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자료 등 알릴 수 있는 전시공간 필요해

 

수원시 향토유적 제8호는 수원시 팔달구 화서동 688-4에 소재한다. 화서2동 주민센터 바로 앞에 자리하고 있는 꽃뫼 제사유적지는 수원시가 문화재 지정을 받지 못했지만 보호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인정되기 때문에 향토유적으로 지정한 것이다. 각 지자체마다 지역의 비지정 문화재 중 중요한 가치가 있는 것을 보존하는 방법이 바로 향토유적 지정이다.

 

꽃뫼 제사유적지는 수원 서북부 서호천 근처의 낮은 구릉에 위치하고 있다. 이 유적지는 택지개발지구로 예정되면서 1995년 수원대학교 박물관의 지표조사를 통해 알려지게 되었으며 1997년 발굴조사가 이루어지면서 유적에 관한 성격이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제사유적지란 이곳이 아주 오래전부터 마을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곳의 발굴조사에서 발견된 유구로는 석축과 토광묘, 옹관묘 등이었고, 유물은 토기류와 백자, 청자, 분청사기 등 자기류, 청동숟가락, 상평통보, 쇠칼, 각종 제시용구 등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 유적지는 초기 철기시대인 BC300~0로 철기 전기부터 조선조까지 제사를 지냈던 흔적으로 보인다고 한다.

 

9일 오후 화서2동 주민센터 앞에 있는 꽃뫼 제사유적지를 찾아갔다. 쌀쌀한 날씨지만 이곳에서 무엇을 찾을 수 있을까 궁금했기 때문이다. 제사유적지임을 알리는 안내판 뒤로 낮은 구릉이 있고, 그 중심으로 오르는 비탈에 펜스가 쳐있다. 유적지치고는 상당히 좁은 면적이다.

 

 

낮은 구릉에 자리한 꽃뫼 제사유적지

 

유적지로 지정해 펜스를 쳐 놓은 곳을 한 바퀴 돌아본다. 이곳이 초기 철기시대의 제시유적지라고 하면 인근에 마을이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예전에 마을의 형성에는 반드시 물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앞으로 흐르는 서호천을 끼고 마을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하지만 이곳에서 발견이 되었다는 안내판 하나만 있을 뿐 그 어느 것도 찾을 수 없다.

 

구릉 중심에는 커다란 참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데 그 줄기 안에 누군가 보도블록을 끼어 놓았다. 도대체 나무에 왜 이렇게 몹쓸 짓을 한 것일까? 철책 안까지 들어가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을 치우지 않고 방치했다는 것은 이곳을 향토유적으로 지정만 해놓았지 아무도 관리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초기철기시대는 원삼국시대로 서기전 100년경부터 서기 300년경까지의 약 400년간의 기간을 이른다. 이 시대는 서기전 100년경 한반도 북부 및 중국 동북지방 일원에서 고대국가 고구려가 일어나고 한반도 서북부에 낙랑군이 설치된 시기이다. 남부에서 도구용 이 시기에 청동기가 소멸하고 철기가 본격 생산되는 가운데 삼한 소국들이 성립되는 시기였다.

 

이 시기에 나타나는 문화적 특징으로는 청동기의 실용성 소멸과 철기생산의 보급 및 확대, 농경(벼농사)의 발전, 지석묘의 소멸과 석곽묘의 발달 등이다. 이 시기는 한반도에 원삼국이 삼국시대로 본격적으로 변화하는 시기를 말하며 문물이 본격적으로 발달하고 마을의 구심점이 되는 제의가 이루어지는 시기이다.

 

 

제사유적지라고 알릴만한 자료 없어

 

과거 민족은 농사가 시작되기 전과 농사를 마친 후 하늘에 감사하는 의식을 가졌다. 흔히 맞이굿이라고 부르는 이 제사는 온 마을의 사람들이 모여 3일간 주야로 쉬지 않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음식을 나누는 답지저앙 수족상응의 형태를 즐겼다고 한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三國志 魏志 東夷傳) 고구려편에 以十月祭天, 國中大會, 名曰東盟(시월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국중대회를 여는데, 이를 '동맹'이라고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즉 이 시대의 고구려의 동맹이나 예의 무천, 부여의 영고 등은 모두 하늘에 감사하며 사람들이 어울려 춤추고 즐겼다는 것이다.

 

이곳 꽃뫼 제사유적지가 당시 하늘에 감사하던 제를 지내던 곳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이곳에서 발굴된 것들을 사진자료나마 보여줄 수 있는 안내판이 마련되어야 한다. 어떤 것들이 발굴당시 발견되었는지 알 수 있는 자료가 없다보니 단지 이런 것들이 발견되었고 이곳이 제사를 지내던 곳이었다는 것 외에는 알 길이 없다.

 

초기철기시대부터 조선조까지 제사가 이루어졌다는 꽃뫼 제사유적지. 이곳에서 발견된 유물 등을 진열해 놓을 수 있는 작은 전시관 하나라도 마련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단순히 제시유적지라는 소개만으로는 이곳이 문화재적 가치가 중요한 곳임을 알리기 부족하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을 이곳이 사람들이 살던 군락지임을 알리는 제사유적지의 가치는 상당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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