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를 알릴 수 있는 관광기념품 공모전 접수가 617~19일까지이다. 이는 세계문화유산 화성 및 수원의 역사와 문화를 표현한 관광기념품을 발굴, 육성하고자 하는 뜻있는 공모전이다. 접수처는 수원시 팔달구 팔달산로 28에 소재한 수원문화원 소회의실(2)이며 우편접수는 619일 도착분에 한한다.

 

공모분야는 전통문화상품, 생활문화상품, 여행문화상품이며 완제품을 제출하는 제품분야와 시제품을 제출하는 아이디어 분야로 구분한다. 전통문화상품에는 전통과 토속, 생활공예품 등이며. 생활문회상품은 장신구, 장식품, 인테리어소품, 캐릭터용품 등이다. 여행문화상품은 가이드북, 엽서, 사진, 화첩, 민속공예 제품 등이다.

 

 

 

 

수원의 역사문화를 함축성 있게 알릴 제품

 

관광기념품은 수원의 역사, 문화적 특성과 수원화성을 함축한 제품으로, 상품이나 포장에 수원시 또는 수원화성을 나타낼 수 있는 문구나 이미지 등 특성을 살린 제품이라야 한다. 또한 대량 생산이 가능하고 가격이 적정하여 시장성과 대중성이 있는 제품이 환영받는다. 이 관광기념품은 국내, 외 관광객을 상대로 판매할 수 있는 제품이어야 하고, 제품, 포장, 설명서 등이 하나의 세트로 구성해야 한다.

 

제품분야에 출품하는 응모자는 제품설명 및 상품화계획서 1, 완제품 1, 사업자등록증 1부를 제출하면 되고, 아이디어분야는 제품설명 및 상품화계획서(개발안 설명서) 1, 우드락 전지패널(입체도면 1~2/ 200×400mm) 또는 아이디어제품 1점을 제출해야 한다. 공통으로 2015 수원시 관광기념품 공모전 참가신청서 1부를 제출해야하는데, 이는 수원시 및 수원문화원 홈페이지에서 다운 받을 수 있다.

 

제출한 제품의 응모제한은 개인(업체) 10점 이내이며, 국내, 외 시중에서 유통, 판매되고 있는 유사제품 및 모방품은 제외시킨다. 또한 타 공모전에 출품하여 입상한 제품이나 상품성이 떨어져 관광기념품으로 제품화가 어려운 것과, 고가제품이거나 부피가 커서 보관과 운반 등이 어려운 제품도 제한한다.

 

 

 

제품분야 대상은 500만원의 상금도 있어

 

입상작은 수원시 관광기념품으로 홍보하며, 관광기념품 판매소 등에서 전시 및 판매를 한다. 또한 수상작품은 필요시에 구입도 할 수 있다. 제출 제품에 대한 심사발표는 630() 수원시 및 수원문화원 홈페이지에 게재 및 개별통보를 한다.

 

입상자들에게는 제품분야 대상 1점에 500만원, 최우수상 1점에 200만원, 우수상 3점에 각 100만원의 상금이 주어지며, 아이디어분야에는 최우수상 1점에 200만원, 우수상 1점에 100만원, 장려상 1점에 60만원의 상금을 준다. 하지만 심사결과 해당 훈격의 수상작이 없을 수 있으며 공동수상을 할 수도 있다.

 

제품을 제출하는 사람들은 다음의 유의사항을 반드시 숙지해야 한다.

제품분야나 아이디어분야 수상작품의 지적소유권은 수원시에 귀속된다.

동일한 제품으로 타 공모전 및 단체전에 출품, 판매할 수 없다.

상금에 대한 제세공과금은 본인이 부담한다.

심사(시상) 후 응모제한부분(타 공모전 입상작, 모방품 등)에 해당하거나 부정한 방법으로 입상한 경우에는 입상 취소 및 시상금 회수 조치를 할 수 있다.

D.P(디스플레이)판은 심사 및 작품 이동의 편리를 위해 접수가 불가능하다.

