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한 마음으로 관욕의식을 하는 불자들

 

512일은 음력 4월 초8일로 부처님 오신 날이다. 부처님 오신 날은 불교의 연중행사 가운데 가장 큰 명절로 여긴다. 4월 초파일은 불교 신자이거나 아니거나 오래 전부터 우리 민족이 다함께 즐긴 종교명절로 전승되어 왔다. 부처님 오신 날은 연등행사와 관등놀이를 중심으로 많은 행사가 행해진다.

 

지금은 볼 수없는 등놀이는 형형색색의 등과 불빛과 그림자를 이용한 놀이이다. 이를 영등놀이라고 하는데, 이때 영등 안에 틀을 만들어 놓고 종이에 개와 매를 데리고 말을 탄 사람이 호랑이와 사슴, 노루 등을 사냥하는 모습을 그려서 그 틀에 붙이게 된다. 등이 바람에 흔들려 빙빙 돌게 되면 여러 가지 그림자가 비쳐 나오는데 호화찬란하게 장식한 등대에 많이 달 때에는 10여 개의 등을 달고, 적게 달 때에는 3개 정도의 등을 달아 재미를 더했다고 전해진다.

 

등대는 고려시대에는 사찰뿐만 아니라 관청이나 시장, 일반 민가에 이르기까지 모두 달았다고 한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와서는 사찰과 민가로 제한되었던 것이 이제는 그림자놀이인 영등놀이는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조선조에 불교가 많은 핍박을 받으면서 이렇게 전해지던 등대를 이용해 하던 영등놀이도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아기부처님을 씻기는 관욕의식

 

12일 오전, 불기 2563년 음력 4월 초파일 수원사와 팔달사를 돌아보았다. 부처님 오신 날 절에서는 어떤 행사가 열리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함이다. 팔달구 수원천로 300(남수동 92-1)에 소재한 수원사는 그동안 공사를 하고 있던 일주문을 개방했다. 일주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서면 사람들이 줄을 길게 늘어서있다. ‘관불의식이라고 하는 아기부처님을 목욕시키려고 줄을 선 것이다.

 

4월 초파일이 되면 각 절에서는 부처님의 탄생지인 룸비니 동산을 상징하는 화단을 만든다. 아름다운 꽃으로 장식하고 그 가운데 부처님의 탄생 조각상인 아기부처를 세운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줄을 지어 차례대로 작은 표주박으로 감로수를 떠서 부처님 정수리에 붓는 것이다. 이를 관욕, 욕불, 관정이라고도 하며, 관불의식은 부처님이 탄생하셨을 때 아홉 마리 용이 나타나 오색향수로 부처님을 씻어 주었다는 데에서 기인한다.

 

 

이를 따라 부처님 오신 날이 되면 모든 절에서 이 관불의식을 행하게 된다. 사월 초파일에 행하는 불교의 의례 가운데 관불의식은 부처에 대한 공경을 표시하고 자신의 몸과 마음을 청정히 하는 의미에서 행해지는 의식이다. 이때 머리에 붓는 물을 관수(灌水)’라고 하며, 이를 아기부처님 머리에 물을 부어 정수리까지 흐르게 하는 불교의식이다

 

관수란 머리에 부은 물이 발밑까지 흘러내린다는 관두지수 유하족저(灌頭之水 流下足底)’란 말에서 따왔다. 즉 윗사람의 잘못이 아랫사람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뜻으로, 항상 마음을 바르게 하여 아랫사람들에게 본이 될 만한 행동을 한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사람들은 관불의식을 행하면서 자신도 함께 청정해지기를 기원한다.

 

 

팔달사 경내는 온통 공양하는 이들로 만원

 

수원사를 벗어나 팔달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팔달사를 찾았다. 들어서는 입구부터 경내 곳곳에 많은 불자들이 자리에 앉아 공양을 하고 있다. 팔달사는 4월 초파일이 되면 수만 명이 찾아와 공양을 한다고 한다. 대웅전 앞에는 자리가 부족해 밖까지 자리를 펴고 신도들이 앉아 법요식을 행하고 있다.

 

경내 중간에 자리하고 있는 석탑 앞으로 자리를 옮기니 많은 이들이 불을 밝히고 탑돌이를 하고 있다. 탑돌이는 승려들이 탑을 돌며 부처의 공덕을 노래하면 뒤이어 신자들이 무리를 이루어 수행하던 데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탑돌이가 불교의 대중화로 민간화되면서 4월 초파일의 풍속으로 변천되었다. 탑돌이를 할 때 사용하던 음악도 과거에는 4법 악기인 범종·법고·운판·목어를 써서 범패를 부르던 것이었다.

