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터를 관장하던 가신 후토주임

 

과거 우리에 풍속에 보면 사람이 거주하는 집안에는 수많은 신격이 있었다. 그 신격들은 상호 서로 호응을 하면서 존재하지만, 서로가 하나의 신격으로 따로 직능을 갖고 있다. 집안에 이렇게 많은 신격들이 존재하는 것은, 어찌 보면 우리네 사회가 그만큼 불안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집안에 있는 신격들을 보면 대문에는 수문대감이 지키고 있다. 집안으로 들어가면 마구간에는 우마대신이, 우물에는 용왕신이 자리하고 있다. 부엌으로 들어가면 조왕신이 있으며, 물독에는 용궁각시가 자리하고 있다. 마루대청에는 성주신이, 안방 시렁에는 조상신이 자리하고, 안방 벽에는 제석주머니에 삼불제석이 좌정한다.

 

장독대에는 터주가리에 터주신이 있고, 굴뚝에는 굴대장군이 자리한다. 집안에 이렇게 많은 신격들은 모두 가내의 식솔들을 보호하고, 가정의 안녕을 지켜주는 신격들이다. 이 중에서 현재까지 전해져 오는 것은 바로 대청마루에 좌정한 성주신과, 장독대에 좌정하고 있는 터주신, 그리고 부엌에 모시는 조왕신 등이다.

 

 

 

 

집터를 관장하는 터주신(=土主神)

 

터주신은 흔히 토주’, ‘터주’, ‘후토주임등으로 부른다. 신표는 짚으로 엮어 만든 터주가리 안에 작은 단지를 넣고, 단지 안에는 쌀이나 콩 등을 넣어 신주로 모시게 되는데 터주신은 집터를 관장하는 신이다. 집안에 성주가 있다고 하면, 울안에는 터주신이 있다. 터주신은 상달인 음력 10월에 새로 장만하는데 새 짚단을 이용해 엮어서 만든다.

 

터주신의 자리인 터주가리 안에는 작은 단지에 새로 빻은 쌀 등을 넣어둔다. 이 쌀은 음력 10월 상달에 새로 터주가리를 장만할 때 햅쌀과 교환하는데, 이때 묵은 쌀을 섞어 떡을 만든다. 이렇게 만든 떡을 이웃과 함께 나누어먹는데, 이 떡을 가을 떡 돌린다.’고 하여 주변의 집집마다 나누어 준다.

 

30일 오후 수원시 팔달구 지동 271-124에 소재한 고성주(, 62)씨의 집에서 터주가리를 만든다고 하여 찾아가보았다. 사전에 미리 준비한 짚단을 이용해 두 기의 터주가리를 만드는데, 고성주씨는 경기안택굿보존회장으로 유명한 무속인이다. 이 집은 색다르게 두 기의 터주가리를 만드는데 할아버지 터주와 할머니 터주라고 한다.

 

 

 

 

 

새 짚으로 만들어 옷을 갈아입혀

 

터주가리를 새로 만들어 일 년 전에 만들어 모셨던 것과 교환을 하는데, 이를 새로 만든다고 하여 옷을 갈아입힌다.’고 한다. 현재는 터주가리를 직접 만들어 집안에 모시는 집들이 거의 없다. 요즈음 사람들은 터주가리가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용인에 소재한 한국민속촌이나 가야 장독대에 놓인 터주가리를 볼 수 있을 정도이다.

 

고성주 회장은 매년 새로 터주가리를 만든다. 먼저 터주가리를 묶을 새끼를 꼰 다음 짚단을 몇 번 아래로 내리쳐 가지런히 한다. 그런 후 꼰 새끼줄로 짚단의 허리를 동여매 단단히 고정시키고, 새끼 줄 윗부분에 있는 짚단을 몇 올씩 잡아 땋아나간다. 그렇게 계속하면 가운데 있던 집단만 남게 되고 모두 엮이게 돈다.

 

 

 

 

그 맨 위에 남은 짚단과, 짚을 조금씩 보태면서 서로 땋게 되면 터주가리의 머리 부분이 완성된다. 그렇게 만들고 나서 가위로 잘 다듬으면 터주가리가 완성되는 것이다.

 

형님 이제 누가 터주가리 만들어 팔면 좋겠어요.”

요즈음 누가 터주가리를 사용하는 집이 있어야지

만들어만 놓으면 단골들이라도 하나씩 구해가게 할 수 있는데 말이죠.”

 

 

 

 

긴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지만, 갑자기 차가워진 날씨에 바닥에 앉아 터주가리를 만들고 있는 고성주 회장. 그런 모습을 보면서 참 정성이 대단하다고 생각 든다. 자신이 만들지 않으면 이제 터주가리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라고 한다. 요즈음 무속인들은 터주가리가 무엇인지도 모르는데, 만드는 방법조차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면서 걱정을 한다.

 

지금은 거의 맥이 끊긴 우리네 풍속인 터주가리. 예전에는 집집마다 장독대에 터주가리가 있어, 집안 식솔들의 안녕을 위해 부녀자들이 정한수를 장독대에 떠놓고 비손을 하고는 했다. 사라져가는 풍속을 지켜가기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고성주 회장. 그가 있어 소중한 우리네 풍속이 아직도 지켜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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