 

낙선작 반출은 76~ 83일간 수원문화원 소회의실에서 실시하며, 작품 훼손문제로 인해 본인이 방문 수령하여야 한다. 반출기간 중 찾아가지 않은 작품은 수원시에 귀속되며, 입상작품에 대한 권리는 수원시에 있고 도록제작 등에 활용한다. 이와 같은 관광기념품 공모전에 많은 사람들이 좋은 제품으로 참가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를 전해준 후 일일이 덕담도 해줘

 

오늘 대례청(大禮廳)’을 내리는 의식을 합니다. 제가 받은 것이 4대째니까, 오늘 대례청을 내리는 의식을 하면 이제 제 뿌리도 6대가 되네요. 아마도 수도권 지역에서는 가장 긴 뿌리가 될 것 같습니다.”

 

도대체 무격이 대를 이어 대례청을 내린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 세습무들은 집안으로 기능이 승계가 되기 때문에 10대를 넘기는 것은 비일비재하다. 그런데 강신무들이 대례청을 내려 대를 승계한다니 이건 무슨 말일까?

 

가끔 신명세습(神名世襲)’이라고 해서 한 집안에서 자손들에게 자신의 신을 넘겨주는 일이 있다. 그리고 선대의 무격은 기능을 상실하게 되는 경우이다. 이것도 40년을 전국의 굿판을 누비면서 수많은 굿을 보았지만 단 두 집밖에 보질 못했다. 그런데 대례청을 내린다니 이건 또 금시초문이다.

 

집안으로 승계가 되는 세습무도 아닌데, 대를 물린다는 것이 도통 이해가 되질 않는다. 궁금해서 이 방면에서 50년 가까이 일을 해온 사람에게 물었다. 도대체 강신무들이 대례청을 내리는 것이 무엇인가 해서 말이다.

 

 

 

안택굿 만신들은 대례청를 내려야 한다.

 

예전에 어른들이 대례청을 내려 주었어요. 한 마디로 신의 부모가 신의 자식들에게 자신의 전안(신을 모셔 놓은 신당)에 가서 4배를 올린 후, 신부모에게 절을 올리면 신부모는 신딸이나 신아들. 혹은 신손녀들에게 신표인 ()’를 내려주고 덕담을 하기도 하죠. 원래 안택굿 대만신들이 대례청을 내렸는데 지금은 그런 유풍을 볼 수가 없죠.”

 

들어본 적이 없으니 그 내용이 궁금하다. 수원시 팔달구 지동 271-124에 거주하고 있는 고성주(, 62)는 경기안택굿보존회 회장이면서 스스로 자신을 만신(萬神)’이라고 한다. 어딜 가나 자신이 무격이라는 것을 당당하게 밝히고는 한다. 집안에서 대를 물려 만신으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고성주 회장은 4대째 대물림을 했다. 신의 증조인 남양 홍씨(친 할머니)로부터 조모 제주 고씨(친 고모), 그리고 신어마니인 경주 최씨와 고성주 회장까지, 이미 4100년을 내려온 무가(巫家)의 내력을 갖고 있다. 그런대 25일 봄 맞이굿을 하면서 대례청 의식을 거행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직접 내림굿을 주관한 신딸 3명과, 신딸이 내림굿을 주관한 신손녀 2명에게 대례청 의식을 거행한다는 것이다.

 

 

 

전안에 가서 4배를 하고 신부모에게 큰 절 올려

 

먼저 고성주 회장이 처음으로 내림굿을 주관했다는 신딸 이정숙(60. 부천 거주)이 머리에 족두리를 쓰고 양편에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고성주 회장의 전안으로 나가 4배를 한다. 그리고 신아버지인 고성주 회장에게 절을 했다. 고성주 회장은 쌍가락지를 손에 끼워준 후 덕담을 한다.

 

앞으로 재능을 열심히 닦아서 큰 만신이 돼야지. 만신은 그저 수많은 사람들에게 덕을 주는 사람이야. 행여 내 이익을 위해서 사람들에게 해를 입혀서는 만신의 도리가 아니야

 

대례청 의식을 해야 비로소 신 부모와 신 자식의 관계가 형성이 된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파란치마와 노랑저고리를 해 입히고, 족두리에 한삼을 끼고 전안에 나가 4배를 한 후, 신 부모에게 절을 하면 쌍가락지, 비녀, 머리장식, 노리개, 은장도 등, 호를 주어야 비로소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형성이 된다는 것이다.

