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분홍 영산홍, 푸른 수양버들과 어우러진 절경

 

봄이되면 화성 성벽 외곽으로 식재해 놓은 영산홍이 아름답게 꽃을 피운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그 영산홍과 어우러진 화성을 보기위해 일부러 한 바퀴 돌아보고는 한다. 그 중 가장 아름다운 곳은 역시 방화수류정이다. 수원시 팔달구 매향동 151번지에 소재한 보물 제1709호 방화수류정은 화성 네 곳의 보물 중 한 곳이다.

 

방화수류정은 조선 정조 18년인 1794년에 완공되었으며, 화성의 동북각루이다. 방화수류정은 전시를 위해 화성에 축조한 건물이지만 정자의 기능을 함께 갖고 있는 간물로 석재와 목재, 전돌을 사용해 축조하였다. 방화수류정은 송나라 정명도의 시 운담풍경오천(雲淡風經午天), 방화류과전천(訪花隨柳過前川)”에서 따왔으며, 편액은 조윤형(曺允亨1725~1799)의 글씨이다.

 

 

화성은 아름답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화성 가운데도 제일 뛰어난 한 곳을 꼽으라고 한다면 난 주저없이 방화수류정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각 지역마다 제일루라는 누각이 있다. 호남제일루는 남원 광한루요, 영남제일루라고 하면 밀양 영남루를 꼽는다. 관동제일루는 삼척의 죽서루이다.

 

조선조 숙종대왕은 관동팔경 중 한 곳인 울진의 망양정을 '관동제일루'로 칭송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가장 아름다운 누각을 지역마다 제일루(第一樓)라 칭하고 있다. 난 방화수류정을 화성제일루라 부르기를 망설이지 않는다. 그만큼 방화수류정은 아름답기 때문이다. 425일 오후에 찾아간 방화수류정, 영산홍과 어우러진 방화수류정을 보고도 제일루라 칭하지 않는다고 하면 도대체 어느 곳을 제일루라 칭할 것인가?

 

 

군사적 목적으로 꾸민 방화수류정

 

방화수류정은 평면은 자형을 기본으로 하고, 북측과 동측은 형으로 돌출되게 조영하여 사방을 볼 수 있도록 꾸몄다. 조선 정조대왕의 강한 국권을 바탕으로 축성한 수원 화성의 시설물 중 한 곳인 방화수류정은 조선 헌종 14년인 1848년에 중수하였고, 일제강점기 이후 여러 차례 부분적으로 수리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방화수류정이라는 명칭은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닌다'라는 말이다. 독특한 건축미가 돋보이는 방화수류정은 201133일에 보물 제1709호로 지정되었다.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닐기에 적합해 방화수류정이라 했던가? 주변이 온통 희고, 붉은 영산홍에 쌓이고 용연 주변으로는 연두색 잎을 자랑하는 능수버들가지가 늘어졌다.

 

17941019일 완공한 방화수류정은 그 아래 용연과 더불어 화성의 건축물 중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화성의 백미'라고 칭찬을 하는 방화수류정. 방화수류정은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그 형태가 달라 보인다. 어느 방향에서 보든지 절경인 방화수류정은 주변감시를 하고 군사들이 쉬기도 하는 기능을 함께 갖고 있다.

 

 

난 이곳을 화성제일루라 부른다.

 

독특한 평면과 지붕 형태의 특이성 등을 토대로 18세기 뛰어난 건축기술을 보여주는 방화수류정. 평일인데도 방화수류정 누각 위에는 사람들이 모여 봄날의 정취를 마음껏 즐기고 있다. 그 누구라서 이렇게 아름다운 풍광에 빠져들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방화수류정 위에서 바라보는 주변의 경관 또한 일품이다.

 

이 계절이 되면 화성을 돌아보면서 방화수류정 앞에 도달하면 가슴이 뛴다. 올해는 또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으로 사람의 눈을 현혹할까? 성벽 밑으로는 용연을 마련하고 주변에 나무를 심어 운치를 더한 방화수류정, 옆으로 흐르는 내 위에 화홍문을 세워 그 주변 경관과 함께 아름다움을 도왔다.

 

방화수류정 옆으로 흐르는 수원천을 몇 사람인가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수원천 산책로를 걷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무엇이 저리 바쁠꼬?”라는 생각을 한다. 저 사람들 눈에는 봄날 방화수류정의 아름다움이 보이지 않는 것일까? 영산홍과 어우러져 한껏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고 있는 방화수류정. 그 운치를 보고 화성제일루라 스스로 칭한 것에 어깨를 들썩한다. 그 이름이 지금 시기의 방화수류정에 딱 어울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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