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케라톱스 화성엔시스는 어떤 공룡인가?

 

화성시 송산면 고정리 일대에 소재한 천연기념물 제414화성 고정리 공룡알 화석산지를 처음 찾아갔던 것은 2004년으로 기억난다. 이곳은 공룡알 화석이 발견된 곳으로 주말이면 공룡알 화석을 보기 위해 어린이를 동반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이다. 9일 번잡한 때를 피해 고정리 화석산지를 찾아갔다.

 

넓은 공룡알 화석산지는 사람하나 찾을 수 없다. 공룡알 화석산지 입구에 마련한 방문자센터에도 근무자를 제외하면 관람자는 우리 일행뿐이다. 방문자센터도 4년 전 방문했을 때와는 많은 것이 변했다. 외관부터 새롭게 조형을 하고 화석산지는 철제문을 달아놓고 시간을 정해 사람들에게 개방을 한다는 안내표시를 걸어놓았다.

 

  

 

한반도 최초의 뿔공룡이 발견된 화석산지

 

화성 고정리는 예전에 바다였던 곳이다. 옛 지도를 보면 송산면 천등산까지는 육지였고 현재는 육지로 연결된 우음도와 닭섬 등은 섬이었던 곳이다. 이런 곳이 시화호 물막이 공사가 끝나고 난 뒤 공룡알 화석산지가 육지가 된 곳이다. 물막이 공사를 마치고 난 뒤 이곳에선 현재까지 공룡알 200여개와 둥지 30여개가 9개 지점에서 발견되었다.

 

고정리 공룡알 화석산지는 20003월 천연기념물 제414호로 지정되었다. 고정리의 공룡알화석 산출지는 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된 퇴적층(83008500만년 전으로 추정)으로 이전에는 섬이었던 곳에서 공룡알화석 및 알둥지가 발견된 것이다. 세계적으로 공룡알 화석이 발견된 곳은 대부분 중국과 몽고 지역이었으나 고정리처럼 많은 공룡알화석이 한꺼번에 발견된 것은 매우 드문 경우이다.

 

 

뿔공룡 코리아케라톱스 화성엔시스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보고된 뿔공룡이다. 2008330일 화성 전곡항에서 열렸던 제1회 세계요트대회를 준비하던 중 화성시 공무원인 김경하에 의해서 화석이 발견되었고 화성에서 발견된 한국 뿔공룡이란 뜻에서 코리아케라톱스 화성엔시스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이다.

 

코리아케라톱스 화성엔시스는 중생대 백악기인 약 11000년전에 한반도에 살았으며 전체길이는 1.7~2.3m 정도로 추정된다. 코리아케라톱스 화성엔시스는 이족보행에서 사족보행으로 진화과정을 거친 뿔공룡으로 꼬리뼈에 척주뼈보다 5배나 긴 신경배들기와 독특한 모양을 가진 복사뼈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뿔공룡의 넓적한 꼬리는 물속에서 헤엄을 치는데 이용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찬바람을 맞으며 화석산지를 걷다

 

갑자기 날씨가 쌀쌀해진 주말이다. 방문자센터를 돌아보고 난 뒤 화석산지로 향했다. 벌써 10여 번 이상을 들러본 화석산지이다. 화성시는 화석산지를 찾아오는 관람객들을 위해 방문자센터에 간단한 소개책자를 마련해 관람자들을 돕고 있다. 너른 벌판에 갈색으로 물든 풀들이 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잎을 한편으로 뉘이고 있다. 조형으로 만들어 놓은 공룡 한 마리가 찬바람에 더 웅크리고 있는 것만 같다.

 

화석산지 관람은 정해진 관람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곳은 아직도 더 많은 공룡알 화석이 발견될 가능성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관람로를 만들어 사람들이 쉽게 공룡알 화석을 만날 수 있도록 조성을 해놓았다. 3개구간으로 구분되어 있는 공룡알 화석산지 관람은 방문자센터 - 전망데크를 1구간으로, 전망데크 - 상한염 - 중한염 - 누드바위를 2구간으로, 누드바위 - 래식동굴 - 하한염 - 무명섬을 3구간으로 정해놓고 있다.