 

부처님 오신 날 돌아본 수원사와 팔달사. 전하는 말로는 부처님 오신 날 절 세 곳을 다니면서 공양을 먹어야 좋다고 한다는데, 남은 한 곳은 야간에 탑돌이가 열리는 곳을 찾아 세 곳을 모두 채워야겠다.

 

이춘승 단장 기획국립창극단 유태평양·민은경 출연

 

월드 평화 오케스트라와 국립창극단 유태평양·민은경이 함께한 ‘2019 뉴욕 국악 축전이 미국 뉴욕과 필라델피아에서 성대하게 개최됐다. ‘뉴욕 국악 축전은 중앙대학교 전통예술학부를 조기 졸업한 후 미국 유학길에 올랐던 이춘승 월드 평화 오케스트라 단장에 의해 처음 개최됐으며 올해로 3회를 맞았다.

 

이춘승 단장은 국악을 접하기 힘든 교민들에게 직접 사물놀이와 대취타를 가르쳐 전파하고 있다. 또한 국악기를 주축으로 사미센·얼후·비파 등 세계 여러 나라의 악기들로 월드 평화 오케스트라를 구성해 한국의 음악 문화를 뉴욕에 알리는 선봉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축전에서는 국립창극단 주연으로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있는 유태평양, 민은경이 월드 평화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면서 관객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특히 중앙대학교 전통예술학부 김성국 교수가 편곡한 심봉사 눈 뜨는 대목은 교민들에게 국악의 새로운 묘미를 제공하며 큰 사랑을 받았다.

 

또한 오케스트라와 함께 어우러진 사물놀이 공연은 교민 2~3세대 청년들이 직접 무대에 올라 연주에 참여함으로써 한국인의 얼과 뿌리를 느끼게 하는 감동의 무대였다. 관객들은 단순히 한국에서 찾아온 국악 공연과는 차원이 다른 기획과 완성도를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뉴욕 국악 축전 한국 책임을 맡은 ()퓨전 코리아 마성혁 대표는 국악은 중국·일본 전통 음악보다 세계 무대에서 큰 활약을 못하고 있는 것이 현주소라며 이런 상황에서 뉴욕 국악 축전은 국악의 멋과 우수성을 미국, 더 나아가서는 전 세계인들에게 알리고 있는 선봉적인 국악 축제라 할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경기안택굿 고성주 명인 봄맞이 굿 하던 날

 

안택굿이란 음력 정월이나 음력 시월상달에 가내의 안과태평과 식솔들의 안녕을 위해 집안에서 벌이는 굿을 말한다. 예전 경기도 각처에서는 안택굿을 하는 것을 자주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안택굿을 만나기 어렵다. 우선 사람들이 우리 전통 굿을 미신(迷神)이라고 치부한 일제의 사고나, 우상숭배라는 개신교의 교리 때문에 멀리하기 때문이다.

 

우리 굿의 역사는 깊다. 우리가 흔히 단군(檀君)이란 명칭은 단의 주인이니 곧 제사장을 일컬음이다. 당시에는 하늘에 감사하는 의식을 어떻게 드렸는지는 알 수 없으나, 부여의 영고(迎鼓), 예의 무천(舞天), 고구려의 동맹(東盟) 등은 모두 제천의식으로 하늘에 감사할 때 3일 밤낮을 주야로 먹고, 마시고, 노래를 불렀다고 하니 가히 대축제였다고 보아야겠다.

 

 

삼국시대 초기까지 왕은 바로 무격(巫覡)이었다. 차차웅은 방언으로 무()를 일컫는 것이라고 신라 중기의 학자인 김대문은 밝혔다. 차차웅은 신라 제2대 임금인 남해왕의 딴 이름이라고 한다. 그런 경기도의 전통적인 안텍굿으로 진행된 경기안택굿보존회 고성주 명인의 맞이굿411(음력 37)팔달구 지동에서 열린 것이다.

