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일 오후 610분부터 KBS-2TV를 통해 방영이 된 리얼 버라이어티 ‘12<등잔 밑이 어둡다>라는 부제를 단 수원편이었다. 김승우, 엄태웅, 성시경, 차태현, 이수근, 김종민, 주원 등 일행은 KBS 사옥 앞에서 출발준비를 하면서, 각자가 식권을 찾아 구내식당에서 아침밥을 먹은 후 수원으로 출발을 하는 장면부터 색다른 면을 보였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서울에서 가까운 곳에도 12일에 적합한 장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오지나 원거리에서 진행이 되었기 때문에 붙여진 부제이다. 말 그대로 12일이 주는 재미기 꼭 첩첩산중을 찾아가지 않아도 이루어질 수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밥을 먹고 난 일행 중 김승우와 김종민은 미쳐 차를 타지 못해, 버스를 이용해 수원으로 오는 모습도 재미를 주었다. 대중교통인 버스 안에서 사람들과의 자연스런 조우가, 그동안 보여주었던 12일과는 또 다른 신선함으로 다가왔으니 말이다.

 

 

멀리 가는 것이 능사가 아냐

 

멀리 가는 것만이 여행은 아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 경기도 수원에서 펼쳐지는 세계문화유산 이야기! 시작부터 긴장감 넘친다.’ KBS 12일을 검색하면 만날 수 있는 말이다. 그만큼 12일은 서울에서 한 시간거리인 수원에도 얼마든지 12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재미는 만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수원을 찾는 사람들은 수원에 얼마나 많은 볼거리가 있는지 잘 모르고 있다. 그저 단순히 세계문화유산인 화성이 있는 곳, 그리고 정조대왕의 효심이 서린 곳 정도인 줄로만 안다. 하지만 수원은 그렇지가 않다. 오히려 12일을 갖고도 모자랄 정도의 볼거리가 많은 곳이 바로 수원이다.

 

수원 화성의 관문인 장안문에서 시작한 출연자들은, 화성 성곽을 따라 북수문인 화홍문에 도달했다. 그곳에서 세계문화유산인 화성이 얼마나 과학적이고, 실전에 방비를 철저하게 지어진 성인가를 듣는다. 장안문에서 화살 통을 하나씩 받은 일행은, 성곽을 돌면서 문제를 맞히거나, 재미있는 행동을 했을 때 화살을 하나씩 받았다. 나중에 그것이 자신들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도 모르고 말이다.

 

방화수류정 위에 오른 일행은 화성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방화수류정의 아름다움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실제로 방화수류정은 그 자체로만도 보물로 지정이 될 정도로 독특한 건축미를 자랑하고 있다.

 

 

국궁체험이 또 다른 재미를 줘

 

화성의 전 구간을 돌아보려면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많은 장비와 100여명이 넘는 스텝들이 움직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동선은 장안문에서 화홍문과 방화수류정을 거쳐 동북공심돈까지로 정했다. 그리고 상으로 받은 화살을 과녁에 쏘아 상금을 받는 국궁체험으로 이어졌다. 그때까지도 출연자들은 그 화살의 용도를 모르고 있었으니, 그 또한 궁금증을 불러 일으킬 수밖에.

 

과녁을 맞힌 수대로 돈을 받아 든 일행은 버스로 지동교로 이동을 한다. 저녁 복불복이 시작된 것이다. 자신이 받은 돈을 갖고 가장 무거운 물건을 시장에서 사온 사람들부터 3명은 수원 왕갈비를, 그리고 남은 4명은 왕갈비 뼈로 저녁을 먹어야 하는 복불복이었다. 활을 쏠 때도 차태현의 앉아쏘기 등, 괴이한 형태의 활쏘기 자세는 웃음을 자아내기도.

 

 

재래시장을 누비는 출연자들

 

어쨌거나 시장에 도착한 일행은 한 사람씩 떨어져 가장 무게가 많이 나가는 것을 찾기 시작했다. 이동을 하면서 차태현이 이야기를 한 를 산 사람이 3(성시경, 차태현, 주원), 그리고 떡볶이 떡(김승우)과 항아리 뚜껑(이수근), 화분(엄태웅), 짠지무(김종민) 등이었다. 결과는 무를 산 3명이 맛있는 왕갈비를 먹을 수 있었다는 것.

