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수제 벼루 등 수백 점 보유해

 

형님, 제 보물 창고 좀 가보실래요?”

17일 오전 남문시장 팔달문 홍보관에서 만난 팔달문시장 사무장인 박영일씨가 하는 말이다. 보물창고라니 도대체 무슨 보물이 어디에 얼마나 있다는 것인지 궁금하다. 자신 있게 보물창고라고 소개하는 말에 궁금증이 일어 따라 가보았다.

 

보물창고. 정망 보물창고였다. 남들에겐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그 많은 물품들은 모두 보물이었다. 100여 점이 넘는 오래 묵은 수제 벼루부터 시작해, 100여점의 연적, 그리고 각종 붓까지. 이곳을 몇 번이고 들어와 보았지만 이런 물건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도대체 얼마나 오래 모은 것들예요?”

오래 됐어요

정말 소중한 것들이 상당히 많은데요

이것보다 더 많았는데 상당히 많은 벼루가 없어졌어요

아니 왜요?”

모르겠어요, 누가 가져간 것 같아요

 

대화를 하면서도 연신 벼루를 하나씩 들도 보여주는 박영일씨. 박영일씨는 팔달문 인근 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팔달문시장 상인회 사람들을 비롯해 시장 사람들은 박영일씨를 사무장님이라고 부른다.그만큼 이곳 팔달문 시장 안근에서는 모르는 사람들이 없다. 오랜 세월을 이곳에서 생활했기 때문이다.

 

 

나눔을 실천하는 팔달문시장 터주대감

 

박영일씨는 현재 팔달문시장 상인회 이사직을 수행하면서 나눔을 실천하는 형제를 사랑하는 모임의 회장이기도 하다. 이곳 홍보관에서는 그를 일러 사무장이라는 호칭을 쓰고 있지만 엄밀히 따지면 이곳 홍보관 뿐 아니라, 시장의 크고 작은 일을 모두 처리하기 때문에 홍보관장이라는 직함이 더 어울린다.

 

하나하나 손에 들고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포즈를 취해주는 박영일씨가 순간적으로 놀란 소리를 낸다. 무슨 일인가해서 보았더니 반 토막 난 벼루를 그냥 맞춰놓기만 했다. ‘마니아란 한 가지 일 등에 몰두하는 사람을 말한다. 진귀한 물품을 모으는 사람들도 마니아라고 한다. 옛 물건 중에서 붓과 벼루, 그리고 연적 등 붓글씨를 쓰기 위한 물건들이다.

 

에전 선비들은 분방사우(文房四友)를 가까이 했다고 한다. 문방사우란 종이, , 벼루, 먹 을 말하는데 이런 것들을 친구처럼 가까이하라는 뜻이다. 그중 붓과 벼루, 먹은 백제와 신라 때의 유물이 남아 있을 정도로 오랫동안 우리 곁에 있었다. 우리 선조들은 그런 물건을 상당히 소중하게 간직했다.

 

 

이유야 어쨌든 남의 물건에 손을 대다니

 

정말 너무하네요. 이 방 열쇠를 가진 사람이 나하고 한 사람이 더 있었는데, 옛날 먹도 한 박수가 있었는데 하나도 없어요. 벼루도 없어지고 연적도 몇 개 없어졌어요

 

정리를 하면서도 마음이 불편한 모양이다. 애지중지 수십 년을 정성을 들여 모은 것들이 없어지고 깨졌으니 그 마음이 오죽하랴. 하나하나가 다 수제품이고 오래 묵은 옛것들이다. 그런 것들 상당수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물건을 진열해 놓았던 것을 비워주어야 하기 때문에 박스에 담아 딴 곳으로 옮겨야 한다면서 물건을 정리하는 박영일씨.

 

물건이 너무 많아 어디다 보관해야할지 걱정예요. 전에 이 물건들을 싼 가격에 팔겠다고 했더니 친구가 하는 말이 그 소중한 것들을 왜 파느냐. 보관하고 있으라고 했는데 이렇게 없어질 줄 몰랐죠

 

세상을 살면서 나름 마니아라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았지만 박영일씨처럼 우리 것을 지켜가는 참다운 마니아는 보질 못했다. 그것도 아주 소중한 문방사우 중 벼루와 연적, 그리고 붓까지. 한지도 상당히 있었는데 없어졌다고 하면서 아쉬워하는 박영일씨. 한참이나 좋은 벼루 구경에 시간가는 줄을 모르고 있었는데, 이제 생각하면 그 벼루 중 몇 점은 정말 진품명품에라도 내보냈으면 하는 생각이다. 그 소중한 가치를 제대로 알 수 있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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