 

<삼국지> 등에 보이는 기록을 보면 맞이굿이란 뜻은 마지(=)’의 뜻으로 제천의식을 <맞이굿>, <매굿>이라고도 했다. 즉 하늘에 감사하는 의식으로 봄, 가을 며칠 동안 제사를 드리고 모든 사람들이 즐겼다는 것이다. 이 맞이굿에서는 모두가 하나 되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손을 잡고 춤을 추었다고 하니 당시의 정경을 보면 참으로 장관이었을 것이다. 수백, 수천이 함께 어우러져 서로가 수족상응(手足相應)하면서 춤을 추었다는 기록은 굿이 단순한 초복축사(招福逐邪)를 하는 신앙적 요소가 아닌 전국적인 축제였던 점을 알 수 있다.

 

 

매년 음력 37일과 107일 두 차례 맞이굿 열어

 

굿은 전쟁에서도 쓰였다. 전장에서 굿을 쳤다는 말은 굿이 삼국시대만 해도 단순한 치병이나 점술의 차원이 아닌 하늘에 대한 기원의식이요, 힘을 돋우기 위한 축제를 상징하는 용어였음을 알아야겠다. 전쟁에서 말하는 굿을 친다.’라는 것은 아마 지금 우리가 신명나게 한판 벌이는 풍물(風物)을 말하는 것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굿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모든 전통예술이 굿에서 나왔다고 하지만 그것은 전문가적인 입장에서 말하는 것일 테고, 당시에는 가장 큰 행사로 이루어지던 제천의식 속에 모든 악가무희(樂歌舞戱)가 총 망라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제정일치(祭政一致) 사회에서 제정분리(祭政分離)가 되면서 급격히 퇴락한 무격의 위치와 그들이 하는 행위인 굿이 너무도 많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이러한 굿이 지금은 그저 재수나 불려주고, 병이나 고쳐주는 그러한 행위쯤으로 알려지고 있다. 물론 강릉단오굿이나 일부 지역의 굿은 축제화를 하는데 성공한 예도 있지만 요즈음은 그 본질이 변한 것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늘에 감사를 드리는 축제의 굿! 얼마나 대단한 축제였을까? 3일간을 주야로 모든 사람들이 모여 춤추고 노래하고 마셨다고 하니 정말 대단했을 것이다. 이 굿이 사람들을 미치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굿판은 열린사회다. 그래서 남녀노소 구별을 할 것 없이 아무나 굿판에 참여할 수 있다. 복을 불러주고, 농사가 잘되게 하고, 마을을 평안하게 하고, 바다에 나가면 고기가 잘 잡히고, 어디 그 뿐이랴 굿이 우리에게 준 의미는 더할 나위 없이 크다고 하겠다. 지금과 같은 의미의 개인적인 치성이나 드리는 그런 굿과는 그 모양새부터가 다르다.

 

 

굿은 나눔의 축제

 

우리가 한일월드컵 때 전국적으로 대한민국을 외치면서 치던 박수를 기억할 것이다. ‘대한민국~ 짝 짝 짝짝짝이 박수가 굿에서 사용하는 동살풀이라는 장단에서 따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그래서 굿은 우리를 신명나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풍물판에서 한바탕 흐드러지게 노는 것을 <판굿>이라고 한다. 굿판을 벌였다는 소리다. 그만큼 굿이란 단어는 우리 풍습에서 포괄적으로 사용되어 왔다.

 

맞이굿을 진적굿이라고도 하는데 무격이 벌리는 굿판 중에 가장 화려하고 장엄하다. 경기안택굿 고성주 명인은 집안에서 4대째 전통적인 경기도 수원 일원에 전승되는 경기안택굿을 지켜가고 있는 강신무로 전국에서 굿 제일 잘하는 사람혹은 우리 전통 경기안택굿을 대물림 해 전승시키고 있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고성주 명인이 진적굿을 하는 날이 되면 수양부리가 아니라고 해도 구경꾼들이 모여든다. 지나던 행인들까지 배불리 먹여 보내는 것이 고성주 명인의 마음이다. 하기에 진적굿을 할 때는 많은 사람들이 이 집을 찾아온다. 한낮 잠시 내린 비로 모두가 집안으로 들어가 굿판에 취했다. 그 자리에 참여한 사람들은 모두 돌아가면서 한 보따리씩 제물을 싸들고 간다. 그 역시 고성주 명인의 마음이다. 모두 함께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다.