 

그렇게 저녁 복불복을 하는 사이 화성 행궁 앞 광장 한복판에는 비닐하우스 한 채가 지어졌다. ‘미안하다, 다음 주다라는 자막과 함께 33일 방영 예고편이 잠시 나온다. 행궁 광장 비닐하우스에서 잠을 자고 일어난 사람들을 둘러보고 있는 수원시민들의 재미있어 하는 표정이 예고편이다.

 

25일 시청률조사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지난 24일 방송된 KBS 2TV 주말 버라이어티 '12'은 전국기준 17.9%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동시간대 1위를 차지했다. 비슷한 시간대 방송된 SBS '일요일이 좋다-런닝맨'17.3%, MBC '일밤-매직콘서트'6.0%를 각각 기록하며 뒤를 따랐다.

 

지난 주 '런닝맨' 마카오편에 밀려 2위에 머물렀던 '12'은 한주 만에 다시 정상을 탈환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이는 '런닝맨'2주 연속 아시아레이스라는 타이틀로 해외특집 승부수를 띄운 가운데 거둔 성과라 더 의미가 있다고 본다.

 

 

33일이 기다려지는 것은 바로 잠자리 복불복 때문이다. 촬영을 하는 날 밤 갑자기 기온이 떨어지고 바람이 심하게 불었는데 잠은 잘 잤는지, 또 누가 비닐하우스에서 잔 것인지 궁금하다. 이래저래 쏠쏠한 재미를 준 수원 12등잔 밑이 어둡다’ 2편이 기다려지는 까닭이다.

223일과 24일 수원의 이곳저곳에서 대보름 한마당 잔치가 열렸다. 우리민족은 음력 정월 15일을 대보름이라고 하여 큰 명절로 여겼다. 농경사회인 우리나라에서는 정월 대보름을 시작으로, 한 해의 농사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보름이 되면 일 년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많은 놀이들이 행해졌다.

 

대보름에는 귀밝이술을 마신다. 청주를 데우지 않고 마시는데, 이 귀밝이술을 마시면 일 년 동안 좋은 소식을 듣게 되고, 귓병을 앓지 않는다는 속설 때문이다. 또한 이 날은 부럼이라고 하여. 호두와 땅콩, 밤 등 껍질이 단단한 과실을 깨무는 습속이 있다. 일 년 간 이를 단단히 하며, 부스럼 들이 몸에 나지 않고 건강하라는 뜻이다. 이 외에도 복쌈을 먹는다거나 오곡밥을 지어 먹기도 한다.

 

수원 행궁 광장에서 시작된 대보름잔치 한마당의 서막을 알리는 대취타

 

정월 대보름의 풍습

 

정월 대보름에는 한 해의 안녕과 마을의 평안을 위한 각종 놀이가 펼쳐진다. 개인이 하는 놀이로는 더위팔기와 쥐불놀이 등이 있다. 그리고 마을의 공동체 놀이로는 횃불싸움이나 석전, 지신밟기, 다리밟기, 줄다리기, 장치기. 달맞이 등 많은 놀이가 전래한다. 이러한 모든 대보름의 놀이들은 공동체를 창출하고, 겨우내 움츠러든 몸을 원활히 하기 위함이다.

 

한 해의 농사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공동체 놀이를 하면서, 서로를 위하고 한 해의 안과태평을 기원하는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우리문화말살정책을 편 것도, 이렇게 공동체적인 놀이를 하면서 항일의 마음을 키웠기 때문이다. 당시 사라졌던 수많은 우리의 전래놀이를 이 시대에 재조명한다는 것은, 그래서 의미가 더 크다고 하겠다.

