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청풍문화재단지 안에 있는 도화리 고가.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83호로 지정이 되어 있는 이 고가는 조선 말기의 목조 기와집이다. 전체적으로 ㄷ자형의 이 도화리 고가는 청풍면 도화리에 있는 집을 1985년 수몰로 인해 이곳으로 옮겨 놓았다,

 

도화리 현장에 있을 때에는 부엌 뒤뜰과 건물의 서쪽 부분에 각각 장독대가 있었고, 뒤뜰과 옆 마당에 밭이 있었던 집이었지만, 현재는 집만 옮겨온 상태이다. 이 집은 냇돌로 기단을 쌓은 집으로 왼쪽으로는 방, 부엌, 방이 배치가 되고, 중앙에는 세 칸의 대청이 있으며 오른쪽으로는 방 두 칸과 부엌이 배치되었다.

 


 

왼쪽의 방은 사랑방으로의 기능

 

문 안으로 들어서면서 왼쪽으로 보이는 방은 이 집의 사랑방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옥의 사랑채 앞에는 툇마루를 놓기 마련인데, 도화리 고가의 왼편 방은 그런 조건을 갖추고 있다. 툇마루는 앞쪽과 집 뒤편까지 이어져 있다.

 

  
▲ 사랑방 툇마루가 달린 이 방은 사랑방으로 싸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 사랑방 툇마루가 놓인 곳에도 문을 내고 앞 뒤에도 각각 문을 내었다. 툇마루는 집 뒤편까지 이어진다.


문 앞 사랑방을 지나면 부엌이 있는 것도 이 방을 사랑방으로 사용했음을 알려준다. 즉 안방과 구별을 두기 위해 중간에 부엌을 두었다는 점이다. 사랑방은 툇마루에 문을 두고, 양편으로도 문을 내었다. 문을 모두 개방하면 삼면의 경치를 바라볼 수 있도록 구성이 되었다. 충실한 사랑방의 기능을 그대로 갖고 있는 셈이다.

 

판자벽으로 된 부엌

 

사랑방과 마주하고 있는 곳에는 대청 건너의 두 칸의 방과 연결된 부엌이 있다. 그런데 이 부엌은 앞뒤 벽을 판자로 막았다. 이 지역에서 보이는 많은 고가 중에서, 이렇게 판자벽을 사용한 집은 오직 도화리 고가뿐이다. 이 부엌은 앞뒤로 나 있는 문을 중심으로 대청 쪽은 일반 담벼락을 사용했지만, 문에서 바깥 부분은 모두 판자벽으로 조성했다.

 

  
▲ 부엌 판자벽으로 꾸민 부엌. 앞 뒤가 다 판자벽이다.

  
▲ 부엌의 뒤편 부엌의 뒤편 판자벽에는 구멍이 나 있다. 까치구멍도 충실히 만들어 놓았다.


앞쪽의 부엌 문 위는 개방을 하였고, 뒤편의 판자벽은 이단으로 나누어 문 위로는 짧은 판자를 사용했고. 그 밑으로는 긴 판자를 사용했다. 이 부엌의 담도 문 쪽의 바람이 마주치는 담에는 심벽(心壁)으로 꾸몄다. 바람이 들어올 정도로 틈새가 벌어진 부엌에 심벽이 조금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런 모습이 오히려 이집의 멋으로 보인다. 이 판자벽을 막은 판자에는 여기저기 구멍이 뚫려있다.

 

도화리 고가에는 두 곳의 부엌이 있는데, 모두 양편으로 문을 내고 까치구멍도 충실하게 아래편으로 두었다. 사랑방 쪽의 까치구멍은 바깥쪽으로는 이층으로 내어 환기가 빠르게 만들었다. 이 부엌에는 아궁이 반대편에 판자로 만든 마루를 중간에 놓아 그릇 등을 올려놓을 수 있도록 하였다.

 

  
▲ 부엌마루 부엌에는 중간에 마루를 놓아 그릇이나 상 등을 올려놓고 아래는 장작을 쌓아둔다.

