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구의 침입을 막기위해 쌓은 면천읍성

성(城)을 쌓는 형태는 일반적으로 세 가지로 구분한다. 첫째는 산성(山城)이다. 산의 봉우리를 감싸고 있는 산성은 적과의 전투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산 위쪽에 축성하는 성으로 우리나라에는 많은 산성이 소재한다.

 

둘째는 평산성(平山城)이다. 평산성은 산과 평지에 연이어져 있는 성을 말한다. 사적 제3호인 수원 화성은 대표적인 평산성이다. 그리고 셋째는 읍성(邑城)이다. 읍성은 고을의 평지에 쌓는 성으로 읍치나 적의 방비를 위한 성이다. 이렇게 각기 특징있게 쌓은 성들은 그 성들이 자리하고 있는 곳의 행정이나 지역의 방어 등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지난 4일 당진시와 보령시를 답사하면서 가장 먼저 들린 곳은 면천읍성이다. 4일 오후 보령 대천해수욕장을 찾아가다가 들린 면천읍성.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군자길 3 일원에 소재한 면천읍성은 충청남도 기념물 제9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세종 21년인 1439년 11월에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성이다.

 

이 면천읍성을 꼭 들려보아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면천읍성이 1794년에 축성을 시작하여 1796년에 완성한 세계문화유산이요 사적 제3호인 수원화성과 무엇이 다른 점인가를 알아보기 위함이다. 수원화성보다 357년이나 앞서 쌓은 면천읍성과 수원화성이 얼마나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까? 하기에 면천읍성 중에서 최근에 복원한 읍성 남문을 택했다.

 

 

수원화성은 강한 국권의 상징

 

사적 제3호, 그리고 세계문화유산. 사적 안에 또 4기의 보물(팔달문, 화서문, 서북공심돈, 방화수류정)을 간직한 곳, 화성은 서쪽으로는 팔달산을 끼고, 동쪽으로는 낮은 구릉의 평지를 따라 쌓은 평산성이다. 정조는 그의 아버지 장헌세자(사도세자)에 대한 효심에서 화성으로 수도를 옮길 계획을 세우고, 정조 18년인 1794년에 성을 쌓기 시작하여 2년 뒤인 1796년에 완성하였다.

 

실학자인 유형원과 정약용이 성을 설계하고, 거중기 등의 신기재를 이용하여 과학적이고 실용적으로 쌓은 성이 바로 화성이다. 화성은 다른 성곽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동문인 창룡문, 북문인 장안문, 서문인 화서문, 남문인 팔달문의 4대문을 비롯한 각종 방어시설들과 조선에서 가장 무예가 뛰어난 장용외영의 군사들이 주둔하고 있는 돌과 벽돌을 혼합해 쌓은 난공불락의 성이다.

 

이 화성을 매일 바라보면서 살아온 나로서는 면천읍성이 궁금할 수밖에 없다. 성을 잘 안다는 지인에게서 “면천읍성을 찾아가면 화성의 원형을 보는 듯하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하기에 일부러 답사 여정을 당진시 면천을 거쳐 보령시를 찾아가는 길목을 택했다. 당진시는 2009년부터 면천읍성 복원사업을 시작해 2014년에 남문지와 원기루 등을 완공하였다고 한다.

 

화성의 옛 모습을 면천읍성에서 그려내다

 

수원화성은 규장각 문신인 정약용이 동서양의 기술서를 참고하여 1793년에 저술한 <성화주략>을 지침서로 하여 축성하였다. 재상을 지낸 영중추부사 채제공의 총괄아래, 조심태의 지휘로 1794년 1월에 착공하여 1796년 9월에 완공을 하였다. 화성의 모든 것은 <화성성역의궤>에 낱낱이 기록하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이자 사적 제3호인 수원 화성의 둘레는 5744m, 면적은 130ha로 동쪽지형은 평지를 이루고 서쪽은 팔달산에 걸쳐 있는 평산성의 형태다. 성의 시설물은 문루 4, 수문 2, 공심돈 3, 장대 2, 노대 2, 포(鋪)루 5, 포(砲)루 5, 각루 4, 암문 5, 봉돈 1, 적대 4, 치성 9, 은구 2등 총 48개의 시설물이 있었으나, 이 중 수해와 전란으로 6개 시설물(남공심돈, 남암문, 적대 2, 은구 2)이 소멸되고 42개 시설물이 현존하고 있다.

 

 

4일 찾아간 면천읍성은 현재 성벽의 둘레가 1,336m인데 성을 쌓을 당시 치성과 옹성을 합하면 전체길이 1,564m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면천읍성은 현재 옹성 1개소, 문지 4개소를 비롯하여 치성 3개소가 확인되었으나, 원래 치성이 7개소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남문 옆으로는 수로가 나 있다.

 

면천읍성의 남문은 옹성형태로 되어있다. 남문인 원기루 앞으로 옹성을 쌓아 적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옹성은 한편을 터놓았으며 성문을 깨기 위해 문 앞으로 몰려든 적을 섬멸하는 기능을 갖고 있는 방어책이다. 수원화성은 4대문에 모두 옹성이 설치되어 있으며, 장안문(북문)과 팔달문(남문)은 중앙에 문을 내고 양편에 적대를 설치하였다.

 

그와는 달리 창룡문(동문)과 화서문(서문)은 면천읍성의 남문과 같이 한편을 터놓았다. 하지만 그 안으로 공성무기를 끌고 들어와 성문을 깨야하는데, 그것은 불가능하다. 옹성 안이 좁아 그 안에서 공성무기에 힘을 더할 수 없으며, 옹성 위에 있는 병사들의 공격으로 옹성 안에 들어간 적들은 몰살당하기 십상 때문이다.

 

벌써 다녀온 지 보름이 지났지만 아직도 면천읍성 남문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올해는 가급적이면 더 많은 시간을 내어 그동안 보고 싶었던 문화재들을 찾아보아야겠다. 문화재란 늘 보듬고 바라다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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