차량통제로 인해 남문로데오거리 상인들 울상

 

매년 봄이 되면 벚꽃이 만개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경기도청 벚꽃축제가 5일부터 7일까지 3일간 경기도청 일원에서 열렸다. 경기도청사 일대는 청사 내와 인근 팔달산, 수원화성을 화려하게 수놓은 200여 그루의 벚꽃으로 해마다 20만 명 이상의 상춘객이 다녀가는 벚꽃 명소로 손꼽히고 있다.

 

경기도는 올해 벚꽃축제로 불리던 기존 행사 이름을 봄꽃축제로 바꾸었다. 이에 따라 경기도는 축제 슬로건을 경기, 평화를 봄으로 정하고 평화의 플라워가든 조성 포토존 및 오색 조명 도내 사회적경제기업 및 창업기업 전시 홍보 존 등 3가지 주제로 나눠 축제를 진행하고 있다.

 

 

평화 플라워가든은 200그루의 벚꽃 외에 도청 정문과 청사 외곽을 철쭉 등 우리나라 전역에 분포하는 봄꽃으로 장식할 예정이다. 이곳에는 철쭉을 활용한 포토존과 경기도 남북협력사업, 비무장지대(DMZ) 평화관광에 대한 도정공익부스가 설치돼 평화에 대한 도의 염원을 느낄 수 있다.

 

이밖에 청사 내 푸드트럭 존에서는 관람객에게 한식, 중식, 분식 등 다양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있으며, 도청 운동장에서는 지역화폐 홍보, 119안전체험마당 등 주요 도정체험 부스도 만나볼 수 있다. 경기도 관계자는 예년보다 벚꽃이 일찍 필 것으로 예보돼 축제기간 중 개나리 등 봄꽃을 동시에 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전했다.

 

 

벚꽃 피지 않은 봄꽃축제장, 도청 청사 운동장만 시끌벅적

 

6일 경기도청을 찾아갔다. 도청 입구에서부터 각종 부스가 늘어서있고 운동장에는 봄꽃축제장을 찾아오는 상춘객들이 즐길 수 있는 각종 체험부스 등을 준비했다. 한편에는 푸드트레일러가 줄을 서 먹거리를 판매하고 있고, 푸드트레일러 한편으로 테이블과 의자 등을 놓아 사람들이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준비했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봄꽃의 상징인 벚꽃이 피지 않았다는 점이다. “예년보다 벚꽃이 일찍 필 것으로 보인다는 경기도청 축제관계자의 예상과는 달리 그렇게 아름답게 벚꽃이 필 것을 기대하고 찾아갔지만 꽃구경보다 사람구경만 한 셈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한 가지 아쉬움을 달랜 것은 수원시민회관(수원문화원) 축대에 늘어져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개나리가 만개했다는 점이다.

 

꽃이 없는 봄꽃축제장. 그래도 경기도가 준비한 각종 즐길거리나 먹거리 홍보부스 등을 돌아보는 것으로 봄꽃축제의 아쉬움을 대신할 수 있었지만, 이렇게 꽃이 만개하는 시기를 잘못 일고 예년보다 일찍 축제기간을 잡은 것은 이해가 가질 않는다. 3월 말경 갑자기 찾아오는 꽃샘추위를 생각하지 않고 날짜를 잡았기 때문이다.

 

 

남문로데오거리 상인들, “봄꽃축제로 주말장사 망쳤다울상

 

경기도는 행사기간 동안 경기도청사 내 주차장을 비롯해 5~ 7일 축제기간 3일 간 도청사 및 도청진입도로(병무청사거리~청사우회도로~도청오거리, 고등동오거리, 병무청사거리, 수원도서관 앞 삼거리) 양방향 차량진입을 통제했다. 차량 이용자는 경기도청 인근 수원초등학교, 수원시민회관, 매산초등학교, 수원세무서, 경인지방병무청, 수원여자고등학교 임시주차장을 이용하라고 전달했다.

 

경기도청 봄꽃축제 기간 중 경기도청 인근 도로를 양방향으로 차량진입을 통제해 주말에 남문로데오거리를 찾아오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겼어요. 축제를 여는 것도 중요하지만 차량통제를 시켜 가뜩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인들에게 피해는 주지 말아야죠

 

 

5일 오후 찾아갔던 남문로데오거리에서 영업을 하고 있는 강아무개(남문로데오상인회원) 씨는 도청에 항의를 하겠다고 하면서 차량통제구역이 표시된 지도를 보여준다. 경기도청을 통과하지 못하는 차량으로 인해 상춘객들이 거의 로데오거리를 찾아오지 않았다는 불평이다. 강씨는 주말이 되면 행궁광장에서부터 많은 관광객들이 로데오거리를 찾아오지만 저녁이 되도 축제장으로 사람들이 몰려 아예 손님들의 발길이 끊어졌다면서 불만을 토해낸다.