 

 고사덕담과 행궁 광장 한 가운데 마련한 달집. 서원지들이 걸려있다

 

대보름 민속놀이 한마당

 

223() 수원 화성 행궁 앞 광장에서는 수원문화원이 주관하는 24회 대보름 민속놀이 한마당이 열렸다. 수원시민들이 참여하는 이 놀이판에는 토요일을 맞은 가족들이 모여들어 윷놀이와 연날리기, 널뛰기, 소원지 쓰기 등 다양한 놀이가 펼쳐졌다. 사람들은 소원지에 자신의 서원을 적어 광장 중앙에 마련한 달집에 갖다 걸어놓는다.

 

한편에서는 널을 뛰고, 또 한편에서는 소리를 쳐가며 윷놀이를 한다. 놀이판이란 역사 왁자해야 흥이 난다. 소달구지에 타고 있는 아이들은 신기한 듯 마냥 즐거워하고, 수레를 끌던 소도 부럼을 파는 곳으로 가서 부럼을 먹는다. 그것이 재미있어 사람들이 몰려들고, 그렇게 즐기고 있는 사이, 행궁 앞에 마련한 무대에서는 고사상을 차려졌다.

 

부럼을 먹고 있는 소와 달구지를 타고 즐거워하는 아이들

 

오후 2시경에 대취타로 시작한 이날의 한마당 잔치는 오후 6시 경까지 계속되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염태영 수원시장은 올 한 해 모든 가정에 액은 사라지고 안과태평하기를 바란다.“며 놀이판을 찾은 시민들과 함께 윷놀이와 널뛰기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온수골 풍류한마당도 흥청

 

223() 오후 4시부터 권선구에 소재한 명당초등학교 운동장에서는 2회 온수골 풍류한마당이 열렸다. 곡선동주민센터와 곡선동단체협의회에서 주최를 하고, ()한국생활국악협의회에서 주관을 한 온수골 풍류한마당은 운동장을 찾아 온 인근의 주민들로 북적거렸다.

 

날아갈 듯 널을 뛰고 있는 염태영 수원시장과 윷놀이 판을 즐기고 있는 염태영 수원시장과 노영관 수원시의회 의장

 

한 편에 마련한 무대에서는 춤과 노래, 사물놀이, 비나리 등 다양한 공연이 펼쳐졌으며, 아이들과 함께 이곳을 찾은 주민들은 연날리기와 쥐불놀이를 하면서 즐거워했다. 대보름이 풍성한 것은 나눔이 있기 마련이다. 예로부터 우리민족은 이웃과 서로 소통하고 나누며, 함께 힘을 보태면서 일 년의 안녕을 기원했던 것이다.

 

보름달은 중천에 떴건만

 

우리민족의 정월대보름 놀이는 개인놀이이기 보다는 공동체놀이였다. 대보름의 가장 큰 놀이는 다리밟기와 줄다리기, 그리고 달이 뜨면 준비한 달집에 불을 붙이고 일 년의 안녕을 비는 달집태우기이다. 다리밟기는 풍물을 앞세우고 그 뒤를 사람들이 따라가며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던 연희이다.

 

온수골 풍류한마당에서 선 보인 부채춤 

 

고구려의 동맹이나 예의 무천, 그리고 부여의 영고 등에서 유래하는 3일 밤낮을 즐겁게 노래하고 춤추며 서로가 수족상응(手足相應)하고. 답지저앙(踏地底昻) 했다는 것은 바로 이런 지신밟기나 다리밟기 등의 놀이에서 나타나는 형태이다. 집집마다 액을 물리쳐주고 복을 불러들이며, 한 해의 건강을 기원하는 다리밟기 등은 이 시대에도 필요한 놀이이다.

 

줄다리기는 풍년을 기원하는 놀이이지만, 꼭 풍년만을 기원한 것은 아니다. 힘을 써 줄을 당김으로써 일 년 간의 농사를 짓기 위한 힘을 비축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달집태우기 역시 달집에 불을 붙이고 마음속에 서원을 함으로써, 한 해의 안녕을 모두가 빌었다. 달집에 불을 붙이는 것은 한 해의 모든 재액을 태워버린다는 뜻도 함께 갖는다.

 

온수골 풍류한마당교정 한가운데 마련한 달집 저 위로 둥근달이 떠올랐다. 그러나 무대에서는 이런저런 공연이 계속되어진다. 물론 주민들을 위해서 많은 공연을 보여줄 필요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달집태우기란 달이 떠오르기를 기다려, 제일 먼저 달을 본 사람이 망월이여를 외치고, 달집으로 달려가 불을 붙이는 것이다.