 

 

불어오는 바람을 막을 곳이 없는 공룡알 화석산지를 찾을 때는 찬바람을 막을 수 있는 두툼한 외투는 필히 갖추어야 한다. 옷깃 사이로 파고드는 바람으로 인해 걷기조차 힘든 날이다. 그래도 이왕 이곳을 찾았으니 예전과 얼마나 달라졌는지 궁금하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곳이기 때문에 화석산지 자체는 달라진 것이 없다. 다만 주변경관과 방문자센터가 예전보다 관람자를 위한 여러 가지 편의시설이 늘었을 뿐이다.

 

문화재를 답사하면서 자료를 남기고 시간이 얼마간 지난 다음에 다시 찾아가는 것은 문화재보존에 필수과정이란 생각이다. 그렇게 비교함으로써 훼손이 된 곳은 없는지 문화재 보존에 문제는 없는지 등을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 남겨놓은 자료가 후일 정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기에 문화재답사란 걸을 수 있을 때까지는 계속해야 할 나의 일이라고 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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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는 늘 관심을 갖고 지켜보아야

  

문화재는 늘 관심을 갖고 지켜보아야 한다. 그 자리에 서 있다고 해도 언재나 같은 모습으로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위험하다. 문화재 중에서도 천연기념물은 항상 그대로 있을 수가 없다. 일기에 따라 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천연기념물 중에는 재난을 당해 지정 해제가 된 것들이 많다. 그것은 나무가 수명이 있기 때문이다.

 

백송은 흔치 않은 나무다. 중국 북부가 원산지이고 동남아에 퍼져있는 소나무의 한 종류이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몇 그루만이 생육하는 희귀종이다. 하기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백송은 지나칠 때마다 돌아보곤 한다. 백송은 그 껍질이 약재가 된다는 속설 때문에 사람들에게 수난을 당하기도 해 그만큼 보존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천연기념물 제253호 이천 신대리에 자리를 잡고 있는 ‘이천 신대리 백송’ 16일, 경기도 이천시 백사면 신대리에 생육하고 있는 백송을 찾아 나섰다. 몇 번인가 신대리 이천 백송을 만났지만 늘 궁금하다. 잘 자라고 있는지? 생육에 문제는 없는지? 혹 주변에 이상한 건물이라도 들어서 나무에 피해를 주지는 않고 있는지 온갖 생각이 다 든다.

 

 

 

 

 

봄날 만난 백송, 당당함이 깃들다

 

이천에서 여주 금사면 방향으로 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좌측으로 신대리 이정표가 나온다. 마을 안길로 조금 들어가면 이천 백송이라는 이정표가 있다. 좁은 길을 따라 들어가면 백송을 만날 수가 있다. 하지만 초행길인 사람은 쉽게 찾을 수가 없다. 벌써 몇 번이나 찾아본 백송이지만 갈 때마다 마을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고는 했다.

 

백송은 나무껍질이 넓은 조각으로 벗겨지면서 흰빛으로 변하기 때문에 백송 또는 백골송이라고 부른다. 이천 신대리 백송은 마을 한편 야산에 자리하고 있다. 멀리서보면 마치 우산처럼 생겼다. 위는 좁고 아래로 내려오면서 우산처럼 퍼져있다. 이 나무는 조선시대 전라감사를 지낸 민정식의 할아버지인 민달용의 묘소에 심은 것이라고 전한다.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수령은 약 230년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신대리 백송은 다니면서 본 백송 중 생육상태가 가장 좋은 나무로 보인다.

 

이천시 백사면 신대리 산 32에 소재하고 있는 신대리 백송은 나무의 높이는 16.5m 정도이고 가슴높이의 둘레는 2m 정도이다. 이천 백송은 언제 보아도 참 아름답다는 느낌을 받는다. 백송의 중간 가지들은 구불거리면서 자라고 있어 마치 용이 승천하기 위해 용틀임을 하는 것 같다. 멀지 않은 곳에 자라는 이천 반룡송의 나뭇가지도 마치 용처럼 휘감아 뻗었는데 이 백송 역시 가지가 많이 구불거리고 있어 이천이라는 곳이 나무가 생육하기에 적합한 토양인 듯하다.

