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화성 방화수류정에 찾아온 봄을 맞이하다

 

정조가 현륭원(사도세자의 묘. 사도세자를 장조로 추존한 이후 융릉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일대나 용주사 일대를 비롯한 수원 화성 일원에 버드나무를 심기 시작한 것은 재위 15년째인 1791년이다. 그해 1571주를 심기 시작해 몇 년에 걸쳐 수차례 버드나무를 심고 가꾸게 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제방을 쌓은 곳에도 심게 했다. 버드나무가 물을 좋아하는 특성 때문이다.

 

방화수류정은 조선 정조 18년인 1794년에 완공되었으며 화성의 동북각루이다. 방화수류정은 전시를 위해 화성에 축조한 건물이지만 정자의 기능을 함께 갖고 있는 건물로 석재와 목재, 전돌을 사용해 축조하였다. 방화수류정은 송나라 정명도의 시 운담풍경오천(雲淡風經午天), 방화류과전천(訪花隨柳過前川)”에서 따왔으며 편액은 조윤형(曺允亨1725~1799)의 글씨이다.

 

방화수류정은 평면은 자형을 기본으로 하고, 북측과 동측은 형으로 돌출되게 조영하여 사방을 관망하는데 있어 어느 한 곳도 빠트리지 않도록 축조한 건축물의 백미로 알려져 있다. 정조대왕이 축성한 수원 화성의 시설물 중 한 곳인 방화수류정은 조선 헌종 14년인 1848년에 중수하였고, 일제강점기 이후 여러 차례 부분적으로 수리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니는 곳

 

방화수류정이라는 명칭은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닌다'라는 말이다. 독특한 건축미가 돋보이는 방화수류정은 201133일 보물 제1709호로 지정되었다.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닐기에 적합해 방화수류정이라 했던가? 41일 방화수류정을 찾았다. 매년 봄이 되면 연두색 잎이 바람에 하늘거리는 수양버들을 보기 위해 잊지 않고 찾아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17941019일 완공한 방화수류정은 그 아래 용연과 더불어 화성의 건축물 중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화성의 백미'라고 칭찬하는 방화수류정. 방화수류정은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그 형태가 달라 보인다. 어느 방향에서 보든지 절경인 방화수류정은 주변감시를 하고 군사들이 쉬기도 하는 기능을 함께 갖고 있다.

 

 

방화수류정의 동편 바로 옆으로는 북암문이 있어 쉽게 용연을 다닐 수 있도록 하였다. 화성의 암문은 깊고 후미진 곳에 설치한 비밀문으로 적이 모르게 가축이나 사람들을 통용할 수 있도록 낸 문이다. 그러나 이 북암문을 이용하면 방화수류정에서 용연까지 가장 짧은 거리로 이동할 수가 있다. 용연은 방화수류정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 주고 있다. 용연의 가운데는 인공 섬을 만들어 놓았으며 전체적인 조화를 보이는 이 용연과 방화수류정은 한 폭의 그림과 같다. 수많은 사람들이 수원화성 중에서 가장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방화수류정의 위치는 정조가 직접 잡았다고 한다. 그리고 45일 만에 공사가 끝난 이 정자에서 활을 쏘기도 했다는 기록도 보인다. 방화수류정은 정조 자신이 왕권을 상징하는 마음을 알린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징적인 정자이기 때문에 그 많은 용두를 지붕 위에 올렸던 것은 아니었을까? 방화수류정의 지붕 위에 유난히 많은 용두들. 아마 정조가 끊임없이 추구해 온 힘이 있는 왕조를 상징하는 듯하다.

 

 

봄날 방화수류정의 버드나무에 반하다

 

보름달이 뜨면 방화수류정에는 네 개의 달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하늘에, 또 하나는 바로 용연에 뜬단다. 그리고 세 번째의 달은 술잔에, 네 번째의 달은 사랑하는 임의 눈에 있다는 것이다. 화성의 방화수류정 아래 용연은 방화수류정과 함께 있어 더욱 아름다운 곳이다. 그래서 용연위에 달이 떠오르는 것을 보고 '용지대월(龍池大月)'이라고 하여 수원 팔경 중 하나로 꼽았다.

 

화성성역의궤를 보면 처음 용연을 조성했을 때 반달 모양의 연못에서 낚시를 즐겼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원형의 모양을 하고 있다. 당시의 용연은 둘레가 250m에 깊이가 185cm라고 적고 있다. 그 연못 가운데 인공 섬을 만들고 아름다운 소나무를 한 그루 심었다고 했으니 그 운치가 어떠했을까?

 

 

방화수류정 주변을 돌아보면서 봄을 마음껏 느껴본다. 용연 주변에 심은 버드나무 가지에 연두색 잎이 돋아나 작은 바람에도 하늘거린다. 이런 멋스러움 때문에 정조대왕이 이곳을 사랑한 것은 아니었을까? 남여 한 쌍이 방화수류정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느라 갖은 포즈를 다 취한다. 이 봄에 방화수류정에서 만난 수양버들만큼이나 저들도 들떠 있는가보다. 이 계절에만 만날 수 있는 연두색 수양버들과 방화수류정, 그리고 용연, 정조대왕이 이곳을 좋아한 까닭은 바로 이런 봄날의 멋이 아니었을까?

최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