  
▲ 까치구멍 도화리 고가의 안방에 붙은 부엌에는 이층으로 된 까치구멍이 있다.


대청을 적절히 이용할 줄 아는 선조들

 

고가를 돌다가 보면 대청 위에 두 개의 나무를 가로지른 것을 볼 수 있다. 그 두 개의 가로지른 나무는 때로는 끈으로 묶어 놓은 것도 있고, 아주 고정을 시켜 놓은 것도 있다. 세 칸이나 되는 도화리 고가에도 양편에 이렇게 가로지른 나무가 있다. 그 가로대 위에는 멍석이나 상 등을 올려놓았다. 넓지 않은 집에서 대청의 위 공간을 최대한 활용한 것이다. 이런 지혜를 가질 수 있었다는 점이 놀라울 뿐이다.

 

  
▲ 대청 대청을 적절히 이용한 도화리 고가

  
▲ 대청 가로지른 나무 위에 갖가지 물건을 올려놓았다. 좁은 집을 적절히 사용한 지혜다.


아름다움과 보온, 일석이조인 심벽

 

고가들을 돌면서 보면 아름다운 심벽들이 있다. 이 심벽은 돌과 백회 등을 이용해 조성을 한다. 도화리 고가의 심벽이 남다른 것은 바로 냇돌로 심벽을 쌓았다는 것이다. 일반 돌이 아닌 냇돌로 심벽을 쌓기는 더욱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이야기를 한다. 그만큼 정성을 드린 아름다운 집이라는 이야기다. 이 심벽은 벽의 두께가 두꺼워져 보온에도 상당한 효과가 있다. 보온과 아름다운 집을 꾸밀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었다.

 

  
▲ 심벽 도화리 고가의 심벽은 냇돌을 이용해 조성하였다. 그 심벽이 아름답기도 하고, 보온의 효과도 높인다. 또한 밖에서 안을 들여다 보는 것을 막기도 했단다


도화리 고가를 돌아보면 평범한 가운데 재미가 있다. 그저 지나치기 쉬운 것 하나에도 선조들의 지혜가 보이기 때문이다. 도화리 고가의 특이함은 바로 냇돌로 기단과 심벽을 치장한 집이라는 점이다. 

바깥 담벼락부터 안 담벼락까지, 담벼락을 꾸민 방법이 다 다르다. 굴뚝도 일반 가정집과는 전혀 다른 벽돌굴뚝을 조성하였다. 중요민속자료 제136호인 충북 괴산군 칠성면 율원리의 김기응 가옥. 안채는 19세기 초에, 그리고 나머지는 1900년대를 전후해서 지어졌다는 김기응 가옥은, 옛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는 집이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안으로 들어가 보아도, 전통적인 상류주택의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바깥담벼락의 꾸밈이 돋보이는 집

 

김기응 가옥은 외벽부터가 남다르다. 솟을 대문을 가운데 두고 양편으로는 행랑채를 마련했는데, 행랑채는 ㄱ 자 형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문을 들어서면 우측 끝에 한 칸을 달아내어, 전체적으로는 한편이 잘라나간 ㄷ 자 형이다.

 

대문 밖의 외벽은 고택 답사를 하면서 처음 본 꾸밈이다. 돋아 나온 벽은 위로는 붉은 벽돌을 놓고, 그 밑에 수키와를 두 장을 마주 해 원을 만들었다. 그 밑으로는 돌을 쌓아 전체적으로는 3단으로 구분을 하여 문양을 만들었다. 이런 담벼락을 본 적이 없어, 이 집을 지을 때 담장 하나에도 많은 공을 들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바깥담벼락 대문 좌우에 마련한 행랑채의 담벼락이 외벽이다. 벽돌과 기와, 돌을 이용해 쌓은 문양이 특이하다.

▲ 행랑채 대문을 들어서면 넓은 안마당을 낀 행랑채가 있다. 행랑채의 구성으로 보아 이 집의 살림살이 규모를 알만하다.