 

 

 

 

대례청을 거처야 올바른 부모, 자식 간의 관계가 형성 되

 

예전에는 대례청을 거치지 않으면 올바른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그런데 요즈음은 이런 의식조차 모르면서 내가 신엄마다’, ‘내가 누구의 신딸이다라고 한다니 참 무당들이 격식도 모르면서 남을 위한다니 편리한 세상이죠. 하지만 남을 위해서 세상을 산다는 사람들이 본바닥이 없으면 그게 어디 신을 모시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나요?”

 

일일이 전안에 가서 4배를 한 후, 신 부모인 고성주 회장에게 절을 한 신딸과 신손녀들에게 쌍가락지를 끼워주며 덕담을 하는 고성주 회장. 옛 풍습을 지켜야 올바른 무당이 될 수 있다고 하면서, 이제는 그런 유풍조차 찾아볼 수 없는 세태가 안타깝다고 한다.(출처 / 오마이뉴스)

 

 

<동국세시기> 상원조(上元條)에 보면 충청도 풍속에 횃불싸움이 있다. 또 동네별로 편을 갈라 동아줄을 서로 힘껏 잡아당기는데 이것을 줄싸움이라고 하며, 경기지방 풍속도 이와 같다고 적고 있다. 줄다리기는 색전(索戰), 발하희(拔河戱), 혈하희(絜河戱), 색희조리희(索戱照里戱), 갈전(葛戰) 등의 명칭으로 불렸으며 이기는 쪽이 풍년을 차지한다.

 

최남선의 조선상식 풍속편 인색(引索 : 줄다리기)에는 경기도, 전라도, 경상도의 정월 15일 풍속에 짚 또는 칡으로 큰 줄을 수십 발이나 되게 길게 꼬고, 양쪽에는 수많은 작은 줄을 매달아 몇몇 마을이 들로 갈라 서로 잡아당기어 승부를 가른다. 이기는 편이 풍년이 든다고 말하는데, 이를 줄다리기라고 한다.’고 했다.

 

<형초세시기>에는 한식의 행사로 타구(打毬), 추천(鞦韆 : 그네뛰기) 시구지희를 들었는데, ()에 시구지희는 대나무껍질 등으로 동아줄을 꼬아 수리에 걸쳐놓고, 북을 치고 떠들면서 서로 잡아당기는 것이다라고 했다. 견문록에도 발하(拔河)라고 하여 정얼 15일에 대나무껍질로 만든 큰 줄을 사용하였다고 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줄다리기를 말하는 것이다.

 

 

 

비가와도 줄다리기는 그치지 못해

 

고색동의 줄다리기는 매년 음력 정월 보름에 행해졌으나, 요즈음은 보름 전후의 날을 잡아 일요일에 줄을 당긴다. 고색동 줄다리기는 1900년대만 해도 근동 30여 개 마을에서 풍장패를 끌고 나와 참여를 하는 큰 줄다리기였다. 일제의 문화말살정책 때는 줄을 다리지 못하자 마을에 흉사가 끼고 평안하지가 않아, 몰래 줄을 당기고는 했다고 한다.

 

1987년까지도 고색동의 줄다리기는 연이어져 왔다, 그 후 줄이 불에 타서 소실이 되고 마을이 급격히 도시화하면서 줄다리기가 중단이 되었다가, 고색동 청년회가 전통문화의 승계를 위해 1995년 줄을 새로 제작하고 복원하여 보름을 전후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고색동 줄다리기는 마을에 있는 당집에서 당고사를 지내는 것으로 시작이 된다. 1일 아침 9시가 조금 넘어 수원시 향토유적 제9호로 지정이 되어있는 고색동 당집에 풍물패들이 당도를 했다. 제관들이 당안에 들어가 술을 따라 올린 후 줄다리기를 한다고 고하는 당고사를 지낸 후 그 자리에서 제물을 나누어 음복을 한다.

