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풍습을 다시 찾아야 정체성을 찾는다

 

우리의 옛 풍습을 잃어버리고 난 뒤 우리는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지나 않은지 걱정스럽다. 길을 걷다보면 거리에는 도대체 알 수 없는 간판이 줄지어 서 있고 세계적으로 가장 뛰어나다는 우리말은 찾아보기 힘들다. 국적불명의 합성어나 의성어로 된 간판들이 줄 지어 서있는 거리, 가끔은 이것이 과연 우리나라인지 의문이 들 때도 있다.

 

우리 전통풍습은 뛰어난 내적 사고를 지닌다. 그 풍속 안에 충효가 있고 나라사랑과 이웃사랑이 있으며 예의범절과 삼강오륜의 깊은 뜻을 갖고 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우리의 미풍양속은 한낱 옛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요즈음 사람들의 의식 때문에 박물관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정월 초하루부터 섣달 그믐날까지 많은 우리의 풍속을 지켜 온 우리민족은 어려운 난관을 이겨내고 나라가 위태로울 때마다 모두가 하나되어 슬기롭게 어려움을 이겨내고는 했다. 오랜 세월동안 전해진 우리의 아름다운 풍속이 결코 구시대의 것이 아닌 지금도 우리가 그 안에 내재된 사고를 지켜갈 수만 있다면 물질의 변화만이 아니고 지금을 슬기롭게 살아갈 수 있는 정신까지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다.

 

 

문안비(問安婢)’는 단순히 옛 풍속일까?

 

예전에 정월 초하룻날부터 여자들은 문밖출입이 자유롭지 않았다. 가리는 것이 많던 우리민족은 여자들이 정초에 나들이를 하거나 이웃에 찾아가는 것조차 꺼려했기 때문이다. 하기에 그 시대 여인들이 생각해 낸 것이 바로 문안비(問安婢)’라는 제도였다. 지금이야 정초부터 여자들이 자유롭게 나들이를 하기 때문에 굳이 이런 풍습이 필요하지 않지만 말이다.

 

정월 초3일부터 보름까지 주인마님 대신 이웃을 찾아다니는 문안비란 주인마님의 안부를 대신해 전하는 계집종을 말한다. 사대부가나 중류층 이상의 가정에서는 계집종을 곱게 단장시켜 일가친척이나 어른들이 있는 이웃의 집, 혹은 관계가 있는 집 등에 보내 과세문안을 드린다. 문안비가 인사를 가면 인사를 받은 집에서는 반드시 세배상을 차려주고 얼마간의 세뱃돈도 주게 된다.

 

한 마디로 문안비는 단순한 계집종이 아니라 문안비를 보내 상대방 집의 주인마님을 대신하는 것이기 때문에 소홀히 대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안비의 인사를 받은 집에서도 계집종을 단장시켜 상대방의 집에 정초 인사를 보내게 된다. 조선조의 시인 이광려(李匡呂)誰家問安婢 問安入誰家(뉘 집 문안비가 문안하려고 뉘 집으로 들어가는고?’라는 시구로 문안비의 모습을 묘사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조선시대 문안비에 나타난 기록을 보면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원일조에 사돈집에서는 부인네들이 잘 차려 입은 어린 하녀를 서로 보내어 새해 평안함을 물었다라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즉 조선조까지만 해도 정월 초하룻날 여인들은 요즈음처럼 문밖출입이 자유롭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켜져야 할 전통, 일깨워야 할 내적사고

 

문안비를 이 시대에 다시 찾자는 뜻이 아니다. 과거 우리네 세시풍속은 그 시대에 맞게 변화를 거치면서 아름다운 풍속을 지켜왔기 때문이다. 명절 연휴기간 전통문화관에는 사람들이 모여 북새통 놀이를 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 옛 풍습이 자꾸만 사라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북새통 한마당이라고 하는데 제기차기, 투호 등 그 많은 놀이 가운데 정작 세시적으로 정초에 가장 많이 즐기던 널뛰기, 그네타기 등은 찾아볼 수가 없다. 이런 놀이들은 그 안에 다 의미를 갖고 있는 놀이였다.

 

물론 준비를 해야 하는 여러 가지 사정이 있겠지만 결국 우리 전통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저 명절이 되었으니 보여주기식 행사로 진행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전통문화관이 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의아하다. 가장 많은 놀이, 그리고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정월의 놀이문화 대신 사계절 언제나 할 수 있는 놀이마당을 펼쳤다는 것이 못내 아쉽다.

 

굳이 문안비를 논하자는 것이 아니다. 과거 우리 풍속 안에는 계절마다 많은 내적사고를 지닌 놀이문화가 있었다. 그런 많은 놀이를 계절별로 즐기면서 어린 마음에서부터 스스로 이웃과 함께하는 공동체를 익혔던 것인데 그런 공동체를 배울 수 있는 놀이는 배제된 체 어디서나 즐길 수 있고 언제나 즐길 수 있는 놀이판을 준비했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크기 때문이다. 앞으로 세시적인 풍속을 즐기는 놀이판을 개설할 때는 이런 점을 염두에 두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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