 

하지만 달은 중천에 떴는데 행사는 계속 이어진다. 한 마디로 대보름에 대한 의미가 퇴색되어지고, 그야말로 즐기기 위한 놀이판이 된 것이다. 우리의 놀이들은 모두가 그 안에 사고를 지니고 있다. 사고가 제외된 형식적인 놀이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달은 중천에 떴는데, 그 앞에 놓인 고사상이 애처로워 보이기까지 한다.

 

조금은 실망스럽게 돌아서면서, 내년에는 정말 우리놀이가 갖는 의미를 퇴색시키지 않는 대보름행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수원천에 놓인 많은 다리 위에서 남녀노소가 풍물을 앞세우고 춤을 추며 다리를 건너는 모습이나. 행궁 광장에서 수원시민들이 몰려들어 당기게 되는 줄다리기 한판. 생각만 해도 멋지지 않은가?

지동에 사시는 분들에게 가끔 묻는다. 지동이 무엇이 좋아 떠나지 않으시냐고?

 

지동요? 사람살맛 나는 곳이죠. 우선은 재래시장이 세 곳이나 있어 먹거리가 풍부하고요. 다 저녁이 되어 손님들이 갑자기 밀어닥쳐도 우린 걱정이 없어요. 코앞에 있는 시장에 나가면 푸짐하게 한 상 차릴 수 있으니까요. 거기다가 화성 있죠. 벽화골목 즐비하죠. 제일교회 종탑 노을빛 전망대 있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심이 후한 곳이니까요

 

이야기를 듣다가 보면 지동이란 곳이 정말로 살맛나는 마을인 것은 틀림이 없는 듯하다. 가끔 재래시장인 지동사징과 못골시장, 미나리광시장을 돌아보기도 하지만, 먹거리 하나는 정말 푸짐하게 마련을 할 수 있다. 남들은 물가가 너무 올라 살림살이가 팍팍하다고 하지만, 그래도 지동은 인심이 넘쳐나는 곳이라 장보기가 그리 팍팍한 편은 아니다.

 

 

시장 사람들의 인심은 어째 그리 후해?

 

지동 세 곳의 시장을 돌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것이 있다. 바로 푸짐한 인심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덤을 더 달라고 하지 않아도 한 주먹 덥석 쥐어 올려준다거나. 한 개 더 달라지 않아도 그저 몇 개 더 올려주는 분들이 있다. 그래서 지동은 이래저래 인심 좋은 마을이다.

 

꼭 덤을 주어서만은 아니다. 지동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분들은 대개개 대물림으로 영업을 하고 있다. 그러다가 보니 오래된 단골들이 많기 때문이다. 멀리서도 찾아오는 단골들이 있어, 지동시장의 사람들은 언제나 정을 푸짐하게 더 얹어준다. 그것이 바로 우리네 재래시장이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고 하는 까닭이다.

 

 

손님들이 왔다고? 그럼 순대타운으로 오리고 해

 

갑자기 손님이라도 찾아오면 요즈음은 참 곤란을 겪기도 한다. 준비가 안된 탓도 있지만, 장에 나가서 무엇을 좀 살라치면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이럴 때 지동은 진가를 발휘한다. 손님을 만날 때 그저 지동교 앞에서 만나자고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지동시장의 순대타운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넉넉하지 않은 주머니 걱정을 하지 않아도 좋다.

 

가끔은 수원으로 지인이나 친구 녀석들이 찾아온다. 그들을 일일이 대접을 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한 달에 한두 번만 찾아와도 주머니 사정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갑자기 누가 찾아오면 늘 하는 말이 있다.