 

당집 앞에서 만난 사단법인 고색개발위원회 신호정 위원장은 우리 고색동 줄다리기는 비가오거나 눈이 와도 반드시 당깁니다. 줄을 당기지 않으면 마을이 편치가 않기 때문이죠.”라고 한다. 그만큼 고색동 줄다리기는 전통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마을 안으로 풍물패를 불러들이는 정고

 

1030분쯤에는 풍물패가 줄을 다릴 장소로 길놀이를 하고, 이어서 이날 줄다리기에 합류하는 대유평농악대와 수원농협 주부대학의 고향소리패 농악대가 줄을 늘여놓은 곳에 당도를 했다. 이들은 바로 마을 안으로 들어올 수가 없다. 외지의 농악대가 마을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의례를 거치게 되는데 이를 정고(旌鼓)’라 한다.

 

정고란 기()와 북(=)을 이르는데, 마을에 있는 고색농악대의 영기를 양편에 앞세운 고수가 북을 매고 이들을 맞으러 나간다. 먼저 마을을 방문한 농악대에서 북을 울려 신호를 보내면, 마을의 고수가 함께 북을 쳐 답례를 하고 이들을 마을 안으로 맞아들이는 의식이다. 이렇게 이곳을 찾은 농악대마다 정고를 거쳐 마을로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줄고사를 지낸 후 이어진 마당놀이

 

풍물패들이 줄을 늘여놓은 안으로 들어오자 암줄과 수줄을 마주대고 그 위에 북어 한 마리를 올려놓았다, 그리고 큰 그릇에 막걸리를 부어놓고 제관들이 줄고사를 지내기 시작했다. 줄고사는 줄을 당기기 전에 먼저 마을에 우환이 없고, 줄을 당겨도 다치는 이들이 없게 해달라고 비는 것이다.

 

줄고사를 마치고 각종 공연으로 이어졌다. 예전에는 줄고사를 마치면 바로 줄다리기를 하였으나, 주민들에게 더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놀이마당을 연 것이다. 먼저 고색동농악대가 판굿을 펼친 후 고향소리패 농악공연, 춤이랑의 소고춤, 삶터의 비나리, 대유평 농악공연, 모듬북 공연 등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고색동 줄다리기는 참석한 모든 사람들에게 잔치국수를 제공한다. 고색개발위원회에서 제공하는 이 잔치국수는 부녀회에서 준비를 했다. 이런 과정을 다 마치고나면 개회선언을 하고 줄다리기를 시작한다. 줄에는 각각 남녀가 편장으로 분해 올라타게 되며 암줄과 수줄을 결합한 후 사이에 비녀를 질러 줄이 빠지지 않게 한다.

 

마을에서 신랑신부라고 하는 올해 줄 위에 오른 편장은 신랑은 김대민(, 21. 동남보건대) 이 신부는 조동현(, 21. 용인대)등이 맡았다. 징소리가 나면 양편이 서로 줄을 당기는데 암줄에는 부녀자와 아이들이, 수줄에는 남자들이 붙어 당기게 된다. 줄은 모두 세 번을 당기면 여자 쪽인 암줄이 승리하게 된다.

 

 

 

이렇게 줄다리기에서 여자가 이기는 까닭은 여자는 생산을 하기 때문에, 여자가 이겨야 풍년이 든다는 속설 때문이다. 오랫동안 마을에서 전해져 온 고색동 줄다리기. 쌀쌀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전통을 지켜가기 위해 정성을 다하는 주민들에게 온 한 해도 무사태평을 기원한다.

 

 

14일 오후 찾아간 화장실 문화공원 해우재. 길 건너편에는 12개월 만에 준공을 한 해우재문화센터 개관식이 열리고 있다. 잠시 시간을 내어 해우재 전시관 2층을 돌아보았다. 14일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화장실 트릭아트 전이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트릭아트 전은 531일까지 계속된다.

 

트릭이트란 극 사실주의 작품 위에 투명도가 놓은 특수 도료를 덧칠해, 얇은 피막을 형성함으로써 빛이 굴절과 반사, 원근과 음영에 따라 착각을 하게 만드는 미술장르의 일종이다. 관람을 하는 사람들은 이 그림을 보면서 착각을 일으켜 마치 그림 밖으로 어떤 또 하나의 형상이 그려진 듯 느끼게 된다.

