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가을이 막바지에 들었다. 지난 6일이 한 겨울이 시작한다는 입동(立冬)이다. 입동이 되면 사람들은 김장준비를 한다. 올해는 배추 값이 폭락해 벌써부터 배추가격으로 인해 농촌에서 곤란을 겪는다는 소식이 들린다. 하지만 배추 값이 떨어진 만큼 고춧가루 값이 뛰어 김장을 하는 집에서는 지난해보다 조금 저렴한 가격에 김장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나야 집에서 김장을 할 필요가 없으니 그저 이곳저곳에서 보내주는 한 통씩 갖다 주는 김치로 한 겨울을 나고는 한다. 수원이 사람살기 좋은 곳이라는 것은 이렇게 나누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기 때문이다. 혼자 먹는 김치가 왜 그렇게 많아야 되느냐고 하겠지만 우리네들은 김장을 한 겨울 양식이라고 할 정도로 겨울철 반찬으로는 꼭 필요하다.

 

이천은 설봉호 주변에 많은 볼거리들이 몰려있다. 설봉호의 경치는 가을이 되면 압권이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온다. 너른 주차장은 언제나 차들로 들이찬다. 이곳 설봉호 주변에는 설봉산성을 비롯해 보물 제822호로 지정된 영월암 마애여래입상이 산자락 바위면에 부조로 조성되어 있는 고찰 영월암 등이 자리한다.

 

또한 설봉서원을 비롯해 관고리 오층석탑 등 설봉호수 주변을 돌면서 즐길만한 것이 상당수 자리하고 있다. 이천은 봄이되면 백사면 도립리의 산수유가 유명하다. 도립리 산수유축제는 전국 각처에서 사람들이 모여든다. 더구나 산수유마을 인근에 천연기념물인 이천 백송과 반룡송이라 이름붙인 소나무가 자라고 있어 연중 사람들의 발길이 그치지 않는 곳이다.

 

 

가을에 찾아간 설봉호 단풍 아름다워

 

설봉호 주차장 옆으로 오를 수 있는 영월암은 경사가 심한 곳이라 차로 오르기도 쉽지가 않다. 하지만 영월암을 오르다가 보면 이천시가지가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영월암은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625-702)가 창건하여, ‘북악사(北岳寺)’라 칭하고 산 이름도 북악(北岳)이라 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자료가 없기 때문에 실증적 사실여부를 확인하기 어렵다.

 

주차장에서 영월암까지의 거리는 1.5km 정도이다. 크지 않은 영월암에는 이천시 향토유적 제3호로 지정된 석조광배 및 연화좌대가 있다. 이는 통일 신라 말에서 고려 초기작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럼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영월암은 신라 말에서 고려 초기에 창건한 절로 추정하고 있다. 그만큼 유서 깊은 고찰이다. 차를 갖고 이곳 설봉호수를 찾아갔다고 하면 꼭 한 번 영월암에 올라볼 것을 추천하고 싶다.

 

설봉호는 이천시 관고동에 있는 저수지로 설봉저수지 혹은 관고저수지로도 불린다. 면적은 99,174평방미터이며 둘레 1.05km 수심은 99m이다. 설봉공원 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천시의 관광명소 중 하나로 손꼽히는 곳이다. 관개 및 관광개발을 목적으로 1969년 농림부 및 경기도의 저수지 조성 승인을 받아 1970년 완공되었다.

 

 

80m의 고사분수가 시원하게 물줄기를 쏘아 올리는 주변으로 무지개가 아름답게 펼쳐지며 호수 주변으로 세계 유명작가들의 조각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설봉국제조각공원이 조성돼 있다. 저수지를 따라 둘려진 순환도로는 산책코스로 이용되고 있으며 주변이 유원지화 되어 다양한 즐길거리가 관광객들을 맞이한다. 이천의 진산인 설봉산과 인접해 있으며, 향토유적 제14호인 영월암, 설봉서원지, 영무정 등을 둘러볼 수 있다.

 

설봉호는 가을이 되면 아름다운 단풍을 보기위해 사람들이 몰려온다. 설봉호 주변으로 난 산책로를 따라 노랗고 붉은 은행나무와 단풍나무가 사람들을 유혹한다. 이곳의 단풍은 색이 진해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설봉호를 따라 한 바퀴 돌면 왜 사람들이 가을이 되면 이곳을 찾아오는지 이해가 간다.

 

 

고려 초기에 조성한 거대마애불

 

높이 9.6m의 거대한 이 마애불은 마애여래불로 명칭을 붙였지만, 민머리 등으로 보아 마애조사상으로 보인다. 둥근 얼굴에 눈, 코와 입을 큼지막하게 새겼다. 두툼한 입술에 넙적한 코, 지그시 감은 눈과 커다랗게 양편에 걸린 귀. 그저 투박하기만 한 이 마애불에서 친근한 이웃집 어른을 만난 듯하다. 두 손은 가슴에 모아 모두 엄지와 약지를 맞대고 있다. 오른손은 손바닥을 바깥으로, 왼손을 안으로 향했다.

 

얼굴과 두 손만 부조로 조성을 했다는 것도 특이하지만, 우편견단의 형식으로 조성한 법의는 몸 전체를 감싸며 유연한 사선으로 흘러내린다. 이러한 옷의 주름이나 팔꿈치가 직각으로 굽혀진 것은 고려시대 마애불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 마애불은 그 형태로 보아 조사상이나 나한상으로 보기도 한다.

 

천 년 세월을 온갖 풍상에 저리도 의연하게 서 있는 마애불. 머리 부분은 암벽의 상단에 조각이 되어 올려다보면 몸에 비해 조금은 작은 듯도 하다. 전체적인 균형은 조금 비례가 맞지 않은 듯하지만, 저 단단한 암벽을 쪼개고 갈아 내어 저런 걸작을 만들었다는 것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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