 

남문에서 동쪽으로 차도를 따라 들어오면 좌측에 남수문이 있고, 지동교를 건너면 지동순대타운이 있어. 그 앞에서 만나자

 

 

남들은 순대타운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지동시장 안에 자리한 순대타운은 그야말로 수원은 명물이다. 한 건물 안이 모두가 순대집이니 말이다. 이곳에서 하는 요리들은 정말로 다양하다. 돼지머리고기를 시작으로 순대국밥, 순대와 곱창을 함께 철판에 볶는 철판볶음이나, 순대와 오징어를 함께 볶는 철판볶음도 있다. 거기다가 소머리국밥, 소곱창볶음, 닭갈비 등 갖가지 음식을 골라 먹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인심은 왜 이렇게 후한겨?

 

엊그제(23) 모처럼 순대타운을 들렸다.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가? 온통 사람들로 들어찬 실내는 사람사는 맛이 난다. 순대와 곱창 2인분을 시켜놓고 기다리니, 곱창과 순대, 야채, 당면, 버섯, 떡을 가득 넣고 그 위에, 라면 사리까지 한 개 얹어준다. 그야말로 푸짐하다. 이렇게 푸짐한 음식이 1인분에 8,000원이다. 딴 곳에 가서 이렇게 먹으려면 적어도 1인분에 만원에 웃돈을 얹어야 한다.

 

 

하지만 지동 순대타운에 들어가 철판볶음 2인분을 시키면, 장정 두 사람이 먹고도 남을 만 한 양이다. 그러니 이곳을 들린 사람들마다 다시 찾개 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후한 임심이 어디 이것뿐이랴,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가 나눌 줄을 아는 사람들이다. 지동이 사람살기 좋은 곳이라는 소문은, 결코 헛소문이 아니다. 그 안에는 정이 푸짐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참 길고 지루한 시간이었던 것만 같다. 한 분야에 미쳐 30년 세월을 살아왔다면, 아마 장인이란 별명을 들을 법도 하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런 명칭보다는 그저 기자’, 아니면 블로거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다. 222일 오후 2시 경,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소재한 오마이뉴스 사옥에서 그 30년의 정점을 찍었다.

 

오마이 뉴스 게릴라 명예의 전당 오름기자상’. 거창하니 제목을 달았지만, 사실은 기사 1,000건 이상을 송고하고 그 기사가 채택이 되면 주는 상이다. 기사 1,000건이야 누구나 쓸 수가 있다. 하지만 나에게 기사 1,000건이란 의미는 남다르다. 그것은 앉아서 쓴 기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현장을 발로 뛰어 쓴 기사이기 때문에, 그 어느 상보다도 의미가 클 수밖에 없다.

 

 시상식. 동행을 한 지인이 촬영을 했다

 

몇 번이고 멈추고 싶었던 역마살

 

30년간의 답사. 솔직히 그 동안 몇 번이나 멈추고 싶었다. 그러나 내로라하는 무속인인 아우 녀석이 형은 사주에 지독한 역마살이 끼었어요. 아마 70이 넘어야 멈출 것 같아요라고 한 말이 어찌 그리 잘 맞는 것인지. 어려울 때마다 몇 번이고 그만두어야겠다고 생각을 했지만. 그저 생각만으로 그쳤다. 또 다시 카메라를 들고 길 위에 서 있고는 했으니.

어제 밤늦게 집으로 돌아와 방안을 둘러본다.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장서에 가득한 문화재답사를 하고 정리한 CD뿐이다. 저것이 그간의 산물이다. 그 하나하나가 땀과 눈물로 얼룩져 있다고 하면, 남들은 이해를 하지 못할 것이다. ‘답사를 하면서 흘린 땀은 알겠지만, 웬 눈물까지라고 말이다.

 

 

깨진 카메라와 너덜거리는 등산화

 

남들처럼 돈을 벌어가면서 글을 쓴 것이 아니다. 한 번 답사를 나가면 30~50만원이라는 엄청난 경비가 들어간다. 어디서 조금이라도 들어오는 것이 있으면, 바로 길을 나선다. 그리고 주머니가 빌 때까지 돌아다닌다. 돌아오면 녹초가 되지만, 그때그때 정리를 하지 않으면 글을 쓸 때 감을 잊어버리게 된다. 아무리 피곤해도 정리를 마쳐야 자리에 든다.

