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 팔달구 창룡대로 236-54(우만동)에 자리하고 있는 천년고찰 봉녕사. 비구니 사찰인 봉녕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 2교구 용주사의 말사로서 광교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고려시대인 1208년에 원각국사가 창건하여 성창사라 하였고, 조선시대 1469년 혜각국사가 중수하고 봉녕사라 사명을 개칭하였다.

 

봉녕사는 1971년 묘엄스님이 주석하신 이후, 40여 년 동안 비구니 승가교육의 요람으로 발전을 거듭하였다. 1974년도 봉녕사 강원(승가대학)을 개원하였으며, 19996월 세계 최초로 비구니 율원인 금강율원(금강율학승가대학원)을 개원하였다. 봉녕사는 승가교육과 율학연찬을 통한 수행도량으로서 사격을 갖추고 대가람을 이룩하였다.

 

23일 오후 봉녕사를 찾았다. 일주문을 지나 조금 안으로 들어가면 양편으로 막 피기 시작한 꽃들이 환영을 한다. 경내로 들어서면 그야말로 꽃 잔치를 벌이고 있다. 여기저기 잘 가꾼 꽃밭에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있어 마치 연화세계에 들어온 듯하다. 피안이 따로 있을까? 이곳이 바로 부처의 세계란 생각이 든다.

 

 

 

 

문화재를 찾아 봉녕사를 가다

 

봉녕사를 찾은 것은 꽃구경을 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봉녕사의 중심인 대적광전을 바라보고 좌측에는 약사보전이 자리하고 있고, 우측에는 용화각이 자리하고 있다. 봉녕사에는 두 점의 문화재가 있다. 용화각에는 경기도지정 유형문화재 제151호인 석조삼존불이 자리하고 있으며, 약사보전에는 경기도지정 유형문화재 제152호인 봉녕사 불화 2점이 일괄 지정되어 있다.

 

약사보전에 보존되어 있는 문화재는 바로 신중탱화와 현왕탱화이다. 봉녕사를 찾은 것은 바로 이 현왕탱화를 보기 위함이다. 탱화란 불교의 신앙 대상이나 내용을 그린 그림을 말한다. 약사전 안의 탱화들은 약사 정토의 특성을 그대로 도설화하고 있다. 약사 신앙은 <불설약사여래본원경>에 의한 신앙이다.

 

봉녕사 약사보전의 신중단에는 신중탱화가 모셔져 있다. 조선 고종 28년인 1891년 화사 광조가 그린 신중탱화는, 가로 168, 세로 178의 크기로 비단 바탕에 채색하였다. 그림은 위쪽에 제석과 범천이 무리를 거느리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아래쪽에는 중앙의 위태천을 중심으로 팔부신장과 용왕, 금강상 등을 그려놓았다.

 

 

 

 

염라대왕인 현왕탱화를 만나다

 

현왕은 염라대왕을 말한다. 염라대왕은 사람이 죽어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가면 3일 만에 재판을 받게 되는데, 그때 현왕 앞에 나아가 재판을 받는다고 한다. 현왕탱화는 주로 19세기 이후에 유행했던 그림으로 명부전 벽화 등으로 나타나는 시왕도와 비슷한 배열을 하고 있다. 다만 지옥도가 생략되었다는 점이 다르다.

 

고종 15년인 1878년 화사 완선이 제작한 봉녕사 현왕탱화는, 가로 131cm, 세로 104cm의 크기로 비단에 채색하였다. 중앙에 현왕(염라대왕)을 중심으로 좌우와 아래편에 판관, 녹사 등을 배치하였다. 현왕탱화에는 염라대왕을 비롯하여 모두 12명의 인물이 그려져 있어, 일반적인 탱화와는 구도 등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염라대왕은 저승 10대왕 중 다섯 번째 왕이다. 흔히 염라대왕을 여래화한 보현왕여래의 그림들도 전하는데, 일반적으로 보현왕여래와 권속 4명 등을 그려놓는다. 그에 비해 봉녕사 현왕탱화는 많은 인물을 묘사하였다.

 

불교에서는 시왕(十王)’이라고 해서 사람이 죽으면 시왕 앞에 차례로 나아가 생전에 지은 죄의 경중을 따져 심판을 받고 그에 해당하는 벌을 받는다고 한다. 저승 10대왕은 제1전에 진광대왕, 2전에 초강대왕, 3전에 송제대왕, 4전에 오관대왕, 5전에 염라대왕, 6전에 변성대왕, 7전에 태산대왕, 8전에 평등대왕, 9전에 도시대왕, 10전에 오도전륜대왕이 관장을 하고 있다.

최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