 

솟을대문의 우측으로는 쪽문이 나 있다. 충청도 고택의 양반 집을 보면, 대부분이 이렇게 대문이나 중문의 우측으로 쪽문을 내어 출입을 하는데, 당시 양반가의 대문 조성을 할 때 유행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안으로 들어가면 넓은 안마당이 있다. 행랑채는 대문을 들어서면서 우측부터 한 칸의 돌출된 광이 있고, 꺾어져서 광과 헛간, 방, 부엌이 드리고, 대문을 지나면 방과 헛간이 있다. 그리고 담장으로는 연결이 되었지만, 안으로는 떨어진 꺾어진 부분에 한 칸의 헛간을 두고, 세 칸의 광과 방을 드렸다. 김기응 가옥의 특징은 공간 구성을 적절히 이용하여, 집의 분위기를 아름답게 꾸몄다는 점이다. 

 

안담을 쌓은 안에 자리한 사랑채

 

▲ 사랑채 일각문 사랑채는 안마당을 지나 우측으로 자리했다. 흑담으로 담장을 두르고 일각문을 내었다

▲ 쪽문 사랑채에서 안채로 통하는 쪽문. 위로는 까치구멍을 내어 마치 행랑채에 붙은 부엌쯤으로 알게 했다.

 

넓은 안마당을 지나면 황토로 쌓은 안담이 있다. 안담은 안채를 들어가는 중문에 붙여 ㄱ 자로 꺾어 일각문을 두었다. 그리고 그 안에 사랑채를 조성하였다. 사랑채는 큰 사랑, 대청, 작은 사랑으로 구성이 되어있지만, 겨울 추위를 막기 위해 앞을 모두 문을 달아냈다. 이 사랑채의 뒤편으로는 지붕을 달아내 안채로 연결한 통로가 있는 것이 보이는데, 바깥을 담장으로 둘러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사랑채의 일각문을 들어서면 좌측으로 작은 쪽문이 보인다. 이 쪽문을 통해 안채로 드나들 수가 있다. 이 지역의 고택에서 보이는 사랑채와 안채의 연결을 하는 일반적인 동선이 흐름이다. 그런데 이 쪽문 위로는 까치구멍을 내어, 이것이 문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중문채에 붙은 부엌문으로 착각을 하게 만들었다. 아마 외부인에게 이 문을 알려지는 것을 막자는 의도는 아니었을까?

 

▲ 굴뚝 사랑채 뒤편의 굴뚝. 검은 벽돌과 붉은 벽돌을 사용해 무게를 내고 있다.
 
사랑채에서 안채로 들어가는 쪽문의 사이는 담으로 막아 놓았는데, 그 안에 높은 벽돌 굴뚝을 놓았다. 이 벽돌 굴뚝은 검은 벽돌과 붉은 벽돌을 이용해, 흡사 어느 궁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형태로 꾸며놓았다.

 

또 다른 형태의 안채 담벼락

 

안채를 들어가기 위해 중문을 향하는데, 중문 옆으로 쌓은 담벼락이 바깥 담벼락과는 또 다르다. 중문의 담벼락은 돌출을 시켜 위로는 붉은 벽돌을 6줄을 놓고, 그 밑으로는 돌로 쌓았다. 김기응 가옥의 담벼락은 모두 다르게 조성을 해, 용도를 구분한 듯하다. 

 

중문을 들어서면서 우측으로 네 칸의 광이 있다. 그리고 그 끝을 떨어트려 안채가 시작이 된다.이 광의 문을 보면 일반적인 가옥의 광과는 다른 문을 달아냤다. 광의 문 까지도 세세하게 신경을 써서 아름답게 꾸민 흔적이 보인다.

 

▲ 중문 안채로 들어가는 중문. 중문의 담벼락은 또 다른 문양을 조성했다. 집안의 곳곳에 다른 담벼락을 꾸민 것이 이 집의 특징이다.

▲ 중문채 중문에 달린 중문채는 광채로 구성하였다. 광의 문의 꾸밈이 색다르다.