 

그렇게 돌아다니면서 깨진 카메라가 몇 대인지 모른다. 겨울에 눈길에 산을 오르다가, 아니면 여름철 억세게 퍼붓는 장맛비 속에서 바위를 오르다가 미끄러져, 살이 터지고 찢긴 것이 몇 번이나 되는지 셀 수조차 없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아픈 것은 바로 망가진 카메라이다. 찢긴 살이야 약 바르고 싸매면 되지만, 망가진 카메라는 그럴 수가 없다.

 

그것도 산꼭대기까지 올라 사진을 찍고 나서 깨졌다면, 사진이라도 남는다. 하지만 바로 눈 앞에 문화재를 놓고 미끄러져 깨졌다면, 모든 것이 시쳇말로 도로아미타불이 된다. 몇 시간을 헐떡이며 올랐는데, 그리고 바로 코앞에 문화재가 보이는데 거기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아마 나도 모르게 흘린 눈물이 얼마인지 모르겠다. 그렇게 만들어 진 기사들이기 때문에, 난 이 상이 어떤 이들이 받는 상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얼마나 더 다닐 수 있을까?

 

아우 녀석이 한 말이 70까지는 다닐 수 있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앞으로도 5~6년은 더 다닐 수가 있다는 말이다. 그동안 얼마나 더 많은 문화재를 만날 수가 있을 것인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울렁거린다. 늘 새로운 것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가 지금까지 나를 지탱하게 했다. 그리고 그러한 새로운 것을 만나는 즐거움이 있어, 심적인 부담과 고통을 이겨낼 수 있었다.

 

이란 칭찬이 아니다. 더욱 부추길 뿐이다. 그것은 앞으로 더 열심히 하라는 하나의 당근일 뿐이다. 그래서 또 다시 마음을 정리한다. 물가가 올라서인지 요즈음은 예전 같지가 않다. 답사를 하기가 점점 어려워져 간다. 남들처럼 누군가 후원을 해 주는 것도 아니다. 그저 여기저기 기사를 쓰고, 그것을 모아 답사를 다녀야만 한다. 그래서 주머니는 늘 비어있다.

 

하지만 문화재답사라는 것이 돈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남들이 알아주는 것도 아니다. 많은 사람이 글을 읽어주는 것도 아니다. ‘문화재답사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늘 그렇게 생각을 해왔다. 어느 날 길 위에서 만나게 되면, 그저 눈인사라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것이 나에게는 만금보다 소중한 활력이 되기 때문이다.

 

소중한 상(사실은 채찍이지만)을 준 오마이뉴스와, 기꺼이 시상식까지 동행을 해준 지인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서구화된 문명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조선조 말기부터, 일제강점기의 강압적인 우리문화 말살정책으로 인해 수없이 사라져간 우리의 풍속들. 그 안에는 상원일이라고 하는 정월 대보름의 놀이들이 있었다. 공동체를 창출하고 마을과 마을 간의 단합을 일구어 낸 수많은 놀이들이, 단지 옛것이나 미신이라는 폄하로 인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사실 정월 대보름은 우리민족에게는 4대 명절 증 하나였다. 설날, 추석, 동지와 함께 정월대보름을 큰 명절로 잡은 것이다. 이렇게 정월 대보름을 큰 명절로 잡은 이유는 정월 초사흘부터 시작한 각종 공동체놀이들이, 정월 대보름을 기해 마무리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월 초하루에 설을 쇤 사람들은 초이틀은 귀신 날이라고 해서 근신을 하다가, 하늘에서 평신(平神)이 하강한다는 초사흘부터 지신밟기 등 각종 놀이를 즐기기 시작한다.

 

두레싸움은 서로 상대마을의 두레기에 달려들어 꼭대기에 꽂힌 꿩장목을 빼앗는다

 

3일부터 시작하는 대동놀이들

 

음력 초3일되면 각 마을마다 두레패가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지신밟기를 한다. 지신밟기는 마을마다 한 집도 빠짐없이 다니면서 고사덕담(告祀德談)’인 축원을 해주는데, 문굿서 부터 시작을 해 우물, 마구간, 부엌, 장독대 등을 돈 후 대청에 마련해 놓은 고사상 앞에서 덕담을 한다.

