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 속에 오른 정선 정암사 적멸보궁과 탑

 

지난 8일이었으니 벌써 정유년 정초 삼사순례를 다녀온 지 20일 가까이 지났다.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이 그리 바쁜 것일까? 해가 짧다보니 선뜻 하루해가 떨어진다. 이일저일 바쁘다는 핑계를 대보지만 날짜가 많이 지나고 나면 처음에 만났던 감흥이 떨어져 글을 쓰기가 버겁다. 겨우 사진촬영을 한 자료를 들여다보면서 그날의 기억을 떠올린다.

 

원주 구룡사를 거쳐 영월 법흥사. 그리고 해가 질 녘에 도착한 세 번째 절, 정선 정암사. 그동안 몇 번이고 찾아갔던 곳이지만 2~3년 보지 않은 사이 경내에 못 보던 전각들이 보인다. 시간이 늦어 여기저기 다닐 틈이 없다. 버스에서 내려 일주문을 들어서면서부터 마음이 바쁘다. 적멸보궁 앞으로 가다 만나는 자장율사의 주장자.

 

주장자는 1300년전 자장율사가 정암사를 창건하고 평소 자신이 짚고 다니던 주장자를 꽂아 신표로 삼았다는 주목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가지 일부가 회생한 후 성장하여 완벽한 나무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고 하는데 그 추운 날에도 싱싱하게 자라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그 앞에 합장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적멸보궁을 들려 수마노탑으로 오르다

 

정암사 적멸보궁, 자연석 기단 위에 정면 3,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세운 적멸보궁에는 부처님을 모시지 않았다. 뒤편 언덕에 세운 수마노탑에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어 그 탑이 부처님이 되기 때문이다. 적멸보궁 앞에 서서 잠시 머리를 조아리고 손을 모은다. 혼탁한 나라가 바로 서게 해달라고 마음으로 정성을 다한 후 내를 건너 수마노탑으로 향한다.

 

보물 제410호로 지정 되어있는 정암사 수마노탑. 돌을 벽돌처럼 잘라 쌓은 이 탑은 7층으로 조성하였다. 기단부는 화강암 6단으로 쌓고 그 위에 돌 벽돌은 2단으로 올려 탑을 받치고 있다. 수마노탑을 구성하고 있는 벽돌은 회록색을 띠는 석회암이다. 1층 몸돌의 남면 중앙에는 화강암으로 문틀을 마련하고 1석으로 문고리를 단 문짝을 만들었다.

 

수마노탑의 모서리는 악간 치켜 올라 있으며 모서리마다 종을 매달았다. 탑의 정상부인 상륜부는 청동으로 조형하였는데 수마노탑의 상륜부는 거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 수마노탑은 <사적기>에 신라 자장율사가 세웠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고려시대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조선조에 들어 숙종 26년인 1700, 정조 2년인 1778, 고종 11년인 1874년 등 여러 차례 보수하였다.

 

 

아픈지도 모르고 배례석에 무릎을 꿇다.

 

정암사에 전하는 말이 의하면 수마노탑은 신라 선덕여왕 14년인 서기 645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한 절이라고 한다. 자장율사가 당나라 산서성에 있는 운제사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석가모니의 정골사리 등을 받아 선덕여왕 12년이 돌아와 14년에 금탑, 은탑, 수마노탑을 세웠다는 것이다.

 

수마노탑은 돌아오는 자장율사를 서해 용왕이 용궁으로 모시고 가 건네준 마노석으로 쌓은 탑이라고 한다. ‘수마노탑이라는 명칭도 마노석을 잘라 탑을 쌓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수마노탑과 함께 세운 금탑과 은탑은 후세 사람들이 귀한 보물에 탐심을 낼 것을 우려하여 비장하였다고 한다.

 

만일 금탑과 은탑이 함께 서 있었다고 하면 수마노탑의 가치는 몇 배 이상일 것이다. 문화재를 등급으로 표시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겠지만 전설 속으로만 남아있는 금, 은탑으로 인해 수마노탑의 건립연대마져 정확치 않다는 것도 마음이 아프다. 굳이 문화재 안내판에 고려 때의 탑이라고 우길 필요가 있었을까? 탑은 그 전하는 말 그대로 믿고 그대로 마음속으로 염원하면 되는 것을.

 

높지는 않지만 가파른 언덕을 오른다. 두 곳의 절을 들려오느라 이미 한 겨울의 짧은 해가 넘어갈 시간이다. 마음만 바빠 숨이 차오르는 것도 잊고 탑 앞으로 오른다. 탑 앞에 베례석이 놓여있다. 배례석에 무릎을 꿇고 마음속으로 간절한 바람을 기원한다. 이 혼탁한 세상에 광화문의 아픔이 더 이상 계속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다. 날도 추워지는데 그 많은 사람들이 왜 그리 주말마다 아픔을 계속해야 하는 것일까?

 

하루 만에 세 곳의 절을 돌아오는 삼사순례. 이른 아침 출발해 해가 떨어지는 시간까지 쉬지 않고 돌아본 여정의 막을 내린다. 어둠이 내리는 길을 돌아오면서 바쁘게 움직였던 하루를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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