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 찾아와 사진 촬영하느라 난리

 

천안섬거리 흥 능수나 버들은 흥 제멋에 겨워서 휘늘어졌구나 흥

천안섬거리라는 민요가사에 나오는 사설의 내용이다. 이 능수는 휘늘어진 버들을 의미한다. 이렇게 늘어진 버들을 우리는 흔히 능수버들이라고 한다. 이 버들을 능수버들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하기 때문이다.

 

옛날에 천안 인근에 홀아비 한 사람이 능소(綾紹)’라는 어린 딸과 함께 살았다. 이 부녀는 비록 가난하긴 하였지만 정이 깊었다. 그런데 능소의 아버지가 변방의 수자리로 뽑혀가게 되었다. 능소의 부친은 변방으로 가다 천안삼거리에 이르러 더 이상 어린 딸을 데리고 갈 수 없다고 생각하여 주막에 딸을 맡겨 놓는다. 아버지는 딸 능소에게 '이 나무에 잎이 피어나면 다시 너를 만나러 이곳으로 올 것이다'라고 한 뒤 홀로 떠났다. 나중에 수자리에서 돌아 온 아버지를 만난 능소는 서로 얼싸안고 춤을 추었다고 한다

 

 

그런 전설이 있어서인가? 능수버들은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춤을 추듯 출렁거린다. 이 계절이 되면 능수버들은 제멋에 겨워 춤을 춘다. 우리가 흔히 민요가사에서 이야기하듯 제멋에 겨워 휘늘어졌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이런 버드나무가 자라고 있는 곳이 바로 수원천이다. 수원천은 정조대왕이 버드나무를 심었기 때문에 유천(柳川)’이라고도 불렀다,

 

정조대왕 버드나무를 심다.

 

예전 병조에서는 입춘(立春), 입하(立夏), 입추(立秋), 입동(立冬)일과 땅의 기운이 왕성하다는 토왕일에 불을 만들어 각 궁에 진상하고 모든 관아에 나누어주었다. 병조에서는 봄에는 두릅나무와 버드나무에서 불을 취하고, 여름에는 대추나무와 은행나무, 가을에는 갈참나무롸 느릅나무, 그리고 겨울에는 느티나무와 박달나무에서 불을 취했다.

 

이렇게 각 계절마다 다른 나무를 이용해 불을 취했으며 입춘일인 봄에 버드나무를 이용해 불을 취한 까닭은 버드나무의 잎이 가장 먼저 돋기 때문에 그런 기운을 얻어 질병을 막기 위한 방법이었다고 생각한다. 정조가 특히 버드나무를 좋아한 것은 왕버들이었는데 그 버드나무의 줄기가 마치 용이 승천하는 것 같아 임금을 상징하는 ()’을 의미한다고 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조대왕은 버드나무를 유난히 좋아한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에서 새롭게 발견된 '신풍누도'라는 제목의 채색 그림을 보면 수원화성 행궁의 정문인 신풍루 주변에 온통 버드나무가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화성전도를 보아도 화성 성밖으로 온통 버드나무가 그려진 것을 볼 수 있다.

 

버드나무를 심은 것은 강한 국권을 만들이 위함인가?

 

정조가 현륭원(사도세자의 묘. 사도세자를 장조로 추존한 이후 융릉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일대나 용주사 일대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 버드나무를 심기 시작한 것은 재위 15년째인 1791년이다. 그해 1571주를 심기 시작해 몇 년에 걸쳐 수차례 버드나무를 심고 가꾸게 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제방을 쌓은 곳에도 심게 했다. 버드나무가 물을 좋아하는 특성 때문이다.

 

그렇게 버드나무를 좋아한 정조대왕이 축성한 화성답게 많은 버드나무와 관련된 명칭들이 전한다. 17일 오후, 방화수류정 인근에 지인을 만나기 위해 가는 길. 수원천 가에 늘어선 버드나무가 절경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 버드나무를 배경으로 사진촬영도 하고 그 아래를 걸어가면 버드나무 잎을 손으로 쓸어보기도 한다.

 

 

초록잎과 가지가 늘어진 것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늘어진 버드나무 하나만으로도 정조대왕을 떠오르게 만든다. 222년이 지난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버드나무는 그 당시에 심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안에 전조대왕이 이루고자 했단 강한 국권과 백성을 사랑하는 위민정신이야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다. 늘어진 버드나무를 보면서 천안삼거리를 마음속으로 불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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