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가 해골의 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은 곳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상안리 산32번지에는 사적 제217호인 '당성(唐城)'이 자리하고 있다. 이 당성이 소재하고 있는 남양 지역은 신라 경덕왕 때는 '당은군'이라 불린 중국과의 교통 요지였다. 신라 후기에는 이곳에 '당성진'을 설치하여 청해진과 함께 신라 해군의 근거지로 삼은 중요한 곳이었다.

 

당성은 계곡을 둘러쌓은 포곡식 산성이다. 성은 남북으로 기다란 네모에 가까운 형태를 하고 있다. 현재 당성은 동문과 남문, 북문 터와 우물터, 건물터가 남아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당성은 현재 발굴 중이다. 10일 오후 찾아간 당성. 입구에서부터 한양대학교 문화재연구소에서 4차 발굴중이라 출입을 통제한다는 가드라인이 쳐져있다.

 

 

당성은 화성 남양반도의 서신, 송산, 마도면의 3개면이 교차되는 중심부 가까이 위치한 구봉산에 자리하고 있다. 동남향으로 경사진 계곡을 이용하여 성루를 돌려 축성을 하였다. 전장이 1.148m 정도가 되는 이 당성은 처음에는 백제의 영역이었다가 한때 고구려의 영토로 당성군이라 불렀다.

 

후일 신라가 이 지역을 점령하게 되자 당항성이라 했다. 바다를 건너 중국과 통하는 길목의 역할을 하던 곳이다. 당성은 그 쌓은 시기를 달리하는 3중의 성벽으로 구성되었다. 처음 이 당성의 성벽은 테뫼식으로 쌓은 토축 산성이며 구봉산에서 봉화산으로 뻗는 남서능선 정상부에 600m의 테뫼식 산성으로 6~8세기 신라유물이 상당수 발견되었다.

 

 

들어갈 수 없는 당성 자료만 훑어보다가 돌아와

 

지난 해 몇 차례 당성을 답사하였기에 당선의 형태는 눈에 선하다. 현재는 발굴을 위해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 당성사적비와 성이 보이는 곳까지 들어가면서 발굴관계기관의 발굴보고서로 대신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동안 몇 번을 돌아본 곳이기 때문에 그 형태를 가늠할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문화재란 한 번의 답사로 알 수가 없다. 한곳에 서 있는 유형문화재이지만 항상 새로운 것이 발견되기도 한다. 성곽의 경우 회를 거듭하는 발굴로 인해 새로운 것들이 속속 알려지고 있어 끊임없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 30년 넘는 세월 전국을 스 없이 돌아보면서 문화재를 답사한 나로서는 그 하나하나가 소중하다는 것을 느끼기에 기회만 되면 몇 번이고 다시 찾아가고는 한다.

 

낮에 잠깐 뿌린 비로 숲속은 습하다. 거기다가 땀 냄새를 맡은 산모기까지 달라붙어 사람을 귀찮게 한다. 답사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역시 사람에게 집요하게 따라붙는 산모기 떼와 각종 벌레들이다. 무더위에 옷으로 감싸고 오르지만 달라붙는 모기떼를 감당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당성 아래서 깨달음을 얻은 원효

 

원효(617-686)대사는 신라 진평왕 39년인 617년에 압량군 불지촌(현 경산군 압량면 신월동)에서 태어났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그의 어머니가 원효를 잉태할 때 유성이 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으며, 그를 낳을 때는 오색의 구름이 땅을 덮었다고 한다. 원효의 아명은 서동이었다.

 

원효대사의 행적 가운데서 각별히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다. 두 차례에 걸쳐 당으로의 유학을 시도했던 원효대사가 스스로 크게 깨닫고 발길을 돌린 일이 그것이다. 원효대사는 45세에 두 번째로 의상대사와 함께 이번에는 해로로 해서 당으로 가기 위해 백제 땅이었던 당항성 아래에 도착하였다. 당항성 아래 항구에 당도했을 때 이미 어둠이 깔리고 갑자기 거친 비바람을 만나 한 땅막에서 자게 되었다.

 

아침에 깨어났을 때 그곳은 땅막이 아닌 옛 무덤 속임을 알았지만 비가 그치지 않아 하룻밤을 더 자게 되었다. 원효대사는 거기서 깨들음을 얻는다. '마음이 일어나면 갖가지 법이 일어나고 마음이 사라지면 땅막과 무덤이 둘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래서 원효는 "삼계가 오직 마음이요, 만법은 오직 인식일 뿐이다. 마음밖에 법이 없는데, 어찌 따로 구할 것이 있으랴. 나는 당나라에 가지 않겠다"하며 다시 서라벌로 발길을 돌렸다. 원효대사의 이 같은 깨달음은 후대 사람들에게 알려진 무덤 속에서 해골을 담긴 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었다는 유명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 원효대사가 깨달음을 얻는 당항성(신라시대의 이름) 인근 당막(=무덤)은 바로 당성 인근 현 신흥사 인근이었을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그 일대는 과거 무덤들이 발견된 곳이기 때문이다. 10일 오후 빗방울이 떨어지는 날 찾아간 당성. 그동안 전국의 성 40여 곳을 답사했지만 그 중 기억에 남는 한 곳이다. 언제 기회가 된다면 그동안 돌아본 성을 정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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