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이 널려 있는 충남서산 보원사지

 

1년이 넘도록 문화재답사 다운 답사를 하지 못했다. 모처럼 나선 문화재답사길. 그동안 한이라도 맺힌 듯 돌아치면서 만난 곳이 바로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에 소재한 사적 제316서산보원사지였다. 벌써 이곳을 들렸던 지가 15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가까이 가보니 주변이 상당히 변해있다.

 

난 이곳을 찾아가면 마음이 들뜬다. 사적지 한 곳에 보물만 5기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변에 이런저런 것들이 들어와 자릴 잡고 있지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보물 제103호인 신라 때 조성된 당간지주다. 보원사지는 백제시대에 창건된 절로 통일신라와 고려 때 크게 융성하였고 왕사, 국사를 지낸 법인국사의 탑문이 묻힌 곳이다.

 

 

보원사지 발굴당시에 신라와 고려시대 작품으로 추정되는 대형 철불 2구가 발견되었으며 1967년도에는 백제시대 작품으로 추정되는 금동여래입상이 출토되는 등 매우 융성했던 사찰임을 알 수 있다. 보원사 주변에는 100개소의 암자와 1,000여 명의 승려가 있었다고 전하는 것만 보아도 당시 보원사지의 위상을 가늠할 수 있다.

 

현재 보원사지에는 백제계의 양식에 통일신라와 고려의 석탑양식을 갖춘 보물 제104호 오층석탑과 통 돌을 장방형으로 파내어 조성한 한국최대의 석조(보물 제102), 975(광종26) 법인국사가 입적하자 광종의 지시로 세운 보물 제105호 보승탑, 법인국사의 생애가 기록된 보물 제106호 법인국사 보승탑비, 사찰에 행사가 있을 때 괘불을 걸었던 당간지주 등 보물만 5점이 사지에 자리하고 있다.

 

 

 

한옆에 모아놓은 석물과 와편 등 수북해

 

보원사지로 접어들면 높이 4.2m의 당간지주가 앞에 서 있다. 통일신라 때 조성한 것으로 보이는 이 당간지주는 자리도 옮기지 않고 제 자리라고 한다. 절의 행사가 잇을 때 악귀를 쫓기 위해 당이라는 깃발을 걸어놓을 때 사용하는 당간지주는 지주의 안쪽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고 바깥쪽에만 양편 가장자리에 돌대를 돋을새김 하였다.

 

당간지주 우측으로 보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석조가 보인다. 밋밋한 장방형으로 파낸 이 석조는 물을 담아두는 용기로 아래편에 구멍을 내어 물이 빠져나가게 만들었다. 통일신라시대에 조성한 것으로 보이는 이 석조는 현재 남아있는 석조 중 가장 큰 것으로 사지에 남아있는 고려 때의 보승탑 등을 볼 때 고려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석조에서 금당방향으로 작은 내가 흐르고 있다. 15년 전에는 이 내에 올갱이가 많이 서식하고 있어 그것을 잡는 재미도 쏠쏠했다. 스님들의 포행길인 듯한 나무로 만든 다리를 건너면 와편과 석조물들이 정리되어있다. 아마 이곳을 발굴하면서 나온 듯한데 그 양이 상당하다. 지난날 보원사지가 어느 정도였는지 알만하다.

 

전에는 금당 터도 발굴되지 않았는데 이번에 찾아가보니 금당 터까지 발굴되었다. 금당 터 뒤편에는 부처가 앉았던 좌대가 보이고 그 앞에 탑이 서 있다. 보물 제104호인 오층석탑은 전형적인 통일신라~고려초기의 석탑양식을 보이고 있다. 이 탑은 아래 기단부에 사자상을 새기고 위층 기단에는 8부 중상을 새겼는데 탑이 안정감이 있고 수려하다.

 

 

기분 좋은 답사, 이제부터 시작이야

 

하루 만에 참 많은 곳을 돌았다. 금당 터 뒤편에 높이 축대를 쌓고 그 위에 자리한 보물 제106호보원사지 법인국사탑비와 제105호 법인국사탑. 두 기 모두 보불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에 보원사지에는 보물만 5기가 자리하고 있다. 천년 세월을 그렇게 한 자리에 서 있는 보원사지의 석조물들. 시간이 가도 꼼꼼히 다져볼 수밖에 없다.

 

법인국사탑은 법인국사의 사리를 모셔놓았던 탑이다. 975년에 건립된 이 부도탑은 나라의 장인인 국공에 의해 조성되었다. 팔각원당형의 형태로 조성된 부도탑은 경기도와 강원도 등에서 흔히 만날 수 없는 특이한 형태로 조성되었으며 중대석의 조각이 특히 뛰어나다. 이 부도탑은 상대석에 난간을 두른 것이 특이하다.

 

 

부도탑이 서있는 축대위에 올라서 앞을 내다본다. 시원하게 정비된 보원사지는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그리고 더 많은 자료들을 발굴해 전시해놓았다. 예전에는 없던 절이 들어와 한 옆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 대단한 보원사지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런 문화재 옆에 세울 것 같으면 제대로 격식을 맞춰 마련할 수 없는 것일까?

 

문화재 답사를 하다보면 사지마다 한편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절들. 문화재를 보호하는 차원에서는 바람직하다고 하겠지만 제대로 절을 지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설프게 지은 절로 인해 오히려 소중한 문화재의 품격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앞으로 그동안 잊고 있었던 답사에 박차를 가해야겠다. 얼마나 더 다닐 수 있을지 마음이 조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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