 

안채는 ㄷ 자 형태로 꾸몄는데, 부엌, 안방, 두 칸 대청, 뒷방을 차례로 놓고, 꺾어져서 마루와 건넌방, 부엌을 두었다. 중문을 들어서 안채를 보면 좌측 중문채와 접한 부분에 한 칸의 광을 내었다. 방과 광 사이에는 다락을 위로 두고, 밑으로는 뒤쪽으로 나갈 수 있는 작은 쪽문을 낸 것도 이 안채의 특징이다.  

 

전체적으로 오밀조밀하게 공간 구성을 한 김기응 가옥. 건물마다 특징이 있는 문양을 사용한 담벼락. 그리고 벽돌로 쌓아올려 중후한 감을 주는 굴뚝. 김기응 가옥만이 갖고 있는 특징이다.

 

▲ 안채 중문을 들어서면 ㄷ 자로 꾸민 안채가 있다.

자자체가 시작된지 벌써 20년이 지났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중앙정부는 지방분권에 대해서는 매번 딴청을 부리고 있다. 그것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권한을 내어주기 싫다는 억지일 뿐이다. 그동안 각 정부마다 지방분권을 하겠다고 냑속을 했지만, 사실 지방분권은 아주 빙산의 일각정도일 뿐이다. 지방자치단체들은 이제 목소리를 높여 지방분권을 요구하고 나섰다. 

 

10월 17일(수) 오후 4시, 수원시에 소재한 수원이비스 엠버서더 호텔 3층에서는 지방분권개헌국민운동이 주관을 하고, 수원발전연구센터가 주최를 한 <지방분권개헌수원포럼>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염태영 수원시장을 비롯하여, 민주통합당 유성엽 의원, 김부겸 믽주통합당 최고의원, 사회를 맡아본 안성호 교수, 발제자인 이기우 교수 등이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코미디같은 지방의 관리 이제는 그만 두어야

 

염태영 수원시장은 환영사에서 세방화라는 거대한 시대적 흐름속에 대한민국의 지방자치와 분권의 현실에 대해 냉철히 논의해 보아야 할 때라면서

 

"지방자치단체장 집무실의 넓이까지 제한하는 법을 만든 중앙정부가 집무실이 규정보다 크다고 줄이라고 하는 것은 코미디 같다. 그렇기에 자치단체장들은 규제를 받지 않는 부단체장과 방을 바꾸는 일까지 생겨났다" 면서 "지방정부에서 사업을 벌이고자 할 때는 모든 것을 중앙정부의 심의를 받아 하는데도 불구하고, 말이 생기면 모든 것을 지방정부로 떠넘긴다" 며 이제는 이러한 중앙정부의 독단적인 자기중심적인 독단은 시정해야 한다고 했다.

 

염태영 수원시장은 이제는 세게의 도시들과 경쟁을 해야하는 지방자치단체로서는 더 이상 변화를 늦출 수 없다면서 18대 대통령에 출마를 선언한 대선후보 그 누구도 지방분권에 대한 정책을 발표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이제 18대 대통령은 중앙정부 중심의 통제와 집권이라는 과거 체제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하며, 19대 국회에서 지방자치와 분권 강화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축사에 나선 유성엽 의원과 김부겸 민주통합당 최고의원도

 

"중앙정부에서 움켜쥐고 마음대로 휘두르는 권력을 이제는 지방자치단체에 넘겨, 창의적이고 다양성을 띤 지방 나름의 색채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에 권한은 대폭 이임해야 한다"고 했다.

