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부여군 부여읍 중정리 537-4번지에는 중요민속문화재 제192호인 민칠식 가옥이 자리하고 있다. 이 가옥은 한옥체험을 하고 있는 집으로, 나지막한 뒷산을 배경으로 널찍한 터에 남향으로 자리 잡은 조선 후기의 주택이다. 민칠식 가옥은 사랑채 기와에서 숭정 871705년이라는 명문 기와가 발견이 되었고, 안채의 상량문을 보면 1829년에 크게 보수를 한 기록이 있다.

 

민칠식 가옥은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면, 19세기 후반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솟을대문은 자 모양으로 구성이 되었으며, 그 안으로 정침이 자리하고 있다. 정침의 앞쪽으로는 사랑채가 자리하고 있고, 사랑채에 붙은 중문을 들어서면 안채가 자리를 하고 있다. 안채와 사랑채는 중문을 두고 연이어져 있어 자형태의 집이다. 그러나 뒷면이 좌우로 길게 삐져나와 있어, 이런 형태를 날개집이라고 부른다.

 

 

 

 

 

10칸의 자형인 대문채

 

민칠식 가옥은 대문부터가 색다르다. 자형으로 길게 뻗은 대문채는, 좌측에서 5번째 칸에 솟을대문으로 구성을 했다. 밖에서 보면 우측으로 네 칸이 광채와 대문채를 들여놓고, 좌측으로 다섯 칸을 역시 방과 광들을 마련하였다. 대문채는 자 맞걸이 집으로 솟을대문을 만들고 양끝을 박공으로 처리했다.

 

대문채는 동에서 서로 길게 나열을 하였으며, 밖의 담장은 밑에는 돌로 쌓고, 위에는 기와로 문양을 넣었다. 자칫 단조로운 담장을 돌과 기와를 이용하여 멋을 내었다. 담장의 대문 쪽에는 숨어 있는 듯한 낮은 굴뚝이 있다. 현재는 한옥체험을 하느라 그랬는지, 광으로 사용하던 일부의 칸을 화장실로 꾸며 놓았다.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면 좌측에 사무실을 두었는데, 안으로는 넓은 마당이 펼쳐진다.

 

 

 

 

작지만 쓰임새 있는 사랑채

 

민칠식 가옥의 전체적인 구성은 그리 작은집은 아니다. 그러나 대문을 들어서면서 정면으로 보면, 좌측으로 사랑채를 두고 그 옆에 담장을 이어 중문을 내었다. 중문을 들어서면 서쪽에서 동쪽으로 꺾어 안으로 들어가도록 구성을 하였다. 중문의 동편에는 사랑채의 아궁이가 있으며, 안채를 들어가는 곳에 다시 중문 안문을 두었다.

 

이 문이 예전부터 있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이런 것 하나서 부터가 특별한 집이다. 사랑채는 앞으로는 세 칸으로 구성을 하였다. 사랑채 내림마루 끝에는 숭정(崇禎) 87년인 1705년이라는 기명의 망와가 있어, 이 집을 처음 지은 년대가 아닌지 추측을 한다. 사랑채 앞에는 큼직한 판석으로 댓돌을 만들어서 위엄을 표현하였으며, 사랑마당에서 중문간까지도 장대석으로 쌓은 여러 단의 계단을 오르도록 하였다.

 

사랑채는 마름모형의 주추를 놓고, 그 위에 네모기둥을 새웠다. 좌측 두 칸은 방을 드리고, 동편 맨 끝 방은 누정과 같이 누마루방으로 구성을 하였다. 사랑방 앞에는 툇마루를 놓고, 사랑채 서남쪽 모퇴에는 볏광을 드렸다. 사랑의 측면은 두 칸으로 되어 있으며, 사랑채에서 안채로 들어갈 수 있는 일각문이 안채와 연결된 담장에 나 있다. 이 사랑채의 특징은 담으로 안채와 연결이 되었다는 것이며, 그 연결 선상이 단지 담장이 아니라, 방과 한데부엌 등으로 꾸며졌다는 점이다.

 

 

 

돌출된 안마루가 특이한 안채

 

중문을 들어서면 동쪽으로 꺾어서 안채를 들어가게 하였다. 안채는 왼쪽부터 부엌, 큰방, 대청, 작은방, 안마루 순으로 구성된 8칸 집으로, 오른쪽에 돌출하여 덧붙여진 안마루가 특이하다. 사랑채는 광과 중문간, 부엌, 사랑방, 마루로 배치하였는데, 안채와 비슷한 구조기법을 보이고 있지만 안채보다 높게 지어 위엄을 나타내고 있다.

 

안채의 구성은 사랑채를 제하고 나면 자 형태이다. 동편으로는 사랑채와 맞물리는 일각문이 있고, 일직선상에 놓인 안방의 뒤편으로는 담장을 쌓아 보호를 한 날개채가 자리하고 있다. 이 집을 날개집이라고 부르는 연유이다. 서쪽 끝에 놓인 부엌은 앞이 개방되어 있으며, 중문채와 구별을 하기 위해 담장에 일각문을 내었다.

 

 

 

 

그 앞으로는 방을 드렸는데, 이곳은 중문채를 사용하는 여인들의 거처로 보인다. 안채와 중문채가 접해지는 부분에는 다시 일각문을 두어 서쪽으로 나갈 수 있도록 하였다. 전체적으로는 자형태의 구조를 갖고 사랑채와 중문채, 안채가 하나로 구성이 되어있으며, 그 구분을 일각문으로 했다는 점도 특이하다.

 

이런 형태의 집은 대개 영남지방의 양반가에서 많이 보이는 형태이다. 그러나 충청지방의 집에서는 매우 드문 집의 구조이기 때문에, 민칠식 가옥이 갖는 의미는 상당하다고 하겠다. 고택답사를 하다가 이렇게 보존이 잘되고, 특이한 집을 만나면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고 보면 나도 이제는 집을 보는 안목이 조금은 생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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