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령님이 인간의 마음을 모를까보냐? 비가 온다고 상을 차리지 않았다고 노여움을 표현하시려고. 이렇게 비가와도 와서 제물을 차리고 치성을 드리는 것만 해도 이미 신령님은 그 정성을 받을 준비가 되어있는 것일 테지

 

5일 오전 수원을 출발해 4시간 가까이 차를 달려 고성으로 향했다. 고성군 현내면 산학리 노인산 금강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작은 암자 뒤편에 소재한 산신바위 앞에서 산신치성을 드리기 위해 찾아가는 길이다. 경기안택굿보존회 고성주 명인이 사업을 하는 자신의 수양부리인 권아무개 재수발원을 위한 산치성을 올리기 위해 먼 길을 나선 것이다.

 

수원에도 산치성을 드릴 곳은 많다. 그러나 지난해 이곳에 와서 치성을 드릴 때 내년 봄에 이곳을 찾아 다시 한 번 치성을 올리면 내가 도와서 사업이 잘 풀리게 해주마러는 공수를 받았기 때문이다. 진부령 가까이 가자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수원을 출발할 때는 그렇게 좋았던 날씨인데 장마철 날씨는 도대체 걷잡을 수 없다.

 

 

그래서인가 이날 치성을 드린 당사자인 권아무개씨는 그동안 중국을 오가며 사업이 어려움을 겪지 않고 잘 풀렸다면서 단순히 종교적인 맹신이 아닌 내 마음속에 진정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어려울 때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사회에서 말하는 미신의 개념이 아닌 자신의 믿음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迷信(迷信)’이란 종교적이나 과학적으로 잘못 알려진 것을 말한다. 일제는 우리나라의 공돋체를 폄하하고 와해시키기 위해 우리의 무속을 위시한 각종 신앙을 미신으로 치부했다. 그리고 수구문물이 들어오면서 우상숭배라고 몰아세웠다. 그러나 단군 이래 우리의 심성에 남아있던 맞이굿은 이들이 말하는 미신이나 우상숭배가 아닌 우리 고유의 신앙이라는 점이다. 다만 그것을 전하는 일부 몰지각한 인간들의 잘못되어진 행동이 사회의 지탄거리가 되고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어떤 종교는 그렇지 않겠는가? 어떤 종교라고 그 종교가 잘못되어진 것이 아니라 그 종교를 많은 사람을 제도하는 전파자 당사자가 잘못 된 것이다. 이것은 그 종교가 어떤 종교가 되었던지 다를 바가 없다. 흔히 성직자라고 하거나 수행자라고 하는 종교의 해당자들 역시 잘못된 삶을 살아가는 인간들이 허다하고, 중생제도는커녕 오히려 사회의 암적인 존재가 되어 종교와는 무관한 개인의 치부나 사리사욕, 각종 범법행위를 하는 인간들도 부지기수인기 때문이다.

 

 

치성 드리는 동안 내내 비가 내려

 

장마철의 일기는 가늠할 수가 없다. 산신각 앞에 제물을 마련하고 우산으로 젖지 않게 덮어놓았다. 그리고 정성을 다해 기원을 한다. “신령님이 인간의 전성을 모르겠느냐. 이 비에 찾아온 것만도 이미 정성을 받았다고 하신다는 말로 시작된 치성은 두 시간이 넘도록 그 빗속에서 계속됐다.

 

가는데 4시간, 기도하는데 2시간, 돌아오는데 4시간. 10시간이 걸리는 길을 왜 가야만할까? 바로 그것이 본인의 믿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정성이다. 굳이 그곳까지 찾아가지 않아도 치성이야 드릴 수 있지만 가야겠다는 본인의 생각과 그곳까지 찾아갔다는 정성이 일이 성사될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지성이면 감천아란다. “자신이 어떤 믿음을 갖고 있느냐고 중요하죠. 어떤 종교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서원하는 사람이 어떤 믿음을 갖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누가 서원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서원이 주체가 얼마나 올바른 사고를 갖고 세상사람들을 위해 살아가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아무리 대단하다고 하는 종교라도 치성을 주관하는 집제자가 더럽고 탁한 세상의 물정에 물들어있다면 아무리 입을 놀려 큰 소리로 신을 불러도 이미 신은 돌아앉아 버린 것이죠. 그런 종교에는 신이 없습니다

 

 

그 빗속에서 몇 장의 사진을 담아내면서 곰곰 생각해본다. 인피를 쓰고 얼마나 많은 종교인이라고 하는 자들이 속모르는 사람들에게 대우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가? 과연 그들의 소리에 신은 응답을 할까? 절대 어니다. 세상이 속인들보다 더 시커먼 모습으로 썩어버린 그들에게 어떤 신이 응답을 할까? 이름만 부른다고 신이 대답하던 시기는 이미 지났다. 진정한 자신만의 믿음, 그리고 올바르게 세상을 살아가는 자세가 없다면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 신을 불러도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다.

 

빗속에서 치성을 드리는 사람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믿음이란 나와 신과의 관계라는 것을 느낀다. 어떤 종교인가가 중요한 것이 나이고 어떤 미음의 믿음이냐가 중요한 것이라는 점이다. 돌아오는 길에 권아무개는 그동안 치성을 드린 후 단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멀고 힘들어도 가라면 어디라도 갑니다라고 한다. 그것이 바로 믿음이고 그 믿음을 이루어주는 사람이 진정 올바로 자신의 신도를 이끌어가는 집제자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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