 

 

 

화장실 트릭아트작가들 활발한 활동을 해

 

이번에 해우재 2층 전시실에서 화장실 트릭아트 전을 갖는 작가는 모두 세 명이다. 박명권, 박창영, 민성현 등이며 이들은 2010년부터 많은 전시를 해왔다. 2010년에는 울산옹기 엑스포 트릭아트 동화속의 옹기를 찾아서를 시작으로, 필리핀 마닐라 오션파크 트릭아트 박물관SBS 미라클 아트 특별전 등을 열었다.

 

2011년에는 제주 미라크아트 뮤지엄 제작 팀장을 담당했으며, 2012년에는 롯데백화점 중동점 바닥트릭벽화 제작, 삼성 갤럭시 프로모션 트릭아트를 코엑스와 타임스퀘어에서 열었다. 용인 기흥의 삼성 철쭉제에서 트릭아트를 담당하기도 했으며, 제주와 여수에서 한화 아쿠아리움, 수원장안구 환경개선과 해우재 전시 등을 담당했다.

 

2013년에는 LG전자 유아박람회 트릭아트와 파주 롯데 프리미엄 아울렛 트릭아트를 제작했고, 2014년에는 푸켓 트릭아이 뮤지엄, 동해시청 동해 수원지 트릭아트, 여주 프리미엄 아울렛 트릭아트 등을 담당했다. 그리고 2015년 해우재 2층 전시실에 화장실 트릭아트전을 열게 된 것이다.

 

 

 

다양한 형태의 화장실 트릭아트

 

해우재 전시관 이층에서 만날 수 있는 트릭아트는 다양한 형태로 그려져 있다. ‘똥차라는 이름을 붙인 그림에는 그림판 속에 분뇨를 수거하는 차가 한 대 서 있고, 호스에서 똥이 뿜어져 나오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변기 옆에 낮은 어린이 변기에 앉은 어린아이는 아랫도리를 벌거벗고 앉아있는 모습이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과 흡사한 그림은 변기에 앉아있는 사람이 그림 밖 휴지걸이에 있는 휴지를 손으로 말아 무릎 위에 올려놓은 형상이며, 벌거벗은 어린아이가 물을 마시면서 소변을 보는데 그림 밖에는 요강이 공중에 떠 있고, 그곳으로 쉴 새 없이 오줌줄기가 들어가는 모습을 그려놓았다.

 

 

 

아이들이 너무 재미있어 하네요. 세상에 이런 그림의 장르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트릭아트라는 이 그림의 형태가 미술의 한 장르로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요. 화장실을 주제로 그렸기 때문에 오히려 더 재미있습니다. 앞으로 이런 트릭아트를 이용한 많은 그림들을 그려 아이들에게 화장실에 대한 거부감을 없앴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파장동에서 해우재 문화센터 준공식을 보러왔다가 이곳을 들렸다는 김아무개(, 37)는 신기하다고 하면서, 연신 아이들을 그림 옆에 세우고 사진을 촬영하기에 바쁘다. 531일까지 해우재 전시관 2층에서 열리고 있는 화장실 트릭아트전’. 주말을 맞아 아이들과 함께 관람을 하기를 권유한다.

 

 

애동지는 수수팥떡을 만들어 먹습니다.

 

1222일이 동지(冬至)입니다. 동지는 24절기 중 스물두 번째 맞이하는 겨울의 절기 중에 한 날로, 이날은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긴 날이라고 합니다. 1222일 울릉도 지역의 일출시간은 오전 727분이고, 일몰시간은 오후 52분이라고 하니 해가 있는 시간이 9시간 50분 정도인 듯합니다. 상대적으로 밤이 그만큼 긴 날이죠.

 

그런데 사람들은 동지날에는 무조건 팥죽을 끓여먹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들 있습니다. 하지만 동지는 애동지’, ‘중동지’, ‘노동지로 구분을 합니다. 음력의 날짜에 맞추어 초순에 동지가 들었으면 애동지, 중순에 들었으면 중동지, 하순에 들어있으면 노동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올해 1222일은 음력 11월 초하루로 당연히 애동지에 속하죠.

 

애동지에 팥죽을 끓이면 애가 탈이 난다.

