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길 노란단풍 낙엽으로 일품

 

어린이들이 은행나무 잎을 한가득 들고 공중에 뿌린다. 햇볕을 받아 반짝이며 날리는 은행잎이 아름답다. 붉은 단풍나무 길을 걸으며 무슨 이야기가 그리 재미있는지 연신 웃음을 짓는 연인들의 모습이 아름답다. 나이가 지긋한 노부부가 손을 잡고 서호 주변을 걷는 모습 또한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9일 오후, 서호 주변에 소재한 웨딩팰리스에 일을 보러갔다가 들린 서호. 조금은 이르게 찾아온 철새들이 까맣게 호수위에 내리 앉았다. 그 중 몇 마리는 물장구를 치며 비상을 한다. 한 옆 어도에도 새끼철새들이 한가롭게 물놀이를 하고 있다. 어도 앞에는 철새를 만지거나 가까이 가지말라AI방역 주의 현수막이 걸려있다.

 

서호는 낙조가 유명하다. 하지만 한 낮에 만나는 서호 역시 또 다른 멋이 있는 풍광을 만들어 낸다. 가을이 깊어가는 요즈음 서호 주변 산책로에는 한 낮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걷고 있다. 깊어가는 가을을 즐기기 위함인가보다. 시야에 들어오는 풍경마다 저마다 다른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는 곳이 바로 서호가 아니던가?

 

 

다양한 단풍을 즐길 수 있는 서호

 

가을은 사람들을 어디론가 떠나고 싶게 만든다. 가을의 아름다운 풍광을 매년 여행을 하면서 보아오던 나로서는 가을만 되면 역마살이 도지는 듯하다. 그런 여행을 떠나지 못해도 참을 수 있는 것은 가을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수원엔 지천에 널려있기 때문이다. 가는 곳마다 가을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서호공원에도 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앉아 가을을 즐기고 있다. 서호 주변으로 난 산책길을 따라 걸어본다. 서호 주변으로 붉은 단풍과 건너편에 꽃을 피우고 있는 붉은 장미가 묘한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가을이라고 하지만 한 낮의 날씨는 종잡을 수 없다. 조금 빨리 걸으면 이마에 땀이 맺히기 때문이다.

 

단풍이 물든 길을 걷는 사람들의 표정이 한 없이 여유로워 보인다. “안녕하세요. 카메라를 들고 계시는 것을 보니 작가신가 보내요?” 곁을 걷던 한 사람이 말을 건넨다. “작가는요. 그냥 가을이 좋아서 사진 몇 장 찍으려고요물음에 대답을 하면서도 어딜가나 카메라로 인해 받는 질문이라 늘 같은 대답을 하고 있는 내가 조금은 우습기도 하다. 차를 타도 같은 질문을 늘 받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들에게는 내가 기사를 쓰는 기자이기보다는 사진을 찍는 작가로 보였는가 보다.

 

 

서호에 얽힌 옛 이야기 발가벗고 삼십리

 

서호를 한 바퀴 돌아볼까 하다가 멀리서 건너편 아파트 방향의 단풍을 담아내고 발길을 돌렸다. 이왕 이곳을 온 김에 몇 번이고 찾아갔어도 가을 경치를 보지 못한 여기산선사유적지를 걷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기산선사유적지를 보기 위해 길을 되돌아 나오다가 보니 안내판이 하나 보인다. ‘발가벗고 삼십리라는 이곳 서호에 얽힌 전설이 적힌 안내판이다.

 

수원사람 발가벗고 삼십리 뛴다라는 말이 생겨난 곳이 바로 서호공원이라고 한다. 대다수의 수원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을 이 이야기는 한 효자가 떡전거리라고 하는 병점에 살았는데 조상의 묘 관리도 잘하고 부모님께도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언제부터인가 친구들의 권유로 기방을 드나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수원부중 축만제가의 행화촌(=술집)에서 기생과 술을 마시다 잠이 들었는데 그날이 선친의 제삿날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제사를 지내야 된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의관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서호에서 병점까지 뛰어 겨우 부친의 제사를 모실 수 있었다는 것이다. 서호에서 병점까지의 거리가 삼십리이기 때문에 선비가 의관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뛴 이 효자를 보고 후일 수원사람 벌거벗고 삼십리 뛴다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술을 마셔본 사람은 알겠지만 술을 마신 후 조금 깨어났다고 해서 삼십리를 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효의 도시 수원에 사는 사람이기에 가능했다고 전해지는 이야기라새삼 효를 다하지 못하고 산 스스로가 부끄럽다. 단풍이 아름답게 물든 서호주변을 걷다보니 이런 이야기 한 자락도 만날 수 있다. 그래서 이 가을 날 깊은 단풍을 만나러 서호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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