 

고사덕담은 그 집이 일 년 동안 안과태평하기를 바라는 축원굿으로 일 년 간의 액을 막아내는 홍수풀이부터, 농사가 풍년이 들기를 바라는 농사풀이 등 창자의 능력을 따라 다양한 소리를 한다. 지신밟기를 마치면 대청에 마련한 술과 떡을 나누고 난 뒤, 고사상에 올려 진 쌀과 돈을 갖고 다음 집으로 향한다. 그 쌀과 돈은 마을의 기금으로 사용을 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집집마다 먼저 지신밟기를 하기 위해 풍물패를 집안으로 끌어들였다고 하니, 우리민족은 정월에 하는 놀이가 풍농과 안과태평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믿음이 있었던 것만 같다. 이렇게 마을을 돌면서 지신밟기를 하던 두레패들이 길에서 만나게 되면, 상대방에게 먼저 기를 숙여 인사를 하라고 소리를 친다. 그러다가 급기야 상대 두레기의 기의 상단에 꽂힌 꿩장목을 뽑게 되는데, 이것이 정월에 열리는 '두레싸움'이다.

 

두례싸움에서 먼저 꿩 장목을 빼앗긴 마을은, 상대방의 마을을 '형님마을'로 일년간 대우를 하게 된다. 그리고 이긴 마을에서는 빼앗은 꿩장목을 기에 함께 달고 다니기도 했다. 진 마을에서는 일 년 동안 장목이 없는 두레기를 들고 다녀야만 한다. 

 

수원 고색동 코잡이 놀이( 사진 / 이용창)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는 줄다리기 

 

음력 정월 14일 밤이나 보름날 마을에서는 줄다리기를 벌인다. 줄다리기는 풍농과 다산, 마을의 안녕 등을 기원하는 기원성 대동놀이이다. 이 줄다리기는 처음부터 큰 줄을 갖고 줄다리기를 하기도 하지만, 처음에는 마을마다 작은 새끼줄을 갖고 줄을 당기고, 진 마을의 줄을 이긴 마을 줄에다가 더하게 된다.

 

그 줄을 갖고 이웃의 이긴 마을끼리 서로 줄다리기를 하면 조금 굵은 줄이 된다. 그것이 또 다른 마을과 시합을 하면서 자꾸만 더해져, 나중에는 얌용과 숫용이라는 거대한 줄이 된다. 이 줄을 암용의 용두는 넓게 하고, 숫용은 가늘고 뾰족하게 제작한다. 이 숫용의 용두를 암룡의 용두에 밀어 넣어 비녀라고 부르는 장목으로 고정시킨다.

 

이렇게 제작된 용을 당기게 되는데, 줄을 당기게 되는 이유와 용도는 마을마다 차이가 난다. 어느 곳은 여자와 남자로 나누어 당기기도 하는데, 이 때는 여자가 이겨야 풍농이 든다고 한다. 다산과 풍농이 필요한 시기에 나타난 속설이다. 또 이 줄을 마을 입구에 놓아 액을 막거나, 줄을 이용해 보를 막기도 한다. 어느 곳에서는 이 줄에 액송기를 꽂고 물에 떠내려 보내, 모든 액을 막아내기도 했다.

 

우리고장 고색동에는 코잡이놀이라고 하여 줄다리기가 전해졌다. 한 때 중단되었던 고색동 줄다리기는 인근 12개 마을에서 풍물패가 모여들어 장관을 이루었다고 한다. 삭전(索戰)이라고도 부르는 줄다리기의 기원은 아주 오래전에 기인한다. 고색동 줄다리기도 언제부터 시작하였는지는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무척 오래전부터였던 것으로 보인다.