 

 

 

 

 

용틀임이 일품인 이천 백송

 

이천 신대리 백송을 찬찬히 살펴본다. 밑동은 조금 위로 올라가 두 갈래로 갈라졌다. 나무의 줄기는 번성하여 어느 백송보다도 힘찬 모습이다. 위로 오르면 나무의 줄기가 점점 더 하얗다. 눈이라도 온 듯 맑은 흰색에 검은 무늬가 옅게 드리워져 있다. 봄날 만난 나무의 솔잎도 싱싱하다. 밑동 쪽에는 외과수술을 한 흔적이 보이지만 위로 올라가면서 더욱 무성한 잎을 달고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나무이면서 우리나라에서는 희귀종이기 때문에 천연기념물로 지정했다. 아래쪽으로 난 가지도 무성하게 잘 자라고 있다. 마을에서는 이 나무를 꽤나 신령스럽게 여기고 있는 듯하다. 한 때는 백송의 껍질이 약재로 사용된다고 해서 나무껍질을 사람들이 벗겨가는 바람에 곤욕을 치렀다고도 한다.

 

모처럼 찾아간 백송의 주변은 철재 울타리를 쳐놓았다. 보호를 하기 위한 방편이다. 천연기념물로 지정이 되었던 몇 그루의 백송들이 지정 해제를 당하기도 했다. 그래서인가 이천 백송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몇 년 만에 만난 이천 신대리 백송. 천연기념물치고는 수령이 오래되지 않았지만 그만큼 소중한 자원이기 때문에 지정을 했을 것이다. 앞으로 이곳을 지나칠 때마다 들려보아야겠다. 문화재란 늘 관심을 갖고 살펴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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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의 안녕과 마을 주민들의 풍년을 기원하는 ‘지리산 천년송 당산산제’가 오는 17일 11시에 마을주민과 관광객 등이 참석한 가운데 민족의 영산인 지리산 깊은 곳에 위치하여 구름도 쉬어간다는 남원시 산내면 와운(臥雲)마을에서 개최하였습니다.



지리산 품안 깊숙한 남원 산내면 뱀사골의 구름도 누워간다는 와운(臥雲)마을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정착한 이후로 5백여년 동안 이 마을을 지켜보던 한아씨(할아버지) 소나무와 할매(할머니) 소나무에게 매년 음력 1월 10일에 당산제를 지내 오고 있습니다.





천연기념물 관련 자연유산 민속행사 지원으로 준비되는 당산제는 주민들이 한달전부터 정성껏 제수용품을 준비하고 농악단 터울림행사, 천년송 소원빌기 등 성대하게 꾸려 오는 2월 17일 수요일 오전 11시에 와운마을 지리산 천년송 앞에서 열렸습니다.






와운마을 사람들에게 있어 천년송은 마을의 다산이자 풍요로움의 상징이며, 더 나아가 지리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재앙이 없도록 지켜주는 수호신의 의미를 갖습니다.

마을 당산목으로서 와운마을 뒷산에 있는 한아씨 소나무와 할매 소나무는 임진왜란 전부터 자생해 왔다고 알려져 있으며 20m 간격을 두고 마주보며 서 있습니다.



 




이중 더 크고 오래된 할매 소나무는 지리산 천년송(千年松)이라는 이름으로 지난 2000년 10월 13일에 천연기념물 제 424호로 지정되어 오랜 역사와 더불어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높이가 20여미터에 달하고 둘레는 6미터정도이며 가지 끝 사이의 폭은 12미터에 이를 정도로 매우 웅장하지요.



 

 
 

지리산에서 들러야 할 필수 명소로 꼽히는 천년송은 연간 34만 여명의 관광객이 찾아 오며 천년송의 뜨거운 기운을 얻어가고 있습니다.

구름도 누워가는곳, 와운마을. 그 아름다운 곳에서 열리는 지리산 천년송 당산제는 우리 모두의 축제로 한해의 풍요로움을 기원하는 소중한 제사입니다.



 

 

(자료 / 남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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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에 찾아 나섰던 단양팔경, 설경의 극치

 

단양팔경은 중국의 소상팔경보다도 더 아름답다고 한다. 굽이쳐 흐르는 남한강상류에 도담삼봉과 석문, 충주호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구담봉, 옥순봉과 선암계곡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 그리고 운선구곡에 있는 사인암을 합해 단양팔경이라 이른다.

 

지난 해 눈이 많이 온 날 단양팔경을 이틀에 걸쳐 답사한 자료가 모두 소실이 되는 바람에, 설 연휴에 다시 찾았다. 아직도 계곡에는 눈이 쌓여 발목까지 빠진다. 멀리서 바라볼 수 있는 옥순봉과 구담봉, 그리고 도담삼봉은 그래도 편히 촬영을 하였으나, 남은 곳은 눈이 쌓이고 얼어 미끄럽다.

