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성 진위논란 잠재울 결정적 증거로 밝혀져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상안리 산32번지에는 사적 제217호인 '당성(唐城)'이 자리하고 있다. 이 당성이 소재하고 있는 남양 지역은, 신라 경덕왕 때는 '당은군'이라 불린 중국과의 교통 요지였다. 신라 후기에는 이곳에 '당성진'을 설치하여 청해진과 함께 신라 해군의 근거지로 삼은 중요한 곳이었다.

 

당성은 계곡을 둘러쌓은 포곡식 산성이다. 성은 남북으로 기다란 네모에 가까운 형태를 하고 있다. 현재 당성은 동문과 남문, 북문 터와 우물터, 건물터가 남아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당성은 현재 복원 중이다. 성을 한 바퀴 돌다가 보니 세 곳 정도로 나누어서 복원을 하고 있는 듯하다.

 

 

 

당성은 화성 남양반도의 서신, 송산, 마도면의 3개면이 교차되는 중심부 가까이 위치한 구봉산에 자리하고 있다. 동남향으로 경사진 계곡을 이용하여 석루를 돌려 축성을 하였다. 전장이 1.148m 정도가 되는 이 당성은, 처음에는 백제의 영역이었다가, 한때 고구려의 영토로 당성군이라 불렀다.

 

후일 신라가 이 지역을 점령하게 되자 당항성이라 했다. 바다를 건너 중국과 통하는 길목의 역할을 하던 곳이다. 당성은 그 쌓은 시기를 달리하는 3중의 성벽으로 구성되었다. 처음 이 당성의 성벽은 테뫼식으로 쌓은 토축 산성이었다, 그 길이는 336m이다.

 

 

 

이러한 당성 일대를 한양대 문화재연구소가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화성 당성 3차 발굴조사'를 시행한 결과 삼국시대 축조된 1차 성벽, 망해루, 집수시설, 연못지 등 유구와 유물 1천여 점을 발견했다고 14일 밝혔다. 이반 발굴조사에서는 ''()자가 새겨진 기와 등 유물 1천여 점이 출토됐다.

 

이러한 당성을 학계 일각에서는 해당 성이 진짜 당성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부족하다며 진위 논란이 일기도 했다. 연구소는 "이번에 출토된 ''자문이 찍힌 기와는 당성의 역사적 사실을 확실하게 입증하는 대단히 희귀한 자료"라면서 "삼국시대에서부터 이 성이 당성으로 불렸을 가능성을 확인해준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당성에 관한 연구는 더 많이 이루어져야하겠지만 연구소 관계자는 이번 발굴유물로 인해 당성이 힌국 내 실크로드의 관문이었음을 확실하게 해준다.”면서 실크로드 세계문화유산 지정 구간 안에 포함시킬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 것으로 평가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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