 

벚꽃이 만개하는 시기에 늘 축제를 열고 있는 경기도지만 올해는 꽃이 피지 않았다는 점과 수원시민회관 인근 도로를 점유하고 각종 먹거리와 기념품 등을 판매하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주차공간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도로변에 불법주차를 해놓아 차량통행은 물론, 보행자까지 불편하게 만들어 놓은 사람들. 이런 점은 축제를 열고 있는 경기도가 사전에 철저하게 방비를 했어야 했다.

 

한여름에 육괴정 느티나무 그늘도 한몫 감당

 

남녘에는 벌써 산수유가 피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이천시 백사면 도립리를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한다. 이천시 백사면 도립리는 산수유축제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곳이다. 산수유축제를 열 때 찾아갔던 이천시 향토유적 제13호인 육괴정은 백사면 도립리 735번지에 소재하고 있다. 한 여름 녹음이 짙은 육괴정의 모습이 궁금해 벌써 그곳으로 몇 번인가 찾아갔다.

 

여기조기서 산수유가 꽃을 피웠다는 소식이 앞당겨졌다는 풍문이 들린다. 겨울에 눈도 많이 오지 않고 날이 푸근해 꽃의 개화시기가 앞당겨졌다는 것이다. 이런 계절에 생각나는 여행지가 바로 이천시 백사면 산수유마을이다.

 

육괴정은 처음 지었을 때가 500년 전이라고 전하는 정자이다. 육괴정 주변에는 거대한 느티나무가 서 있다. 이 나무들이 바로 처음 육괴정에 모였던 명현들이 뜻을 모아 심어놓은 나무라고 한다. ‘육괴정이라는 정자의 명칭 또한 이 나무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다. 앞에 작은 연못은 새로 조성한 것이지만, 연못 안에 가득자란 각종 풀들로 인해 볼썽사납다. 장마가 그치고 난 뒤 이렇게 무성하게 자란 풀들을 제거했으면 좋았으련만.

 

산수유축제를 시작하기 전에 찾아갔던 육괴정 앞에 서있는 보호수인 나무들은 가지들만 앙상하니 내보이고 있었다. 당시 이곳을 찾았던 것도 바로 육괴정을 돌아보기 위해서였다. 몇 달 전 보았던 육괴정과 지금의 육괴정은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아마 지금쯤이면 육괴정 앞 나무들도 새순이 돋아날 듯하다.

 

육괴정은 처음에 초당으로 지은 정자였다고 한다. 조선조 중종 14년인 1519년 기묘사화로 인해 조광조를 중심으로 한 이상정치를 추구하던 세력이 크게 몰락하면서, 난을 피해 엄용순이 이곳 도립리로 낙향해 육괴정을 지었다고 전한다.

 

500여 년 전 엄용순이 육괴정을 지었을 때는 초가였으나, 그 후 여러 차례 중건을 거쳐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되었다. 육괴정은 당대의 명현인 모재 김안국, 규정 가은, 계산 오경, 퇴휴 임내신, 성두문, 남당 엄용순 등 여섯 선비가 우의를 기리기 위해 정자 앞에 못을 파고 주변에 6그루의 느티나무를 심었다고 전한다.

 

 

세월이 흘러도 그 뜻은 느티나무들과 함께 남아

 

육괴정 앞으로는 연인길이라고 하는 산책로가 있지만 그곳을 걸어 볼 엄두도 나지 않는 찜통더위 때 찾아갔던 기억이 난다. 날이 하도 더워 매미소리마저 끊긴 육괴정을 돌아본다. 주변에 당대의 명현들이 심었다는 보호수들이 그나마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다,

 

시원하게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는 커다란 느티나무들. 엄용순은 기묘사화를 피해 선친의 묘가 있는 이곳 도립리로 낙향한 후, 이곳을 찾아 온 선비들과 함께 학문을 연마하고 시를 짓기도 했단다. 이 느티나무들은 엄용순을 비롯한 6명의 선비가 우의를 다지기 위해 정자 주변에 각각 한 그루씩 심었는데, 그 중 세 그루가 아직도 나아 보호수로 지정이 되었다.