 

 

기념촬영을 마친 포럼의 발제자와 토론자들은 2시간 동안 발제자인 이기우 인하대 교수의 '지방분권 헌법개정의 방향과 과제' 에서 "중앙정부의 권력 중심적인 구조가 나라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이제는 지방색으로 대표되는 지역에 대한 새로운 모델을 조성해야 할 시기이며, 선순환적인 지역발전 경쟁 에너지로 전환하기 위해서도 지방분권적인 권력구조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제2발제자로 나선 김성호 전국시도도지사협의회 정책연구실장의 '지방분권국가 정립을 위한 헌법개정 추진전략'라는 주제로 "지방자치단체와 학계 및 시민사회간의 공고한 협력체계를 구축함으로써 대통령선거가 지방분권과 이를 위한 헌법개정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는 정치적 기회로 활용될 수 있도록 노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포럼에 참석한 수원의 한 시민자치단체의 대표는  

 

"중앙에 집중되어 있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것으로 인해, 결국 지방분권이라는 지자체의 주 목적이 형평성을 잃은 지방분권이 되었으며, 말로만 지방자치의 활성화를 떠들 것이 아니라 정말로 지방자치단체들이 지역 나름의 독창적인 모습을 만들어 갈 수있도록 분권이 되야 할 것" 이라고 하면서 "18대 대통령에 출마를 선언한 후보자들은 하루 빨리 지방분권에 대한 소신을 밝혀야 할 것"이라고 했다.    

(사진은 수우너포토뱅크 자료입니다) 

e수원뉴스 시민기자들의 10월 12부터 14일까지, 2박 3일간의 워크숍 둘째 날 찾아갔던 통영의 자랑인 동피랑 벽화마을. 동피랑 벽화마을을 돌아보면서 우리 수원의 팔달구 지동과 꼼꼼히 따져 비교를 한 번 해보았다. 주말을 맞아 동피랑을 찾아온 수많은 사람들은 골목마다 꽉 들어차 있었다.

 

동피랑의 제일 꼭대기에는 통영을 방비하던 동포루가 서 있던 자리였지만, 동포루의 흔적은 그 자리에 서 있는 사진 몇 장이 흔적의 모두이다. 그 아래로 골목마다 온갖 그림이 그려져 있다. ‘동피랑’은 ‘동쪽에 있는 높은 벼랑’이라는 뜻으로, 비랑은 벼랑의 이 지역 사투리이다. 비랑이 변하여 피랑이라 불리는 것이다.

 

통영만 강구안에 정박 중인 이순신 장군의 재현 거북선과 강구안의 저녁노을(위), 아래는 정조대왕의 꿈이라는 수원 화성과 노을빛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야경


 

동피랑과 수원의 지동의 유사점

 

우선 통영 동피랑과 수원 지동의 유사한 점은 무엇일까? 통영 동피랑은 통영에서도 가장 낙후된 지역이다. 좁은 골몰과 촘촘히 붙은 판잣집들이 줄을 지어 서 있던 곳이다. 수원 지동 벽화길 역시 수원에서 낙후된 곳 중 한 곳이다. 또한 동피랑이 벼랑에 조성된 마을이라면, 수원 벽화길 역시 ‘용마루길’이라는 지대가 험한 안쪽에 자리를 잡고 있다.

 

동피랑의 가장 높은 곳에 포루가 있었다면, 수원 지동벽화길은 세계문화유산인 화성의 창룡문부터 남수문까지의 성을 끼고 있다. 동피랑의 마을 아래 통영의 재래시장인 중앙시장이 있다면, 지동에는 지동시장과 못골시장, 그리고 미나리광시장이 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수원 재래상권의 중심지가 된다.

 

이렇게 동피랑과 수원지동벽화길은 유사한 점이 상당히 많다. 하지만 동피랑이 전국적으로 유명한데 비해, 수원지동의 벽화길은 아직은 소문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동피랑은 벌써 2년에 한 번씩 새로 그림을 그리지만, 수원 지동벽화길은 지난 해 시작을 해 아직 조성 중에 있다.