 

중선암은 한참 걸어 들어가야 하는데, 눈 밑에는 얼어있어 몇 번이고 미끄러질 뻔 했다. 그래도 겨우 답사를 마쳤는데 이번에는 사인암의 동영상 자료가 빠졌다. 할 수 없이 사진을 이용한 동영상 자료를 대신 만들었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다. 설경의 단양팔경을 담고 싶어 몇 번인가 벼르고는 했지만, 결국 지난해도 흡족한 자료를 얻지 못했다. 올 겨울에는 다시 한 번 찾아가 제대로 된 설경을 담아보아야겠다.

 

 

 

도담삼봉

남한강의 맑고 푸른 물이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 한가운데 세개의 봉우리가 솟아있다. 가운데 봉우리는 늠름한 장군처럼 위엄 있는 자태를 하고 있는데 이를 남편봉이라 부르고 그보다 좀 작은 북쪽 봉우리는 처봉, 남쪽 봉우리는 첩봉이라 부른다. 이 삼봉 가운데 처봉은 아들을 얻기 위해 첩을 둔 남편을 미워하여 돌아앉은 모습을 하고 있고 첩봉은 아기를 밴 모습으로 남편봉을 바라보고 있다.

 

 

 

석문

수 십 척에 달하는 무지개 모양의 돌문이 나타나는데 신선들이 드나들고 천상의 선녀들이 하늘하늘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노래를 불렀음직하다. 석문 우측 아래에는 작은 동굴이 있는데 굴속에 깔린 암석은 아흔 아홉 개의 논다랭이를 이루고 있다.

 

 

 

구담봉

깎아지른 듯한 장엄한 기암절벽 위의 바위가 흡사 거북을 닮아 구담봉이라 한다. 조선인종 때 이지번이 벼슬을 버리고 이곳에 은거하였는데 푸른 소를 타고 강산을 청유하며 칡넝쿨을 구담의 양쪽 언덕에 매고 비학을 만들어 타고 왕래하니 사람들이 이를 보고 신선이라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옥순봉

희고 푸른 바위들이 대나무 순 모양으로 천여 척이나 힘차게 치솟아 절개 있는 선비의 모습을 하고 있는 봉우리를 옥순봉이라 한다. 여러 개 기이한 봉들은 조화의 묘를 다하였으며 산세의 기복과 굴곡이 자유분방하다. 옥순봉은 소금강이라는 별칭을 가질 정도로 비경인바,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연산군 때 문신 김일손(金馹孫)도 이곳을 탐승하면서 절경의 협곡을 극찬하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상선암

크고 널찍한 바위는 없으나 작고 올망졸망한 바위들이 서로 모여 있는 모습은 소박하고 정겨운 한국인의 이웃을 연상케 한다. 양안의 기암과 밤낮없이 흐르는 계류의 청음은 울창한 숲에서 사방 우짖는 새소리와 함께 현유선객들의 탐승의 흥취를 돋워주고 있다.

 

 

 

중선암

조선 효종조의 문신인 곡운 김수증 선생이 명명한 곳으로 삼선구곡의 중심지이다. 흰색의 바위가 층층대를 이루어 맑은 계류와 더불어 여름철 유람과 휴양지로서 최적의 절경을 이룬다. 골짜기로 흐르는 맑은 물속에서 쌍용이 승천하였다는쌍룡폭포가 있고 백색의 웅장한 2개의 바위가 있으니 하나는옥염대또 하나는명경대라 부른다.

 

 

 

하선암

단성면 대잠리 575지방도 아래 위치한 하선암은 삼선구곡을 이루는 심산유곡의 첫 경승지로 3층으로 된 흰 바위는 넓이가 백여척이나 되어 마당을 이루고 그 위에 둥글고 커다란 바위가 덩그렇게 얹혀 있어 가관인데 처음에는 부처바위(佛岩)로 불리다가 성종 때 군수 임재광이선암으로 고쳐불렀다. 후에 퇴계 이황선생이 하선암(下仙岩)이라고 하였다.(팔경 해설/단양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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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그 사용되는 용도에 따라 가치를 부여받는다. 하지만 그런 용도와는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섬김을 받는 나무들이 있다. 바로 천연기념물로 지정이 되어 있는 나무들이다. 우리나라에는 많은 종류의 나무들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고 있다. 이 나무들은 학술적으로도 매우 소중하기 때문에 보호를 받아야할 소중한 가치를 갖는 것이다.

