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삼층석탑과 보물 영산전을 돌아보다

 

양산시 하북면에 소재한 통도사를 흔히 불지종가국지대찰 영축총림 통도사라고 칭한다. 구만큼 사세(寺勢)가 대단하다는 말이다. 통도사에는 국보와 보물, 그리고 많은 지정 문화재들이 있다. 통도사는 흔히 상로전, 중로전, 하로전으로 구분하는데 입구인 일주문부터가 하로전에 해당한다.

 

하로전은 보물 제1826호인 영산전, 보물 제1471호 삼층석탑, 경남 유형문화재 재197호 약사전, 경남 유형문화재 194호 극락보전, 경남 유형문화재 제250호 천왕문과 일주문, 호혈석 등이 이 하로전에 속해있다. 그 중 보물 삼층석탑 뒤편으로는 보물 영산전이 자리하고 있다. 삼층석탑은 통일신라 때 작품으로 보이며 영산전은 하로전의 중심 건물이다.

 

영산전은 숙종 39년인 1713년 봄에 화재로 인해 영산전과 천왕문이 소실되었는데 이듬해인 171433명의 목수와 천오 등 15명의 화승이 참여하여 중건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암막새 명문에는 강희 53甲年1714년이라는 기록으로 보아 영산전이 화재로 인해 소실되었던 것을 1714년 복원하였음을 뒷받침하고 있다.

 

 

실내벽화도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영산전

 

영산전은 정면 3, 측면 3칸의 다포계 맞배지붕 형식이다. 기단의 정면 중앙과 양 측면 앞쪽에는 계단이 놓여 있고 창호는 정면과 배면에만 두고 양 측면은 창호 없이 벽으로 폐쇄하였다. 정면에는 매칸 사분합 정자살문을 두고 배면에는 두 짝의 띠살문으로 달아냈다. 공포는 정면은 각 칸마다 3구를 배치하고 있으나 배면에는 2구가 놓은 것이 영산전의 특징적이다.

 

통도사 영산전과 같이 정면 각 칸에 3구씩의 공포를 두는 것은 매우 드문 사례이다. 통도사의 많은 전각들은 단청이 거의 지워져 있다. 오랜 시간동안 단청을 입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산전의 단청은 1715년에 총안스님이 단청을 시작해 1716년에 모든 공사를 마무리 지었다고 한다. 이런 기록으로 보면 영산전의 단청은 300년 전에 한번 올렸을 뿐이다.

 

단청이 퇴색하여 맨 건축목자재의 질감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영산전. 이렇게 단청이 지워진 것이 오히려 통도사를 더 고풍스럽고 무게있게 만들고 있다. 실내촬영을 금지한다는 안내판 때문에 실내에도 보물로 지정된 52점의 벽화(보물 제1711) 등이 있지만 촬영을 하지 않았다. 문화재는 누군가가 아니라 모두가 보존에 최선을 다해야 하기 때문이다.

 

 

신라 말의 삼층석탑은 보물 제1471호로 지정

 

영산전 앞에 놓인 보물 제1471호 삼층석탑은 원래 자리에서 1.5m 정도 이동을 했다. 이는 삼층석탑을 에워싸듯 놓인 영산전과 약사전, 극락전의 중심축에 맞추기 위함이라고 한다. 통일 신라의 작품으로 일려진 삼층석탑은 2층의 기단을 세우고 그 위에 삼층의 탑신을 올린 형태로 1987년 해체 수리 당시 자리를 옮겼다고 한다.

 

지난 1128. 벌써 통도사흫 다녀온 지 10일 가까이 지났다. 통도사를 찾아간 날은 휴일이라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탑 주변으로 몰려들어 사진촬영을 하기가 난감하다. 그렇다고 관람을 하거나 동행한 가족이나 지인들과 사진촬영을 하고 있는데 비켜달라고 할 수도 없다. 짧은 시간에 촬영할 곳은 많은데 무작정 기다리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순간순간 사람들이 삼층석탑 주변에서 떨어졌을 때 급하게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다.

 

 

내가 사진작가라면 도저히 찍을 수 없는 분위기거나 아니면 사람들과 어우러진 탑을 촬영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사진작가가 아니기 때문에 탑의 온전한 형태만 전달하면 된다는 생각이다. 모든 문화재를 촬영할 때 항상 갖고 있는 생각이 한 부분씩이라도 더 자세히 소개를 하야한다고 늘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물 제1471호인 통도사 삼층석탑은 일반적인 석탑의 형태이다. 이 석탑을 신라 말이나 고려 초에 조형한 작품으로 보는 까닭은 석탑의 형태는 신라말기의 보편적인 탑 형식으로 조성을 했는데 기단석에 안상이 조각되어 있다는 점이다. 안상은 흔히 고려조의 탑에 나타나는 형식이기 때문이다.

 

석탑의 몸돌과 옥개석은 모두 한 장씩의 돌로 조형을 했으며 옥개석의 받침은 각층마다 4단으로 조성하였다. 천년이 지난 세월을 자리를 지키고 있는 통도사 삼층석탑. 그 앞에 서서 두 손을 모은 까닭은 국정농단으로 망가져버린 이 나라가 바로 서기를 바라는 간절함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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