 

통영 동피랑 벽화마을의 벽화


 

동피랑과 지동의 차이, 서로 다르지만 비교할 만

 

동피랑은 원래 철거예정지였다. 마을 꼭대기에 자리한 이순신 장군이 설치했다는 통제영의 동포루가 자리했던 곳으로, 포루를 복원하고 공원화하는 계획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2007년 철거될 운명에 처해있던 동피랑은 2008년부터 전국의 미술대학 18개 팀이 벽화작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2010년에는 국내 19팀과 외국 작가들 4팀이 참여하여 그림을 그렸다. 최근의 작품은 2012년 4월에 그려진 작품이다. 동피랑의 그림은 일정액의 지원금을 주고 사람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으며, 통영시에서는 몇 채의 빈집을 매입하여 작가들이 이곳에 상시 거주할 수 있도록 하였다.

 

동피랑이 일부 전문가들의 참여로 그려진 것이라면, 수원 지동벽화길은 순전히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자발적인 참여로 그려진 그림이다. 그림 자체로 보자면 동피랑에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유치원생부터 70세 노인에 이르기까지, 혹은 아버지와 딸이, 혹은 세 모녀가. 또 친구들끼리 참여하여 소중한 시간을 벽화를 그렸다. 주말이면 이 골목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도 시끌벅적하다. 모두가 자발적인 참여를 한 아마추어들이다. 이런 점으로 본다면 동피랑에 비해 더 뜻이 있는 벽화길이다.

 

 지동 벽화길의 벽화와 벽화를 그리는 유아원생들과 자원봉사자들


 

거기다가 입소문이 나자 삼성전자 등 대기업의 직원들까지 수원 지동벽화길을 조성하는데 일조를 하고 있다. 동피랑이 좁은 한 동네에 그려진 벽화마을이라면, 수원 지동은 모든 계획을 마치면 3km에 달하는 거대한 벽화마을 길로 조성이 된다. 또한 지동 벽화길은 테마가 있는 그림길이다. 사계절을 만날 수가 있는가 하면, 꿈이 있는 길이기도 하다.

 

동피랑에서 내려다보는 통영은 이름답다. 그곳에는 거북선과 이순신장군의 정신이 있다. 앞으로 펼쳐지는 통영만과 강구안의 일몰은 또 다른 아름다움이다. 그렇다면 수원 지동벽화골목에는 무엇이 있을까? 수원에는 정조의 꿈인 화성과 행궁이 있다. 그리고 제일교회 종탑에서 내려다보는 화성의 아름다움이 있다. 또한 종탑 노을빛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일몰의 아름다움은 어느 곳에도 뒤처지지 않는다.

 

‘지동벽화길’ 이런 것이 필요하다.

 

지동제일교회 종탑 꼭대기에 올라 화성을 내려다본다. 종탑을 한 바퀴 돌면 수원의 모든 곳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만큼 명소가 될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지동이 동피랑에 미치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우선은 동피랑은 주민들이 직접 참여를 하여 자신들의 주거공간을 관람을 위해 할애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동도 일부는 그러한 곳이 있다. 하지만 동피랑에는 미치지 못한다. ‘열린마을’로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동피랑에는 쉴 곳이 있다. 하지만 지동에는 다리를 편히 쉴 공간이 부족하다. 또한 동피랑에는 사람들이 워낙 많이 찾아들다 보니, 골목길마다 먹을 것 등이 주민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지동에는 꽁꽁 닫힌 문만이 있을 뿐이다. 스스로 문을 열어 그런 것을 주민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유도를 해야만 한다.

 

동피랑 벽화마을 아래 조성된 재래시장인 중앙시장(위) 아래는 수원 지동 시장 앞에서 매주 열리는 각종 공연과 지동의 한 가정 집 옥상에서 열린 옥상음악회 


 

지동에 소재한 서울목욕탕이 얼마 안 있으면 작가들의 공간으로 바뀔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지동의 벽화길은 길다. 더 많은 작가들이 이 길에 들어와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누구나 지나가면서 들여다볼 수 있는 그런 공간, 아무라도 작가와 대화를 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이 있어야만 한다.