 

현재 보호수로 지정된 이 느티나무들의 수령은 500년 정도로 추정하고 있으니, 엄용순이 정자를 짓고 느티나무를 심었다고 전하는 시기와 같은 시기이다. 돌로 기단을 쌓은 위에 마련한 육괴정은 지금은 팔작지붕으로 정면 네 칸, 측면 두 칸의 사당형 정자이다. 가운데 두 칸은 누마루를 깔고 양편으로는 온돌방을 들였다.

 

한 겨울에도 이곳에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꾸민 집이다. 계단을 오르면 대문 위에 임진왜란 때 순절한 엄용순의 손()인 엄유윤의 충신정려가 걸려있다. 단출하니 지어진 육괴정, 그리고 수고가 15m나 되는 당대의 이곳에 머물었던 명현들이 심었다고 하는 느티나무. 세월은 흘렀어도 그들이 마음은 이렇게 남아있다.

 

 

이천 '산수유축제장‘, 올해는 늦지 않게 찾아가리라

 

이천시 백사면은 산수유 축제로 유명한 곳이다. 봄이 되면 산수유 꽃이 노랗게 피어 많은 사람들을 이곳으로 끌어들이고는 한다. 이천 산수유축제는 이천시 백사면 도립리, 경사리, 송말리 일원에서 열린다. 43일부터 주말과 휴일 등 3일 동안 열리는 산수유축제는, 축제 때 찾아가면 차를 댈 수조차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이천시에서는 대대적인 홍보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유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백사면소재지에서 산수유축제가 열리는 곳을 향해 가면 가장 먼저 송말리에 도착하게 된다. 축제 전에 찾아갔기 때문에 마을 안까지 차를 갖고 들어가 마을회관 앞에 차를 대놓고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마을 전체가 노랗게 꽃을 피운 산수유 꽃으로 인해 마치 어느 동화에 나오는 이야기라도 한 토막 들을 것만 같다.

 

산수유 구경 오셨나 봐요. 백사면 중에서도 우리 송말리 산수유가 제일 유명하죠. 이곳은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데 여기서부터 위로 길을 따라 올라가면 도립리까지 갈 수 있어요. 축제 때는 사람들이 많이 몰려와 제대로 구경도 할 수 없어요.”

 

지난해 이곳을 찾아갔을 때 사진촬영을 하는 것을 보고 마을 주민 한 사람이 울타리 안에서 일을 하고 있다가 반긴다. 매년 이렇게 큰 축제를 여는 곳이기 때문에 외지 사람이 전혀 낯설지 않은가 보다. 송말리 회관 앞에는 큰 밭에 작은 산수유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축제를 더 키워가기 위해 산수유나무를 마을에서 키우고 있다고 한다.

 

저 나무들이 자라면 큰길가와 마을 곳곳에 심어요. 앞으로 몇 년 만 더 지나면 아마 전국에서 제일 유명한 산수유축제가 백사면에서 열린 거예요. 그동안 큰길가에 심어놓은 산수유나무들은 많이 자랐어요.”

 

 

산수유축제는 이천시의 축제 중에서도 가장 먼저 시작을 하는 축제이다. 송말리를 벗어나 도립리로 들어갔다. 이곳은 산수유축제를 준비하느라 주차장 등을 마련해 놓고 여기저기 간이화장실도 준비했다. 축제가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도립리 여기저기를 돌아보고 있다. 마을주민들도 물건을 내놓고 파는 모습도 보인다.

 

사람들이 몰려들 때는 마을 전체가 발 디딜 틈도 없어요. 이제 준비는 다 마쳤는데 얼마나 많은 분들이 찾아오시려나 모르겠어요.”

 

마을 안에서 장사를 하는 한 주민은 이번 산수유축제에도 많은 분들이 찾아왔으면 좋겠다고 한다. 어차피 축제란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야 제대로 축제다운 흥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도립리는 송말리보다는 산수유나무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도립리에는 산수유 외에도 즐길 수 있는 것들이 있다고 은근히 자랑도 한다.

 

지난해 산수유 축제가 열리기 전에 찾아갔던 백사면 산수유축제장. 번잡한 것을 피해 미리 산수유꽃을 보기위해 모인 사람들이 꽤 모여 다. 여기저사 산수유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에 바쁜 모습들이다. 매년 찾아갔던 곳이라 벌써 산수유 축제장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올해는 늦지 않게 축제장을 돌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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