 

우리나라의 속설에는 애동지에는 팥죽을 끓이지 않습니다. 애동지에 팥죽을 집안에서 끓이는 아이들에게 나쁘다고 하는데, 팥죽을 끓일 때 부글거리며 기포같이 것이 생기듯 아이들이 몸에 물집 같은 것이 많이 생긴다고 합니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애동지에는 팥죽을 집안에서 끓이지 않았습니다.

 

22번 째 절기인 동지에 팥죽을 끓이는 이유는 팥은 붉은 색이라 사악한 것을 막는 방액(防厄)의 효과가 있다고 하여 팥죽을 끓이는 것입니다. 팥은 붉은 색이고 악귀들은 붉은 색을 싫어하기 때문에 그를 막아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정에서는 팥죽을 끓여 집안의 곳곳에 뿌려놓아 집안을 정하게 만드는 것이죠.

 

애동지에는 수수팥떡을 해먹는다.

 

애동지에는 팥죽 대신 수수팥떡을 해 먹는다고 합니다. 이는 애동지는 아이들을 상징하는 동지라고 하는데서 기인합니다. 우리나라의 습속에는 아이를 낳으면 열 살이 되는 해까지 수수팥떡을 해서 먹었습니다. 수수로 떡을 해 먹는 것도 역시 사악한 기운을 막는다는 뜻을 갖고 있죠. 수수도 붉은 색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수수는 생태적 조건이 불리한 지역에서도 잘 자랍니다. 습지대와 바람이 많은 곳, 또한 가뭄에도 잘 견디는 농작물이기 때문에 그만큼 아무리 험한 세상일지라도 아이가 탈 없이 잘 자라기를 바란다는 뜻도 포함하고 있다고 보아야죠. 붉은 수수와 붉은 팥을 이용한 수수팥떡을 만들어 아이와 집안에 드는 모든 사악한 액을 막는다는 것입니다.

 

동지는 흔히 작은설이라고 합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동지를 아세(亞歲)’라고 했습니다. 아세란 태양의 부활을 뜻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동지가 지나면 하루에 낮의 길이가 1분 정도 길어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동지가 지나면 해가 노루 꼬리만큼 길어진다.’고 표현을 하죠.

 

작은설이라는 동지에는 무슨 일을 했나?

 

동짓날 팥죽을 쑤게 된 유래는 중국의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소개를 합니다. 공공씨의 망나니 아들이 동짓날에 죽어서 역신이 되었는데, 그 아들이 평상시에 팥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동짓날 팥죽을 쑤어 역신을 물리쳤다는 것입니다. 동짓날 궁 안에 있는 내의원에서는 소의 다리를 고아 여기에 백강 · 정향 · 계심 · 청밀 등을 넣어서 약을 만들어 올렸습니다. 이 약도 역시 악귀를 물리치고 겨울에 몸을 따듯하게 한다고 합니다.

 

 

 

동짓날에는 관상감에서 새해의 달력을 만들어 궁에 바치면, 나라에서는 동문지보(同文之寶)’라는 어새(옥새)를 찍어 백관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매년 동지 무렵이 되면 제주목사는 특산물로서 귤을 나라에 진상하였습니다. 궁에서는 진상 받은 귤을 대묘에 올린 다음 여러 신하에게 나누어주었고, 멀리서 바다를 건너 귤을 가지고 상경한 섬사람에게는 그 공로를 위로하는 사찬(임금이 하사하는 음식)이 있었으며, 또 베와 비단을 하사하였습니다.

 

그 밖에 민간에서는 동짓날 부적으로 악귀를 쫓고, ()’자를 써서 벽이나 기둥에 거꾸로 붙여 뱀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또 동짓날 일기가 온화하면 다음해에 질병이 많아 사람이 죽는다고 하며, 눈이 많이 오고 날씨가 추우면 풍년이 들 징조라는 속설도 있습니다.

 

우리 경기도 전역에서 연희가 되던 거북놀이에서 거북이와 질라래비의 옷을 수수잎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도 역시 축귀를 상징하는 놀이이기 때문입니다. 애동지라고 하는 22. 수수팥떡을 만들어 이웃과 함께 나누어 먹으면서 동자에 관한 깊은 뜻을 익히는 날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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