그 뒤로 정자각과 능침이 보인다. 효종대왕능의 정자각은 최근에 해체보수 하였다. 정자각을 앞에 두고 좌측에는 2006년에 발굴조사 후 복원한 수라간이, 우측에는 수복방이 있다. 그 앞을 보면 참도에 놓인 금천교를 건너게 된다. 효종대왕능의 금천교는 홍살문 안에 자리하고 있어 색다르다. 대개 능원의 금천교들이 홍살문 밖에 자리하기 때문이다.

 

 

대군시절 형인 소현세자와 함께 청에 볼모로 잡혀가 8년간 생활한 효종대왕. 그곳에서 살면서 효종은 늘 북벌을 마음먹었다. 효종의 북벌의지는 정예화 된 포병 10만명을 길러 기회가 있을 때 오랑캐들을 공격할 것이며 이 일은 10년 안에 추진할 것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하기에 효종대왕은 재위기간 동안 늘 북벌을 꿈꾸면서 전란으로 피폐해진 민심을 달래는데 노력하였다.

 

효종대왕은 군사훈련을 강화하고 경제적으로는 대동법을 실시하였다 또한 상평통보를 널리 쓰이게 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는데 효종대왕의 머릿속에는 강한 나라를 만들어 북벌을 하겠다는 의지로 꽉 차 있었다. 하지만 41세의 젊은 나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북벌의 의지는 계획으로만 남게 되었다.

 

가을초입에 찾아간 여주 효종대왕능. 곳곳에 보수공사를 하느라 조금은 관람에 불편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렇게 보수를 하지 않으면 영원히 못 볼 수도 있는 것이 바로 문화재이다. 잠시의 불편을 참는 것은 우리의 후손들에게 영원히 물려주기 위함이다. 이 가을이 가기 전 더 많은 곳을 돌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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