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여행에서 만난 엣 읍성지

 

날이 풀리면서 진작 떠나고 싶었던 여행길을 재촉했다. 이번 여행은 3일과 412일로 충청남도 보령시를 돌아보기 위한 여정이다. 주말 아침 이른 시간에 수원을 출발해 오후 1시가 넘어 도착한 당진 면천읍성. 제대로 갔으면 더 이른 시간에 도착했겠지만 가는 길에 광천전통시장을 돌아보느라 예정시간보다 늦었다.

 

면천읍성은 충청남도 기념물 제91호로 당진군 면천면 군자길 3 일원에 소재한다. 면천읍성은 세종 21년인 143911월에 왜구의 침입을 막기위해 쌓은 평지읍성이다. 성은 산성과, 평산성, 읍성 등으로 구분을 짓는데 면천읍성은 평지읍성이다.

 

조선후기까지 면천의 군사 및 행정의 중심지였던 면천읍성은 성벽은 자연석을 다듬어 쌓았으며 외부는 돌로, 내부는 돌을 채운 후 흙으로 덮어 쌓았다. 현재 성벽의 둘레는 1,336m인데 성을 쌓을 당시에는 치성과 옹성을 합해 1,564m정도로 추정한다. 현재 면천읍성은 옹성 1개소, 문지 4개소를 포함하여 치성 3개소가 확인되었으나 원래 치성은 모두 7개소가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최근 복원된 듯한 읍성의 남문

 

면천읍성을 꼭 들려보고 싶었던 것은 이 읍성의 복원된 남문을 보기 위함이다. 수원의 화성과 같은 형태로 축성된 남문은 옹성을 쌓고 한편을 터놓은 것이 마치 화성의 창룡문이나 화서문에서 보이는 듯한 축성방법을 택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산재한 많은 성을 돌아보면서 비교하는 것은 화성과 얼마나 같은지, 혹 다른지를 알아보기 때문이다.

 

면천읍성의 남문은 옹성을 쌓아 왜구의 공성무기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도록 하였으며, 남문 옆에는 상에서 밖으로 물이 흘러나가는 수로가 있다. 면천읍성은 18세기 이후 성의 기능을 상실한 성으로 누각은 다 부수어지고 옹성을 따라 집을 지었던 것을, 2009년 이후 면천읍성 정비사업으로 남문의 누각인 원기루 등을 복원하여 2014년에 완료한 것이다.

 

복원한 면천읍성의 남문을 돌아본다. 남문 안으로는 바로 집들이 들어차 있으며 성을 복원한 양편으로도 밭과 집들이 놓여 있다. 원기루를 비롯한 남문은 비교적 옛 형태를 따라 복원을 마쳤으며 옹성과 읍성 위에 여장도 옛 형태를 따랐다고 한다. 우리 수원 화성과는 견줄 바가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성의 일부분이 복원되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할 따름이다.

 

 

보령성곽을 돌아보다

 

보령은 현 보령시 주포면 일대의 명칭이다. 이곳은 보령성곽과 보령향교 등이 소재한 것으로 보아 조선조 때는 이곳이 보령시의 중심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현재 충남 문화재자료 제146호인 보령성곽은 고려 말 왜구의 침입에 대비해 쌓은 봉당성(혹은 고남산성)이 자리한 곳에서, 동쪽으로 400m 정도 떨어진 곳에 세종 12년인 1430년 이미 있던 성을 보강하여 새로 쌓은 성이다.

 

보령성곽은 현재 임진왜란과 한말 의병전쟁 등을 거치면서 모두 파손되고 남문인 해산루 옆으로 남쪽 성벽 70m와 북쪽 성벽 360m, 한 개소의 치성 등이 남아있다. 원래 보령성은 길이 630m에 높이 3.5m, 적대 8개소와 문루 3개소, 우물 3개소 등이 있었다고 한다.

 

 

여행길에 만난 성을 돌아보면서 항상 감사하다고 느끼는 것은 수원 화성과 같은 성을 보지 못한다는 점이다. 잘 다듬어진 돌로 쌓은 화성, 그 위에 수많은 구조물 등이 남아있는 화성을 돌아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다. 문화재는 그 안에 내포된 사고가 있다. 어느 성이 되었거나 그 곳의 역사와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 점으로 볼 때 우리는 화성이라는 세계문화유산을 갖고 있지만 정작 그 소중함에 대해서 잘 모르는 듯하다. 전국 곳곳에 산재한 성을 돌아보면 화성이 얼마나 대단한 성인가를 알 수 있다. 화성을 온전히 보존한다는 것은 그래서 더 필요한 것이다. 여행길에서 만난 당진 면천읍성과 보령 주포면의 보령성곽. 올해는 시간이 날 때마다 전국의 성을 돌아볼 계획이다.

최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