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제군 합강리 중앙단에서 한 맺힌 원혼을 위로하다

 

여단(厲壇)’이란 별여제(別厲祭)를 지내는 단을 말한다. 여단은 일반적인 제를 지내는 곳과는 다르다. 고을의 수령이 세상을 살다가 화를 당하고 세상을 떠난 원귀들을 달래기 위해 제를 지내던 곳을 말한다. ‘여단제(厲壇祭)’는 아이를 낳다 죽은 해탈귀, 총각처녀가 결혼을 하지 못하고 죽은 몽달귀와 각시귀, 칼에 맞아 죽은 검사귀, 물에 빠져 죽은 익사귀, 불에 타 죽은 화사귀, 어려서 죽은 동자귀 등 각종 귀신들을 달래는 제를 지내는 곳이다.

 

우리나라 각 고을에는 여단이 있었다. 조선조까지 이어지던 여단제는 각 고을의 수령들이 매년 청명, 음력 715, 101일 등 세 차례 이 여단에 나가 많은 한을 품고 죽은 원혼들을 달래는 제를 지냄으로써 고을이 안녕하고 백성이 편안하기를 빌었다. 현재 여단제는 사라졌지만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곳이 바로 강원도 인제군 합강리 산221-13에 소재한 중앙단이다.

 

 

중앙단은 인제에서 44번 국도를 따라 양양 속초로 나가는 방향에 소재하고 있다. 원통을 벗어나는 우측 소양강변에 마련한 이 여단을 중앙단이라 하는데 한편에는 합강정이 자리하고 있고 여단과 그 뒤편에 합강 미륵불이 소재하고 있다. 인제 중앙단은 조선초기부터 19세기 말까지 제를 지내던 곳으로 2001724일 복원되었다.

 

지난 4, 12일 동안 강원도 여행을 하면서 들린 중앙단. 문화재 답사를 하면서 여단의 흔적을 찾아 여러 곳을 다녔다. 그동안 여단터 등은 여러 곳에서 만날 수 있었지만 여단을 복원해 놓은 곳은 쉽게 만날 수 없었다. 그런 여단의 모습을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인제군이다. 1901년 경 소실되어 터만 남아있었던 중앙단은 가로와 세로 6.51m, 높이 77.5cm의 정방현 사각형 형태의 화강석으로 조성 복원하였다.

 

 

각 고을의 수령이 모여 여단제를 지낸 인제 중앙단

 

인제 합강정 옆에 위치한 중앙단은 조선시대 각도의 중앙에서 전염병 등으로 억울하게 죽은 원혼들을 위해 제를 지내던 곳이다. 조선시대의 여단제는 국가에서 자연신에게 지내는 제사로 정종 2년인 1400년에 지방의 주현까지 행해졌으며 임금이 직접 제를 봉행하던 여제단은 궁성 밖 북교와 동교, 서교에 설치되었다.

 

각 지방의 여단은 주로 관아 북쪽의 민가에서 멀리 떨어진 구릉지에 자리를 마련하고 있으며 1년에 세 차례 정기적으로 지내던 여단제 말고도 역병이 돌거나 가뭄이 심할 때는 시기와 장소를 별도로 택해 고을의 수령이 직접 여단에 나가 제를 모시고는 했다. 인제 중앙단의 경우에는 <증보문헌비고><인제읍지>등에 그 기록이 보이고 있다.

 

 

<증보문한비고>에 의하면 영조 18년인 1742년에 왕명에 의하여 별여제가 각도의 중앙인 강원도 인제, 경상도 상주, 충청도 공주, 전라도 광주 등에서 시행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기록에 보이는 영조 18년의 여단은 1843년에 발간 된 <인제읍지> 단묘조에 기록된 합강정 뒷쪽에 있는 중앙단이 바로 영조 때 전국에서 열린 여단제의 중앙단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외에도 1941년에 발간된 <강원도지><관동읍지>의 기록에 중앙단은 강원도의 중앙인 합강정 뒤쪽에 설치되어 1843년 전후까지 동서의 수령들이 모여 강원도의 별여제를 지냈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단이란 그저 일반적은 제사터가 아닌 원혼들을 위로하는 제사를 고을의 수령이 지냈다는 것에 그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합강정과 합강미륵불이 한 자리에

 

이곳 여단주변에는 합강정이 자리하고 있다. 합강정은 숙종 2년인 1676년 이세억 현감 재직시 건립된 중층누각이다. 합강정이라는 정자의 이름은 앞으로 흐르는 강이 동쪽의 오대산과 방태산 등에서 흐르는 내린천과 설악산과 서화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인북천이 홍진포의 용소에서 합류하여 흐르기 때문에 합강이라 했으며 그런 아름다운 지세를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자리한다 하여 합강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1676년 인제읍민을 동원하여 건립한 합강정은 화재 등으로 소실된 것을 영조 32년인 1756년 현감 김선재가 디시 중수하였다. 1760년에 간행 된 <여지도서>에는 합강정은 십자각 형태의 누각으로 다섯칸이다라는 기록이 있어 1865년 재 중수 시에는 정자를 중수하면서 6칸으로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이후 한국동란 시 폭격에 의해 소실된 것을 1971년 합강 나루터 능선 위에 다시 지었으나 1996년 국도확장 공사로 철거된 것을 199862일 정면 3칸 측면 2칸의 목조 2층 누각으로 복원한 것이다. 합강정에서 강쪽에 자리하고 있는 합강미륵불은 전형적인 지역 장인에 의해 조성된 미륵불이다. 누군가 미륵불 앞에 사탕봉지를 꽂아 둔 것으로 보아 이곳은 아직도 사람들이 찾아와 공을 들이고 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화재 답사를 다니다가 이렇게 한 자리에서 몇 기의 지정, 비지정문화재를 만나게 되면 그 날은 요즘말로 대박났다는 생각이다. 물론 그 문화재 하나하나를 자세히 기록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사로 연관을 짓고 있는 문화재들이기에 함께 소개를 한다. 합강정 옆에 복원된 원혼들을 위한 여단인 중앙단. 그곳을 들려 머리를 숙인다. 여단제를 지내지 않아 나라가 시끄러운 것일까? 그 앞에 서서 수많은 원혼들을 위한 간절한 마음을 합강에 띄워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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