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마대(洗馬臺)’, 명칭 그대로라면 말을 씻긴 곳이다. 선조 26년인 1593년 임진왜란 당시 수만의 왜군이 이곳 독산성으로 몰려들자, 전라도 관찰사 겸 순변사인 권율장군은 말을 끌어다 그 위에 쌀을 부었다. 성 안에는 물이 귀해 군사들이 마실 물도 충분치 않았기 때문에, 물 대산 쌀로 물처럼 보이게 한 것이다.

 

권율장군은 전라도에 주둔하고 있던 병사 2만여 명을 데리고 이곳 독산성에 주둔하면서 왜군이 물러가게 하여 성을 지켰다는 것이다. 그러한 설이 전해오자 말을 씻긴 곳을 세마대라고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독산성의 지리를 보아 말을 씻긴 이곳은 아마 성내에 군사들을 지휘하던 전각이 자리했던 곳이었을 것이다.

 

 

 

 

깊어가는 가을에 오른 세마대

 

오산 독산성과 세마대지는 사적 제140호로 지정이 되어있다. 독산성의 둘레는 3,240m이고 문이 4곳에 있다. 독산성 안에는 물이 부족한 것이 큰 결점이었다. 이런 결점 때문에 이 곳 에는 세마대(洗馬臺)의 전설이 생긴 것이다.

 

가을이 깊어가는 1022일 오후 늦게 독산성에 올랐다. 낮은 성곽에 난 문을 지나 산성 가장 높은 곳으로 오르니, 떨어진 낙엽들이 발밑에서 바스락하며 부서지는 소리가 난다. 아마 이런 소리 때문에 사람들은 가을 산을 찾는 것은 아닌지. 천천히 걸어 세마대에 오른다. 세마대는 독산성 안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권율장군이 근왕병 2만을 이끌고 독산성으로 오른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임진왜란 중 전사를 살펴보면 삼도의 근왕병 5만이 이광을 주축으로 하여 용인에 집결한다. 713(음력 65) 이광과 운선각 등이 이끄는 남도근왕군이 이곳 용인전투에서 1600명의 일본군에게 대패를 하고 만다.

 

 

 

 

삼도근왕병 독산성에 모였을까?

 

1592426일 충주 탄금대 전투에서 소서행장이 이끄는 왜병에게 명장 신립이 이끄는 군사들이 패하고 신립이 전사하자, 전라도 관찰사 이광과 전라도 방어사 곽영, 충청도 순찰사 윤선각, 경상도 순찰사 김수 등이 전라, 충청, 경상도에서 모은 군사 5만 명을 이끌고 이광을 중심으로 삼도근왕병이라 칭했다.

 

이광은 병마절도사 최원을 전라도를 지키라 명하고, 자신은 4만의 관군을 이끌고 충청도 임천역에 도착한다. 전라도 방어사 곽영은 2만여 명의 관군을 이끌고 광주목사 권율을 중위장으로 삼아 여산대로를 지나 금강을 건넜다. 경상도 관찰사 김수가 이끄는 군사들과, 충청도 관찰사 윤선각이 이끄는 수만의 군사도 합세했다.

 

이 모든 군사가 선조 25년인 1592526일 평택 진위에 모이니 삼도에서 모인 군사들의 위세가 등등했다. 이들은 63일 독산성으로 옮겨 주둔한다. 64일 첫 전투에서 적을 물리치고 승리를 하게 되는데, 이 전투는 경상도 순찰사 김수와 경상도 병사 50여 명이 이끌어낸 승리였다.

 

광주목사 권율은 이광에게 사기를 축적하면서 조정의 명을 따를 것을 고하자 이광은 권율의 계책을 따르지 않고 선봉장 이지시와 전라도 방어사 곽영, 방어사 백광언의 군사 1천여 명과 합세해 65일 왜군을 공격했다가 백광언과 이지시, 그의 동생 이지례가 왜군의 조총에 맞아 전사한다.

 

 

 

 

독산성 전투는 언제 있었나?

 

다음날인 66(양력 713) 권율은 다시 신중하게 전투를 치를 것을 이광에게 전했으나 이광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리고 밥을 지어 먹을 때 왜군이 산골짜기를 따라 급습해 크게 패해 이광과 김수, 곽영은 도망을 치고, 이 전투에 참여하지 않은 권율의 휘하 군사만이 온전히 남을 수 있었다.

 

이런 기록으로 보면 권율장군의 군사들은 독산성에서 나오지 않고 용인전투에도 참가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용인전투에서 패전을 한 이광의 삼도근왕병 중 전라도에서 올라와 독산성에 머문 군사들이 2만여 명이라는 것은 전라도 방어사 곽영과 권율이 이끌고 온 군사들의 숫자와 일치한다.

 

임진왜란 전투 중 권율은 선조 25년인 159278일 이치전투에서 왜군을 격퇴한다. 그리고 선조 26년인 1593212일 행주대첩을 벌인다. 또한 96일과 7일에는 소사에서 왜군을 격파한다. 시기적으로 권율이 전라도 군사들을 이끌고 계속해서 인근 충청도와 경기도를 다니면서 전투를 벌여 승리를 하게 된다.

 

 

 

 

임진왜란 중 과연 독산성에서 머물렀던 권율장군과 그 휘하 근왕병들은 언제 있었나? 또 그들은 어떤 전투를 누구와 벌인 것일까? 적은 장수는 누구였으며 그들은 어느 경로를 통해 독산성으로 오게 되었을까? 그리고 그들은 독산성에서 얼마나 피해를 입었나? 그리고 그들은 어디로 향했나?

 

역시교과서 국정화 문제로 인해 시끄러운 나라를 보면서, 이제 우리지역의 역사도 제대로 정리가 되어야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전해오는 이야기가 아닌, 독산성과 권율에 대한 제대로의 역사가 조명되어야 할 것이다.

최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