 

1796년 수원 화성의 축성 이후에는 양반과 평민이 나누어 줄을 당겼다고 전해지고 있는 고색동 줄다리기는, 일제 강점기는 1960년대 까지도 전승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의동 길마재줄다리기 역시 영통구 길마재와 용인시 수지의 사람들이 모여들어 줄다리기를 하였다. 남자들은 동쪽 줄인 숫줄을 잡고 여자와 이이들은 서쪽 암줄을 당겼는데, 결과는 늘 암줄이 이겼다고 한다. 이는 여자들이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장치기는 겨우내 움츠렸던 몸을 활달하게 하기 위한 놀이였다

 

한 겨울의 움츠려든 몸을 푸는 장치기

 

장치기는 마상유희인 격구에서 비롯했다고 한다. 정조대왕 당시 펴낸 <무예도보통지>의 무예 24기에도 마상무예 중 격구가 포함되어 있다. 격구는 고려조에 들어서 여자들도 즐겼으나, 너무나 요란한 치장으로 인해 중지를 시키기도 했다. 그러한 격구가 민간놀이로 변하게 된 것이 장치기라고 본다.

 

장치기는 간단하게 공을 몰고 다니는 이라는 나무막대와, 소나무공이나 짚을 이용해 만든 얼레공만 가지면 누구나 즐길 수가 있다. ‘얼레공치기라고도 부르는 장치기는 수원과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193121일자 <동아일보>는 서탄면 황구지천에서 전국의 32개 남여 팀이 참가한, '전 조선 얼레공대회'가 열렸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 사보 124일자부터 30일자까지에는 수원군 양감면 용소리 앞 냇가에서 얼레공대회를 개최한다는 예고가 실렸으며, 참가할 각 팀의 선수는 5명으로 한다고 하였다.

 

양감면 용소리 앞 냇가에서 열기로 한 전조선얼레공대회에, 구경꾼들이 너무 많이 몰려들어 장소를 서탄면 황구지천으로 이동을 했다는 것이다. 예전 수원은 장치기를 재현시켜 전국민속경연대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한 겨울동안 움츠려들었던 몸을 풀고, 봄을 맞이하여 농사를 지을 힘을 비축하기 위한 놀이로도 많이 이용을 한 것이 장치기였다.

 

액송기를 꽂은 줄을 강물에 띄워보내는 액송의식 

 

그 외에 사라진 놀이

 

정월 열나흘이 되면 마을의 공터에 달집을 세운다. 대나무와 솔가지, 짚을 이용해 쌓은 달집은 보름을 맞아 농사를 짓기 전에 해충을 없애는 기능을 갖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해동(解冬=겨울을 녹인다)’의 뜻이 더 깊다. 쥐불놀이와 함께 대보름을 맞이하기 전에, 모든 재액을 태워버린다는 속설을 갖고 있기도 하다.

 

사람들은 라는 짚단으로 만든 것을 손에 들고 있다가, 달이 뜨기를 기다려 제일먼저 달이 뜬 것을 본 사람이, ‘망월(望月)이여를 외치면서 달집으로 달려가 불을 붙인다. 달맞이를 할 때는 임산부인 여자가 먼저 보면 남자아이를 낳고, 병자가 먼저 보면 병이 완쾌된다고도 한다. 처녀가 먼저 보면 시집을 가고, 총각이 먼저 보면 장가를 간다고도 한다.

 

달집태우기(사진 / 이용창)

 

이렇게 다양한 우리들의 상원일의 놀이는 이 외에도 마을과 마을이 벌이는 횃불싸움이나, 수원의 여러 마을에서 나타났던 석전(石戰=돌싸움), 그리고 일 년 동안 건강한 몸과 다리를 튼튼하게 한다는 다리밟기 등 많은 놀이가 전해지고 있었다.

 

정월 보름날 아침에는 연에다가 서원을 적거나, 집안의 애환을 적어 날려 보내는 액연날리기도 있었다. 이렇게 다양한 정월 대보름의 놀이들은 모두가 풍농과 풍어, 마을의 안녕, 가내의 안과태평 등의 속성을 지니고 있었다. 우리민족은 그 안에서 공동체를 창출했으며, 놀이를 하면서 이웃과 하나가 되는 우리라는 단단한 결속력을 다졌던 것이다.

 

그러나 작금에 들어 재현이 되는 많은 놀이들을 보면서,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사고는 사라진 채 단순히 보여주기 위한 전시성민속이 되어가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우리민족의 상원일의 놀이는 단순한 연희가 아닌, 그 내면에 깊은 사고를 지닌 놀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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