 

나무 한 그루가 360년 세월동안 한 곳에 서 있다. 그렇다면 이 나무는 주변에 사람들이 벌써 10대 이상을 바뀌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는 뜻이다. 말을 하지 못해 우리에게 지난 사람들에 대해 고변을 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꽤 많은 이야기꺼리를 갖고 있지나 않을까?. 화성시 서신면 전곡리 149-2 웅지마을 뒤편에 소재한 천연기념물 제470호인 전곡리 물푸레나무의 이야기이다.

 

 

이 나무 임신한 것 아니오?

 

전국을 다니면서 크고 작은 나무들을 보았다. 물론 그 나무들은 모두 천연기념물이나 보호수로 지정이 되어있는 나무들이다. 그런데 11일 화성에서 만난 이 물푸레나무는 조금은 사람을 황당하게 만든다. 나무가 마치 임신을 한 듯하다. 굵은 줄기 중간에 속이 들여다보이는데 그곳에 줄기 같기도 하고 뿌리 같기도 한 것이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은 우리가 알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지만, 이런 경우는 도대체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6,25 한국전쟁 때까지만 해도 마을 사람들이 동신제를 지낸 나무라고 한다. 가뭄이 들어 비가 오지 않으면 이 나무에 정성스럽게 기우제도 지냈다는 것이다.

 

 

전곡리 물푸레나무는 수형이 아름답다. 나무의 높이는 20m 정도에 밑동의 둘레는 거의 5m 가까이 된다. 가지는 동으로 10m 정도, 서쪽으로 6.3m, 남으로 5m, 북으로 8.3m를 뻗어 동서로 16m, 남북으로 13.3m 정도를 뻗고 있다. 각종 농기구나 생활용품의 재료로 사용하던 물푸레나무, 여름철 입을 실하게 달고 있는 나무를 찬찬히 돌아본다.

 

잡풀 무성하고 관리도 하지 않는 듯

 

물푸레나무는 우리나라에서 흔히 자라는 키가 큰 나무로, 목재의 재질이 단단하여 괭이자루 등 각종 농기구와 생활용품 등의 용도로 널리 사용하였다. 뿐만 아니라 나무껍질은 건위제나 소염제 등의 한방 재료로 사용하였으며, 농촌에서는 여러 가지로 쓰임새가 많은 나무가 바로 물푸레나무이다.

 

 

전곡리 물푸레나무는 보기만 해도 압도당한다. 우선 거대한 밑동의 둘레도 그렇지만 실하게 잎을 달고 있는 나무가, 상당히 생육이 좋아 보이기 때문이다. 2년 전 이 나무를 만났을 때는 11월 말이라 나뭇잎을 달고 있지 않았다. 이런 나무를 마을에서 신성시 하는 것도, 이 나무를 잘못 대했다가 예전에 혼을 난 일이 있다고 전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추석연휴가 끝난 11일 찾아간 전곡리 물푸레나무는 한 마디로 실망스럽다. 마을에서 신성시 했다는 것 외에도, 이 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고 있는 나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무 주변은 잡풀이 무성해 안내판에 접근하기조차 어렵다. 나무를 촬영하려고 주변을 돌아보아도 높다랗게 자라난 잡풀이 발목을 붙들고는 한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전곡리 물푸레나무, 어째 이렇게 관리들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항상 이유는 많다. 비가 많이 와서 풀을 미처 베지 못했는데 갑자기 풀이 자랐다. 추석연휴가 끝나면 정리를 하려고 했다. 언제나 판에 박은 이런 핑계들을 댄다. 하지만 문화재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그런 이유를 다 이해를 하고 다닌다고 생각을 하는 것일까?

 

360년이라는 긴 시간을 마을을 굽어보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전곡리 물푸레나무. 앞으로도 이 나무가 얼마를 더 이 마을을 지키며 살아갈 것인지 아무도 가늠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것은 이 나무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을 때라야 가능한 이야기이다. 담당 관청에서는 소중한 천연기념물임을 깨닫고 주변 정리를 속히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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