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동 고성주씨 올해도 백가반이웃과 나눠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백가반(百家飯)>제삿밥을 나누어 먹는 옛 풍속을 답습한 것이라 하였으며 오곡밥(, 보리, , , 좁쌀을 넣어 지은 밥)5라는 길수(吉數)가 무한대의 긴 것을 나타내고 밥이 인간의 수명을 지속하게 하는 중요한 양식인 만큼 여러 집의 밥을 먹음으로써 여러 사람의 명을 빌려 수명을 연장하고자 하는 염원에서 생긴 행위로 보고 있다.

 

정월 대보름 아침이면 아이들이 조리나 작은 소쿠리를 들고 이웃집을 돌아다니며 오곡밥을 한 숟갈씩 얻는다. 속설에 타성 백 집의 밥을 먹어야 좋다고 하기 때문이다. 백 집 밥을 먹지 않으면 어린아이가 봄에 발병하고 몸이 마른다고 한다. <동국세시기>에도 봄을 타서 살빛이 검어지고 야위는 아이는 백가반을 빌어다가 절구에 올라타 개와 마주앉아 개에게 한 숟갈 먹인 다음에 자기도 한 숟갈 먹으면 다시는 그런 병이 도지지 않는다는 기록이 있다.

 

정얼 대보름의 행사는 일 년의 많은 절기 행사 중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행사가 정월 대보름을 전후해 이루어지는 것은 새해를 시작하는 절기이기 때문에 그만큼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수원의 각 주민센터나 단체, 전통시장 등도 보름을 전후해 각종 행사를 펼침으로써 일 년의 평안을 도모하고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매년 <백가반>을 나누어 주는 사람

 

팔달구 지동에 거주하는 고성주씨는 매년 정월 보름이 되기 며칠 전부터 분주해진다. 정월 대보름에 백가반을 지어 이웃과 나누기 위해서이다. 지난해는 200명분을 지어 나누었는데 올해는 150명 분 정도를 준비한다고 말한다. 그만큼 경제가 어렵기도 하지만 백가반을 나눌 수 있는 어른들 중 상당수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28, 고성주씨 집안이 온통 참기름의 고소한 냄새로 찼다. 백가반을 준비하기 때문이다. 9가지의 나물과 각종 김치 등 모두 13가지나 되는 대보름 음식을 준비한다. 그것도 자신이 먹을 것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나누기 위해 준비를 하기 때문에 소홀히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나물을 무치고 볶고 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정성을 필요로 한다.

 

대보름에는 나물 9가지와 각종 김치 3가지 그리고 김과 오곡밥 등을 용기에 담아 전해드리죠. 대보름 음식인 백가반을 준비하는 것도 만만치 않아요. 이웃과 나눌 것이기 때문에 가장 좋은 재료를 사용해야 하거든요

 

고성주씨가 나물을 무치면서 연신 맛을 보며 하는 말이다. 말이 150명분이지 그 양을 보아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그 많은 것을 척척 무쳐내는 모습을 보면서 40년 넘게 이웃과 나눠왔기 때문에 그 손에 얼마큼의 정성이 깃들어 있을지 가늠이 간다. 그렇게 준비한 것을 용기에 담는 일만해도 만만치가 않기 때문이다.

 

 

오곡밥은 일일이 시루에 쪄내

 

일반적으로 오곡밥은 대보름에 먹는 시절음식이다. 하지만 고성주씨는 매년 대보름 하루 전에 오곡밥을 시루에 찐다. 오곡밥은 시루에 쪄야 제 맛이 난다는 고성주씨의 고집 때문이다. 집안에서 전해 내려오는 전통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고성주씨의 고집을 막을 사람은 없다. 하지만 밥통에서 쪄낸 오곡밥과 시루에 쪄낸 오곡밥은 맛의 차이가 난다. 시간이 걸려도 고집스럽게 시루에 오곡밥을 쪄내는 이유이다.

 

준비를 마치면 일일이 용기에 나물과 김치, 오곡밥을 담아낸다. “정월 대보름에 오곡밥을 먹어야 추운 겨울동안 허해진 체력을 보강하고 이렇게 오곡밥을 지어 먹어야 그 해에 풍년이 든다고 해요. 그래서 매년 이렇게 오곡밥과 나물을 준비해 이웃과 나누는 것이죠나눔에는 뜻이 있어야 한다. 그 전해지는 오곡밥과 나물에 대한 전통을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란다.

 

오곡밥에 대한 설화는 고려시대 일연의 삼국유사 권1 기이 사금갑조>에 보이고 있다. ‘신라 21대 소지왕이 경주 남산기슭의 천천정(天泉亭)이라는 정자로 행차를 하던 중 까마귀가 날아와 봉투 하나를 떨어뜨리고 갔다. 봉투를 열어보니 "금갑을 활로 쏘라"고 적혀있었다. 왕이 궐로 돌아와 글대로 금갑을 쏘니 금갑 안에서 왕비와 역모를 꾀하고 있던 신하를 발견한 것이다. 소지왕은 까마귀를 만난 날을 기념하기 위해 까마귀 제삿날로 정하고 오곡밥을 지어 제사를 지냈다는 것이 오곡밥을 지어먹게 된 유래라고 한다.

 

설화와 어떻게 전해지던지 정월 대보름이 되면 겨우내 움츠렸던 몸을 건강하게 만들고 새로운 한해를 열어가기 위해 많은 행사와 백가반이라는 시절음식으로 한해를 시작한다. 그 한해를 이웃과 나누기 위해 음식을 준비한 고성주씨가 있어 지동의 어른들은 올 한해도 건강을 잃지 않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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