 

동피랑은 이미 벽화마을과 재래시장, 그리고 강구안의 거북선 등을 연계하여 즐길 수가 있다. 그것 또한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지동은 화성과 단절되어 있다. 관광객들에게 화성과 지동을 연계하는 동선이 필요하다. 또한 지동 벽화길과 전망대, 재래시장과 수원천, 행궁의 무예24기 관람 등의 동선을 끊어지지 않도록 연결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이다.

 

지동은 그 외에도 주말마다 이루어지는 지동교 위에서 펼쳐지는 각종 공연과, 지동 여기저기서 펼쳐지는 옥상음악회, 황금마차 등 동피랑이 갖지 못한 많은 것들을 갖고 있다. 이러한 것들을 최대한 부각시켜야 할 때이다. 주민들이 즐기는 것이 아니라, 수원을 찾은 관광객들이 즐길 수 있는 마당으로. 이제는 동피랑을 넘어 전국 최고의 벽화길로 나아갈 때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들의 고장에 대한 맛에 길들여진다.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그 쪽 나름대로, 또 전라도에 사는 사람들은 전라도 음식이 최고라고 한다. 경상도 사람들은 당연히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음식이 최고일 것이다. 그렇기에 다 자기 고장의 음식이 최고라고 하지 않는가.

 

하지만 우리가 보편적으로 보면 전라도 음식이 풍성하고 맛깔스럽다고 한다. 경상도 음식은 맵고 짜다는 것이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음식 맛이다. 하지만 그것은 정답이라고 할 수가 없다. 전국을 돌아다닌 나로서는 전라도라고 해서 다 맛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경상도라고 해서 맵고 짜지만도 않았기 때문이다.

 

 

 

워크숍에서 만난 해물탕, 끝내줘

 

e수원뉴스는 수원을 홍보하는 인터넷 매체이다. 이곳에는 180여 명의 시민기자들이 기사를 쓰고 있는데, 그 중 30여 명이 2박 3일 동안 통영을 찾았다. 시민기자 워크숍으로 떠나 일행은 충렬사와 통영의 여기저기를 돌아본 후, 3일 째인 14일에는 한산면 두억리에 소재한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유적지를 돌아보았다.

 

한산섬을 돌아 나온 일행은통영시 도남동196-13에 위치한 ‘도남식당’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 이 집은 굴요리가 전문이라고 하는데, 상에는 굴전과 생굴 등이 차려져 있고, 휴대용 가스레인지 위에는 해물을 가득 담은 냄비가 올려 있다. 가득하게 이것저것을 넣은 해산물이 싱싱해 보인다.

 

 

 

굴전을 하나 들어 장에 찍어 먹어본다. 입 안에 굴의 향이 가득하다. 역시 바닷가라 틀린가보다. 이것저것 먹어본다. 야채와 멸치를 함께 무친 멸치무침을 한 입 먹어본다. 비릿한 냄새가 없다. 깔끔한 맛이 입 안에 감돈다. 이것만으로도 행복하다. 하긴 무엇인들 맛이 있지 않겠는가? 남들보다 몇 배나 더 땀을 흘리고 뛰었는데.

 

누구야! 경상도가 음식 맛이 없다고 한 사람이

 

냄비에 든 해물탕이 끊는다. 조개, 게, 바닷가재, 새우, 참 풍성하게도 들었다. 국물을 떠 먹어본다. 맛이 있다. 누가 이런 맛을 보고, 갱상도가 음식을 잘 못한다고 할 것인가? 한 그릇 가득 떠 밥에 넣고 먹는다. 빨리 먹고 남들이 먹는 시간에, 난 한 곳이라도 더 돌아볼 심산이다.

 

 

 

정말 밥 한 그릇을 ‘게 눈 감추듯’ 비워버렸다. 국물만 갖고도 밥 두 공기는 해치울 수 있을 듯하다. 통영에 내려와 몇 끼 만에 모처럼 맛있는 밥을 먹은 듯하다. 다음에 통영을 내려가게 되면 이 집은 꼭 다시 들려보아야겠다. 그 맛을 영 잊을 수가 없기 때문에.

 

주소 / 통영시 도남동 198-13

전화 / 055)643-5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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